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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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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공룡 거티는 윈저 맥케이가 제작한 초기 애니메이션 영화로, 공룡을 소재로 한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영화는 훈련된 코끼리처럼 묘기를 부리는 거티라는 공룡 캐릭터를 특징으로 하며,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자연스러운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맥케이는 이 작품을 보드빌 공연에 활용했으며, 극장 개봉을 위해 실사 프롤로그를 추가하여 상영하기도 했다. 공룡 거티는 관객과 평론가로부터 호평을 받았으며, 미국 국립 영화 등록부에 보존될 정도로 애니메이션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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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거티 - [영화]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홍보 포스터
홍보 포스터
원제Gertie the Dinosaur
감독윈저 맥케이
배급사박스 오피스 어트랙션스 컴퍼니
공개일1914년 2월 18일
국가미국
상영 시간12분
언어무성 영화, 영어 자막
제작 정보
감독윈저 맥케이
각본윈저 맥케이
제작윈저 맥케이
출연조지 맥매너스
출연토머스 A. 돌건
공개일1914년 9월 15일

2. 배경

윈저 맥케이(1867/1871 ~ 1934)는 상업 예술가이자 만화가로, 《Dream of the Rarebit Fiend》(1904~1911)와 그의 대표작인 《Little Nemo》(1905~1914) 등의 신문 만화 연재로 큰 인기를 얻었다.[1] 1906년부터 맥케이는 분필 토크(관객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공연)를 하며 보드빌 무대에 출연하기 시작했다.[2]

아들이 가져온 플립북에서 영감을 얻은 맥케이는 그의 만화에서 "움직이는 그림"을 만들 가능성을 인식했다. 그는 자신이 만화 영화를 만든 세계 최초의 사람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의 제임스 스튜어트 블랙턴과 프랑스의 에밀 코흘보다 늦었다. 맥케이의 첫 영화는 그의 ''Little Nemo'' 캐릭터를 주연으로 했고, 1911년에 영화관에서 데뷔했으며, 곧 그의 보드빌 공연에 통합되었다. 그는 1912년에 잠자는 남자의 피를 빠는 거대한, 사실적으로 애니메이션화된 모기를 그린 ''How a Mosquito Operates''를 제작했다. 맥케이는 그 모기에게 개성을 부여했고, 악몽 같은 상황의 공포와 유머의 균형을 맞췄다. 그의 애니메이션은 매우 사실적이어서 그가 사진에서 캐릭터를 베꼈거나 와이어를 사용하여 속임수를 썼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음 영화에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생물을 선택했다.

1912년에 맥케이는 미국 역사 협회(American Historical Association)와 상담하여 한때 지구를 돌아다녔던 거대한 괴물들을 묘사한 프레젠테이션을 만들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애니메이션 과정을 통해 "진지하고 교육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맥케이는 이전에 그의 만화에 공룡을 소개했는데, 예를 들어 1905년 3월 4일 ''Dream of the Rarebit Fiend''의 에피소드에서 ''Brontosaurus'' 뼈대가 경주에 참여했고, 1913년 5월 25일 ''Rarebit Fiend'' 에피소드에서 사냥꾼이 공룡을 성공적으로 사냥하지 못했다. 후자의 배경 레이아웃은 나중에 ''거티''에 등장한 것과 매우 유사했다. 1913년 9월 21일 맥케이의 ''Little Nemo'' 만화 ''In the Land of Wonderful Dreams''의 에피소드 "In the Land of the Antediluvians"에서 네모는 거티와 같은 디자인을 가진 파란색 공룡 베시를 만난다.

맥케이는 "거티"를 정하기 전에 여러 이름을 고려했다. 그의 제작 노트에는 "Jessie the Dinosaurus"라는 이름도 있었다. 디즈니 애니메이터 폴 새터필드는 1915년에 맥케이가 "거티"라는 이름을 선택한 방법을 들었다고 회상했다.

3. 내용

《공룡 거티》는 공룡을 소재로 한 초기 애니메이션 영화 중 하나이다.[1] 주인공 거티는 훈련된 코끼리처럼 묘기를 부리는 암컷 공룡으로,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거티는 리듬감 있게 숨을 쉬고, 움직일 때 무게 중심을 옮기며, 물을 마실 때는 복부 근육이 물결치는 모습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또한, 친근하면서도 변덕스러운 성격을 지녀 주인의 명령을 따르지 않거나 반항하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만화의 흑백 그림으로, 작은 십자가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맥케이는 그림의 모서리에 정합 마크를 사용하여 떨림을 줄였습니다.


《거티》는 맥케이가 배경을 자세히 묘사한 최초의 애니메이션 작품이기도 하다.[2] 1913년 중반부터 제작에 들어간 맥케이는 여가 시간을 활용하여 6x 크기의 쌀 종이에 수천 장의 거티 그림을 그렸다. 쌀 종이는 잉크를 흡수하지 않고 반투명하여 배경을 다시 그리는 데 용이했다. 미술학도였던 이웃 존 A. 피츠시몬스가 배경 작업을 도왔다. 그림은 종이의 6x 영역에 그려졌으며, 떨림을 줄이기 위해 모서리에 정합 마크를 표시했다. 완성된 그림은 두꺼운 판지에 부착하여 촬영했다.

맥케이는 정확한 타이밍과 움직임에 특히 신경을 썼다. 그는 자신의 호흡을 측정하여 거티의 호흡 타이밍을 결정했고, 거티의 무게 때문에 땅이 쳐지는 등의 미묘한 부분까지 표현했다. 뉴욕 박물관 직원들과 상의하여 거티의 움직임을 더욱 정확하게 만들고자 했으나, 멸종된 동물이 누운 자세에서 일어나는 방법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맥케이는 거티가 일어나는 장면에서 나는 도마뱀을 등장시켜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완성된 그림은 1914년 초 비타그래프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다.

네 모서리에 있는 흑백 필름 스틸. 중앙에 있는 세 명의 남자는 수천 장의 종이가 쌓여 있는 오른쪽 테이블 옆에 서 있습니다.
영화의 서두에서 영화를 위해 수천 개의 그림을 준비합니다.


맥케이는 주요 포즈를 먼저 그린 후 중간 프레임을 그리는 "맥케이 이중 시스템" 애니메이션 기법을 개발했다. 이 방법은 작업의 지루함을 덜고 영화 속 동작의 타이밍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었다. 맥케이는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공개했고, 특허 출원을 거부하며 "수백 피트의 영화를 위해 수천 장의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이 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거티》 제작 중, 맥케이는 애니메이션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는 방문객에게 자신의 작업 내용을 보여주었다. 이 방문객은 애니메이터 존 랜돌프 브레이였는데, 그는 맥케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맥케이의 기술을 몰래 습득했다. 이후 브레이는 정합 마크 사용, 트레이싱 용지, 무토스코프 액션 뷰어, 반복 동작을 위한 그림 순환 등 맥케이의 여러 기술에 대한 특허를 출원하고 1914년에 맥케이를 고소했다. 소송은 실패로 끝났고, 맥케이는 오히려 브레이에게 기술 사용료를 받게 되었다.

3. 1. 줄거리

영화감독 윈저 맥케이는 만화가 동료들과 함께 차를 몰고 가던 중 타이어가 펑크나는 사고를 당한다. 수리하는 동안 박물관을 견학하게 되고, 그곳에 전시된 공룡 뼈와 화석을 본 동료는 맥케이에게 "아무리 당신이라도 공룡을 움직이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맥케이는 이에 "할 수 있다!"라고 자신만만하게 답한다.[1]

몇 달 후, 맥케이의 집에서 파티가 열리고, 그가 만들어낸 사랑스러운 공룡 "거티"의 공개 시연이 시작된다. 스크린에 바위산과 호수, 나무 그림이 나타나고, 맥케이가 "나와라! 거티"라고 부르자, 거티(암컷)가 수줍게 등장한다. 거티는 나무를 먹고, 호수의 물을 모두 마셔버리고, 매머드와 장난을 치는 등 다양한 재롱과 애교를 부린다. 보드빌 공연에서 채찍을 든 맥케이는 거티에게 발을 들거나 명령에 복종하는 등의 묘기를 시킨다. 거티는 주인의 명령을 무시하거나 반항하기도 하지만, 주인이 호박으로 달래면 다시 온순해진다. 공연 내내 선사 시대 생물들이 거티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고, 거티는 점보라는 매머드를 호수에 던진다. 점보가 물을 뿌리며 놀리자, 거티는 헤엄쳐 가는 점보에게 바위를 던진다.

3. 2. 등장인물


  • '''거티''': 활발하고 어린아이 같은 암컷 공룡. 훈련된 코끼리처럼 묘기를 부리지만, 변덕스럽고 주인의 명령에 반항하기도 한다.[1]
  • '''윈저 맥케이''': 거티의 주인. 채찍을 들고 거티에게 묘기를 시킨다. (실사 프레임 스토리)
  • '''조지 맥매너스''', '''토마스 A. 돌간''': 맥케이의 친구들.

4. 제작

《공룡 거티》는 윈저 맥케이가 배경을 자세히 묘사한 최초의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주요 제작은 1913년 중반에 시작되었으며, 맥케이는 6½ x 8½ 인치 크기의 쌀 종이에 수천 개의 거티 프레임을 그렸다.[1] 이 종이는 잉크를 흡수하지 않고 반투명하여 배경을 다시 그리는 데 이상적이었다.[1] 미술학도였던 이웃 존 A. 피츠시몬스가 배경 작업을 도왔다.[1] 그림 자체는 종이의 6 x 8 인치 영역을 차지했으며, 떨림을 줄이기 위해 모서리에 정합 마크가 표시되었다.[1] 그림들은 두꺼운 판지에 부착되어 촬영되었다.[1]

맥케이는 정확한 타이밍과 움직임에 관심이 많았다.[1] 그는 자신의 호흡을 측정하여 거티의 호흡 타이밍을 결정했고, 거티의 무게에 땅이 쳐지는 것과 같은 미묘한 세부 사항을 포함시켰다.[1] 또한, 뉴욕 박물관 직원들과 상담하여 멸종된 동물이 누운 자세에서 일어나는 방법을 찾고자 했으나, 도움을 받지 못해 화면에 나는 도마뱀을 등장시켜 관람객들의 시선을 돌렸다.[1]

맥케이는 주요 포즈를 먼저 그린 다음 중간 프레임을 그리는 "맥케이 이중 시스템" 애니메이션을 개척했다.[1] 그는 자신이 개발한 기술에 대해 공개적이었고, 특허를 거부하며 "수백 피트의 영화를 위해 수천 개의 그림을 만들고 싶은 바보는 클럽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1] 존 랜돌프 브레이는 맥케이가 개발한 기술을 훔쳐 특허를 냈고, 맥케이를 고소했다.[1] 그러나 소송은 실패했고, 맥케이는 맞소송을 통해 기술 라이선스에 대한 로열티를 받았다.[1]

5. 공개

《공룡 거티》는 1914년 초 윈저 맥케이보드빌 공연의 일부로 처음 공개되었다.[1] 맥케이는 자신의 라이브 스케치를 선보인 후, 《모기가 작동하는 방식》을 상영하고 채찍을 들고 무대에 나타나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해 강연했다. 그는 영화 스크린 오른쪽에 서서 "유일하게 사육되는 공룡" 거티를 소개하고, 영화와 상호작용하며 공연을 진행했다. 1914년 12월 28일부터는 윌리엄 폭스의 박스 오피스 어트랙션 컴퍼니가 배급한 실사 프롤로그가 있는 버전으로 영화관에서 상영되었다.[1] 이 버전은 무대 대사를 대체하는 실사 서문과 인터타이틀을 포함했다. 거티가 개봉될 당시 공룡은 대중에게 아직 새로운 존재였으며, 광고는 이러한 점을 반영하여 대중에게 교육을 시도했다.

5. 1. 보드빌 공연

맥케이는 원래 이 영화의 버전을 자신의 보드빌 공연의 일부로 사용했다.[1] 첫 공연은 1914년 2월 8일 시카고의 팰리스 극장에서 열렸다. 맥케이는 관례적으로 자신의 라이브 스케치를 먼저 선보인 후, 《모기가 작동하는 방식》을 상영했다. 그런 다음 채찍을 들고 무대에 나타나 관객들에게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해 강연했다. 영화 스크린 오른쪽에 서서 그는 "유일하게 사육되는 공룡"을 소개했다. 영화가 시작되자 거티가 동굴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고, 맥케이는 그녀에게 앞으로 나오라고 격려했다. 그는 판지 사과를 스크린에 던지는 것과 같은 속임수로 환상을 강화했는데, 그 지점에서 그는 관객에게 등을 돌리고 영화에서 거티가 먹도록 사과가 나타나자 주머니에 넣었다.[2] 마지막 장면에서 맥케이는 무대에서 내려와 영화에 "다시 나타났고", 거티는 애니메이션화된 맥케이를 들어 올려 등에 태우고 걸어갔고, 맥케이는 관객에게 인사했다.

쇼는 곧 뉴욕으로 옮겨졌다. 비록 평가는 긍정적이었지만, 맥케이의 고용주인 신문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그의 스타 만화가의 보드빌 일정이 그의 사설 삽화 작업을 방해하는 것에 불만을 품었다. 허스트의 지시에 따라 맥케이 쇼에 대한 리뷰는 《뉴욕 아메리칸》 페이지에서 사라졌다. 그 직후, 허스트는 맥케이가 뉴욕에서 공연한 빅토리아 극장의 유료 광고 게재를 거부했다. 1914년 3월 8일, 허스트는 자신의 고용인은 보드빌에서 공연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맥케이의 계약은 그가 보드빌 공연을 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았지만, 허스트는 맥케이와 그의 에이전트에게 예약을 취소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었고, 결국 맥케이는 뉴욕 대도시권 밖에서는 공연을 금지하는 새로운 계약에 서명했다.

5. 2. 영화관 상영

1914년 11월, 영화 제작자 윌리엄 폭스는 ''공룡 거티''를 영화관에 판매할 것을 제안했고, 맥케이는 이를 받아들였다.[1] 그는 영화를 확장하여 무대 대사를 대체하는 실사 서문과 인터타이틀을 포함시켰다. 이 영화는 성공적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12월까지 서부 해안에 도달했다.[2]

실사 시퀀스는 1914년 11월 19일에 촬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는 만화가 조지 맥매너스, 태드 도건, 작가 로이 맥카델, 배우 톰 파워스 등 맥케이의 친구들이 출연했다. 맥케이의 아들 로버트는 카메라실 조수로 카메오 출연했다. 맥케이는 이전 리틀 니모 영화에서처럼 내기를 플롯 장치로 사용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맥케이와 친구들은 미국 자연사 박물관 앞에서 타이어가 펑크 나는 사고를 겪는다. 그들은 박물관에 들어가서 ''브론토사우루스'' 골격을 보면서 맥케이는 자신의 애니메이션 기술로 공룡을 생생하게 만들 수 있다는 내기를 건다. "각각 이전 것과 약간 다른" 10,000장의 그림을 그리는 애니메이션 과정이 공개되며, 조수가 떨어뜨리는 종이 산 등 유머러스한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가 끝나면 친구들은 식당에 모여 영화를 관람한다.

6. 평가 및 유산

《공룡 거티》는 관객과 평론가 모두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2] 시카고 공연 당시 드라마 평론가 애슈턴 스티븐스는 이 작품을 칭찬했고, 뉴욕 이브닝 저널은 "모션 픽쳐 만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에밀 코울은 맥케이의 영화, 특히 《거티》를 칭찬했다. 애니메이션 역사가 도널드 크래프톤은 《거티》를 "디즈니 이전 애니메이션의 지속적인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공룡 거티》는 미국 국립 영화 등록부에 보존을 위해 선정되었다.

맥케이의 깔끔한 선, 높은 대비, 현실적인 스타일은 이후 미국 애니메이션의 패턴을 정립했으며, 유럽의 추상적인 애니메이션과는 구별되었다. 이러한 유산은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장편 영화 《판타지아》(1940)와 같은 작품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샤무스 컬레인, 데이브 플라이셔와 맥스 플라이셔, 월터 란츠, 오토 메스머, 팻 설리번, 폴 테리, 빌 타일라는 맥케이의 보드빌 쇼에서 본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미국 애니메이터 세대 중 일부였다.

맥케이의 아들 로버트는 《디노》라는 만화로 거티를 되살리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와 디즈니 애니메이터 리처드 휴머는 1955년 월트 디즈니 앤솔로지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오리지널 보드빌 공연을 재현했다. 월트 디즈니 월드의 디즈니 할리우드 스튜디오 에코 호수 옆에는 거티 모양의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Closing Ceremony https://www.annecy.o[...] Annecy International Animated Film Festival 2023-07-18
[2] 웹사이트 Complete National Film Registry Listing https://www.loc.gov/[...] Library of Congress 202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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