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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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문은 중국 광시성 출신의 홍콩 가수이자 배우이다. 1960년대 홍콩으로 이주하여 비틀즈를 모방한 밴드로 활동하며 음악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TVB와 계약하여 가수로 데뷔, '사자산하'를 비롯한 여러 TV 드라마 주제가를 불렀으며, 1990년대에는 관숙이, 용조아, 정이건 등을 제자로 양성했다. 그는 무대에서 성 역할의 경계를 넘나드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로도 유명했으며, 1996년 은퇴 후에도 간간이 공연을 했다. 2002년 간세포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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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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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담백선 (譚百先) |
출생일 | 1945년 2월 12일 |
출생지 | 바이써 시, 광시 성, 중화민국 |
사망일 | 2002년 10월 18일 |
사망 장소 | 홍콩 포푸람 퀸 메리 병원 |
직업 | 가수 |
활동 기간 | 1960년대–2002년 |
기타 이름 | 로우 키 (羅記) 가성 (歌聖) |
중국어 정보 | |
중국어 (정체자) | 羅文 |
중국어 (간체자) | 罗文 |
병음 | Luó Wén |
월병 | Lo4 Man4 |
음악가 정보 | |
장르 | 캔토팝 홍콩 영어 팝 |
악기 | 보컬 |
레이블 | EMI BMG EEG |
관련 활동 | 로만 앤드 더 포 스텝스 |
수상 | |
수상 내역 | RTHK 톱 10 골든 송 어워드 1991년 RTHK 골든 니들 어워드 |
2. 생애
나문은 중국 광시 성 바이써에서 태어났으며, 가문의 뿌리는 광시 성 구이핑에 있다. 1947년 두 살 때 광저우로 이주했다. 어머니의 병환으로 인해 1962년 17세의 나이로 홍콩으로 이민을 갔다.[2] 그는 가난했고, 은행 건물 바닥에서 침낭과 라디오를 가지고 잠을 자야 했다. 그의 음악적 관심은 라디오를 듣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비틀즈를 모방하기 위해 로만 앤 더 포 스텝스라는 단명을 맺고 일본에서 재능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후,[3][4] TVB와 계약을 맺고 가수가 되었다. 1990년대 초에 잠시 아시아 텔레비전으로 옮기기도 했다. 그의 예명은 그의 영어 이름인 로만을 음역한 것이다.
1990년대에는 관숙이, 용조아, 정이건 등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는 ''사자산하''를 비롯한 여러 TV 드라마 주제가와 증경(Jenny Tseng)과 함께 부른 1983년 TVB 드라마 ''사조영웅전''의 주제가 듀엣 등 유명한 솔로와 듀엣 곡을 많이 불렀다.[5]
탐은 성 역할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무대에서 "화려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드래그를 공연한 최초의 홍콩 팝스타였으며, 누드 사진을 찍어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당시에는 논란이 되었지만, 탐은 "무대에서의 화려함은 무대 밖에서의 신중함으로 인해 용서받았고, 동성애가 불법이었던 시대에 중국 주류 문화에 받아들여졌다."라고 평가받았다.[6] 그는 결혼하지 않았고, 사생활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4]
1996년에 공식적으로 은퇴했지만, 다른 아티스트들과 가끔 공연을 했다.[4] 2002년 10월 18일 홍콩의 퀸 메리 병원에서 간세포암으로 향년 57세로 사망했다.[7][8] 당시 홍콩 행정부 정무차관 허사오차오가 애도를 표했다.
2. 1. 일생
나문은 중화민국 광시 성 바이써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출생일에 대해서는 1944년 12월 19일 출생설[9][10]과 1945년 2월 12일(음력: 1944년 12월 30일)[11] 출생설이 존재하며, 공식 프로필에는 1945년 2월 12일생으로 기록되어 있다.그는 중화민국 광시 성 구이핑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냈고, 1947년에 광둥성 광저우로 이주하여 유아기를 보냈다. 1949년 홍콩에서 일시적으로 거주했다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다시 광저우로 이주했다. 1962년 홍콩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광저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1962년 홍콩에서 은행 견습직원으로 근무하며 밤에는 영어 공부를 하는 주경야독의 삶을 살았다. 동년에 친구들과 음악 밴드 T.N.T.를 구성해 음악 활동도 병행했다. 비틀즈의 팬이었던 그는 1967년 홍콩에서 영문 팝 음악 밴드 Roman and The Four Steps을 결성하면서, 밴드의 리더 겸 보컬로 가수 데뷔하였다. 1970년 홍콩 영화 《청춘송(青春頌)》과 1979년 홍콩 영화 《가법(家法)》의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영화배우로도 데뷔하였다.
1974년부터 1977년까지 일본에서 활동하며 3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1975년에는 요미우리 TV 방송에서 방영한 [https://ja.wikipedia.org/wiki/%E5%85%A8%E6%97%A5%E6%9C%AC%E6%AD%8C%E8%AC%A1%E9%81%B8%E6%89%8B%E6%A8%A9 전일본가요선수권(全日本歌謡選手権)]에서 비일본인 가수 최초로 그랜드 챔피언을 수상하며, 홍콩과 일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1980년대에 자신이 직접 제작한 무대극 백사전과 유의전서에서 주연배우로 활동하였고, 곤극배우, 경극배우, 천극배우와 뮤지컬배우로도 활동하였다.
1947년 두 살 때 광저우로 이주했다. 어머니가 병에 걸려 홍콩에서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1962년 17세의 나이로 홍콩으로 이민을 갔다.[2] 그는 가난했고, 은행 건물 바닥에서 침낭과 라디오를 가지고 잠을 자야 했다. 그의 음악적 관심은 라디오를 듣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비틀즈를 모방하기 위해 로만 앤 더 포 스텝스라는 단명을 맺고 일본에서 재능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후,[3][4] TVB와 계약을 맺고 가수가 되었다. 1990년대 초에 잠시 아시아 텔레비전으로 옮기기도 했다. 그의 예명은 사실 그의 영어 이름인 로만을 음역한 것이다.
1990년대에는 관숙이, 용조아, 정이건 등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는 ''사자산하''를 비롯한 여러 TV 드라마 주제가와 증경(Jenny Tseng)과 함께 부른 1983년 TVB 드라마 ''사조영웅전''의 주제가 듀엣 등 유명한 솔로와 듀엣 곡을 많이 불렀다.[5]
탐은 성 역할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무대에서 "화려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드래그를 공연한 최초의 홍콩 팝스타였으며, 누드 사진을 찍어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후자는 당시 논란이 되었지만, 탐은 "무대에서의 화려함은 무대 밖에서의 신중함으로 인해 용서받았고, 동성애가 불법이었던 시대에 중국 주류 문화에 받아들여졌다."[6] 그는 결혼하지 않았고, 사생활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4]
1996년에 공식적으로 은퇴했지만, 다른 아티스트들과 가끔 공연을 했다.[4]
2002년 10월 19일, 홍콩 퀸 메리 병원에서 간세포암으로 5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당시 홍콩 행정부 정무차관 허사오차오가 애도를 표했다.[7][8]
2. 2. 제자 양성
나문은 1990년대에 관숙이, 용조아, 정이건 등 여러 신진 가수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는 ''사자산하''를 비롯한 여러 TV 드라마 주제가와 증경(Jenny Tseng)과 함께 부른 1983년 TVB 드라마 ''사조영웅전''의 주제가 듀엣 등 유명한 솔로 및 듀엣 곡을 많이 불렀다.[5]2. 3. 은퇴와 사망
2002년 10월 18일 홍콩의 퀸 메리 병원에서 간세포암으로 향년 57세로 사망했다.[2][7][8] 당시 홍콩 행정부 정무차관 허사오차오가 애도를 표했다.탐은 1996년에 공식적으로 은퇴했지만, 다른 아티스트들과 가끔 공연을 했다.[4]
3. 음악 활동
그는 라디오를 들으며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비틀즈를 모방하기 위해 로만 앤 더 포 스텝스라는 단명 그룹을 결성하고 일본에서 재능 콘테스트에서 우승하기도 했다.[3][4]
나문은 성 역할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무대에서 "화려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드래그를 공연한 최초의 홍콩 팝스타였으며, 누드 사진을 찍어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이는 당시 논란이 되었지만, "무대에서의 화려함은 무대 밖에서의 신중함으로 인해 용서받았고, 동성애가 불법이었던 시대에 중국 주류 문화에 받아들여졌다."[6]
3. 1. 밴드 활동
나문은 비틀즈를 모방하여 로만 앤 더 포 스텝스라는 밴드를 결성하고 일본에서 재능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후, TVB와 계약을 맺고 가수가 되었다.[3][4] 1990년대 초에는 잠시 아시아 텔레비전으로 옮기기도 했다.1990년대에는 관숙이, 용조아, 정이건 등 여러 신진 가수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는 ''사자산하''를 비롯한 여러 TV 드라마 주제가와 증경(Jenny Tseng)과 함께 부른 1983년 TVB 드라마 ''사조영웅전''의 주제가 듀엣 등 유명한 솔로와 듀엣 곡을 많이 불렀다.[5]
나문은 1996년에 공식적으로 은퇴했지만, 다른 아티스트들과 가끔 공연을 했다.[4]
3. 2. 일본 활동
나문은 일본에서 재능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후, 로만 앤 더 포 스텝스라는 단명 그룹을 결성하여 비틀즈를 모방하기도 했다.[3][4]4. 음반 목록
(梁山伯與祝英台 • 金玉奴)
(광둥어 음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