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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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 선거는 이시영 부통령의 사임으로 인해 1951년 5월 16일 실시되었다. 이시영은 국민방위군 사건 등으로 이승만 정부에 불만을 품고 사임 의사를 밝혔고, 국회는 표결을 통해 이를 수리했다. 선거 결과, 김성수 후보가 결선 투표에서 51.32%를 득표하여 제2대 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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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 선거 | |
---|---|
선거 정보 | |
선거명 |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 선거 |
국가 | 대한민국 |
국기 연도 | 1949 |
유형 | 대통령 |
이전 선거 | 대한민국 제1대 대통령 선거 |
이전 선거 연도 | 1948년 |
선거일 | 1951년 5월 16일 |
차기 선거 | 대한민국 제2대 대통령 선거 |
차기 선거 연도 | 1952년 |
정당색 | yes |
정당명 | no |
후보 정보 | |
![]() | |
후보 1 | 김성수 |
정당 1 | 민주국민당 |
색 1 | 민주국민당1949 |
득표수 1 | 78 |
득표율 1 | 51.3% |
후보 2 | 이갑성 |
정당 2 | 무소속 |
색 2 | 무소속 |
득표수 2 | 73 |
득표율 2 | 48.0% |
지도 정보 | |
선거 결과 | |
직책 | 부통령 |
선거 전 | 공석 |
선거 후 | 김성수 |
선거 후 정당 | 민주국민당 |
선거인단 | 국회의원 210명 중 152명 출석 당선을 위해 단순 최다 득표 필요 |
2. 이시영 부통령 사임 과정
국민방위군 사태 등으로 이승만 정부에 불만을 품은 이시영 부통령은 1951년 5월 9일 국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당시 헌법이나 관련 법률에는 대통령이나 부통령의 사임에 관해 규정된 바가 없었으므로, 장택상 국회부의장은 법률 전문가들에게 부통령 사직 문제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과 부통령은 국회에서 선출되므로 중도 사퇴 역시 권력의 근거지인 국회의 승인을 얻는 것이 맞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에 따라 국회는 표결로 사표 수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제2대 국회는 부산 피난지에서 부통령 보궐선거를 실시하였다. 당시 국회는 신정동지회, 공화구락부, 민주국민당 등 3개 세력이 주도하고 있었다. 여권 의원들은 신정동지회의 이갑성을, 야권 의원들은 민국당의 김성수를 부통령 후보로 지지하였다.
1차 및 2차 투표에서 3분의 2인 101표를 득표한 후보가 없어 결선 투표가 실시되었다. 결선 투표 결과, 김성수 후보가 단순 최다 득표를 얻어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951년 5월 10일, 국회는 격론 끝에 이승만 대통령을 출석시켜 의견을 들은 후 부통령 사표 수리를 결정하자는 안을 재석 의원 131명 중 111명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같은 날 국회 각 파 지도자들은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가 대화를 나눴는데, 이승만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자신은 부통령 개인의 선택에 왈가왈부할 수 없다며 의견 표명이나 국회 출석을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부통령이 정권에 남아 계속 분란을 일으키느니 차라리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뉘앙스를 풍겼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5월 11일, 의원들은 정부 내에서 쇄신을 외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재석 의원 131명 중 115명의 찬성으로 사표를 반려했다.
5월 13일, 이시영 부통령은 사표를 다시 제출했고, 5월 14일 국회는 재석 의원 128명 중 77명의 찬성, 10명의 반대, 나머지는 기권으로 이시영 부통령의 사직서를 수리했다. 또한, 보궐 선거는 5월 16일에 실시하기로 재석 의원 130명 중 85명의 찬성으로 결정했다.
3. 선거 과정
부통령 후보자들은 국회 간선으로 선출되었으며, 재적 국회의원 210명 중 151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1차 투표와 2차 투표에서는 당선에 필요한 2/3 이상의 득표를 얻은 후보가 없어 결선 투표가 진행되었다. 결선 투표에는 1, 2차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용설 의원이 뒤늦게 참여하여 투표권을 얻게 되면서, 총 152명이 참여했다.[1]
4. 선거 결과
4. 1. 1차 투표
후보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
김성수 | 민주국민당 | 66 | 43.71 |
이갑성 | 무소속 | 53 | 35.10 |
함태영 | 무소속 | 17 | 11.26 |
장택상 | 무소속 | 11 | 7.28 |
지청천 | 민주국민당 | 2 | 1.32 |
김창숙 | 무소속 | 1 | 0.66 |
합계 | 150 | - | |
무효 | 1 | - |
4. 2. 2차 투표
4. 3. 결선 투표
김성수 후보(민주국민당)가 78표(51.32%), 이갑성 후보(무소속)가 73표(48.03%)를 얻었으며, 무효표는 1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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