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더글러스 던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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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데이비드 더글러스 던컨은 미국의 사진작가이자 종군 기자로,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등 주요 전쟁을 취재하며 전쟁의 참혹함을 기록했다. 그는 특히 한국 전쟁 종군 사진가로 명성을 얻었으며, 전쟁의 인간적인 면모를 담아낸 사진들로 호평을 받았다. 또한 파블로 피카소의 절친한 친구로서 그의 사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을 여러 권의 책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던컨은 니콘 카메라와 렌즈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니콘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데 기여했으며, 그의 작품과 활동은 저널리즘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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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더글러스 던컨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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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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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국미주리주캔자스시티 |
사망 | 프랑스그라스 |
묻힌 곳 | 칸, 프랑스 |
소속 | 미국 해병대 |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 부건빌 전투 한국 전쟁 * 부산 전투 * 장진호 전투 |
이후 활동 | 사진 작가 |
경력 | |
종군 | 사진 작가 |
2. 어린 시절과 교육
데이비드 더글러스 던컨은 애리조나 대학교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던 중 애리조나주 투손의 호텔 화재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기자 경력을 시작했다. 이 사진은 존 딜린저가 연루된 사건으로 밝혀져 뉴스 가치를 얻었으나, 필름 분실로 인해 인쇄되지는 않았다.[15]
던컨은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야외 활동에 관심을 보였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미국 보이 스카우트에서 이글 스카우트 칭호를 얻었다.[15] 캔자스시티에 있는 던컨의 초등학교에서 열린 거물 사냥꾼이자 의사인 리처드 라이트번 서튼의 등불 슬라이드 발표는 사진과 세계 여행에 대한 초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15] 던컨은 잠시 애리조나 대학교에 다니며 고고학을 공부했다. 투손에 있는 동안 그는 의도치 않게 존 딜린저가 호텔에 들어가려는 사진을 찍었으나, 그 사진은 현지 주민에게 넘어간 후 흩어져 필름은 발견되지 않았다.[15] 던컨은 결국 마이애미 대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갔고, 1938년에 동물학과 스페인어를 공부하여 졸업했다. 마이애미에서 그는 본격적으로 사진 저널리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대학교 신문의 사진 편집자이자 사진 작가로 일했다.[15]
3. 경력
대학 졸업 후, 던컨은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캔자스 시티 스타'', ''라이프'',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에 작품을 판매했다. 진주만 공격 이후 미국 해병대에 입대하여 종군 사진기자가 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등 주요 분쟁 지역에서 활동했다. 특히 한국 전쟁에서 찍은 사진들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이것이 전쟁이다!''(1951)라는 사진집으로 출판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쟁 사진 외에도, 던컨은 파블로 피카소의 사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들로도 유명하다. 로버트 카파의 제안으로 피카소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으며, 피카소와 깊은 우정을 나누며 그의 작품과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던컨은 니콘 카메라와 니코르 렌즈를 애용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니코르 렌즈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 인물 중 한 명이며, 미키 준과의 만남을 통해 니콘과 인연을 맺었다.
1968년 민주당 전당대회와 1968년 공화당 전당대회를 모두 촬영하고, 그 사진들을 1969년 ''셀프 포트레이트 U.S.A.''라는 대형 사진집으로 출판했다. 1982년에는 중동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알라의 세계''를 출판했다. 2021년에는 사후에 국제 사진 명예의 전당 박물관에 헌액되었다.
3. 1. 제2차 세계 대전
진주만 공격 이후, 던컨은 미국 해병대에 입대하여 장교로 임관했고, 종군 사진가가 되었다. 캘리포니아와 하와이에서 잠시 근무한 후,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을 때 남태평양에 파견되었다. 소위로서 그는 처음에 해병 항공단 23에서 복무했고, 나중에 남태평양 전투 공수 사령부의 작전을 촬영하는 임무를 맡았다. 종군 사진가들은 종종 작전 현장과 가깝지만, 드물게 전투에 참여한다. 그러나 부건빌 섬 전투에서의 짧은 교전에서, 던컨은 일본군과 싸우는 자신을 발견했다. 던컨은 또한 오키나와 전투를 취재했고, 일본의 항복을 위해 USS ''미주리''에 탑승했다.[17]
3. 2. 한국 전쟁
아마 그의 가장 유명한 사진은 한국 전쟁 동안 찍은 것일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사진들을 모아 책 ''이것이 전쟁이다!''(1951)를 발간했으며, 그 수익금은 전쟁에서 사망한 해병대원의 미망인과 아이들에게 돌아갔다.[18] 던컨은 한국 전쟁에서 가장 뛰어난 종군 사진가로 여겨진다.
그의 사진과 장진호 전투에서 미국 해병대와 나눈 대화는 주목할 만하다.
"저는 그에게 '만약 제가 하나님이라면,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원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던컨이 말한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일만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데이비드 더글러스 던컨이 니코르 렌즈와 만난 것은 1950년 6월의 일이다.[18] 당시 일본 미술을 촬영하는 데 열중하던 던컨은 계약 사진가로서 타임・라이프지의 도쿄 지사에 있었다. 후에 던컨의 어시스턴트가 된 사진가 미키 준은 일본인 유일의 타임・라이프지 사진가로서 같은 도쿄・교바시에 있는 동사의 도쿄 지사 내에 있었다.[18]
어느 날, 미키의 친구인 사진가 무라이 류이치가 타임・라이프사를 방문했다.[19][20] 그의 카메라에는 "Nikkor P・C 8.5cm F2"[21]가 장착되어 있었다. 미키는 그 카메라로 던컨을 촬영했다. 당시 일본 제품에는 "모방은 잘하지만 품질은 별로"라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 선입견에 사로잡힌 던컨은 처음에는 "일본산 조나인가?"라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18]
촬영, 미키 준, 1950년 6월, 니코르 8.5cmF2 사용.
며칠 후, 미키가 현상한 초상 사진을 본 던컨의 표정이 급변했다. 자신의 초상 사진이 선명하게 묘사되었던 것이다. 던컨은 루페를 꺼내 그 사진을 확인하고, '일본산 조나 렌즈'의 선명한 묘사를 간파했다. 그리고 "이 렌즈를 만드는 공장에 가고 싶다."라고 미키에게 말했다고 한다.[18][21][20]
다음 날, 던컨은 미키, 포춘지의 사진가 호러스 브리스톨을 데리고 일본광학의 오이 공장을 방문했다. 당시 일본광학 사장이었던 나가오카 마사오는 세 사람을 렌즈 검사실로 안내하고, 투영 검사기로 던컨, 브리스톨의 렌즈와 니코르 렌즈의 성능 비교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것을 본 던컨은 "훌륭하다"를 연발하며 "일본에 와서 이렇게 훌륭한 렌즈를 발견하게 되어 이렇게 기쁜 일은 없다"라고까지 평가했고[20], '니코르 렌즈'의 성능에 놀란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의 니코르 렌즈를 구입했다.[18]
던컨은 니코르 렌즈와 만난 후 매일 같이 동 공장에 다니며 검사실에도 들어갔으며[20], 1948년에 일본광학에 입사한 와키모토 젠지가 말하길, 던컨이 "지금 있는 렌즈를 전부 보여달라"라고 말했다고 한다.[20]
그 직후,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2대의 라이카에 "Nikkor SC 5.0cm F1.5"와 "Nikkor Q 13.5cm F4"를 장착한 던컨은 한국 전선에서 일관적으로 니코르 렌즈를 사용하며 많은 사진을 촬영했다.[18] 특히 "Nikkor SC 5.0cm F1.5"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것이 전쟁이다!(This Is War!)"에 "라이카 Ⅲ c 1대에 5cm 표준 렌즈를, 다른 1대에 망원 렌즈를 장착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던컨을 비롯한 타임・라이프지 사진가들은 한국 전선에서 찍은 사진을 도쿄로 가져와 미키 등이 그것을 확대하여 전송으로 뉴욕 본사에 보냈는데, 타임・라이프 본사에서 "평소의 렌즈와 달리 매우 선명한데, 무엇을 사용했는가"라는 문의가 왔다. 던컨은 "일본의 니코르다"라고 답신했다고 미키가 기록하고 있다.[20] 이를 계기로 니코르 렌즈 및 니콘 S 등의 카메라가 미국의 사진가들을 휩쓸었다. 니코르, 아니 일본광학의 이름이 세계에 울려 퍼진 순간이었다.[18]
3. 3. 베트남 전쟁과 그 이후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던컨은 미국 정부의 전쟁 처리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며 중립적인 입장을 포기했다. 그는 이 시기에 ''나는 항의한다!''(1968)와 ''영웅 없는 전쟁''(1970)이라는 두 권의 책을 출판했다.[18]3. 4. 피카소와의 인연
로버트 카파의 제안으로 1956년 파블로 피카소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자클린 로크의 집에서 비공식적인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던컨은 피카소의 사진을 담은 책을 총 7권 출판했다. 그는 피카소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피카소의 많은 개인적인 그림들을 촬영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던컨은 피카소가 인생의 마지막 12년을 보낸 무쟁 근처의 프랑스, 카스텔라라스에 살았다.[15]
던컨이 피카소와 알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던컨이 아프가니스탄의 헤라트에서 촬영했을 때, 그가 차고 있던 시계 벨트에 사용된 4세기 그리스 동전과 비슷한 것을 친구가 근처 유적에서 발견했고, 그 안에는 수탉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본 그는 피카소가 그린 새를 떠올렸고, 아직 피카소와 안면은 없었지만, 이것을 보면 피카소는 분명 기뻐할 것이라고 느꼈다. 그 후, 일로 모로코로 가는 도중 칸의 피카소 집에 가서 방문 이유를 말하고 면회를 허락받았다. 면회를 요청하는 전화에서 던컨은 "당신의 친구인 로버트 카파의 지인 던컨입니다."라고 피카소에게 말했다. 이 만남을 통해 던컨은 피카소의 초상 촬영 및 피카소의 작품을 생전에 촬영하는 것을 허락받은 유일한 사진가가 되었다.[15]
3. 5. 니콘과의 관계
데이비드 더글러스 던컨과 니코르 렌즈의 만남은 1950년 6월이었다.[18] 당시 일본 미술 촬영에 열중하던 던컨은 타임-라이프 도쿄 지사의 계약 사진가였다. 훗날 던컨의 조수가 된 미키 준은 일본인 유일의 타임-라이프 사진가로, 도쿄 교바시의 같은 지사에서 일했다.[18]
어느 날, 미키의 친구 무라이 류이치가 타임-라이프를 방문했다.[19][20] 그의 카메라에는 "Nikkor P・C 8.5cm F2"가 장착되어 있었다.[21] 미키는 그 카메라로 던컨을 찍었다. 당시 일본 제품은 "모방은 잘하지만 품질은 별로"라는 이미지가 있었기에, 던컨은 처음에 "일본산 조나인가?"라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18]
며칠 후, 미키가 현상한 사진을 본 던컨은 표정이 급변했다. 사진이 선명했던 것이다. 던컨은 루페로 사진을 확인하고 '일본산 조나 렌즈'의 선명함을 간파, "이 렌즈를 만드는 공장에 가고 싶다"라고 말했다.[18][21][20]
다음 날, 던컨은 미키, 포춘 사진가 호러스 브리스톨과 일본광학 오이 공장을 방문했다. 나가오카 마사오 사장은 렌즈 검사실에서 투영 검사기로 던컨, 브리스톨의 렌즈와 니코르 렌즈 성능을 비교했다. 던컨은 "훌륭하다"를 연발, "일본에서 이렇게 훌륭한 렌즈를 발견하다니 기쁘다"라고 평했고,[20] '니코르 렌즈' 성능에 놀란 둘은 라이카 스크루 마운트 니코르 렌즈를 구입했다.[18]
던컨은 이후 매일같이 공장에 다니며 검사실에도 들어갔고,[20] 1948년 일본광학 입사자 와키모토 젠지는 던컨이 "있는 렌즈를 전부 보여달라"라고 했다고 전한다.[20]
얼마 후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던컨은 라이카 두 대에 "Nikkor SC 5.0cm F1.5", "Nikkor Q 13.5cm F4"를 장착, 전선에서 니코르 렌즈로 많은 사진을 찍었다.[18] "Nikkor SC 5.0cm F1.5"는 대표작 "이것이 전쟁이다!(This Is War!)"에 "라이카 Ⅲ c 한 대에 5cm 표준 렌즈, 다른 한 대에 망원 렌즈 장착" 기록으로 남아있다. 던컨 등 타임-라이프 사진가들은 전선 사진을 도쿄로 가져왔고, 미키 등이 확대해 뉴욕 본사로 전송했다. 본사에서는 "평소와 달리 매우 선명한데, 무엇을 사용했는가"라고 문의했고, 던컨은 "일본의 니코르"라고 답신했다고 미키는 기록한다.[20] 이를 계기로 니코르 렌즈, 니콘 S 등이 미국 사진가들을 휩쓸었다. 니코르, 즉 일본광학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진 순간이었다.[18]
던컨은 니코르 클럽 설립에 참여하는 등 니콘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니콘은 1965년 니콘 F 20만 번째 카메라를 던컨에게 기증했다.
2018년 던컨 사망 다음 날, 니콘은 공식 사이트에서 추도 성명을 냈다. 던컨을 "니콘이 세계에 인정받는 계기를 만든 은인", "세계 저널리즘에 공헌"이라 칭하며 "한 세기 이상 함께해 온 맹우"의 죽음을 애도했다.[22]
니콘 홈페이지에는 창립 100주년 기념, 던컨의 97세 인터뷰가 공개되어 있다.[18]
4. 평가 및 유산
데이비드 더글러스 던컨은 한국 전쟁을 취재한 가장 저명한 종군 사진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그가 촬영한 한국 전쟁 관련 사진들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17] 1951년에 출판된 그의 첫 사진집 "이것이 전쟁이다! (''This Is War!'')"는 한국 전쟁에서 전사한 해병대원의 미망인과 아이들을 돕기 위해 수익금 전액이 기부되었다.[15]
파블로 피카소와의 인연도 특별하다. 던컨은 아프가니스탄 헤라트에서 촬영 중 발견한 4세기 그리스 동전에 새겨진 수탉 문양을 보고 피카소의 그림을 떠올렸다. 비록 피카소와 안면은 없었지만, 이 동전을 통해 피카소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던컨은 로버트 카파의 지인임을 밝히며 피카소에게 면회를 요청했고, 이 만남을 계기로 피카소의 초상과 작품을 생전에 촬영할 수 있는 유일한 사진가가 되었다. 이후 던컨은 피카소가 만년을 보낸 프랑스 무쟁 근교에 거주하며 그와의 인연을 이어갔다.[16]
사진작가 미키 준은 타임 라이프 도쿄 지사에서 던컨의 어시스턴트로 일한 경력이 있다.
5. 출판물
- ''이것이 전쟁이다!''(1951)
- ''파블로 피카소의 사적인 세계''(1958)
- ''크렘린''(1960)
- ''피카소의 피카소들''(1961)
- ''양키 노마드''(1966)
- ''나는 항의한다!''(1968)
- ''자화상: 미국''(1969)
- ''영웅 없는 전쟁''(1970)
- ''프리즈매틱스''(1972)
- ''데이비드 더글러스 던컨'' [포트폴리오] (1972?)
- ''굿바이 피카소''(1974)
- ''침묵의 스튜디오''(1976)
- ''판타지의 마법 세계''(1978)
- ''마틴 그레이의 연약한 기적''(1979)
- ''비바 피카소''(1980)
- ''알라의 세계''(1982)
- ''뉴욕/뉴욕''(1984)
- ''반 고흐를 위한 해바라기''(1986)
- ''피카소와 자클린''(1988)
- ''비밀의 정원''(1992)
- ''토르''(1993)
- ''피카소가 초상화를 그리다''(1996)
- ''요요''(1999)
- ''얼굴 없는 자''(2001)
- ''포토 노마드''(2003)
- ''피카소와 럼프''(2006)
- ''모나코 그랑프리''(2013)
- ''어제''(2016)
- ''앤 웨스트의 숲의 세계''(201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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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ar Photographer's 99-Year 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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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ts of WWI Through Vietnam Became Famous in the Literary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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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Douglas Duncan: A Life Magazine War Photographer Looks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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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ig picture: at home with Mr and Mrs Pica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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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 photographer David Douglas Duncan dies aged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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ベトナムを通したWWIの獣医は文学界で有名にな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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米写真家のデビッド・ダグラス・ダンカン氏が死去 102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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村井はその日、タイム・ライフ東京支局と同じビル・同じフロアにあったイーストウエスト写真通信社の稲村隆正を訪ねていた、とさ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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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日本製カメラの世界進出の緒(1)
http://www.jshi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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ニッコール千夜一夜物語 第36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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デビッド・ダグラス・ダンカン氏のご逝去の報に接し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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