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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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78년부터 2005년까지 재임한 로마 가톨릭교회 교황이다. 그는 폴란드 출신으로, 공산주의 국가 출신 최초의 교황이자, "하늘을 나는 교황"으로 불릴 만큼 전 세계를 방문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1년 암살 시도를 겪었으며, 파킨슨병 등 건강 악화로 말년을 보냈다. 그는 2014년 시성되었으며, 교회법 개편, 사회적 가르침, 다른 종교와의 대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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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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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요한 바오로 2세 |
직함 | 로마 주교 |
로마자 표기 | Ioannes Paulus II (라틴어), Giovanni Paolo II (이탈리아어), Jan Paweł II (폴란드어) |
본명 | Karol Józef Wojtyła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 |
출생일 | 1920년 5월 18일 |
출생지 | 폴란드 바도비체 |
사망일 | 2005년 4월 2일 (향년 84세) |
사망지 | 바티칸 시국 사도 궁전 |
종교 | 가톨릭 |
표어 | 토투스 투우스(온전히 당신의 것) |
교황 정보 | |
재임 시작 | 1978년 10월 16일 |
재임 종료 | 2005년 4월 2일 |
선임자 | 요한 바오로 1세 |
후임자 | 베네딕토 16세 |
서품 | 1946년 11월 1일 |
주교 서임 | 1958년 9월 28일 |
추기경 서임 | 1967년 6월 26일 |
추기경 임명자 | 바오로 6세 |
성인 정보 | |
축일 | 10월 22일 |
시복일 | 2011년 5월 1일 |
시복 집전자 | 베네딕토 16세 |
시성일 | 2014년 4월 27일 |
시성 집전자 | 프란치스코 |
상징 | 교황 페룰라, 교황 예복 |
수호 | 폴란드, 크라쿠프 대교구, 세계 청년 대회(공동 수호 성인), 2015년 세계 가정 대회 (공동 수호 성인), 젊은 가톨릭 신자, 가족, 시비드니차, 트레카스텔리, 보르고 만토바노, 리비냐노 테오르, Paradahan, Tanza, Cavite (주요 수호) |
추가 정보 | |
이전 직책 | 보조 크라쿠프 주교 (1958–1964) 옴비 명의 주교 (1958–1964) 크라쿠프 대주교 (1964–1978) 산 체사레오 인 팔라티오의 추기경 사제 (1967–1978) |
서품 집전자 | 아담 스테판 사피에하 |
주교 서임 집전자 | 에우게니우슈 바지아크 |
철학 분야 | 인격주의 현상학적 토마스주의 |
주요 저서 | 사랑과 책임 몸의 신학 1983년 교회법전(반포) 가톨릭 교회 교리서(반포) 신앙과 이성 기억과 정체성 |
주요 사상 | 생명 문화 및 죽음 문화 빛의 신비 사회적 저당 |
교육 | 성 토마스 아퀴나스 교황청 대학교 (STL, 박사) 야기엘론스키 대학교 (박사) |
안장 장소 | 성 베드로 대성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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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대기
기독교 역사상 하드리아노 6세 이래 455년 만에 비(非) 이탈리아 출신 교황이자 최초 슬라브계 교황이다.[256] 동시에 20세기 교황 가운데 최연소로 즉위한 교황이기도 하다. 27년 가까이 재임한 그는 34년 동안 재임한 베드로와 31년 동안 재임한 교황 비오 9세에 이어 사상 세 번째로 오래 재임한 교황이다.
요한 바오로 2세 재위 동안 선진국에서는 가톨릭교회 교세가 점차 기울었지만, 제3세계에서는 확장되었다. 그는 치세 전반에 걸쳐 여행을 가장 많이 한 교황으로 전임자보다 100개 이상 나라를 더 방문하였다. 역사상 여행을 가장 많이 한 세계 지도자 가운데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모국어인 폴란드어와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 크로아티아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라틴어 등 다양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알았다. 동유럽 반공주의 운동을 지원하였고, 세계 평화와 반전을 호소하였으며, 생명윤리 등 분야에서는 전통적인 기독교 도덕관을 제시하는 등 종교 범위를 넘어 세계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종교 간 문제에는 시종일관 온건한 태도로 일관하여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256]
1981년 5월 13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터키인 메흐메트 알리 아자에게 총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239] 1983년 크리스마스 이틀 후, 요한 바오로 2세는 저격범 아자가 수감된 교도소를 방문하여 그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교황은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그와 나의 비밀로 남아야 합니다. 나는 그를 용서했고,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형제로서 이야기했습니다"라고 말했다.[239]
1982년 5월 13일에는 포르투갈 파티마를 순례하던 중 성 비오 10세회 소속 스페인인 사제 후안 마리아 페르난데스 이 크론에게 총검으로 공격당해 부상을 입기도 했다. 크론 신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혁과 바티칸-모스크바 협정에 반대했다.[239]
요한 바오로 2세는 파킨슨병을 비롯한 여러 합병증으로 건강이 나빠졌다.[260] 왼손 떨림, 왼쪽 얼굴 근육 경직, 만성적인 무릎 관절염 등으로 보행기구 없이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 2005년 4월 2일 현지 시각으로 오후 11시 59분, 사도 궁전에서 선종하였다. 향년 84세였다. 공식 사인은 패혈성 쇼크와 치유 불가능한 심부전이다.[261]
2. 1. 생애 초기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는 1920년 5월 18일 폴란드 남부 바도비체에서 3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256] 아버지는 예비역 육군 장교였고, 어머니는 리투아니아 출신 초등학교 교사였다.[256] 9살 때 어머니가, 12살 때 형이 세상을 떠났고, 1941년에는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256]

어린 시절 보이티와는 운동을 좋아했으며, 특히 축구 경기 때 골키퍼로 뛰었다.[256] 고향의 유다인 공동체와도 깊은 교제를 맺었다.[256]
193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크라쿠프의 야기엘론스키 대학교 연극학과에 입학했다.[256] 연극 배우와 각본가로도 활동했으며, 10개 국어에 능통했다.[256]
1939년 폴란드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뒤 야기엘로 대학교는 문을 닫았다.[256] 1940년부터 1944년까지 보이티와는 독일의 강제 이송을 피하려고 솔베이 화학공장 노동자, 석회암 채석장 수공 노동자 등으로 일했다.[256]

1944년 8월, 게슈타포를 피해 대주교 저택으로 도망가 은신했다.[256] 1945년 1월 독일군이 물러간 후, 파괴된 학교 재건에 앞장섰다.[256]
2. 2. 사제, 주교, 추기경
제2차 세계 대전을 몸소 겪은 그는 사람이 이념과 민족, 국가의 이름으로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깨닫고 1942년 크라쿠프 교구장인 아담 스테판 사피에하 대주교가 비밀리에 운영하는 지하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카롤 보이티와는 사피에하 추기경에 의해 1946년 11월 1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256] 그 후 얼마 안 있어 신학을 공부하고자 로마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 교황청립 대학교에 들어간 그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작품에서 드러난 신앙》(Doctrina de fide apud S. Ioannem a Cruce)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신학 전문직 학위를 받았다. 동년 12월에 크라쿠프의 야기엘로 대학교로부터 신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마침내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1948년 여름 폴란드로 돌아온 그는 크라쿠프로부터 15km 떨어진 외딴 시골마을의 가톨릭 사제로 파견되었다가 1949년 3월 크라쿠프의 성 플로리아누스 교구로 전임하였다. 그는 야기엘로 대학에 이어서 루블린 가톨릭 대학교에서 윤리학을 가르쳤다. 보이티와는 기도와 철학 토론 그리고 시각장애인과 병자들을 위한 간호를 목적으로 스무 명 이하의 젊은이들을 모아 “작은 가족”이라고 불리는 모임을 만들었다. 나중에는 이백 명으로 집단이 늘어났으며 이들은 매년 스키와 등산, 카누를 하러 고향인 바도비체 근처 언덕으로 여행을 떠났다.
보이티와 사제는 현대 교회의 문제점을 다루는 크라쿠프의 가톨릭 계열 신문인 《Tygodnik Powszechny》에 일련의 논설을 게재하였으며 그의 저술 덕분에 성직자로서 그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1958년 7월 4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크라쿠프 대주교를 보좌하는 옴비의 명의(名義) 주교로 임명된 그는 1958년 9월 29일에 주교품을 받았다. 당시 38살이었던 그는 폴란드에서 가장 젊은 주교였다. 이때 ‘온전히 당신의 것’이라는 뜻의 ‘Totus Tuus’를 사목 표어로 삼았다. 1960년 보이티와는 성(性)과 결혼 문제에서 현대 사회의 새로운 견해로부터 지키고자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옹호하는 《사랑과 책임》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1962년 7월 16일에 보이티와는 참사회의 대리로 뽑혔다.
1962년 10월 보이티와 주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해 종교의 자유에 관한 선언 《인간 존엄성》과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에 대한 결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올리는 등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 12월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크라쿠프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1967년 6월 26일 바오로 6세는 보이티와 대주교를 산 케사레오 인 파라티오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에 서임한다는 발표를 하였다.
2. 3. 교황
기독교 역사상 교황 하드리아노 6세 이래 455년 만에 비(非) 이탈리아 출신 교황이자 최초 슬라브계 교황이다.[256] 동시에 20세기 교황 가운데 최연소로 즉위한 교황이기도 하다. 또한, 27년 가까이 재임한 그는 34년 동안 재임한 베드로와 31년 동안 재임한 교황 비오 9세에 이어 사상 세 번째로 오래 재임한 교황이다.요한 바오로 2세 재위 동안 선진국에서는 가톨릭교회 교세가 점차 기울었지만, 제3세계에서는 확장되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치세 전반에 걸쳐 여행을 가장 많이 한 교황으로 전임자보다 100개 이상 나라를 더 방문하였다. 그는 역사상 여행을 가장 많이 한 세계 지도자 가운데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모국어인 폴란드어와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 크로아티아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라틴어 등 다양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알았다. 동유럽 반공주의 운동을 지원하였고, 세계 평화와 반전을 호소하였으며, 생명윤리 등 분야에서는 전통적인 기독교 도덕관을 제시하는 등 종교 범위를 넘어 세계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종교 사이 문제에는 시종일관 온건한 태도로 일관하여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256]

1978년 8월 교황 바오로 6세가 선종하자 보이티와는 콘클라베에 참석하여 투표하였다. 다음 교황으로 요한 바오로 1세가 선출되었으나 즉위한 지 34일을 넘기지 못하고 선종하자 다시 콘클라베가 개최되었다. 콘클라베에 참석하려고 바티칸 시국으로 갔을 때 그는 폴란드 정부가 국외 반출을 허용한 10달러에 해당하는 돈만을 가지고 갈 수 있었다.
1978년 10월 22일 일요일, 여덟 번째 투표에서 마침내 보이티와가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58세로 130년 만에 처음으로 60세 이전에 선출된 교황이었다. 또한,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 출신 교황이기도 하였다. 선출된 날에 그는 눈물의 방으로 안내되어 교황의 옷인 하얀색 비단 수단을 입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폴란드 소설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작품 《쿠오 바디스》에 관한 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네로 황제가 통치하던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쿠오 바디스》는 박해당하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잔인한 로마 제국을 누르고 승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257]
보이티와는 자신의 새 이름으로 전임자가 택한 이중의 이름을 그대로 취함으로써 생전에 교황 요한 23세와 교황 바오로 6세의 의지를 이어받고 싶어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메시지를 전하였다. 더불어 그는 1978년 10월 22일 요한 바오로 1세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대관 미사보다 훨씬 간소한 즉위 미사를 통해 정식으로 등극하였다. 1978년 11월 12일 그는 로마 교구의 주교좌 성당인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로마 주교좌 착좌 미사를 집전하였다.
1978년에 바오로 6세의 선종으로 새 교황으로 선출된 것은 당시 65세의 알비노 루치아니(요한 바오로 1세)였다. 이 콘클라베에 참가한 보이티와는 이로써 이제 다음 콘클라베에는 참가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한 바오로 1세가 불가해한 상황 속에서 재위 33일 만에 선종하여 1978년 10월에 다시 콘클라베가 열리게 되었다.
콘클라베에서는 이탈리아 출신 추기경 두 명이 격전을 벌여 선출이 정체되었고, 그 가운데 독일과 남미 출신 추기경들이 폴란드 출신 보이티와를 지지하기 시작하면서 일순간에 형세가 역전[228]되어, 생애 두 번째 콘클라베에 임한 58세의 보이티와가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1978년 10월 16일 선출, 10월 22일 즉위).
보이티와는 전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유지를 이어받는 형태로 "요한 바오로 2세"라는 복합 명칭을 사용했다. 그리고 새 교황으로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실현하는 것을 전 교황으로부터 이어받아 현대 사회에 적합한 형태로의 전례 쇄신을 추진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폴란드인 최초의 로마 교황이었으며, 사회주의 국가 최초의 교황 탄생이기도 했다. 이 일은 고향 폴란드에서 민족주의의 고양과 소비에트 연방의 위성국인 것에 대한 저항심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이는 1980년 자립 자율 관리 노동 조합 "연대"에 의한 국내 개혁 요구로 이어졌고, 나아가 1988년 이후 폴란드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여행하는 교황"이라고 불린 바오로 6세를 훨씬 능가하는 스케일로 전 세계를 방문하여, "'''하늘을 나는 교황(하늘을 나는 교황청)'''"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첫 번째 방문국 멕시코를 시작으로, 1981년 2월 23일부터 26일까지의 일본 방문을 포함하여, 2003년 9월에 마지막 공식 방문국이 된 슬로바키아에 이르기까지, 무려 세계 100개국 이상을 방문했다.[229]。 공부를 열심히 하여 비행기 안 등에서도 학습했고, 방문지의 언어로 간단한 연설을 한 것으로 유명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같은 해 2월 23일, 로마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방일했을 때 히로시마시와 나가사키시를 방문하여 일본어로 "전쟁은 인간의 소행입니다" "전쟁은 죽음입니다"라고 연설하며 핵무기의 폐지를 호소했다.[230]。
또한 요한 바오로 2세는 기독교의 평화와 비폭력의 교리와,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과 소련의 침공으로 고국 폴란드가 잿더미가 된 실체험으로부터, 전쟁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반대하는 자세를 취했다. 폴란드인으로서 나치스와 공산주의의 위협을 체험하면서 가톨릭 신앙을 지켜낸 것이, 교황 취임 후에도 반전평화주의를 관철하는 큰 동기가 되었다.
이라크 전쟁 중 2003년,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신의 가호를" "신의 축복을"이라며 "신"을 인용하여 전쟁을 정당화한 것에 대해, 요한 바오로 2세는 "신의 이름을 사용하여 살육하지 말라"라며 불쾌감을 표시하고, "이라크에서의 이 전쟁에는 정의가 없고, 죄이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1980년대 후반 이후의 동유럽 민주화 운동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고도 전해진다. 특히 냉전 하에서 독재 정권 아래 놓여 있던 모국 폴란드의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폴란드는 국민의 98%가 가톨릭 신자이며, 교황이 취임 8개월 만에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했을 때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바르샤바의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원수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라고 호소했다. 그로부터 4개월 후 자유노동조합 "연대"가 주도한 파업 등을 거쳐 정권은 타협 노선을 걷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 후반 냉전 종결 시 민의에 밀려 정권이 민주 노선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민주화 운동 후원 자세가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정부에 위협을 느끼게 하여, 이후 암살 미수 사건(후술)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한 빈곤 문제, 난민 및 이주자 문제 등 사회 문제에도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
2. 4. 암살 시도
1981년 5월 1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터키인 메흐메트 알리 아자에게 총격을 받았다. 총알 두 발이 명중하여 교황은 중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내장 손상을 면하고 목숨을 건졌다. 아자는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사면되어 터키로 송환, 그곳에서 이전에 저지른 죄로 복역했다.[239]1983년 크리스마스 이틀 후, 요한 바오로 2세는 저격범 아자가 수감된 교도소를 방문하여 그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교황은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그와 나의 비밀로 남아야 합니다. 나는 그를 용서했고,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형제로서 이야기했습니다"라고 말했다. 2005년 4월, 요한 바오로 2세의 부고를 들은 아자는 깊은 슬픔을 느껴 상중에 있었다고 그의 가족들이 전했다.[239]
2005년 2월, 요한 바오로 2세는 저서에서 "범행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같은 해 3월에는 동독에서 관련 증거 서류가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독일 신문을 통해 나왔다. 이에 따르면, 이 사건은 소련 KGB가 계획하고 토도르 지프코프가 이끌던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과 동독 등이 협력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고국 폴란드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주의권 동구권에서 반체제 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요한 바오로 2세의 막대한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239]
2010년 1월 18일, 아자는 터키의 교도소에서 석방되었다고 BBC 월드 뉴스가 보도했다. 2014년 12월 27일, 아자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방문하여 요한 바오로 2세의 묘에 헌화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면담도 요청했으나, 바티칸 측은 이를 거절했다.[239]
사건 당일인 5월 13일은 파티마의 성모 발현 기념일이었기 때문에, 요한 바오로 2세는 "성모께서 총알을 빗나가게 해주셨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239]
1982년 5월 13일, 전년도 암살 미수 사건에서 "성모의 가호"에 감사하기 위해 포르투갈 파티마를 순례하던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비오 10세회 소속 스페인인 사제이자 극우파인 후안 마리아 페르난데스 이 크론 신부에게 총검으로 공격당해 부상을 입었다. 크론 신부는 교황이 추진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혁과 바티칸-모스크바 협정에 반대했다.[239]
크론 신부는 군중 속에서 캐소크 차림으로 나타나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로 접근, "타도 교황, 타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외친 후 길이 40cm의 모젤 소총 총검으로 교황을 찔렀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부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교황 암살을 시도한 크론 신부를 축복하며 순례 여행을 계속했다. 크론 신부는 범행 현장에서 치안 부대에 저항 없이 체포되어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리스본의 형무소에서 3년간 복역했다.[239]
이 습격 사건은 당시 대중매체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지만, 요한 바오로 2세가 출혈을 동반한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은 2008년 10월 15일에 처음 공개되었다. 이는 교황의 전 측근이자 크라쿠프 대주교였던 스타니스와프 지비슈 추기경(Stanisław Dziwisz)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증언"에서 내레이터를 맡은 지비슈 추기경이 직접 밝힌 것이다.[239]
2. 5. 건강 악화와 선종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이 되기 전부터 학식과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고, 운동 실력도 뛰어났다. 재임 중에는 104차례나 국외 방문을 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하느님의 육상선수', '행동하는 교황'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1996년부터 파킨슨병을 비롯한 여러 합병증으로 건강이 나빠졌다.[260] 왼손 떨림, 왼쪽 얼굴 근육 경직, 만성적인 무릎 관절염 등으로 보행기구 없이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 오른쪽 어깨뼈와 대퇴골 골절, 결장, 담석 제거 수술, 악성 결장 종양, 맹장염 수술, 여러 차례의 독감 치료 등 건강이 계속 악화되었다.말년에는 요로 감염에 따른 패혈성 쇼크로 심장과 신장 기능이 약해졌다. 독감이 인후염으로 악화되어 호흡 곤란 증세가 나타나 기관 절개 수술을 받고 인공호흡기 튜브를 통해 호흡했으며,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음식을 삼키지 못해 체중이 19kg이나 줄었다.[260]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가 2005년 3월 31일부터 요로감염 등으로 인한 심한 고열에 시달리다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는 입원을 거부하고 노자성체와 병자성사를 받고 사도 궁전에 머물렀다. 교황의 선종 임박 소식에 수만 명의 인파가 성 베드로 광장에 모여 병세 호전을 기원했다.
2005년 4월 2일 현지 시각으로 오후 11시 59분, 요한 바오로 2세는 사도 궁전에서 선종하였다. 향년 84세였다. 공식 사인은 패혈성 쇼크와 치유 불가능한 심부전이다. 선종 직전 그는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게 지내십시오. 울지 말고 우리 함께 기쁘게 기도합시다.”라는 말을 남기고 성 베드로 광장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향해 오른팔을 들어 “아멘.”이라고 강복한 뒤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졌다. 교황의 선종 소식에 군중은 고인에게 존경을 표하는 이탈리아식 추모 방식인 박수갈채를 보냈다. 폴란드 정부는 조기를 내걸고 4월 6일까지를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했다.[261]
2005년 4월 4일, 교황의 시신은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제대 앞에 안치되었다. 바티칸은 장례 미사 전날까지 일반인들이 조의를 표할 수 있도록 하루 24시간 개방했다.[262] 10만 명 이상의 참배객이 몰려들어 로마 시내가 큰 혼잡을 빚기도 했다.
2005년 2월부터 인플루엔자와 후두염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건강이 악화되었고, 같은 해 3월 31일 이후 감염증으로 인해 상태가 더욱 악화되었다. 그러나 교황은 입원을 거부하고, 바티칸 궁전의 거실에서 요양하는 것을 선택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상태 악화 소식을 들은 신자들이 성 베드로 광장에 모여 기도를 드리자, 교황은 "나는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해 4월 2일 오후 9시 37분 (일본 표준시: 3일 오전 4시 37분), 요한 바오로 2세는 패혈증으로 84세의 생애를 마감했다. 같은 해 9월 17일 마지막 말이 "아버지의 집으로 가게 해주세요"라는 폴란드어였다고 보도되었다.
같은 해 4월 8일에 거행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는 참가 인원 면에서 사상 최대 규모가 되었다.
3. 시복과 시성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11년 5월 1일에 요한 바오로 2세를 시복했으며, 교황 프란치스코는 2014년 4월 27일에 교황 요한 23세와 함께 공동 시성했다.[256]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 당시 조문객들은 그를 즉시 성인으로 시성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2005년 5월 13일, 베네딕토 16세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 시성을 위한 공식 절차를 개시한다고 발표하며, 시성 절차 개시까지 적용되는 사후 5년 유예를 면제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264]
2009년 12월 19일, 베네딕토 16세는 요한 바오로 2세를 가경자로 선포하였다. 2011년 1월 4일, 교황청 조사위원회는 요한 바오로 2세에게 기도하여 파킨슨병이 치유됐다는 프랑스 수녀의 주장을 기적으로 공식 승인했다.[265] 교황청 시성성은 이 기적을 인정한 후, 베네딕토 16세가 이를 승인함에 따라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이 결정되었다.[266]
2011년 1월 14일, 교황청 시성성은 요한 바오로 2세를 복자로 추대하기로 공식 발표하였다. 2011년 5월 1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베네딕토 16세 주례로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식이 거행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100만 명이 넘는 순례객이 모였다. 베네딕토 16세는 시복 선언문 낭독 후 요한 바오로 2세의 혈액을 제대에 봉헌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관은 성 세바스티아노 경당에 안치되었다.
가톨릭교회에서 성인으로 시성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기적이 공인되어야 한다.
2013년 4월 23일, 요한 바오로 2세의 전구를 통해 병이 치유되었다는 사례들이 의학적으로 인정되었다.[267] 이는 시성 단계를 위한 첫 번째 단계를 충족하는 것이었다. 이 사례는 코스타리카 여성이 뇌동맥류가 치유된 사례로, 2011년 5월 1일 요한 바오로 2세 시복식 당일에 발생하였다.[268]
2013년 7월 4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전구에 의한 두 번째 기적을 인가하고, 그를 시성한다고 선포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요한 23세와 공동으로 시성하기로 결정되었으며,[270] 시성식은 하느님의 자비 주일인 2014년 4월 27일에 거행되었다.[271][272]
2014년 4월 27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의 공동 시성식 미사가 거행되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포함하여 많은 인원이 미사에 참례하였다.[273]
4. 사상과 업적
교황 하드리아노 6세 이후 455년 만에 비(非) 이탈리아 출신 교황이자 최초의 슬라브계 교황이다. 27년 가까이 재임하여 베드로와 교황 비오 9세에 이어 세 번째로 오래 재임한 교황이다.
요한 바오로 2세 재위 동안 선진국에서는 가톨릭교회 교세가 점차 기울었지만, 제3세계에서는 확장되었다. 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를 방문한 교황으로, 모국어인 폴란드어를 비롯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 크로아티아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라틴어 등 다양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동유럽 반공주의 운동을 지원하고, 세계 평화와 반전을 호소했으며, 생명윤리 등 분야에서는 전통적인 기독교 도덕관을 제시하는 등 종교 범위를 넘어 세계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종교 간 문제에는 온건한 태도로 일관하여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256]
1983년 교황령 《거룩한 규율법들》(Sacrae disciplinae leges)을 통해 라틴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현행 교회법전을 제정, 반포하였다.[287] 1990년에는 동방 가톨릭교회들을 위한 교회법전인 《동방 교회들의 교회법전》(Codex Canonum Ecclesiarum Orientalium; CCEO)을 반포하였다.[288] 1988년 교황령 《착한 목자》(Pastor bonus)를 반포해 로마 교황청의 운영 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290] 1992년 교황령 《신앙의 유산》(Fidei Depositum)을 발표하여 《가톨릭교회 교리서》 출판을 지시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처음으로 공식적인 교리서를 공포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다소 혼란스럽고 자유로운 신학 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교회의 교리를 재정리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재임 동안 482명을 시성했는데, 이는 지난 4세기 동안 시성된 성인들보다 더 많은 수치다. 마더 테레사 수녀를 비롯해 1,338명을 시복했으며,[292] 1984년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 순교자 103명을 시성하였다.
냉전 말기에는 세계 평화와 반전을 호소하며 수많은 평화 행동을 실천했고, 공산당 일당 독재 하에 있던 모국 폴란드를 비롯한 각국의 민주화 활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생명 윤리 등의 분야에서 기독교적 도덕관을 제시하고, 에큐메니즘 정신으로 기독교 내 타 종파 및 타 종교·타 문화 간의 대화를 촉구했다.
4. 1. 가르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4편의 회칙과 15편의 교황 권고, 11편의 교황령, 45편의 교황 교서를 발표하였다. 또한 《희망의 문턱을 넘어서》, 《은총과 신비 : 사제 수품 50주년을 맞이하여》, 《로마 삼부작 - 명상》, 《일어나 가자》, 《기억과 신원》 등 여러 책도 저술하였다.[274]요한 바오로 2세는 인간의 유성생식과 여성의 사제 서품에 대한 쟁점에 있어서 보수주의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1979년 9월부터 1984년 11월까지 수요일 일반알현 시간에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인간의 인격, 몸과 성(性), 혼인, 부부 관계, 독신의 의미에 관하여 129편의 설교를 했는데, 이 내용은 나중에 《몸의 신학》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출판되었다.[275] 그는 낙태와 안락사는 물론 사실상 모든 사형 제도를 ‘죽음의 문화’라고 비판하며, 이것이 현대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고 지적했다.[276][277]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에 참석했던 요한 바오로 2세는 공의회의 가르침을 재확인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훗날의 교황 베네딕토 16세)과 함께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며, 피임, 낙태, 동성애 행위가 심각한 죄악이라고 가르쳤다.[280]
요한 바오로 2세는 성의 목적이 혼인성사로 불리는, 세례받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인 결혼에 있으며, 결혼의 첫 번째 목적을 자녀 출산에 두었다. 그는 모든 경우의 피임과 낙태, 이혼과 그에 따른 재혼, 동성애 행위 등을 불경한 것으로 보았다. 1994년 교황 교서 《사제 서품》(Ordinatio Sacerdotalis)에서 “교회는 여성에게 사제 서품을 할 어떠한 권한도 없으며, 교회의 모든 신자는 이러한 판단을 철저히 따라야 한다.”고 선언하면서, 이것이 여성의 존엄성을 격하하거나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남성에게만 사제품을 부여하는 것은 교회가 보존해온 전통이고, 교도권의 일관된 가르침이라면서 여성의 사제 서품 요구는 교회의 지속적이고 보편적인 전통을 깨뜨리려는 요구로 간주하였다.[281] 사제 독신제는 폐지하지 않기로 하였다.
세계 부채 탕감과 사회 정의를 위한 운동을 펼친 그는 ‘사회적 저당권’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는데, 이는 모든 사유 재산이 본질적으로 사회적 기능을 갖는 것이며, 재화가 만인을 위한 것임을 뜻한다고 설명했다.[278] 또한 서구 사회가 과도한 물질 만능주의 풍토 때문에 도덕과 신앙심이 타락하는 점도 비판했다.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체제이며, 노동자를 위한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닌 ‘국가 자본주의’라고 규정했다. 그는 공산주의의 생산수단 국유화는 무산 계급을 위한 사회화가 아니고 관료화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공산주의 체제 붕괴를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였다.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사람을 이윤체계에 예속시키고 노동에서의 소외현상을 불러일으킨다고 비판했으며,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소외를 제거하기는커녕 오히려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생활필수품의 부족과 경제적 비능률을 가져온다고 비판했다.[279]
2000년 3월 5일, 요한 바오로 2세의 지시에 따라 교황청은 《회상과 화해 : 교회의 과거 범죄》라는 문건을 발표해 과거 교회가 하느님의 뜻이라는 핑계로 저지른 각종 잘못을 최초로 공식 인정했다. 같은 해 3월 12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집전한 미사 중 강론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겸허하게 고백하는 회개를 받아들여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하느님에게 기도했으며, 추기경과 주교들은 가톨릭교회의 과오를 7가지 범주(일반적인 죄, 진리에 대한 봉사를 이유로 한 죄, 다른 기독교 공동체에 대한 죄, 유대인에 대한 죄, 사랑과 평화와 문화 존중에 대한 죄, 여성과 소수민족의 존엄성에 대한 죄, 인권에 대한 죄)로 묶어 용서를 구했다.[282][283][284][285]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 발표한 1984년 8월 6일의 해방신학의 일부 측면에 관한 훈령 《자유의 전갈》(Libertatis Nuntius)과 1986년 3월 22일의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해방에 관한 훈령 《자유의 자각》(Libertatis conscientia)을 승인함으로써 해방 신학을 공식적으로 단죄하였다. 1983년 니카라과 마나과를 방문했을 때, ‘민중 교회’라는 용어는 해괴망측하고 위험스러운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당시 니카라과의 많은 성직자가 좌파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을 지지한 것에 대해 강하게 성토하며 질책하였다. 정치 사제들의 게릴라 활동 및 좌파 정권 참여를 탈선으로 간주한 그는 니카라과의 성직자들에게 성좌에 대한 순명의 의무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니카라과 방문 중, 좌익 정권의 문화부 장관으로 입각된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가 자신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고 어부의 반지에 입맞춤하려는 것을 뿌리치고, “그대는 그대의 직분과 교회와의 관계를 명백히 하시오!”라고 쏘아붙이며 훈계하였다.[286]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법 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했다. 1983년 1월 25일 교황령 《거룩한 규율법들》(Sacrae disciplinae leges)에서 라틴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한 현행 교회법전을 제정, 반포하였다. 모두 1752개 조항으로 이뤄진 새 교회법은 그해 대림시기 첫 주일인 1983년 11월 27일부터 시행됐다.[287] 1990년 10월 18일에는 동방 가톨릭교회들을 위한 교회법전인 《동방 교회들의 교회법전》(Codex Canonum Ecclesiarum Orientalium; CCEO)을 반포하였다.[288] CCEO는 1991년 10월 1일부터 법적 효력이 발생하였다.[289]
1988년 6월 28일, 교황령 《착한 목자》(Pastor bonus)를 반포해 로마 교황청의 운영 체계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했다.[290] 1992년 10월 11일에는 교황령 《신앙의 유산》(Fidei Depositum)을 발표하여 《가톨릭교회 교리서》 출판을 지시하였다. 그는 이 교리서가 “가톨릭 교리의 교육을 위한 규범서로서, 특히 지역 교리서의 편찬을 위한 확고하고 권위 있는 규범서”임을 확인했다. 또한 지역 교리서들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역 교리서들의 편찬을 고무하고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하여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처음으로 공식적인 교리서를 공포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다소 혼란스럽고 자유로운 신학 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교회의 교리를 재정리하였다.
사회 문제와 다른 종교와의 대화에 주력하는 한편, 여성 성직자를 인정하지 않는 등 교리적으로는 전통을 고수하며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1979년의 첫 회칙 '레뎀토리스 호미니스'(『인간의 구원자』)부터 2003년의 '에클레시아 데 에우카리스티아'(『교회에 생명을 주는 성체』)까지 많은 회칙과 사도적 서한을 발표했다.
특히 논란이 된 1995년의 회칙 '에반젤리움 비테'(『생명의 복음』)에서는 프로라이프 입장에서 임신 중절과 안락사를 '죽음의 문화'라고 비난하며 '생명의 문화'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내부적으로 가톨릭교회 내 보수파와 개혁파의 대립 구조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대외적으로는 복잡해지는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에 가톨릭교회로서 어떻게 답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의 저서(『희망의 문을 열다』)에서 불교에 대해 극히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교황에 따르면 불교는 무신론적 체계에 지나지 않으며, 그 신도는 고통을 본질로 하는 세계에 무관심을 관철함으로써 구원받는다고 한다.
4. 2. 사회적, 정치적 입장
요한 바오로 2세는 인간의 유성생식과 여성의 사제 서품에 대한 쟁점에 있어서 보수주의 성향을 보였다.[274] 1979년 9월부터 1984년 11월 사이에 그는 수요일 일반알현 시간에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인간의 인격, 몸과 성(性), 혼인, 부부 관계, 독신의 의미에 관하여 129편의 설교를 했는데, 이 내용은 나중에 《몸의 신학》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출판되었다. 그는 낙태와 안락사는 물론 사실상 모든 사형 제도를 한데 묶어[275] ‘죽음의 문화’라고 부르고 이것이 현대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고 비판하였다.[276] 세계 부채 탕감과 사회 정의를 위한 운동을 펼친 그는 ‘사회적 저당권’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는데, 이 말은 모든 사유 재산이 본질적으로 사회적 기능을 갖는 것이며, 재화가 만인을 위한 것임을 뜻한다고 설명했다.[277]요한 바오로 2세는 서구 사회의 과도한 물질 만능주의 풍토를 비판했다. 그는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체제라고 생각했다. 그는 공산주의 체제가 노동자를 위한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며 ‘국가 자본주의’라고 규정했다. 그는 공산주의의 생산수단 국유화는 무산 계급을 위한 사회화가 아니고 관료화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공산주의 체제를 붕괴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였다.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사람을 이윤체계에 예속시키는가 하면 노동에서의 소외현상을 불러일으킨다고 비판했으며,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소외를 제거하기는커녕 오히려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생활필수품의 부족과 경제적 비능률을 가져온다고 비판했다.[278] 그는 측근에게 “내 몸 안에는 분명히 공산주의에 대한 항체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사회와 그 모든 비극을 생각하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두 체제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좋은지 모르겠다.”고 토로하기도 하였다.[279]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에 참석했던 요한 바오로 2세는 공의회의 가르침을 재확인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훗날의 교황 베네딕토 16세)과 함께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며 끊임없이 피임, 낙태, 동성애 행위가 심각한 죄악이라고 가르쳤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성의 목적이 혼인성사라고 불리는 세례받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인 결혼에 있으며, 결혼의 첫 번째 목적을 자녀 출산에 두었다. 그는 모든 경우의 피임과 낙태, 이혼과 그에 따른 재혼, 동성애 행위 등을 불경한 것으로 보았다. 1994년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 교서 《사제 서품》(Ordinatio Sacerdotalis)에서 “교회는 여성에게 사제 서품을 할 어떠한 권한도 없으며, 교회의 모든 신자는 이러한 판단을 철저히 따라야 한다.”고 선언하면서, 그것이 여성의 존엄성을 격하하거나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남성에게만 사제품을 부여하는 것은 교회가 보존해온 전통이고, 교도권의 일관된 가르침이라면서 여성의 사제 서품 요구는 교회의 지속적이고 보편적인 전통을 깨뜨리자는 요구로 간주하였다.[281] 요한 바오로 2세는 사제 독신제에 대해서는 폐지하지 않기로 하였다.
2000년 3월 5일 요한 바오로 2세의 지시에 따라 교황청은 《회상과 화해 : 교회의 과거 범죄》라는 제목의 문건을 발표해 과거 교회가 하느님의 뜻이라는 핑계로 저지른 각종 잘못을 최초로 공식 인정했다. 같은 해 3월 12일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집전한 미사 중 강론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겸허하게 고백하는 회개를 받아들여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하느님에게 기도했으며 추기경과 주교들은 일반적인 죄, 진리에 대한 봉사를 이유로 한 죄, 다른 기독교 공동체에 대한 죄, 유대인에 대한 죄, 사랑과 평화와 문화 존중에 대한 죄, 여성과 소수민족의 존엄성에 대한 죄, 인권에 대한 죄 등 가톨릭교회의 과오를 7가지 범주로 묶어 용서를 구했다.[282][283][284][285]
요한 바오로 2세는 해방 신학을 공식적으로 단죄하였다. 당시 해방 신학은 남아메리카의 많은 성직자 및 수도자, 평신도 등이 추종하고 있었다. 1983년 니카라과의 마나과를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는 ‘민중 교회’라는 용어는 해괴망측하고도 위험스러운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당시 니카라과의 많은 성직자가 좌파들로 구성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을 지지한 것에 대해 강하게 성토하며 질책하였다. 정치 사제들의 게릴라 활동 및 좌파 정권 참여를 탈선으로 간주한 그는 니카라과의 성직자들에게 성좌에 대한 순명의 의무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니카라과 방문 중에 요한 바오로 2세는 좌익 정권의 문화부 장관으로 입각된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가 자신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고 어부의 반지에 입맞춤하려는 것을 뿌리치고, “그대는 그대의 직분과 교회와의 관계를 명백히 하시오!”라고 쏘아붙이며 훈계하였다.[286]

국제 문제에서 요한 바오로 2세는 동유럽 공산주의의 몰락에 결정적 공헌을 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군사력 경쟁이나 경제 제재 등 위협적인 방법을 통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공산독재체제를 종식하는 데 공헌했다. 조국 폴란드에서 공산주의 압제에 시달렸던 탓에 공산주의를 극도로 혐오했던 교황은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과 핫라인을 통해 긴밀히 협력했다. 그는 수차례의 고국 순방을 통해 레흐 바웬사 등 당시 연대노조에 대한 공개적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연대의 봉기를 촉발했다. 그는 “여러분은 인간입니다. 굴욕적으로 살지 마십시오.”라고 역설함으로써 공산주의 독재에 대한 저항의 불을 지폈다. 결국, 연대노조는 최초의 자유총선을 통해 정권을 장악했고, 이러한 폴란드 공산 정부의 붕괴와 맞물려서 동유럽 공산 국가들에서 잇따른 민주화 혁명이 일어나 공산주의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다. 또한, 1989년 당시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의 접견은 냉전 시대의 종식을 앞당긴 것으로 평가된다.
1980년 요한 바오로 2세는 대한민국의 전두환 대통령에게 공식 서한을 보내 당시 사형수로 복역 중인 김대중에 대한 선처를 적극적으로 호소했으며, 전두환 대통령은 김대중을 요한 바오로 2세의 요청에 따라 무기징역으로 감형, 그로부터 2년 후 김대중을 국외로 추방하는 선에서 일단락지었고 이에 요한 바오로 2세는 전두환 대통령에게 감사하는 내용의 공식 서한을 보냈다.[293]
1982년 요한 바오로 2세는 포클랜드 전쟁을 벌이던 영국과 아르헨티나를 찾아가 종전을 설득했고, 1999년 유고슬라비아 전쟁 때에도 특사를 파견하여 “폭력은 결국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라며 평화를 호소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에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과 함께 분쟁 종식을 위한 단식기도를 했다.
한편, 교황은 냉전이 종식된 후 세계 유일의 패권국이 된 미국의 신자유주의와 군사정책에 대해 극도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2003년 교황은 미군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전쟁에 반대한다. 전쟁은 항상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인류의 패배이다.”라면서 비난했다. 조지 W. 부시에게 전쟁에 반대한다는 태도를 밝힌 그는 국제 연합의 중재를 통해 외교적으로 분쟁을 해결할 것을 촉구하며 미국의 일방적인 공격은 평화를 배척하고 국제법을 위반한 범죄라고 주장했다. 또 미국이 가장 많은 무기를 수출한다는 점도 못마땅하게 여겼다.[294]
4. 3. 다른 기독교 교파 및 종교와의 관계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 일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기독교의 다양한 신앙 전통을 존중하고 대화하는 자세를 취했다. 또한 다른 종교와의 대화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1982년 영국을 방문해 엘리자베스 2세와 캔터베리 대주교를 만나 로마 가톨릭교회와 영국 성공회의 교회 일치를 위한 대화를 발전시키기로 합의했다.
- 1054년 동서 교회의 분열 이후 처음으로 동방 정교회 국가인 루마니아와 그리스 등을 방문해 정교회 성직자들과 같이 기도했다.
- 동방 정교회와 분열된 사건에 대해서도 책임을 반성하였다.
- 1999년 10월에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루터교와 의화 교리에 대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함으로써 양측이 구원론에 대해 500년간에 걸쳐 이어온 교의 논쟁을 끝냈다.[256]
- 1986년 4월 로마에 있는 유대교 회당을 방문해 유대인은 그리스도인의 형제라고 불렀다.
- 1999년 3월에는 이란의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을 만나 11세기 이후 처음으로 기독교와 이슬람 세계의 정상이 문명의 화해를 다짐했다.
- 2001년 5월에는 시리아를 방문하여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모스크에 들어가기도 했다.
- 아시시에서 세계 주요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세계 평화기도의 날 행사에 참석, 함께 기도함으로써 사회 정의와 생태계 보전 그리고 모든 폭력 종식을 호소했다.
- 개신교 여러 종파와의 회합, 동방 정교회 및 성공회와의 화해를 위해 노력하여 에큐메니즘의 추진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 가톨릭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모스크[231], 시나고그[232][233], 루터교회를 방문[234]했다.
- 동서 교회 분열 이후 처음으로 그리스를 방문[235]하고 영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 천태종의 대아사리인 사카이 유야와도 회견했다.
- 1982년 5월 28일에는 역대 로마 교황 사상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 버킹엄 궁전에서 엘리자베스 2세를 만났다.
- 1534년 잉글랜드 국왕 헨리 8세의 이혼 문제 이후 448년 동안 단절 상태에 있던 성공회와 로마 가톨릭의 화해 인사를 했다.
- 이튿날 29일에는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로버트 랑시캔터베리 대주교를 방문했다.[238]
- 1986년에는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로마의 시나고그를 방문하는 등, 유대인에게 친근감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스도교가 저지른 과거의 죄에 대해 역사적 사과를 활발하게 행했으며,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유대인에 대한 대응과 십자군의 정교회 및 무슬림에 대한 행위에 대한 반성과 사과, 이단으로 화형에 처해진 얀 후스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지동설 재판에서의 명예 회복 등을 공식 발표했다.
4. 4. 한국과의 인연
1984년 5월 3일, 역대 교황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 기념식을 맞아 방한했으며, 한국 천주교회 순교자 103명을 바티칸이 아닌 현지에서 성인으로 시성하였다.[298] 요한 바오로 2세는 도착 성명 첫머리에서 《논어》의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를 인용해 한국어로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인사했고, 마무리도 역시 한국어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한반도의 온 가족에, 평화와 우의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의 축복이 깃들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방한 당시 그는 한국 역사책 번역본을 읽고 “혹독한 시련에도 민족의 정통성을 꿋꿋이 지켜온 한국의 역사가 모국 폴란드와 닮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요한 바오로 2세는 40여만 명이 모인 부산 강연에서 개발독재로 억눌린 삶을 살아온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줄 것을 요구하는 등, 민중들이 인권을 보호받지 못하던 당시의 암울한 정치 상황에서 볼 때 민감한 발언을 했다. 또 그는 방한 마지막 행사로 장충 체육관에서 열린 젊은이들과의 대화 시간에 “군사 독재 정권의 폭압을 알리겠다.”며 젊은이들이 들고 온 최루탄 상자를 흔쾌히 받기도 하였다. 5월 4일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를 찾아가 “예수님께서 친히 고통을 겪으셨기 때문에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라고 격려하면서 한센병 환자들의 머리에 일일이 손을 얹고 축복을 내려주었다. 교황의 소록도 방문은 당초 방한 일정에 없었으나 “소외된 사람들을 찾고 싶다.”는 교황의 뜻에 따라 전격적으로 이뤄졌다.[298]
이후 교황은 1989년 10월 5일부터 10월 8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세계 성체 대회를 맞아 대한민국을 두 번째로 방문하였다. 그는 65만여 명이 운집한 여의도 광장에서 남북 간의 화해를 바라는 평화 메시지를 낭독하기도 하였다. 그 후에도 한국에 큰 사건이나 재해가 있을 때마다 메시지를 보내왔다.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때에는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고,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태풍 매미로 말미암은 피해 때는 위로 메시지를 전해왔다.
2000년 3월 바티칸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요한 바오로 2세를 알현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방문을 권유하자 요한 바오로 2세도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후 교황청은 평양에 특사를 파견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수십만 달러를 지원하는 등 화해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그러나 교황청이 교황의 방북 전제 조건으로 요구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 전교 활동 인정과 성직자 입북 허용에 대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교황의 방북 계획은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299]
4. 5. 논란과 비판
요한 바오로 2세의 정책은 보수적이며 교계 제도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요구하는 제왕적 성격을 띤다는 비판을 받았다. 교회의 현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일부 전통주의 성향의 가톨릭 신자들 역시 요한 바오로 2세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이들은 트리엔트 미사로의 전면 복귀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실시된 각종 개혁, 교회 일치 운동, 종교의 자유 인정 등을 비판하며 철폐할 것을 요구했다.[291] 이들은 요한 바오로 2세가 근대주의적 성향의 주교들을 대거 서임하여 교회 안에 근대주의 성향을 퍼뜨렸다고 비판했다. 1988년 전통주의자이자 성 비오 10세회의 창립자인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가 교황청의 승인 없이 네 명의 주교를 독단적으로 서품하자, 요한 바오로 2세는 그와 그가 서품한 주교들을 파문했다.요한 바오로 2세는 해방 신학을 공식적으로 단죄했다. 그는 1984년과 1986년에 발표된 두 훈령을 통해 해방 신학의 일부 측면을 비판했다.[286] 당시 해방 신학은 남아메리카의 많은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따르고 있었다. 오스카르 아르눌포 로메로 주교는 엘살바도르 정권의 인권 침해를 비판하며 교황청의 지지를 얻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1983년 니카라과를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는 '민중 교회'라는 용어를 비판하고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을 지지한 성직자들을 질책했다. 그는 니카라과의 성직자들에게 교황청에 순명할 것을 요구하며,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를 훈계하기도 했다.[286] 이러한 교황의 단호한 의지는 남아메리카에서 해방 신학을 몰아냈고, 니카라과에서 마르크스-레닌 정권의 몰락을 촉진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교리와 인간 성적 생식, 여성의 서품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다. 1977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잉태 순간부터 모든 단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다"고 말했다. 그는 낙태, 안락사, 사형을 비난하고, 세계 부채 탕감과 사회 정의를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그는 "사회적 저당"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는데, 이는 모든 사유 재산에는 사회적 차원이 있다는 의미이다.[66] 2000년, 그는 아프리카 부채 탕감에 관한 희년 2000 캠페인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확언하고 실천하려 노력했지만, 진보적 의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는 피임, 낙태, 동성애 행위가 심각한 죄라고 선언했으며, 해방 신학에 반대했다. 그는 여성에게 사제 서품을 할 권한이 교회에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예외적인 상황에서 다른 기독교 전통의 일부 유부 성직자들이 가톨릭 사제로 서품받는 것을 허용했다.
사회 문제와 다른 종교와의 대화에 주력하면서도, 가톨릭교회에서 여성 성직자를 인정하지 않는 등 교리적으로는 전통을 고수했다. 1979년의 첫 회칙 '레뎀토리스 호미니스'(『인간의 구원자』)부터 2003년의 '에클레시아 데 에우카리스티아'(『교회에 생명을 주는 성체』)까지 많은 회칙과 사도적 서한을 발표했다. 1995년의 회칙 '에반젤리움 비테'(『생명의 복음』)에서는 임신 중절과 안락사를 '죽음의 문화'라고 비난하며 '생명의 문화'를 강조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종교사업협회(바티칸 은행)의 주력 거래 은행이었던 암브로시아노 은행의 파탄과 로베르토 칼비 암살 사건, 극우 비밀 결사에 고위 성직자가 관여한 P2 사건 등 바티칸을 뒤흔든 스캔들과도 연관되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의 저서에서 불교에 대해 극히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불교를 무신론적 체계로 보았으며, 불교 신자들이 고통을 본질로 하는 세계에 무관심을 관철함으로써 구원받는다고 주장했다.
5. 유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1985년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규탄하며 "어떤 아파르트헤이트나 분리 개발 시스템도 민족이나 인종 간의 관계 모델로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67] 1988년 9월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제외하고 주변 10개국을 순례하며 짐바브웨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에 대한 경제 제재를 촉구했다.[68] 넬슨 만델라와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교황의 인권 옹호와 경제적 불의 비난에 대해 칭찬했다.[69]
1981년에는 폴란드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요한 바오로 2세의 전기 영화 《머나먼 곳에서 온 사람》(폴란드 영화)이 제작되었다.[251] 1984년에는 젊은 가톨릭 신자들의 연례 행사 세계 청년대회를 제창했다. 1999년에는 앨범 "아바 파테르"로 CD 데뷔를 했다. 2000년에는 특별한 해인 대희년을 맞아, 교황 대칙서 (성육신의 신비)로 규정된 교회가 순례 대상이 되었다.
2003년 3월에는 요한 바오로 2세 명의의 시집 《로마의 삼폭 제단화》가 폴란드에서 초판 30만 부가 즉시 완판되는 등 전 세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05년에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반생을 그린 이탈리아-폴란드 합작 텔레비전 영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KAROL - A man who became Pope)》가 공개되어 19개 언어로 번역되어 방영되었다.[252][253]
2006년 9월 3일,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앞 광장 명칭에 "요한 바오로 2세"의 이름이 추가되었다. 2006년 10월 16일, 폴란드에서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초상을 사용한 50 즈워티 기념 지폐가 발행되었다.
문화방송에 자신의 반생을 바탕으로 한 《나의 선택》이라는 라디오 드라마 대본을 투고한 적이 있으나 채택되지는 못했고, 현재는 "일본 각본 아카이브" 주최 전시회에 전시되고 있다. 2011년 5월에는 로마 시내의 테르미니 역 앞에 청동상이 설치되었다.[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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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아이 많이 낳으라" 이탈리아인들에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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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한국역사 폴란드와 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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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방문 뜻 못이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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