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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윌리엄 우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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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널드 윌리엄 우얼은 1940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난 미국의 가톨릭 추기경이다. 1966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피츠버그 교구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했으며, 1985년 시애틀 대교구 보좌 주교를 거쳐 1988년 피츠버그 교구의 교구장 주교가 되었다. 2006년 워싱턴 대교구의 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고, 2010년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그는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낙태와 동성애 문제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지지했다. 2018년 성 학대 사건 처리와 관련된 논란으로 사임했으며, 여러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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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윌리엄 우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15년의 도널드 윌리엄 우얼 추기경
2015년의 우얼
직함추기경, 워싱턴 대교구 명예 대주교
다른 직책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 주임 사제, 미국 가톨릭 대학교 총장
출생 이름도널드 윌리엄 우얼
출생일1940년 11월 12일
출생지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모토당신의 나라가 오소서 (Thy kingdom come)
사목 이력
서품1966년 12월 17일
서품자프랜시스 프레더릭 레
주교 수임1986년 1월 6일
주교 서임자요한 바오로 2세, 아고스티노 카사롤리, 베르나르댕 강탕
추기경 서임2010년 11월 20일
추기경 서임자베네딕토 16세
직위추기경-사제
이전 직책시애틀 대교구 보좌 주교 및 로스마르카에움 명의 주교 (1986–1988)
피츠버그 교구 교구장 (1988–2006)
임명2006년 5월 16일
착좌2006년 6월 22일
은퇴2018년 10월 12일
전임자시오도르 매캐릭
후임자윌턴 대니얼 그레고리
개인 정보
종교가톨릭교회
주교 서임
주교 1윌리엄 J. 윈터
주교 서임일 11989년 2월 13일
주교 2토마스 조지프 토빈
주교 서임일 21992년 12월 27일
주교 3데이비드 주비크
주교 서임일 31997년 4월 6일
주교 4폴 J. 브래들리
주교 서임일 42005년 2월 2일
주교 5허버트 베버드
주교 서임일 52008년 9월 3일
주교 6배리 크리스토퍼 네스토우트
주교 서임일 62008년 12월 29일
주교 7마리오 E. 도르손빌
주교 서임일 72015년 4월 20일
주교 8로이 에드워드 캠벨
주교 서임일 82017년 4월 21일

2. 유년 시절과 교육

도널드 우얼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나 마운트 워싱턴 지역의 성 마리아 산 성당 교구 학교를 1958년에 졸업했다.[108][4]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가톨릭 대학교에서 1962년 학사, 1963년 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110][6] 로마로 유학하여 교황청립 북아메리카 대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하였고,[106][1] 1967년 교황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3] 사제 서품 후에는 교황청립 성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교에서 1974년에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 1. 유년기

도널드 우얼은 1940년 11월 1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프랜시스와 메리 애나 우얼 부부의 네 자녀 가운데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106][1] 형제로는 웨인과 데니스, 여동생 캐롤이 있다.[107][2] 우얼의 아버지는 펜실베이니아 철도에서 야간에 자동차를 계량하고 운송하는 일을 하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미국 해군에서 복무하였다.[107][2] 1944년 어머니가 사망한 후, 1946년 아버지는 캐서린 카바너와 재혼했다.[107][2] 도널드 우얼은 어릴 때부터 사제가 되고 싶어했으며, 집에서 형제자매들을 위해 가짜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다.[3]

우얼은 피츠버그 마운트 워싱턴 지역에 있는 마운트 성당의 성 마리아 교구 학교에서 교육받고 1958년에 졸업하였다.[108][4] 1958년 9월부터 1960년 5월까지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있는 성 그레고리 신학교에서 대학 1, 2학년을 다녔다. 이후 신학 분야 최고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가톨릭 대학교로 진학하였다.[109][5] 신학대학에서 바셀린 장학생으로[5] 1962년 학사, 1963년 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110][6]

로마로 유학을 떠나 교황청립 북아메리카 대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하였고,[106][1] 1967년 교황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로마 유학 중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회의를 참관하기도 했다.[3]

2. 2. 신학생 시절

도널드 우얼은 피츠버그의 마운트 워싱턴 지역에 있는 마운트 성당의 성 마리아 교구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958년에 졸업하였다.[108] 신학 분야에서 최고 장학생으로 선정된 그는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가톨릭 대학교로 진학하였다.[109] 1962년 학사학위를 받았으며, 1963년에는 철학 과목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110]

그는 로마로 유학 가서 교황청립 북아메리카 대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하였다.[106] 1967년에는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신학 과정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3] 로마에서 유학하는 동안 우얼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회의를 참관할 수 있었다. 사제 서품을 받은 후에는 교황청립 성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교로 진학해서 1974년에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3. 사제 서품과 초기 사목 활동

도널드 우얼은 1966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성 로살리아 성당 보좌신부와 존 라이트 주교의 비서를 지냈다. 1969년부터 1979년까지 바티칸 시국에서 존 라이트 추기경을 보좌했으며, 197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선출한 콘클라베에 참석했다.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성 바오로 신학교 학장을 역임했고, 1982년 미국 신학교 조사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교황청립 대학교 '안젤리쿰'에서 1974년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76년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는 교리서를 공동 집필했다.

3. 1. 사제 서품

도널드 우얼은 1966년 12월 17일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111] 프랜시스 프레데릭 레 주교에 의해 피츠버그 교구 사제가 되었다.[7] 첫 부임지는 피츠버그 그린필드 인근에 있는 성 로살리아 성당으로, 그곳의 보좌신부로 봉사하였다. 곧이어 도널드 우얼은 당시 피츠버그 교구장이자 훗날 1969년에 추기경에 서임된 존 라이트 주교의 비서로 등용되었다. 1969년 바티칸 시국으로 전근 간 존 라이트 추기경을 따라가 1979년 그가 선종할 때까지 보좌하였다.

존 라이트 추기경이 중증 관절염을 앓아 1978년 휠체어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도널드 우얼은 그의 비서로서 콘클라베에 예외적으로 출입을 허락받은 비선거인 세 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당시 콘클라베에서는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이 새 교황으로 선출되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되었다.[112]

1981년부터 1985년까지 피츠버그의 성 바오로 신학교 학장으로 근무하였다. 1982년 교황으로부터 미국 내 신학교들에 대한 조사를 위임받은 존 알로이시우스 마셜 주교의 행정 조수로 위촉되었다. 로마에 있는 동안 성 토마스 아퀴나스 교황청립 대학교 '안젤리쿰'에서 1974년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3] 1976년, 토마스 코머퍼드 로울러, 로널드 데이비드 로울러와 함께 성인들을 위한 교리서인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공동 집필했다. 이 책은 여러 차례 재판되었으며 널리 번역되었다.[11]

3. 2. 초기 사목

도널드 우얼은 1966년 12월 17일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111] 첫 부임지는 피츠버그 그린필드 인근에 있는 성 로살리아 성당으로, 그곳에서 보좌신부로 봉사하였다. 곧이어 피츠버그 교구장으로 훗날 1969년에 추기경에 서임된 존 라이트 주교의 비서로 등용되었다. 1969년 바티칸 시국으로 전근 간 존 라이트 추기경을 따라가 1979년 그가 선종할 때까지 보좌하였다.

존 라이트 추기경이 중증 관절염을 앓아 1978년 휠체어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도널드 우얼은 존 라이트 추기경의 비서로서 콘클라베에 예외적으로 출입을 허락받은 비선거인 세 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당시 콘클라베에서는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이 새 교황으로 선출되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되었다.[112]

1981년부터 1985년까지 피츠버그의 성 바오로 신학교 학장으로 근무하였다. 1982년에는 교황으로부터 미국 내 신학교들에 대한 조사를 위임받은 존 알로이시우스 마셜 주교의 행정 조수로 위촉되었다. 로마에 있는 동안 성 토마스 아퀴나스 교황청립 대학교 '안젤리쿰'에서 1974년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3] 1976년에는 토마스 코머퍼드 로울러, 로널드 데이비드 로울러와 함께 성인들을 위한 교리서인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공동 집필했는데, 이 책은 여러 차례 재판되었으며 널리 번역되었다.[11]

4. 주교 임명과 활동

도널드 우얼 추기경의 문장


도널드 우얼은 1985년 12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애틀 대교구의 보좌주교 겸 로즈마키의 명의주교로 임명되었고,[111] 1986년 1월 6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주교 서품을 받았다.[111]

1988년 1월 12일 피츠버그 교구의 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었으며,[111] 1988년 3월 25일 착좌식을 가졌다.[111]

2006년 6월 22일 워싱턴 대교구의 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고,[111]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국립 대성당에서 착좌식을 가졌다. 2006년 6월 29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팔리움을 받았다.[111]

4. 1. 시애틀 대교구 보좌주교

도널드 우얼은 1985년 12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애틀 대교구의 보좌주교 겸 로즈마키의 명의주교로 임명되었으며,[111] 1986년 1월 6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주교 서품을 받았다.[14][7]

보좌주교로서 우얼은 시애틀 대주교 레이먼드 헌트하우젠과 몇 달 동안은 충돌 없이 함께 일했다. 그러나 1986년 5월, 두 사람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주 법안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15] 그 시점에서 헌트하우젠은 바티칸이 우얼에게 대주교의 통제 하에 있는 몇 가지 핵심 영역에 대한 책임, 즉 "완전하고 최종적인 의사 결정 권한"을 부여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권한은 다음과 같다.

  • 예배와 전례
  • 무효 선언에 대한 요청을 심의하는 대교구 법원; 신학교의 신학생, 가톨릭교회의 사제 양성 및 사제직 박탈
  • 도덕적 문제
  • 보건 의료 및 LGBTQ 사람들에 대한 사역[16]


헌트하우젠은 1986년 9월에 자신과 우얼 사이의 권한 분배를 밝혔는데,[17] 일부 교구 관계자들은 우얼을 지지했지만, 일부는 그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했고, 그가 임명된 지 1년이 지나도 대교구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고 보았다.[15] 11월에, 미국 가톨릭 주교 회의는 바티칸의 헌트하우젠에 대한 제약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18]

1987년 2월, 바티칸은 시애틀에서 우얼과 헌트하우젠 사이의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조셉 버나딘 추기경이 이끄는 미국 주교 위원회를 구성했다. 우얼은 요한 바오로 2세와 개인적으로 만났지만, 회담에 대해 논평을 거부하며 "저는 위원회가 무엇을 할지 기다려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18] 1987년 5월, 위원회 검토 후 요한 바오로 2세는 헌트하우젠의 주교로서의 완전한 권한을 회복시키고, 당시 주교였던 토머스 조셉 머피를 그를 돕는 보좌 주교로 임명했다.[19]

우얼은 1987년 5월 26일 시애틀의 보좌 주교직에서 사임했다. 그는 나중에 시애틀에 남는 것이 헌트하우젠과의 갈등에 대해 많은 교구민들이 그를 탓하면서 "실행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우얼은 바티칸의 다음 임명을 기다리기 위해 피츠버그 교외로 이사했다.[20] 우얼과 헌트하우젠은 결국 친구가 되었고, 우얼은 헌트하우젠이 그에게 주교로서의 역할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고 말했다.[21]

4. 2. 피츠버그 교구장 주교

도널드 우얼은 1988년 1월 12일 피츠버그 교구의 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었으며,[111] 1988년 3월 25일에 착좌식을 가졌다.[111] 요한 바오로 2세는 1988년 2월 12일 그를 피츠버그의 제11대 주교로 임명했다.[7]

당시 교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교구 학교의 재정적 손실이었다. 피츠버그 교구는 가톨릭 이민자들이 제철소에서 일하며 피츠버그의 인구를 늘리던 시대에 많은 본당을 건설했다. 교구는 교구민들이 모국어로 예배에 참석하고 민족적 전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민족별로 본당을 설립했다. 그 결과 교구는 서로 몇 블록 안에 8개나 되는 본당을 가지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교구는 모든 본당에 학교를 세우기 위해 대대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 학교들은 일반적으로 적은 보수를 받는 수녀들이 운영했다.

1970년대에 피츠버그 가톨릭 학교의 경제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첫째, 베이비 붐 시대가 끝나면서 학생 수가 감소했다. 둘째, 가톨릭 신자들이 자녀를 가톨릭 학교에 보내는 경향이 줄어들었다. 셋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한 대응으로 많은 수녀들이 교육과 관련 없는 선교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교구는 학교에서 수녀들을 대체하기 위해 더 높은 급여를 받는 평신도 교사를 더 많이 고용해야 했다.[22]

우얼은 피츠버그의 가톨릭 교육 관련 부채와 적자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신도 자문 위원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1988년 위원회는 333개 본당 중 48개가 총 560만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1989년 2월, 교구는 구조 계획을 발표하여 본당 보험을 위해 빌려준 110만달러와 본당 공유 프로그램을 탕감했다. 또한 교구는 본당의 다른 채무를 재융자하기 위해 본당에 저금리 대출을 약속했다. 교구의 재정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얼은 건강 서비스를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HIV/AIDS 환자를 위한 그룹 홈을 만들기 위해 병원 및 지역 사회 단체와 협력했다. 2003년에는 무보험 저소득 근로자를 위한 가톨릭 자선 무료 건강 관리 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250만달러의 모금 운동을 벌였다.[22]

1989년, 우얼은 성심 고등학교와 성 바오로 대성당 고등학교를 통합하여 피츠버그 오클랜드 지역에 있는 성 바오로 건물을 사용하는 오클랜드 가톨릭 고등학교를 설립했다.[23]

1990년, 우얼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시작하고 진행했다. 그는 피츠버그 듀케인 대학교에서 석좌 교수로 가르쳤다. 1999년에는 몰타 기사단 연방 협회 미국 지부 소속 군종 신부가 되어 몰타 기사단에 배속되었다.[24] 또한 미국 콜럼버스 기사단의 주요 간행물인 ''콜럼비아''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했다.

1994년 3월, 우얼은 37개의 교회를 포함한 73개의 교구 건물을 폐쇄하고, 본당 수를 통합하여 331개에서 117개로 줄였다. 2006년 6월 우얼이 워싱턴 대주교가 되기 위해 떠났을 때 교구는 214개의 본당을 운영하고 있었다.[25] 우얼의 ''본당 재조직 및 활성화 프로젝트''는 본당 폐쇄를 모색하는 다른 교구의 모델로 사용되었다.[26]

1994년부터 2003년까지 피츠버그 주교로서 우얼은 미국 주교회의(USCCB)의 펜실베이니아-뉴저지 지역(제3지역)을 대표하여 로마에 있는 교황청 북미 대학의 이사로 활동했으며, 1998년부터 1999년까지는 의장을 역임했다.

우얼 주교 치하에서 교구는 여성에게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 공립 교육감이었던 로즈마리 시빅이 피츠버그 가톨릭 학교의 첫 번째 평신도 교육감으로 임명되었다.
  • 교회법 및 민법 변호사였던 리타 조이스가 교구 혼인 재판소의 첫 번째 평신도 위원이 되었다.
  • 마가렛 해넌 수녀가 교구 부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녀는 나중에 평신도에게는 가장 높은 법적 직위인 총장이 되었다.[22]

4. 3. 워싱턴 대교구장 대주교

도널드 우얼은 2006년 5월 16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워싱턴 대교구의 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고, 2006년 6월 22일 워싱턴 D.C.에 있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국립 대성당에서 착좌식을 가졌다.[27][111] 2006년 6월 29일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팔리움을 받았다.[28][111] 2008년 4월, 우얼은 베네딕토 16세의 컬럼비아 특별구 사도적 방문을 주최했다.

우얼과 오바마 대통령이 교황 프란치스코를 미국에 환영하는 모습 (2015년)


우얼은 2005년 12월 12일부터 전국 가톨릭 교육 협회 이사회의 의장을 역임했으며, 아메리카 가톨릭 대학교의 총장을 지냈다.[29] 2010년 9월, 신앙교리성은 우얼을 미국 내에서 교황령 ''Anglicanorum coetibus''의 시행을 돕는 대표자로 임명했다. 이 교황령은 2009년 11월 베네딕토 16세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려는 성공회 신자들을 위해 발표한 것이다.[30] 우얼은 또한 그 시행을 지원하는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USCCB)의 특별 위원회를 이끌었다.[31]

5. 추기경 서임과 활동

베네딕토 16세는 2010년 11월 20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공개 추기경 회의에서 우얼을 추기경으로 서임했다.[32] 그는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다.[33] 이후 베네딕토 16세는 우얼을 다음과 같은 직책에 임명했다.


  • 성직자성 위원 (2010년 12월)[34]
  •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위원 (2010년 12월)[34]
  • 세계 주교 시노드 새 복음화 회의 의장 (2011년 10월 24일)[35]
  • 교황청 문화평의회 위원 (5년 임기, 연임 가능) (2011년 12월 10일)[36]
  • 신앙교리성 위원 (2012년 4월 21일)[37]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 (이탈리아)


2011년, 우얼은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미국 가톨릭 신학자 엘리자베스 존슨을 비판했다.[38] 주교들은 존슨의 2007년 저서 『살아있는 하느님을 찾아서』가 여러 면에서 가톨릭 교리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신학자와의 갈등을 처리하기 위한 합의된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39][40] 우얼은 나중에 존슨과 해당 저서에 관해 만날 의향을 밝혔지만, 존슨은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41]

우얼은 2013년 교황 선출 회의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출하는 데 참여한 추기경 선거인이었다.[42] 프란치스코는 우얼을 주교성에 임명했다(2013년 12월 16일).[43]

6. 사회 및 정치적 입장

도널드 우얼은 낙태와 동성 결혼 등 사회적으로 논쟁이 되는 문제들에 대해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우얼은 낙태에 찬성하는 가톨릭 정치인에게 영성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결정을 지지했다.[115] 2006년 11월, 미국의 가톨릭 주교들은 동성애자 사목 담당 사제가 동성에 대한 매력은 비정상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지켜야 하며, 동성애 성향 신자에게는 정결한 삶을 격려하되 성적 취향을 공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우얼은 이에 대해 "교회는 동성애가 고무되는 문화 속에서도 진정한 교회의 가르침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계속 얘기해야 하는 임무가 있다"고 설명했다.[116]

2009년 워싱턴 D.C. 시의회가 동성결혼 법안을 통과시키자, 우얼은 맨해튼 선언에 서명하여 낙태와 동성결혼 등 종교적 양심에 반하는 문제를 법으로 허용하는 것에 반대했다.[117] 가톨릭 교회는 혼인이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동성결혼은 사회 전체의 공동선을 위태롭게 만든다고 가르친다.[118]

백악관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로라 부시 부부와 만남을 가진 워싱턴 대교구장 도널드 우얼과 전임 대교구장 시어도어 에드거 맥커릭, 주미교황대사 피에트로 삼비.

6. 1. 기본 입장

도널드 우얼은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지만, 권위주의적인 성향은 아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낙태에 찬성하는 가톨릭 정치인에게는 영성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결정을 지지하면서도, "우리의 주요 사명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미국)의 전통은 (지금까지 교회의 가르침에 벗어난 정치인들에 대해) 영성체를 허락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는데, 나는 이것에 전적으로 지지한다."라고 말했다.[115]

2006년 11월, 미국의 가톨릭 주교들은 동성애자 사목 담당 사제는 동성에 대한 매력이 비정상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지켜야 하며, 동성애 성향 신자에게는 정결한 삶을 격려하되 성적 취향을 공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우얼은 "이 지침은 동성애자에 대한 사목에 철퇴를 가하자는 목적이 아니다."라며 "교회는 동성애가 고무되는 문화 속에서도 진정한 교회의 가르침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계속 얘기해야 하는 임무가 있다."라고 설명했다.[116]

2009년, 워싱턴 D.C. 시의회가 동성 결혼 법안을 통과시키자, 우얼은 낙태와 동성결혼 등 종교적 양심에 반하는 문제를 법으로 허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맨해튼 선언에 서명했다.[117] 가톨릭에서는 혼인을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동성결혼에 대한 사회적 용인은 결국 사회 전체의 공동선을 위태롭게 만든다고 가르친다.[118]

예수회 사제이자 언론인인 토머스 J. 리스는 우얼에 대해 "신학적으로 매우 정통적이지만, 감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권위적인 사람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44] 2018년 8월에는 그를 가톨릭 신학 논쟁에서 이념적으로 중도적인 인물로 묘사하며, "그는 좌파도 아니고, 우파 문화 전사도 아니다... 그는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해 열광했고, 그 다음 베네딕토 교황에 대해서도 열광했으며, 지금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열광한다. 이 세 명 모두에게 열광하는 사람은 교회에 많지 않다."라고 말했다.[68]

언론인 존 L. 앨런 주니어는 2018년 12월, 우얼에 대해 "그는 사실상 모든 당사자로부터 그들을 공개적으로 당황하게 만들지 않을 사람으로 신뢰받았고, 적어도 그들의 관점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비공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21]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교회 교리와 충돌하는 정책 입장을 취하는 경우, 우얼은 성체를 제공할지 여부는 사례별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주요 임무는 가르치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은 성체 거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으며, 저는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합니다."[44]


2000년, 바티칸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명시한 ''도미누스 예수스''라는 문서를 발표했다. 우얼은 이 문서가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의 원리를 가톨릭복음서 해석에 통합하려던 아시아의 일부 신학자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얼은 ''도미누스 예수스''가 모든 사람에게 기독교 신앙을 선포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가톨릭의 견해를 옹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 문서가 비 기독교 경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수 세기 동안 신과 맺는 삶의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56]

2007년, 베네딕토 16세는 자의교서 ''Summorum Pontificum''(2007)을 발표하여 사제들이 1969년 또는 1962년판 미사 경본을 사용하여 미사를 거행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우얼은 교황이 "이 전례 형태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목회적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사제들에게 그들의 관심사를 인식하고 지원하도록 요청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그는 또한 그의 대교구의 세 성당에서 주당 약 500명이 트리덴틴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57]

우얼은 1962년 형태의 미사를 "정기적이고 공개적으로 거행해 달라는 요청을 평가하고 응답하는 데 사제들을 돕기 위해" 특별위원회를 설립했다. 2017년 현재, 트리덴틴 미사는 대교구 웹사이트에 2007년과 동일한 3개 본당에서 매주 거행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58]

6. 2. 낙태

도널드 우얼은 낙태에 찬성하는 가톨릭 정치인들에게는 영성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결정을 지지하면서도 "우리의 주요 사명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미국)의 전통은 (지금까지 교회의 가르침에 벗어난 정치인들에 대해) 영성체를 허락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는데, 나는 이것에 전적으로 지지한다."라고 말했다.[115]

우얼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여성의 낙태 권리를 옹호하는 정치인들을 위한 전례 번역 및 영성체와 같은 문제에 대한 이념적 갈등에 대해 합의를 이루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3][21]

6. 3. 동성애와 동성결혼

도널드 우얼은 낙태에 찬성하는 가톨릭 정치인에게는 영성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결정을 지지했다. 하지만 “우리의 주요 사명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미국)의 전통은 (지금까지 교회의 가르침에 벗어난 정치인들에 대해) 영성체를 허락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는데, 나는 이것에 전적으로 지지한다.”라고 말했다.[115]

2006년 11월 14일, 미국의 가톨릭 주교들은 동성애자들을 사목하는 가톨릭 사제들은 동성에 대한 매력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고수해야 하며, 동성애적 취향을 가진 신자들에 대해서는 정결한 삶을 격려하되 자신의 성적 취향을 공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우얼은 “이 지침은 동성애자에 대한 사목에 철퇴를 가하자는 목적이 아니다.”라면서 “교회는 동성애가 고무되는 문화 속에서도 진정한 교회의 가르침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계속 얘기해야 하는 임무가 있다.”라고 설명했다.[116]

2009년, 컬럼비아 특별구 의회에서 동성 결혼에 대한 법안을 심의했고, 통과시켰다. 가톨릭교회에서는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동성결혼에 대한 사회적 용인은 결국 사회 전체의 공동선을 위태롭게 만든다고 가르치고 있다.[118] 같은 해 11월에 도널드 우얼은 낙태와 동성결혼 등 종교적 양심을 거스르는 문제를 법으로 허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맨해튼 선언으로 알려진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의 기독교 연합 성명서에 서명하였다.[117]

2009년 11월 26일, 우얼은 만해튼 선언이라는 에큐메니컬 성명에 서명하여 복음주의, 가톨릭, 동방 정교회 기독교도들에게 낙태, 동성 결혼 및 종교적 양심에 어긋나는 기타 관행을 허용하는 규칙과 법률을 준수하지 않도록 촉구했다.[49][50]

2010년 2월, 법 시행 직전, 워싱턴 대교구의 가톨릭 자선 단체는 동성 커플을 프로그램에 대해 허가해야 한다는 법의 요구 사항을 준수하기보다 위탁 양육 및 공공 입양 프로그램을 종료했다.[53][54] 또한 해당 기관은 직원 건강 관리 혜택을 수정하여 동성 커플에게 적용 범위를 확대하지 않도록 했다.[55]

6. 4. 종교의 자유



도널드 우얼은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권위주의자는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낙태에 찬성하는 가톨릭 정치인들에게는 영성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결정을 지지하면서도 "우리의 주요 사명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미국)의 전통은 (지금까지 교회의 가르침에 벗어난 정치인들에 대해) 영성체를 허락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는데, 나는 이것에 전적으로 지지한다."라고 말했다.[115]

2006년 11월 14일,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회동을 가진 미국의 가톨릭 주교들은 동성애자들을 상대로 사목하는 가톨릭 사제들은 동성에 대한 매력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고수해야 하며, 동성애적 취향을 가진 신자들에 대해서는 정결한 삶을 격려하되 자신의 성적 취향을 공개하지 않도록 저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지침을 발표했다. 도널드 우얼은 "이 지침은 동성애자에 대한 사목에 철퇴를 가하자는 목적이 아니다."라면서 "교회는 동성애가 고무되는 문화 속에서도 진정한 교회의 가르침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계속 얘기해야 하는 임무가 있다."라고 설명했다.[116]

2009년 워싱턴 D.C. 시의회에서는 제출된 동성결혼 법안을 검토한 후에 통과시켰다. 이에 같은 해 11월에 도널드 우얼은 낙태와 동성결혼 등 종교적 양심을 거스르는 문제를 법으로 허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맨해튼 선언으로 알려진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의 기독교 연합 성명서에 서명하였다.[117] 가톨릭교회에서는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동성결혼에 대한 사회적 용인은 결국 사회 전체의 공동선을 위태롭게 만든다고 가르치고 있다.[118]

7. 성추문 관련 논란

도널드 우얼은 성직자에 의한 성 학대 혐의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주교로 평가받았으나,[59] 2018년 펜실베이니아 대배심 조사 보고서는 그의 일부 사건 처리 방식을 비판했다.[80][81]

1988년, 우얼은 사제의 성 학대로 교구를 고소한 가족의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아들였다. 교구 변호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피해 가족과의 소통을 원했다. 이후 소송은 해결되었고, 해당 사제는 세속화 후 투옥되었다. 우얼은 직원들에게 성 학대 혐의 발생 시 피해자와 그 가족을 우선하고, 교회의 평판은 그 다음이라고 강조했다.[59]

1978년, 안토니 치폴라 신부는 아홉 살 소년 성 학대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피해 소년의 어머니는 빈센트 레너드 주교의 압력으로 고소를 취하했다.[60][59] 1988년, 다른 피해자가 1981년부터 1986년까지 치폴라에게 학대를 받았다고 주장했고, 1993년 교구는 치폴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합의했다. 치폴라는 혐의를 부인했다.[60]

같은 해, 우얼은 치폴라를 공적 사역에서 해임했다. 치폴라는 사도 서명원에 항소했으나, 우얼은 법원에 재고를 요청하며 치폴라의 민사 소송 및 1978년 체포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1995년 법원은 판결을 뒤집고 우얼의 결정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치폴라는 사역을 계속했고, 교구는 그가 정상 상태가 아님을 공개해야 했다. 2002년, 치폴라는 교황에 의해 세속화되었다.[60][62]

2010년, 우얼은 ''폭스 뉴스 선데이''에서 미국 가톨릭 교회가 성 학대 문제에 진전을 이루었다고 주장하며, 신뢰할 만한 혐의가 있는 사제를 사역에서 배제하고 당국에 보고하며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63]

7. 1. 대배심 보고서 내용

조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주 법무장관이 2018년 8월 14일 발표한 가톨릭교회 내 성 학대에 관한 대배심 보고서는 우얼이 피츠버그 교구 주교 시절 성 학대 사건을 처리한 방식에 대해 비판했다.[64][65][66][67]

  • 우얼은 의사들의 조언에 따라, 과거 학대 혐의에도 불구하고 1998년 윌리엄 오말리 신부가 활동적인 사목으로 복귀하도록 허용했다. 오말리 신부는 자신이 청소년에게 성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했다.[68]
  • 우얼은 1960년대 초부터 아동 학대 혐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니스트 파오네 신부를 다른 교구로 전출시켰다.[69][74]
  • 조지 지르와스 신부는 아동 성 학대에 오랫동안 연루되었으며, 때로는 가학적인 행위도 포함되었다. 그는 또한 아동 포르노를 제작했다. 지르와스의 행동은 1987년 이른 시기부터 교구에 알려졌지만, 그는 우얼이 1988년 피츠버그 교구의 주교가 된 후에도 사목을 계속했다. 1989년 우얼은 지르와스의 피해자 두 명과 기밀 조항을 포함하여 90만달러의 합의를 승인했지만, 추가적인 민원에도 불구하고 지르와스가 사목에 머물도록 허용했다. 교구가 또 다른 민원을 접수한 후 우얼은 마침내 1996년 지르와스를 사목에서 면직시켰다. 결국 지르와스는 쿠바로 이주하여 2001년 살해당했다.
  • 어니스트 파오네 신부는 성 학대 혐의가 있었고, 미국 전역의 여러 본당으로 자주 이동했다. 1991년 우얼은 그의 행동에 대한 보고서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리노-라스베이거스 교구로 전출시켰다. 1994년 파오네에 대한 새로운 민원이 제기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얼은 1994년 민원에 대해 관련 캘리포니아 및 네바다 교구에 통지하는 서신을 보냈지만, 교구 기록에 포함된 더 자세한 정보는 보고하지 않았다. 교구는 파오네를 소환하지 않았고, 그의 사제로서의 권한을 정지시키지도 않았다. 오히려 파오네는 교구의 지원을 계속 받았다.[70][71]


대배심 보고서는 우얼의 성 학대 근절에 대한 기여도 언급했다. 여기에는 시폴라를 성 학대로 인해 사목에서 면직시키기 위한 바티칸 법률 시스템 내에서의 그의 성공적인 노력이 포함되었다.[68][69]

7. 2. 보고서에 대한 대응

도널드 우얼 추기경은 대배심 보고서에 제기된 혐의에 대해 "저는 이 보고서가 저의 일부 행동에 대해 비판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보고서는 제가 희생자를 배려하고, 향후 학대 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신중하게 행동했음을 확인한다고 믿습니다."라고 반박했다.[72] 그러나 샤피로는 우얼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으며, "우얼 추기경은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배심 보고서에 대한 그의 많은 진술은 교회의 비밀 기록 보관소에 있는 문서와 기록과 직접적으로 모순됩니다. 지금 오해의 소지가 있는 진술을 하는 것은 은폐를 더욱 부추길 뿐입니다."라고 말했다.[70]

우얼은 자신의 행적을 옹호하는 웹사이트 "The Wuerl Record"를 개설했다.[73][74] 또한 피츠버그 교구의 성 학대 사건 처리와 관련하여 "강도 높은 조사"에 직면했다.[75] 2018년 8월, 로마 가톨릭 워싱턴 대교구 대변인은 우얼이 "사임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74]

2018년 8월 20일, 아베 마리아 프레스는 우얼의 저서 ''무엇을 알고 싶으세요? 가톨릭 신앙에 대한 가장 어려운 질문에 대한 사제의 답변''의 출판을 무기한 연기했다.

같은 해 8월까지, 피츠버그 교구의 수천 명의 사람들이 노스 가톨릭 고등학교에서 우얼 추기경의 이름을 변경하라는 청원에 서명했다. 우얼의 요청에 따라 학교와 교구 학교 이사회가 피츠버그 주교 데이비드 주빅에게 학교 이름 변경을 청원했고, 주빅은 8월 22일에 변경을 승인하여 학교는 단순히 노스 가톨릭 고등학교가 되었다.[76][77]

우얼에 대한 혐의에 대응하여, 정치 평론가 휴 휴이트는 우얼을 워싱턴 대주교에서 해임하고 추기경단에서 사임할 것을 요구했다.[78] 며칠 만에 6만 명의 사람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우얼을 해임하라는 청원에 서명했다.[79] CNN은 이를 "성장하는 가톨릭 반란"이라고 칭하며, 우얼은 자신의 대교구 사제와 여러 이념의 평신도를 포함하여 사임을 요구하는 더 많은 요구에 직면했다.[80][81]

2018년 8월 말, 우얼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기 위해 로마로 갔다. 교황은 우얼에게 다음 단계를 위해 대교구의 사제들과 협의하도록 지시했다.[81] 9월 3일, 우얼은 워싱턴에서 100명 이상의 사제들과 만났다. 그는 맥캐릭에 대한 혐의에 대해 대중에게 알려지기 전까지 아무것도 몰랐다고 말했다.[81] 참석한 많은 사제들이 의견을 제시했으며, 일부는 우얼에게 사임을 권고했고, 다른 사람들은 "교회의 치유 과정에 머물고 참여하라"고 권고했다.[81]

2018년 9월 8일, 워싱턴의 성 마태오 사도 대성당의 전례 봉사자인 부제 제임스 가르시아는 우얼의 성 학대 사건 처리를 이유로 더 이상 미사에서 그를 섬기기를 거부하며, 사임을 요청했다.[82][83] 가르시아는 또한 우얼을 섬기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그의 주교로서 우얼에 대한 순종의 서약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다.[82]

칼럼니스트 마이클 션 윈터스는 2018년 10월에 우얼의 주교로서의 행동을 옹호했지만, 우얼이 대배심 보고서에 대한 대응은 최악이었다고 말했다. 윈터스는 보고서를 "엉성하고 일관성이 없다"고 묘사했다. 윈터스는 보고서에 대한 언론의 반응을 비판하며, 이는 교회 투사 및 라이프사이트뉴스와 같은 극우 단체에 의해 우얼을 끌어내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을 공격하기 위해 무기화되었다고 말했다.[84]

전 ''뉴욕 타임스'' 기자 피터 스테인펠스는 2019년 1월에 대배심 보고서를 "심히 오해의 소지가 있고, 무책임하며, 부정확하고, 부당하다"고 불렀다. 스테인펠스는 댈러스 헌장 이후에 혐의의 3분의 1 이상이 드러났으며, 그러한 "정확하지 않고 불완전한" 보고서가 우얼을 해임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언급했다. 스테인펠스는 샤피어가 교회 반대를 폄하하기 위해 보고서를 조작했다고 비난했다.[85]

7. 3. 기타 논란

2018년 8월 25일, 전 주미 교황 대사인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는 11페이지 분량의 서한을 공개했다. 이 서한에서 비가노 대주교는 워싱턴 대교구 대주교였던 도널드 우얼의 전임자인 테오도어 매카릭의 성추행에 대한 일련의 경고를 교황청에 전달했으며, 이후 교황청과 고위 성직자들이 이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86] 비가노는 매카릭의 행실과 그에 따른 처벌에 대해 우얼과 논의했다고 말했다. 또한 우얼이 매카릭이 신학생들을 학대했다는 혐의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퇴 후 레뎀토리 마테르 대교구 신학교에서 거주하도록 허용하여 신학생들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비난했다.[87]

전 추기경 매카릭


비가노 대주교


우얼은 대변인을 통해 2018년 6월 20일 사역에서 해임되기 전까지 매카릭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부인했다. 또한 교황청이 매카릭에게 가한 제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비가노의 주장도 부인했다.[87][88] 그러나 2019년 1월 10일, ''워싱턴 포스트''는 우얼이 2004년에 매카릭에 대한 의혹을 알고 있었으며, 이를 교황청에 보고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89] 당시 의혹을 제기했던 전직 사제 로버트 치올렉은 ''포스트''에 우얼이 2004년에 당시 주미 교황 대사였던 가브리엘 몬탈보 이구에라에게 이 정보를 공유했다고 말했다. ''포스트'' 기사 게재 후, 피츠버그 교구와 워싱턴 대교구는 모두 우얼이 2004년에 치올렉의 의혹에 대해 알고 있었고, 이를 교황청에 보고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대교구는 우얼이 이전의 부인을 "부정확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으며, 이는 미성년자에 대한 학대 혐의에만 해당하고 성인에 대한 혐의는 아니라고 말했다.[89] 며칠 후, 우얼은 직접 사과하며 이전의 부인은 "기억의 착오"로 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치올렉은 우얼이 잊었다는 것을 믿지 않았고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90]

2019년 5월 28일, 뉴스 사이트 ''크룩스''는 매카릭이 작성한 2008년의 서신 일부를 공개했다. 그 서신에서 매카릭은 성추행 의혹 이후 베네딕토 16세가 그에게 가한 여행 제한 조치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매카릭은 점차 여행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매카릭은 2008년 주미 교황 대사인 피에트로 삼비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한 사항을 설명하는 교황청 서한을 우얼과 공유했으며, "당신의 도움과 이해는 항상 저에게 큰 도움과 형제애적 지지입니다"라고 썼다. 그러나 우얼의 대변인은 그가 제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부인했다.[91]

2020년 8월 7일, 우얼은 앨러게니 카운티 일반 소송 법원에 제기된 새로운 성 학대 소송의 피고로 지목되었다.[92] 이 소송은 우얼이 1994년에 적어도 8명의 소년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레오 부르키안티 신부에게 새로운 교회 임무를 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우얼과 당시 데이비드 주빅 신부는 나중에 부르키안티에게 은퇴한 사제들을 위한 요양원인 세인트 존 비안니 매너에서 자원 봉사 임무를 주었다.[92] 부르키안티는 1995년부터 2012년까지 그곳에 머물렀고 2013년에 사망했다.[92] 우얼은 피츠버그 교구를 포함하는 다른 성 학대 소송에서도 피고로 지목되었다.[93][94]

8. 은퇴

우얼은 대주교 의무 퇴직 연령인 75세가 되던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워싱턴 대주교직 사임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교황은 당시 그의 사임을 수락하지 않았다. 3년 후인 2018년 10월 12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얼의 사임을 수락했다.[95]

우얼은 2018년 9월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난 후 공식적으로 사임할 계획이었으나, 바티칸은 회의 일정을 잡지 않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한으로 우얼의 사임을 수락했다.[96] 교황은 수락 서한에서 우얼을 "모범적인 주교"라고 칭찬하며 "당신은 당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범죄를 은폐하는 것과 문제를 처리하지 않는 것, 그리고 어떤 실수를 하는 것의 의미를 구별할 수 있는 충분한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97]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얼을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워싱턴 D.C.의 사도 행정관으로 임명했다.[98] 우얼은 2019년 5월 21일 윌튼 그레고리 대주교가 임명되면서 사도 행정관직에서 물러났다.[99][100][101][102]

2018년 10월 ''뉴욕 타임스'' 사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얼의 사임 방식과 학대 사건 처리 방식을 비판했다.[103] 같은 달, 샤피로는 교황이 우얼에게 더 강력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고 사임하도록 허용한 결정을 비판했다.[104] 2018년 10월 12일, 우얼은 교구 구성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교회의 사역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입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죄송하며 치유를 바랍니다. 저는 또한 이러한 사제들과 주교들이 이동하고 승진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에게 교회 지도부를 대신하여 용서를 구합니다."[97]
2020년, 교구는 "명예 대주교를 위한 지속적인 사역 활동"에 200만달러를 배정했다.[105]

9. 저서


  • 《40인의 순교자: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새로운 성인들》 (The Forty Martyrs: New Saints of England and Wales영어, 1971)
  • 《교부들》 (The Fathers of the Church영어, 1975)
  • 《오늘날의 가톨릭 사제직》 (The Catholic Priesthood Today영어, 1976)
  • 《그리스도의 가르침: 성인을 위한 가톨릭 교리 문답》 (The Teaching of Christ: A Catholic Catechism for Adults영어, 1976), 공동 저자
  • 《바티칸 방문: 청소년을 위한》 (A Visit to the Vatican: For Youth영어, 1981)
  • 《믿음의 선물: 그리스도의 가르침 문답 형식》 (The Gift of Faith: A Question and Answer Version of the Teaching of Christ영어, 2001)
  • 《가톨릭 방식: 오늘날의 삶을 위한 믿음》 (The Catholic Way: Faith for Living Today영어, 2001)
  • 《성사: 그리스도와의 지속적인 만남》 (The Sacraments: Encounters with Christ's Transforming Love영어, 2010)
  • 《미사: 영광, 신비, 전통》 (The Mass: The Glory, the Mystery, the Tradition영어, 2011)
  • 《복자 요한 바오로 2세의 선물》 (The Gift of Blessed John Paul II영어, 2011)
  •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라: 우리의 신앙으로 문화를 도전하다》 (Seek First the Kingdom of God: Challenging the Culture by Living Our Faith영어, 2011)
  • 《우리를 변화시키는 신앙: 신조에 대한 묵상》 (Faith That Transforms Us: Reflections on the Creed영어, 2013)
  • 《새로운 복음화: 오늘날 가톨릭 신앙을 전파하다》 (New Evangelization: Passing on the Catholic Faith Today영어, 2013)
  • 《교회: 가톨릭 신자들이 집이라고 부르는 장소의 비밀을 풀다》 (The Church: Unlocking the Secrets to the Places Catholics Call Home영어, 2013)
  • 《당신을 위한 불이 켜져 있습니다: 고백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 (The Light Is On for You: The Life-Changing Power of Confession영어, 2014)
  • 《축일: 교회력은 우리를 어떻게 가톨릭 신자로 형성하는가》 (Feast Days: How the Liturgical Year Forms Us as Catholics영어, 2014)
  • 《성령께 마음을 열어라: 지혜롭게 복음을 살아가기》 (Open to the Holy Spirit: Living the Gospel with Wisdom and Power영어, 2014)
  • 《하느님께서 당신을 위해 원하시는 결혼》 (The Marriage God Wants for You영어, 2015)
  • 《순교자들에게: 최고의 그리스도인 증언에 대한 묵상》 (To the Martyrs: Reflections on the Supreme Christian Witness영어, 2015)
  • 《기도하는 방법: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기》 (Ways to Pray: Growing Closer to God영어, 2015)

9. 1. 워싱턴 대교구장 시절 사목 서한

도널드 윌리엄 우얼 대주교는 워싱턴 대교구장으로 재임하면서 다양한 주제로 사목 서한을 발표했다. 다음은 우얼 대주교가 발표한 주요 사목 서한 목록이다.

발표일제목원문 링크
2015년 5월 24일"오늘날의 가톨릭 신자: 도전의 시대의 가톨릭 정체성"[http://www.adw.org/wp-content/uploads/2015/05/Being-Catholic-Today-Pastoral-Letter.pdf "오늘날의 가톨릭 신자: 도전의 시대의 가톨릭 정체성"][1], [http://adw.org/wp-content/uploads/2015/05/DWW-PastoralLetter-Ser-Catolico-Hoy.pdf So Católico Hoy: Identidad católica en una época de desafíos][2]
2014년 6월 8일"왕국을 드러내며: 워싱턴 대교구의 제1차 시노드에 관한 사목 서한"[http://www.adw.org/wp-content/uploads/2014/09/14DWW-PastoralLetter-Final-with-Cover-SmallFLAT.pdf "왕국을 드러내며: 워싱턴 대교구의 제1차 시노드에 관한 사목 서한"][3], [http://adw.org/wp-content/uploads/2014/06/14DWW-PastoralLetter-Spanish-Final-with-cover-Small.pdf La Manifestación del Reino][4]
2012년 9월 14일"교회, 우리의 영적인 집"[http://adw.org/wp-content/uploads/2014/02/2012-Pastoral-Letter.pdf 교회, 우리의 영적인 집][5], [http://adw.org/wp-content/uploads/2014/02/2012-Pastoral-Letter-Espanol.pdf La Iglesia, Nuestro Hogar Espiritual][6]
2010년 8월 23일"주님의 제자: 비전을 공유하며"[http://adw.org/wp-content/uploads/2014/02/Disciples-of-the-Lord-Sharing-the-Vision.pdf "주님의 제자: 비전을 공유하며"][7]
2010년 1월 3일"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현존"[http://adw.org/wp-content/uploads/2014/02/2010-Pastoral-Letter.pdf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현존"][8], [http://adw.org/wp-content/uploads/2014/02/2010-pastoral-letter-esp.pdf La Misericordia y la Amorosa Presencia de Dios][9]
2009년 1월 25일"하느님의 가족에 속하다"[http://adw.org/wp-content/uploads/2014/02/2009-Lent-Pastoral-Letter.pdf "하느님의 가족에 속하다"][10], [http://adw.org/wp-content/uploads/2014/02/2009-pastoral-letter-esp.pdf Pertenciendo a la Familia de Dios][11]
2008년 9월 14일"가톨릭 교육: 자신감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며"[http://adw.org/wp-content/uploads/2014/02/2008-Education-Pastoral-Letter1.pdf "가톨릭 교육: 자신감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며"][12]
2008년 1월 1일"하느님의 자비와 우리의 용서에 대한 성찰"[http://adw.org/wp-content/uploads/2014/02/2008-TLIO-Pastoral-Letter.pdf "하느님의 자비와 우리의 용서에 대한 성찰"][13], [http://adw.org/wp-content/uploads/2014/02/2008-pastoral-letter-esp.pdf Reflexiones sobre la Misericordia de Dios y el Perdón][14]
2007년 1월 8일"하느님의 자비와 고해성사"[http://adw.org/wp-content/uploads/2014/02/2007-TLIO-Pastoral-Letter.pdf "하느님의 자비와 고해성사"][15], [http://adw.org/wp-content/uploads/2014/02/2007-tlio-pastoral-letter-esp.pdf La Misericordia de Dios y el Sacramento de la Penitencia][1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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