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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침용 땅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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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침용 땅굴은 북한이 대한민국으로의 기습 침투를 목적으로 건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 땅굴을 의미한다. 1974년 이후 현재까지 총 4개의 땅굴이 발견되었으며, 이 중 제1땅굴을 제외한 3곳이 관광 자원화되었다. 대한민국 군은 지속적으로 남침용 땅굴 탐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추가 징후가 없다고 발표했다. 발견된 땅굴은 연천, 철원, 파주, 양구 등지에서 발견되었으며, 각 땅굴은 병력 및 장비 수송 능력이 다르다.

2. 발견 현황

1974년 11월, 최초의 남침 땅굴이 연천군 비무장 지대 내에서 발견되었다. 이듬해 철원군에서 두 번째, 1978년에는 세 번째 땅굴이 판문점에서 남쪽으로 4킬로미터 지점의 파주시 내에서 발견되었다. 1990년 양구군에서 발견된 네 번째 땅굴은 짧은 시간에 다수의 병력과 차량을 투입할 수 있는 규모였다.[1]。 만약 땅굴이 발견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석탄 채굴을 위장할 목적으로 벽에는 석탄이 칠해져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탈북자 등으로부터 땅굴 굴착 정보가 제공되었으며, 군사 분계선 부근을 중심으로 빈번한 보링 조사를 통한 탐사가 이루어지고 있다.[2]。 1998년에는 남침용 땅굴 징후가 있는 21곳 가운데 개연성이 높은 서부전선 5곳, 동부전선 2곳, 총 7곳에 대해 시추작업을 벌였지만 추가적인 발견을 하지 못했다. 2000년 이후 북한 귀순자로부터 얻은 첩보를 입수해 14곳에 대한 탐사를 하였지만 추가 발견을 하지 못했다. 2009년과 2013년 사이에도 4~5차례 탐사작업을 하였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육군에서는 지금도 매년 DMZ에서 땅굴 조사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총 4개의 땅굴 중, 제1땅굴을 제외한 3개의 땅굴이 관광자원화가 되었다.

2014년 12월 5일, 대한민국 국군은 "보링 탐사 결과, 남침 땅굴의 징후는 전혀 없다"고 발표했지만, 남침 땅굴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끊이지 않고 있다.[3]

3. 발견된 땅굴

1974년부터 1990년까지 총 4개의 남침용 땅굴이 발견되었다.

땅굴발견 위치발견 연도비고
제1땅굴경기도 연천군1974년콘크리트 구조물
제2땅굴강원도 철원군1975년발견 과정에서 국군 장병 8명 전사
제3땅굴경기도 파주시1978년서울에서 가장 가까움
제4땅굴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1990년발견 과정에서 군견 헌트가 목함지뢰를 밟고 폭사



제2, 제3, 제4 땅굴은 관광객에게 공개되어 있으며, 땅굴 내부에는 조명과 모노레일이 정비되어 있어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모두 군사 분계선 근처,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 내에 있으므로, 입장 절차와 지정된 투어 참가가 필요하다.

3. 1. 제1땅굴

1974년 11월 5일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90cm, 높이 1.2m, 지하 2.5~4.5m, 길이 3.5km에 달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이 땅굴은 서울에서 65km에 위치해 1시간에 1개 연대 이상의 무장병력과 중화기, 포신이 통과할 수 있는 땅굴이다.

발견 당시 육군 25사단 수색조가 수색 임무를 수행하던 중, 땅 밑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고 해당 지역을 파던 중 북한 초소로부터 사격을 받았다. 이에 우리 군도 대응 사격을 하면서 해당 지역을 조사한 결과 땅굴이 발견되었다.[7]

제1땅굴 발견 당시 사진

3. 2. 제2땅굴

1975년 3월 강원도 철원군 근동면에서 발견되었다. 북한에서 군사분계선까지 2400m, 군사분계선에서 우리쪽까지 1100m이고 너비와 높이 2m, 길이 3.5km, 지하 50m~160m이다. 국군 초병이 경계근무를 하던 도중 폭음을 듣고 땅굴의 존재를 의심하여 시추가 시작되었고 1975년 3월 19일에 발견되었다.[8]

국군과, 주한미군의 공병대, 미국 민간기술진이 탐사에 참여하여 45개의 시추공을 뚫어 땅굴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화강암 특성상 내부에 빈 공간이 생길 수가 없는데 채굴한 시추석이 일정하게 짧았고, 채굴 도중 검출된 모래가 강원도 산악지대에서 나타나는 모래가 아니었다. 땅굴 내부에는 북한군이 철수하면서 국군의 탐사를 지연시키기 위해 쌓아놓은 3개의 돌벽이 있었다. 이 돌벽을 철거하는 도중 북한이 매설한 부비트랩을 건드려 1975년 4월 8일 7명, 1975년 5월 28일 1명, 총 8명의 국군장병이 전사하였다.

3. 3. 제3땅굴

제3땅굴 입구


1974년 9월 5일 북한에서 귀순한 김부성이 "자신은 남측 땅굴을 측량한 측량기사인데 비무장지대 안에 땅굴이 있다"고 제보하면서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다.[9] 1978년 10월 17일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에서 발견되었다. 서울에서 가깝고, DMZ에서 남쪽으로 400m, 판문점 남방 4km 지점에 위치한다. 너비와 높이는 2m, 길이는 1.635km, 깊이는 73m이며, 1시간에 3만여 명의 무장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다. 서울에서 44km 지점에서 발견된, 가장 가까운 땅굴이다.

전장은 1.635km, 폭 2m, 높이 2.1m, 지하 73m이다. 서울에서 52km까지 닿아 있어, 수도에 대한 기습 공격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1시간에 약 3만 명의 병력을 투입할 수 있다고 추정된다.[4]

3. 4. 제4땅굴

제4땅굴 발견 당시의 사진(1990년)


1990년 3월 3일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해안면에서 발견되었다. 폭 2 m, 지하 145 m, 전체길이 2,052 m이고 군사분계선 남쪽 1502에서 발견되었다.

땅굴 발견 과정에서 군견 헌트(HUNT)가 폭발물 탐지 중 화약냄새를 맡고 북한군이 설치해둔 목함지뢰를 밟고 폭사했다. 이런 공적을 기려 제4땅굴 바로 옆에 북한을 바라보는 헌트의 동상이 세워졌다.

땅굴 내부의 북한 굴착 부분에는 전동차가 운행되고 있으며, 펀치볼역 ~ 남방한계선역 사이를 왕복 운행한다(중도 하차 불가).

견학을 위해서는 [http://www.ygcitytour.kr/ 양구시티투어]의 펀치볼 코스(을지 전망대와 묶여 있음)에 사전 신청해야 한다. 매주 일요일에 운영되며, 동절기에는 최소 출발 인원이 설정되어 있다. 출발지는 춘천역 1번 출구 앞 관광 안내소이다.

참조

[1] 뉴스 北「モグラ作戦」で韓国奇襲も! 南進トンネルと特殊部隊の脅威 (1/2ページ) https://www.zakzak.c[...] 2013-04-20
[2] 뉴스 韓国侵略用の北朝鮮の地下トンネルが14ヵ所、3ヵ所を探知中 http://japanese.dong[...] 2013-10-11
[3] 뉴스 韓国で「南侵トンネル」存在説 軍、火消しに躍起 http://www.asahi.com[...] 2014-12-26
[4] 웹사이트 The 3rd Tunnel (Dorasan Observatory) (제3땅굴) : VISITKOREA https://english.visi[...] 2023-12-18
[5] 뉴스 휴전선 땅굴20여개 화학무기시설 8곳" 美과학자協'북한핸드북'공개 동아일보 1999-09-13
[6] 서적 NORTH KOREA COUNTRY HANDBOOK MARINE CORPS INTELLIGENCE ACTIVITY 1997
[7] 웹인용 국방홍보원 https://demaclub.tis[...]
[8] 웹인용 DMZIGI https://www.dmz.go.k[...]
[9] 웹인용 파주시청 https://tour.paju.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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