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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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훈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으로,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중퇴하고 한국일보 기자로 활동하다가, 1994년 소설가로 데뷔했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 역사 소설로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간결하고 서정적인 문체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며, 언론인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낸다. 과거 전두환 정권 미화 기사 작성, 특정 인터뷰 발언 등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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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소설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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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학력
3. 생애
1948년 5월 5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김광주(金光洲)와 정무순(鄭戊順) 사이에서 4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13] 아버지 김광주는 상해 임시 정부 시절 김구 밑에서 일한 독립운동가이며, 광복 후 《경향신문》에서 편집국 부국장 등을 거쳐 문화부 부장 등을 지낸 언론인이자 소설가이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암에 걸려 투병 생활을 할 때 아버지가 연재하던 무협지 원고를 대필하기도 했다.[13]
돈암초등학교, 휘문중학교,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으나, 2학년 때 바이런과 메리 셸리를 읽고 영문학에 심취하여 1학기까지 다니고 학업을 중단했다가, 2년 뒤 고려대학교 영문과 2학년으로 전과했다. 이때 국문과를 다니던 현재의 부인 이연화(李燕和)와 만났다.[13]
2학년을 마치고 1970년 육군에 입대했다가 1973년 전역했다. 병장 무렵, 아버지 김광주가 사망하며 경제적 곤란을 겪었다. 당시 여동생 김용(金蓉)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에 다니고 있었는데, 한 사람 등록금밖에 낼 수 없는 형편이 되자, 김훈은 여동생에게 “내가 보니 넌 대학을 안 다니면 인간이 못 될 것 같으니, 차라리 너는 이 돈을 가지고 계속 대학에 다녀라”라고 말하고 자신은 중퇴했다.[13]
1973년, 대학을 중퇴한 뒤, 영어 교사 자격증을 따고 임용고사에 전국 2등으로 합격했다.[13] 같은 해, 한국일보에 입사, 사회부 기자로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다. 1974년 교제하던 이연화와 결혼했다.
한국일보 기자 시절, 1986년 5월부터 1989년 5월까지 박래부 기자와 함께 〈문학기행-명작의 무대〉를 연재했다. 작가와 함께 여행하며 작품의 시대적, 지리적 배경과 역사적 의미를 기록하는 기획으로, 문단과 독자들의 큰 반향을 불러왔다.[14] 이 기사들은 나중에 《김훈-박래부의 문학기행》으로 발간되었다.
한국일보를 다니는 동안 몇 차례 퇴사와 재입사를 반복하다가, 1989년 12월 31일 마흔둘의 나이로 퇴사하고 2년간 고정된 직장과 수입 없이 지냈다. 이 기간에 《월간미술》등에 수필을 연재하기도 했는데, 이때 쓴 글들은 나중에 수필집《선택과 옹호》(1991년)와 《풍경과 상처》(1994년)로 출간되었다.
1994년 겨울, 문예지《문학동네》 창간호와 1995년 봄호에 장편소설《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발표(2회 분재)하며, 47세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소설가로 데뷔한 뒤에도 언론인 활동을 병행했다. 1991년 새로 창간한《TV저널》의 편집국장이 되었고, 1994년에는 계열사인 주간지 《시사저널》에 입사하여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를 역임했으며, 1998년에는 국민일보로 이직하여 편집국 부국장, 출판국장, 편집위원으로 1년 남짓 일했다. 1999년 한국일보에 편집위원으로 재입사했고, 이때 한국일보에 연재한〈김훈의 우리 땅 자전거 답사〉는 나중에 내용을 더하여 수필집 《자전거 여행》으로 발간되었다. 2000년 《시사저널》 이사 겸 편집국장으로 복직했지만, 《한겨레21》에 실린 인터뷰가 논란을 일으키자 3개월 만인 10월 7일 퇴사했다.[15]
2001년 초, 두 번째 장편소설《칼의 노래》의 집필을 시작하여 두 달 만에 탈고하고 5월 11일에 출간했다. 《칼의 노래》는 출간 직후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며, 같은 해 10월 제3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고, 2007년 12월 기준, 100만 부 이상 팔리며 밀리언셀러가 되었다.[16]
2002년 2월 20일 한겨레신문에 부국장 대우 사회부 취재기자로 입사했고, 철도노조의 파업을 다룬 기사로 서울언론인클럽 기획취재상을 수상했다.[17][18] 2003년 1월 20일에 퇴사했다.
2004년 이후,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소설과 수필을 꾸준히 발표해오고 있다.
3. 1. 초기 생애 및 학창 시절
김훈은 1948년 5월 5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아버지 김광주와 어머니 정무순 사이의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2] 아버지는 소설가이자 조선독립운동 활동가로 김구, 윤봉길과 교류가 있었으며, 광복 후에는 《경향신문》 문화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김훈은 아버지가 병상에 있을 때 아버지를 대신하여 글을 쓰는 등 아버지 밑에서 자연스럽게 소설 수양을 쌓았다고 한다.1960년 돈암초등학교(敦岩初等學校)를 졸업하고, 1963년 휘문중학교(徽文中學校), 1966년 휘문고등학교(徽文高等學校)를 졸업하였다.[2] 같은 해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으나, 2학년 때 바이런과 메리 셸리 등 낭만주의에 심취하여 영문학에 매료되어 대학을 중퇴하고 영어영문학과로 전과했다. 1970년 군에 입대하여 1973년 의무병역을 마치고 복학했으나, 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학생운동으로 혼란스러웠던 대학 상황으로 인해 대학 졸업을 포기하고 한국일보사에 입사했다.[2]
신문기자 시절에는 “문학기행”이라는 제목의 평론을 《한국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1974년 이연화와 결혼하였다. 1989년 한국일보사를 퇴사하고 약 2년 동안 《선택과 옹호》, 《풍경과 상처》 두 권의 에세이를 발표했다. 1994년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1》(《문학터널》 1994년 겨울 창간호), 1995년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2》(《문학터널》 1995년 봄호)를 발표하며 47세에 문단에 데뷔하였다.[3]
3. 2. 언론인 활동
1973년, 고려대학교를 중퇴하고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다. 기자 시절에는 “문학기행”이라는 제목의 평론을 《한국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1989년 한국일보를 퇴사한 후, 1991년에는 《TV저널》 편집국장을, 1994년에는 《시사저널》 사회부장을 역임했다. 1998년에는 국민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고, 1999년에는 한국일보 편집위원으로 복귀했다. 2000년 《시사저널》 이사 겸 편집국장으로 입사했으나 3개월 만에 퇴사했다. 2002년 한겨레신문사 취재기자로 입사하여 서울언론인클럽 언론상 기획취재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나, 이듬해 퇴사했다.3. 3. 소설가 데뷔 및 작품 활동
김훈은 1948년 5월 5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서 태어났다.[5] 아버지 김광주는 소설가이자 독립운동가로 김구, 윤봉길과 교류했으며, 광복 후에는 《경향신문》 문화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김훈은 아버지 밑에서 자연스럽게 소설 수양을 쌓았다고 한다. 1960년 돈암초등학교, 1963년 휘문중학교, 1966년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6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으나, 1968년 영문과로 전과했다. 1970년 군에 입대하여 1973년에 제대, 복학하였으나, 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학생운동으로 혼란스러웠던 대학 상황으로 인해 중퇴하였다.[5] 1973년 한국일보에 입사했으며, 1974년 이연화와 결혼했다.[5]1989년 한국일보를 퇴사하기 전까지, 신문기자 시절 “문학기행”이라는 제목의 평론을 《한국일보》에 연재하는 등 문학 활동도 병행했다. 퇴사 후 약 2년 동안 《선택과 옹호》, 《풍경과 상처》 두 권의 에세이를 발표했다. 1994년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1》(《문학터널》 1994년 겨울 창간호), 1995년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2》(《문학터널》 1995년 봄호)를 발표하며 47세에 문단에 데뷔했다.
작가가 된 후에도 《시사저널》, 《TV저널》, 《국민일보》 등에서 편집국장, 부국장 등을 역임하며 저널리스트로서의 활동을 계속했다.[5] 2000년 《시사저널》 이사 겸 편집국장으로 입사하였으나, 3개월 만에 퇴사하였다. 2001년 장편 《칼의 노래》를 발표하여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5] 그의 글쓰기는 기자 출신 경력을 바탕으로 세련되고 감상적이지 않으며, 명료함과 균형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정적인 리듬을 불어넣기 위해 문장을 능숙하게 다듬는다는 평가를 받는다.[5]
2002년 한겨레신문사 취재기자로 입사하여 서울언론인클럽 기획취재상을 수상하였고, 2003년 퇴사하였다.[5] 2007년 장편 《남한산성》을 발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5] 《남한산성》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청나라에 저항하려 했던 실패한 시도를 바탕으로 한다.[6] 2017년에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이 제작되었다.[6] 2009년에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남한산성」이 제작되었는데, 슈퍼주니어의 예성이 악역인 "정명수" 역을 맡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되었다.[7]
3. 4. 언론인 및 소설가로서의 경력
김훈은 1948년 5월 5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태어났다.[5] 돈암초등학교, 휘문중학교,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으나, 이후 영어영문학과로 전과했다.[5] 1970년 군에 입대하여 1973년 제대했고, 같은 해 고려대학교를 중퇴하고 한국일보에 입사했다.[5] 1974년에는 이연화와 결혼했다.[5]한국일보 기자 시절, "문학기행"이라는 평론을 연재하기도 했으나, 1989년 퇴사했다.[5] 이후 약 2년간 《선택과 옹호》, 《풍경과 상처》 등의 에세이를 발표했다.[5] 1994년 《문학터널》에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1》을 발표하며 47세의 늦은 나이에 등단했다.[5]
소설가 등단 이후에도 언론인으로서의 활동을 병행했다. 1995년에는 『시사저널』 편집국장 대리를 거쳐 편집국장을 역임했고, 1996년에는 『TV저널』 편집국장, 1998년에는 『국민일보』 출판국 국장을 역임했다.[5] 2000년 『시사저널』에서 퇴사한 후에는 집필 활동에 전념했다.[5]
2001년 발표한 장편 소설 《칼의 노래》는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5] 이 작품에서 김훈은 이순신 장군을 단순한 영웅이 아닌 내면적 고뇌를 가진 인간으로 그려냈다.[5] 2002년에는 한겨레신문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하며 서울언론인클럽 언론상 기획취재상을 받기도 했다.[5]
기자 출신 작가로서 김훈은 세련되고 명료한 문체를 구사하며, 극한 상황에 놓인 인간의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하는 통찰력을 보여준다.[5] 2007년 발표한 장편 소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6] 이 작품은 2017년 영화 《남한산성》으로 제작되었고,[6] 2009년에는 뮤지컬로도 각색되어 공연되었다.[7]
김훈은 동인문학상 외에도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5]
4. 작품 경향
1986년 한국일보 재직 당시 3년 동안 한국일보에 매주 연재한 것을 묶어 낸 《문학기행》(박래부 공저)으로 해박한 문학적 지식과 유려한 문체로 빼어난 여행 산문집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한국일보에 연재하였던 독서 산문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1989) 등의 저서가 있다.[13] 1999∼2000년 전국의 산천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쓴 에세이 《자전거여행》(2000)도 생태·지리·역사를 횡과 종으로 연결한 수작으로 평가받았다.[13] 김훈이 언어로 붙잡고자 하는 세상과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13] 선상에서 밧줄을 잡아당기는 선원들이기도 하고,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는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민망하게도 혹은 선정주의의 혐의를 지울 수 없게도 미인의 기준이기도 하다.[13] 그는 현미경처럼 자신과 바깥 사물들을 관찰하고 이를 언어로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하며, 무엇보다도 어떤 행위를 하고 그 행위를 하면서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느낌을 메타적으로 보고 언어로 표현해낸다.[13]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는 그를 일러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평하고 있기도 하다.[13]
김훈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라며 문학의 역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13]
김훈은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나를 표현해 내기 위해서”, “우연하게도 내 생애의 훈련이 글 써먹게 돼 있으니까”라고 밝혔다.[13] 그의 희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첫 번째가 음풍농월하는 것이라 한다.[13] 또 음풍농월 하면서도 당대의 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13]
4. 1. 문학관
1986년 한국일보 재직 당시 3년 동안 한국일보에 매주 연재한 것을 묶어 낸 《문학기행》(박래부 공저)으로 해박한 문학적 지식과 유려한 문체로 빼어난 여행 산문집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한국일보에 연재하였던 독서 산문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1989) 등의 저서가 있다.[13] 1999∼2000년 전국의 산천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쓴 에세이 《자전거여행》(2000)도 생태·지리·역사를 횡과 종으로 연결한 수작으로 평가받았다.[13] 김훈이 언어로 붙잡고자 하는 세상과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13] 선상에서 밧줄을 잡아당기는 선원들이기도 하고,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는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민망하게도 혹은 선정주의의 혐의를 지울 수 없게도 미인의 기준이기도 하다.[13] 그는 현미경처럼 자신과 바깥 사물들을 관찰하고 이를 언어로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하며, 무엇보다도 어떤 행위를 하고 그 행위를 하면서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느낌을 메타적으로 보고 언어로 표현해낸다.[13]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는 그를 일러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평하고 있기도 하다.[13]김훈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라며 문학의 역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13]
김훈은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나를 표현해 내기 위해서”, “우연하게도 내 생애의 훈련이 글 써먹게 돼 있으니까”라고 밝혔다.[13] 그의 희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첫 번째가 음풍농월하는 것이라 한다.[13] 또 음풍농월 하면서도 당대의 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13]
5. 논란
5. 1. 전두환 미화 기사 작성
1980년 한국일보 재직 시절, 하장춘, 이연웅, 장명수와 함께 한국일보에 3회(상, 중, 하)로 연재된 기사 〈전두환 장군 의지의 30년-육사 입교에서 대장 전역까지〉를 작성했다.[19] 이 기사는 12·12 군사 반란으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의 대통령 출마를 앞두고 그의 일대기를 미화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보안사령부는 언론사들을 위협하여 신군부에 유리한 편향 보도를 강요했고, 주요 언론사들은 모두 이와 같은 왜곡된 미화 기사를 내보내던 때였다.[20][21]김훈은 당시 상황에서 누군가는 써야만 했고 한국일보 내 다른 기자들이 회피했기에 자신이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그 시대엔 내가 그걸 안 하면 누군가가 해야 됐어요. 어느 신문사든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조선, 중앙, 동아… 뭐 다 했어요. 나는 내 손목으로 그 짓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내 죄는 피할 수가 없는 거죠"라고 말했다. 반성하냐는 질문에는 "반성한다고 말해서 용서되는 것도 아녜요. 제가 저지른 겁니다. 그래서 너무 수치스러워서 1989년 연말에 회사를 그만둔 겁니다. 내가 너무 더러워서…"라고 답했다.[13] 《한겨레21》에 실린 대담에서는 "내가 안 썼으면 딴 놈들이 썼을 테고… 난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때 나를 감독하던 보안사 놈한테 이런 얘기를 했지. 내가 이걸 쓸 테니까 끌려간 내 동료만 때리지 말아달라. 걔들이 맞고 있는 걸 생각하면 잠이 안 왔어. 진짜 치가 떨리고…."라며 자신이 죄가 많다고 말했다.[22]
5. 2. 한겨레21 인터뷰 논란
2000년 9월, 시사 주간지 《한겨레21》(2000년 9월 27일자, 제327호)의 〈쾌도난담〉에서 최보은 기자, 김규항 작가와 대담하던 중, 남성우월주의, 민중예술과 거대 담론에 대한 경멸, 통일 반대, 재벌 세습 옹호, 조선일보 극찬 등의 발언을 했다.[22][23] “여성들한테는 가부장적인 것이 가장 편한 것”,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압도적으로 유능하다”, “기자는 2류나 3류”, “(한겨레의 민중주의는) 모든 민중을 천민화해가는 것”, “거대 담론은 다 오류”, “재벌이 아들한테 회사 물려주는 거는 한심하지만 불가피한 것”, “조선일보는 가장 우수한 신문” 등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켰다.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당시 김훈이 편집국장으로 재직 중이던 《시사저널》의 기자가 항의성 사직을 하자, 같은 해 10월 7일 편집국장 자리를 내놓고 회사를 떠났다.[15]
이때의 발언 중 여성 비하와 남성우월주의적인 발언에 대해서는 2011년 10월 지승호와의 인터뷰에서 “남자라는 종족이 지가 잘나서가 아니라 사회제도가 그렇게 만들어놨던 것”이라며 여성 차별과 학대의 결과로서 나타난 남성의 우월성에 대해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24]
5. 3. 안티조선 운동 시기의 행태
2000년은 조선일보 최장집 교수 왜곡보도 사건(1998)이 계기가 되어, 기고나 인터뷰 거부 등 본격 조선일보 안티 운동이 펼쳐지던 때이다.[25] 이때 그는 시사저널 이사 겸 편집국장으로 2000년 9월 한겨레21 대담[26]에서 제벌세습 인정, 남성우월주의 등을 말하면서 끝으로 조선일보 간증을 한다. 자신은 평생 애독자로 조선일보가 가장 우수한 신문이며, 기자들이 그 사설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가 문제가 커지자 그만둔다.2001년 조선일보는 동인문학상 수상 인터뷰에서, 앞서 조선일보 간증으로 박해 받았던 부분을 잊지 않고 물어봐 준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때 일을 우쭐거리듯 전광석화처럼 결정했다 말한다. 이어 조선일보는 신념에 걸맞는 행동이긴하나 그래도 가장인데 직을 버리기 쉽지 않았을 텐데하고 물어봐 주자, 타협할 수 없는 것과는 타협 안했다며 아내와 아이들도 나를 지지해줬다 말하다.[27]
안티조선일보 때는 동인문학상을 받더니 2001년 밥벌이로는 좋아하는 조선일보가 아닌 한겨레로 가서 한다. 김훈과 한겨레에 묻는다.[28] 이렇듯 그의 신념과 양심은 남다르다. 그래서 일까 그의 글쓰기는 겉돌고 어디에 속하지 못하면서 구경꾼처럼 괴리감이 느껴진다. 동인문학상 수상 인터뷰에서도 말한 바 있는데, 양쪽으로 나뉜 현실에 내가 낄 곳은 없다며 방관자, 소외된 자로 살 수 밖에, 양심에 따른 것으로 비난 받아도 할 수 없으며 감당한다[29] 말하다.
5. 4. 조국 사태 관련 발언
김훈은 《중앙일보》 2023년 8월 4일 특별기고에서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이 모든 게 '내 새끼 지상주의'가 낳은 결과이고, 내 새끼 지상주의를 가장 권력적으로 완성해서 영세불망(永世不忘)의 지위에 오른 인물로 조국 전 장관과 부인을 꼽았다.[30]이에 대해 《민들레》는 이재명은 현실은 접은 채 구경꾼으로 이야기를 하는 소설가에게 우리 사회 현실 문제,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은 그한테는 너무 버거운 일이며, 이건 아동학대라며 한국 언론을 비판했다.[31]
김훈의 글이 나가고 이를 지원하는 글이 나오더니[32] 8월 10일 공교롭게도 검찰은 "공소권 남용, 공소기각 사유"라는 비판에도 조국의 딸 조민을 기소한다.[33]
당사자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할 말도 없다'는데, 12일 《조선일보》는 애독자 김훈 구하기에 나섰다.[34]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그는, '''내 검사 새끼 지상주의'''를 가장 권력적으로 완성해서 영세불망(永世不忘)의 지위에 오른 윤석열과 그 부인에 대해선 여지껏 한마디 말이 없다.
6. 수상
7. 저서
; 단편
: * 〈화장〉(2004)
: * 〈언니의 폐경〉 (2005)
; 단편집
: * 《강산무진》 (2006)
: * 《저만치 혼자서》 (2022)
; 장편
: *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1994)
: * 《칼의 노래》 (2001)
: * 《현의 노래》 (2004)
: * 《개》 (2005)
: * 《남한산성》 (2007)
: * 《공무도하》 (2009)
: * 《내 젊은 날의 숲》 (2010)
: * 《흑산》 (2011)
: * 《공터에서》 (2017)
: * 《달 너머로 달리는 말》 (2020)
: * 《하얼빈》(2022)
; 수필집
: * 《선택과 옹호》(1991)
: * 《풍경과 상처》 (1994)
: * 《자전거 여행》 (2000)
: * 《원형의 섬 진도》(2001)
: *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2002)
: *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2002)
: * 《밥벌이의 지겨움》 (2003)
: * 《자전거 여행2》 (2004)
: * 《바다의 기별》 (2008)
: * 《라면을 끓이며》 (2015)
; 평론
: * 《내가 읽은 책과 세상》 (1989)
: * 《김우창과 김훈이 본 오치균의 그림세계》(2008)
7. 1. 소설
김훈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소설가가 되었지만, 노련한 기교와 재능으로 글을 쓴다.[5] 기자 출신 경력을 바탕으로 그의 글은 세련되고 감상적이지 않으며, 명료함과 균형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정적인 리듬을 불어넣는다.[5] 재난 현장 취재 경험은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통찰력을 제공했다.[5]그의 첫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은 소방관의 의문사를 다룬 추리소설 형식으로, 맹렬한 화재와의 싸움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극한 상황에서 인간 감정의 격렬함을 예리하고 미묘하게 탐구한다.[5] 두 번째 소설 《칼의 노래》에서 김훈은 이순신을 단순한 전쟁 영웅이 아닌, 내면의 복잡성과 씨름하는 평범한 사람으로 그려낸다.[5]
《현의 노래》는 신라 시대 1500년 전에 살았던 유명한 음악가 우륵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5]
《남한산성》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조선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청 홍타이지에 저항하려 했던 실패한 시도를 바탕으로 한다.[6] 이 소설은 2017년 영화 《남한산성》으로 제작되었다. 2009년에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남한산성》이 제작되었는데, 슈퍼주니어의 예성이 통역관 출신 "정명수" 역을 맡았다.[7]
2011년 김훈의 작품 "Schwertgesang"(강혜진, 안소현 역)은 대산문학상 번역문학상을 수상했다.[8]
; 단편
- 〈화장〉(2004)
- 〈언니의 폐경〉 (2005)
; 단편집
- 《강산무진》 (2006)
- 《저만치 혼자서》 (2022)
; 장편
-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1994)
- 《칼의 노래》 (2001)
- 《현의 노래》 (2004)
- 《개》 (2005)
- 《남한산성》 (2007)
- 《공무도하》 (2009)
- 《내 젊은 날의 숲》 (2010)
- 《흑산》 (2011)
- 《공터에서》 (2017)
- 《달 너머로 달리는 말》 (2020)
- 《하얼빈》(2022)
7. 2. 단편집
- 《강산무진》 (2006)
- 《저만치 혼자서》 (2022)
7. 3. 수필집
《선택과 옹호》(1991), 《풍경과 상처》(1994), 《자전거 여행》(2000), 《원형의 섬 진도》(2001),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2002),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2002), 《밥벌이의 지겨움》(2003), 《자전거 여행2》(2004), 《바다의 기별》(2008), 《라면을 끓이며》(2015) 등의 수필집을 출간했다.7. 4. 평론
김훈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소설가가 되었지만, 노련한 소설가의 기교와 재능으로 글을 쓴다. 기자 출신 경력을 바탕으로 그의 글은 세련되고 감상적이지 않으며, 명료함과 균형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정적인 리듬을 불어넣기 위해 문장을 능숙하게 다듬는 것이 특징이다.[5] 재난 현장으로 달려가야 했던 기자 시절의 경험은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통찰력을 제공했다.[5] 생사가 걸린 혼란 속에서 중요한 세부 사항과 순간들을 포착하는 능력은 그의 첫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에서 잘 드러난다.[5]그의 두 번째 소설 《칼의 노래》에서 김훈은 이순신 장군을 단순한 전쟁 영웅이 아닌, 특별한 상황에 직면하여 자신의 내면의 복잡성과 씨름하는 평범한 사람으로 그려낸다.[5] 이후 가야금 악사 우륵의 삶을 다룬 《현의 노래》를 발표했다.[5]
《남한산성》은 1636년 병자호란(병자호란) 당시, 조선 인조가 경기도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후금 홍타이지에 저항하려 했던 실패한 시도를 바탕으로 한다.[6] 2017년에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이 제작되었다. 2009년에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남한산성》이 제작되었는데, 슈퍼주니어의 예성이 출연했다.[7]
2011년 김훈의 작품 “Schwertgesang”(강혜진, 안소현 역)은 대산문학상 번역문학상을 수상했다.[8]
8. 가족 관계
- 아버지 김광주(1910~1973)는 소설가이자 언론인이며, 독립운동가였다.
- 배우자는 이연화이다.
- 딸은 김지연으로 이든픽쳐스 대표를 맡고 있으며, 아들은 김지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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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1980년대 전두환 칭송했던 언론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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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특별기고]'내 새끼 지상주의'의 파탄…공교육과 그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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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이야기꾼' 김훈을 착취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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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만 귀한 나라'…서이초, 주호민, 그리고 조국 [기자수첩-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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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부부 ‘자백 강요’ 안 먹히자 딸도 기소…“공소권 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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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비판 두 문장에… 개딸 “김훈 책 버리겠다” 총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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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은 거룩한 직업… 살려서, 살아서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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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소방 119특수구조단 산악구조대 소방사 오영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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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가는 소설가 김훈 “세월호 이대로 종결 못해”… 문인들 ‘희망버스’ 3일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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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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