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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퍼린 아바 후작부인 해리엇 해밀턴템플블랙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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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더퍼린 아바 후작부인 해리엇 해밀턴템플블랙우드는 19세기 영국의 사교계 명사이자 인도 여성 의료 지원을 위한 '더퍼린 백작부인 기금'을 설립한 인물이다. 1862년 프레더릭 해밀턴-템플-블랙우드와 결혼하여 캐나다 총독 부인, 러시아 및 오스만 제국 주재 대사 부인으로 외교 활동을 지원했으며, 1885년 인도에서 여성 의료 지원을 위한 기금을 조성했다. 그녀는 '더퍼린 부인' 병원 설립을 주도하고, 저술 활동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기록했으며, 1917년 대영 제국 훈장을 받았다. 1936년 사망하여 클랜데보이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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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퍼린 아바 후작부인 해리엇 해밀턴템플블랙우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더퍼린 아바 후작부인
더퍼린 아바 후작부인
작위총독 부인
재임 시작1884년 12월 13일
재임 종료1888년 12월 10일
이전리폰 후작부인
이후렌즈다운 후작부인
군주빅토리아 여왕
출생일1843년 2월 5일
사망일1936년 2월 5일
배우자프레더릭 해밀턴-템플-블랙우드, 초대 더퍼린과 에이본 후작
자녀레이디 헬렌 해밀턴-템플-블랙우드
아치볼드 해밀턴-템플-블랙우드, 에이본 백작
테렌스 해밀턴-템플-블랙우드, 제2대 더퍼린과 에이본 후작
허마이온 먼로 퍼거슨, 노바 자작부인
로드 배질 해밀턴-템플-블랙우드
알렉산드리나 플런켓, 레이디 플런켓
프레더릭 해밀턴-템플-블랙우드, 제3대 더퍼린과 에이본 후작
거주지클랜더보이
직업작가, 보건 의료 옹호자
묘소클랜더보이
칭호
경칭각하, 가장 존경하는
이름해리엇 조지나 로완-해밀턴
작위더퍼린과 에이본 후작부인

2. 생애

해리엇 조지나 로언해밀턴은 킬리레이 성의 아치볼드 해밀턴로언의 7명의 자녀 중 장녀였다. 1862년 10월 23일, 킬리레이 성에서 먼 친척인 제5대 더퍼린 남작이자 클레인보이 남작과 결혼했다.[1] 이들 부부는 슬하에 다섯 딸과 일곱 아들을 두었다.

3. 캐나다 총독 부인 시절

남편이 1871년에 더퍼린 백작이 된 후, 1년 뒤 해리엇은 남편이 총독으로 임명되면서 자녀들과 함께 캐나다로 갔다. 그녀는 리도 홀을 사교 활동의 중심지로 만들었으며, 문학 강독회와 직접 출연한 연극 공연 등을 열었다.[1] 더퍼린 부인은 역대 총독 부인들 중 가장 인기가 많았고, "그 시대 가장 효과적인 외교관 부인"이라는 평판을 얻기 시작했다.[2]

4. 외교관 부인으로서의 활동

해리엇 해밀턴템플블랙우드는 남편이 1879년부터 1881년까지 러시아 주재 대사로, 1881년부터 1884년까지 오스만 제국 주재 대사로 임명되면서 외교관 부인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2] 그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콘스탄티노플 등 모든 대사관에서 남편과 함께 환대로 명성을 얻었다.[2] 1883년에는 오스만 셰파카트 훈장의 대십자 훈장을 받았고, 1887년에는 페르시아 태양 훈장을 받았다.[2]

5. 인도에서의 활동

1884년 남편 더퍼린 아바 후작이 인도 부왕으로 임명되면서 함께 인도로 갔다. 빅토리아 여왕은 인도 여성들의 질병과 출산 환경 개선을 위한 계획을 시작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더퍼린 부인은 인도 여성의 의료 환경 개선을 위한 더퍼린 백작부인 기금을 설립했다. 1884년 인도 왕관 훈장[9], 1895년 빅토리아 앨버트 왕실 훈장을 받았다.[10]

5. 1. 더퍼린 부인 기금

1885년, 카슈미르와 두르붕가의 마하라자 등 인도 군주들로부터 상당한 기부금을 성공적으로 모금한 후[3], 더퍼린 부인은 "인도 여성에게 여성 의료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전국 협회"(더퍼린 백작부인 기금)를 설립했다.[4]

이전에도 인도 여성에게 서구식 의료를 제공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더퍼린 부인의 기금은 공식적인 지원을 받는 최초의 조직적인 프로그램이었다.[5] 이 기금은 의사, 병원 보조원, 간호사 및 조산사에게 의료 교육을 제공하고, 진료소를 통한 의료 지원, 여성 병동, 여성 의사 및 여성 병원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5] 또한, 일부 문화 및 종교적 이유로 여성들이 남성 의사에게 진료받기를 꺼리는 점을 인식하여 인도 여성들이 여성에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를 위해 인도 여성들을 영국에서 훈련시키고, 인도에서 진료할 것을 약속한 영국 및 유럽 여성들을 위한 장학금이 마련되었다. 이 기금의 초기 수혜자 중 일부는 1883년에 의과대학에 입학한 카담비니 바수, 아난다바이 조시, 룩마바이였다.[5]

'더퍼린 부인' 병원과 진료소가 많이 설립되었고, 그 중 일부는 아직도 그 이름으로 존재하며, 그녀의 이름을 딴 의과대학과 조산학교도 있다. 이로 인해 그녀는 많은 모금 활동에 참여했고, 때로는 '파르돈' 작업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이는 러디어드 키플링의 '여성의 노래'에서 기념되었다.[6][7]

더퍼린 백작부인 기금은 1935년 국왕에 의해 인도 주빌리 기금의 수혜자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더퍼린 부인 자신은 이 기금에 100GBP를 기부했으며, 이는 캘커타에 있는 더퍼린 병원 개보수에 사용되었다.[8]

6. 영국 귀환 이후

1888년 남편 더퍼린 백작이 인도 임기를 마치자, 해리엇은 그와 함께 클랜데보이의 아일랜드 자택으로 돌아왔다. 같은 해, 남편은 더퍼린과 아바 후작으로 작위가 승격되었다. 더퍼린 후작은 유럽에서 대사 경력을 이어갔고, 해리엇은 그를 따라 이탈리아프랑스로 갔다. 1902년 남편이 사망한 후, 해리엇은 런던 첼시의 비교적 소박한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토지 매각과 신중하지 못한 투자로 가문의 재산이 고갈되었기에 아들들을 돕기 위해 가능한 한 절약했다. 1917년 대영 제국 훈장 여성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1]

6. 1. 저술 활동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를 바탕으로 회고록인 《인도에서의 부왕 생활》(1889)과 《나의 캐나다 저널》(1891)을 출판했다.[1] 남편이 1902년에 사망한 후에는 《나의 러시아 및 터키 저널》(1916)을 저술했다.[1]

7. 자녀

더퍼린과 아바 후작부인은 일곱 명의 자녀를 두었다. 아들들은 모두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아치볼드는 제2차 보어 전쟁에서, 바실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했고, 테렌스는 폐렴으로 사망했으며, 막내 프레데릭은 1930년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2]


  • 헬렌 헤르미온느 (1863–1941): 로널드 먼로 퍼거슨, 초대 노바르 자작과 결혼
  • 아치볼드 해밀턴-템플-블랙우드, 제2대 아바 백작 (1863–1900)
  • 테렌스 존 템플 (1866–1919): 플로렌스 해밀턴 데이비스와 결혼
  • 헤르미온느 캐서린 헬렌 해밀턴-템플-블랙우드 (1869–1960)
  • 이안 바실 가웨인 템플 해밀턴-템플-블랙우드 경 (1870–1917)
  • 빅토리아 알렉산드리나 해밀턴-템플-블랙우드 (1873–1968): 윌리엄 플런켓, 제5대 플런켓 남작과 결혼하여 8명의 자녀를 두었고, 이후 프랜시스 파월 브레이스웨이트 대령과 재혼
  • 프레데릭 템플 (1875–1930): 브렌다 우드하우스와 결혼


8. 업적

위니펙에서 매니토바 주가 캐나다 총독 부인으로서의 역할과 매니토바 유산에 대한 그녀의 기여를 기리는 역사 표지판을 세웠다.

참조

[1] 웹사이트 Blackwood (Hamilton-Temple-Blackwood), Frederick Temple, 1st Marquess of Dufferin and Ava http://www.biographi[...] University of Toronto/Universite Laval 2014-10-26
[2] 간행물 Blackwood, Hariot Georgina Hamilton-Temple-, marchioness of Dufferin and Ava (1843–1936) http://www.oxforddnb[...] 2008-01
[3] 서적 Women and modern medicine Rodopi
[4] 웹인용 Lady Dufferin's Fund and Medical Training for Women Educated in Colonial India 1885-1920 http://www.chomi.org[...] 2014-12-14
[5] 서적 Women in colonial India : essays on politics, medicine, and historiography Chronicle Books
[6] 간행물 Blackwood, Hariot Georgina Hamilton-Temple-, marchioness of Dufferin and Ava (1843–1936) http://www.oxforddnb[...] 2008-01
[7] 웹사이트 The Song of the Women http://www.kiplingso[...] 2019-01-21
[8] 뉴스 News in Brief 1935-04-30
[9] 간행물 1884-12-16
[10] 뉴스 Court Circular The Times 1889-01-28
[11] 간행물 1917-08-24
[12] 웹사이트 Manitoba Plaque https://www.gov.mb.c[...] Gov.mb.ca 2013-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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