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리 돈스코이 (장갑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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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1880년대에 건조된 러시아 제국의 장갑순양함으로, 통상 파괴 임무를 수행하도록 설계되었다. 16.5노트의 속력과 203mm 주포를 장착했으며, 1885년 취역 후 극동 지역에서 활동했다. 러일 전쟁 중 쓰시마 해전에 참전하여 침몰했으며, 2000년대 이후 인양 시도가 있었으나, 보물 존재 여부에 대한 논란과 사기 사건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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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돈스코이 (장갑순양함) - [배(Ship)]에 관한 문서 | |
---|---|
함선 정보 | |
함명 | 드미트리 돈스코이 |
함명 유래 | 드미트리 돈스코이 |
함종 | 장갑순양함 |
기공 | 1881년 5월 21일 |
진수 | 1883년 8월 30일 |
취역 | 1885년 초 |
퇴역 | 1905년 9월 28일 |
최후 | 1905년 5월 29일 울릉도에서 자침 |
건조 비용 | 3,421,468 루블 |
제작 | 뉴 애드미랄티 조선소, 상트페테르부르크 |
제원 | |
배수량 | 5,882 톤 |
전장 | 93.4 m |
선폭 | 17.7 m |
흘수 | 7.88 m |
동력 | 7,000 ihp (5,200 kW) |
추진 | 1축, 2 복합 증기 엔진, 8 보일러 |
속력 | 16.5 노트 (30.6 km/h) |
항속 거리 | 10노트로 13,000 km (19 km/h) |
승조원 | 591명 |
무장 | |
주포 | 2 × 8 in (203 mm) 포 |
부포 | 14 × 6 in (152 mm) 포 |
어뢰 발사관 | 4 × 15 in 어뢰 발사관 |
장갑 | |
장갑 종류 | 복합 장갑 |
현측 장갑대 | 9-4.5 in (229-114 mm) |
갑판 | 0.5 in (13 mm) |
포탑 | 12 in (305 mm)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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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함선 설계 및 제원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장거리 항해와 통상 파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장갑 프리깃이다.
하위 섹션에서 이미 자세히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함선의 주요 제원만 간략하게 표로 정리한다.
항목 | 내용 |
---|---|
전체 길이 | 93.4m |
선폭 | 17.7m |
흘수 | 7.8m |
만재 배수량 | 약 5682750.87kg |
주무장 | 8인치 (203mm) Model 1877 포 2문, 6인치 (152mm) Model 1877 포 14문 |
기관 | 3기통 복합 증기 기관 1쌍, 8개 원통형 보일러 |
최대 출력 | 설계 7000ihp, 해상 시험 6609ihp |
최대 속도 | 약 16.5kn |
항해 거리 | 10kn 속도로 7000nmi (일반 적재량), 약 1651076.38kg 석탄 적재 시 (1889년 5월 기록) |
돛 면적 | 약 2415.48m2 |
돛만으로 낼 수 있는 최고 속도 | 10.5kn |
장갑 | 복합 장갑 (수선 벨트 중앙 약 15.24cm, 함미 약 11.43cm), 횡단 격벽 약 7.62cm 에서 약 10.16cm, 갑판 약 1.27cm |
2. 1. 기본 구조
러시아 제국 해군이 자국의 연안 방어를 위해 건조한 장갑함이다. 기본 구조는 평갑판형 선체에 3개의 돛대와 2개의 굴뚝을 가진 장갑 프리깃으로, 함수 수면 아래에는 충각이 설치되어 있었고 선체 중앙부에 함교가 위치했다.[1] 함교 뒤에 2개의 굴뚝이 있었고, 선체 중앙부의 포곽(케이스 메이트) 부에 주무장을 좌우 균등하게 배치했다. 1894년에서 1895년 사이에는 현대화 개조를 통해 기관을 강화했고, 항해 장비를 철거하고 마스트에 3.7cm - 4.7cm 클래스의 속사포를 배치한 감시대를 마련했다.반장갑 프리깃으로 분류되었으며, 이복 자매인 Броненосный крейсер|블라디미르 모노마흐ru보다 개선된 형태였다. 이 함선은 장거리 항해와 높은 속도로 설계되어 통상 파괴 임무를 수행하도록 설계되었다. 함선은 무장이 중앙에 집중된 중앙 포탑 철갑함으로 설계되었다. 철제 선체는 램을 장착했으며, 오손을 줄이기 위해 나무와 구리로 덮었다. 승무원은 장교와 사병을 포함하여 약 550명이었다.[1]
함선의 전체 길이는 93.4m였다. 선폭은 17.7m이고, 흘수는 7.8m였다.[2] 함선은 만재 배수량에서 약 5682750.87kg를 배수했다.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단일 프로펠러 샤프트를 구동하는 3기통 복합 증기 기관 1쌍을 장착했다. 증기는 8개의 원통형 보일러에서 공급되었다.[3] 엔진은 7000ihp의 출력을 내도록 설계되었지만, 해상 시험 동안 6609ihp의 출력을 내어 최대 속도가 약 16.5kn에 달했다. 함선은 일반적으로 약 914442.30kg의 석탄을 적재하여 10kn 속도로 7000nmi의 경제적인 항해 거리를 가졌지만, 1889년 5월에는 약 1651076.38kg를 적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4] 3개의 마스트를 갖춘 선박이었으며[5], 총 돛 면적은 약 2415.48m2였다. 돛을 올린 상태에서 항력을 줄이기 위해, 연돌은 접을 수 있는 구조였다. 돛만으로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는 10.5kn이었다.[4]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연돌 사이의 갑판 위에 구경 30 Model 1877 포 2문을 장착했다. 28구경 14문의 Model 1877 포는 주 갑판의 포탑에 장착되었다. 대어뢰정 방어는 42mm 포, 34mm 포 및 5연장 회전식 핫치키스 기관총으로 제공되었다.[6] 함선에는 또한 4문의 수면 위 어뢰 발사관이 장착되었다.[4][7][8]
함선의 수선 벨트는 복합 장갑으로 구성되었으며, 함선의 전체 길이에 걸쳐 있었다. 중앙 부분은 두께였지만, 함선 끝 부분에서는 로 감소했다. 이는 수면 위 약 0.61m에서 아래 약 1.52m까지 뻗어 있었다.[2] 횡단 벌크헤드는 두께로, 포대의 포를 측사로부터 보호했다. 8인치 포의 스폰슨도 동일한 두께였다.[3] 방어 갑판은 두께였다.[2]
2. 2. 기관
러시아 제국 해군이 건조한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단일 프로펠러 샤프트를 구동하는 3기통 복합 증기 기관 1쌍을 장착했다. 증기는 8개의 원통형 보일러에서 공급되었다.[3] 엔진은 출력을 내도록 설계되었지만, 해상 시험 동안 출력을 내어 최대 속도가 약 에 달했다.[4] 3개의 마스트를 갖춘 선박이었으며,[5] 총 돛 면적은 였다. 돛을 올린 상태에서 항력을 줄이기 위해, 연돌은 접을 수 있는 구조였다. 돛만으로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는 이었다.[4]2. 3. 무장
초기에는 8인치(203mm) Model 1877 포 2문을 연돌 사이 갑판 위에 장착했고, 6인치(152mm) Model 1877 포 14문을 주 갑판의 포탑에 장착했다.[6] 대어뢰정 방어를 위해 9파운드 포(42mm), 4파운드 포(34mm), 37mm 5연장 회전식 핫치키스 기관총을 장착했다.[6] 또한 수면 위 15인치(381mm) 어뢰 발사관 4문도 장착했다.[4][7][8]2. 4. 장갑
Дмитрий Донско́й|드미트리 돈스코이ru의 수선 벨트는 복합 장갑으로 구성되었으며, 함선의 전체 길이에 걸쳐 있었다. 중앙 부분은 약 15.24cm 두께였지만, 함선 끝 부분에서는 약 11.43cm로 감소했다. 이는 수면 위 약 0.61m에서 아래 약 1.52m까지 뻗어 있었다.[2] 횡단 격벽은 약 7.62cm에서 약 10.16cm 두께로, 포대의 포를 측사로부터 보호했다. 약 20.32cm 포의 스폰슨도 동일한 두께였다.[3] 방어 갑판은 약 1.27cm 두께였다.[2]3. 함생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1889년 6월 12일 크론시타트에 도착한 후 알렉산드르 3세 황제의 검사를 받고, 곧 다음 해외 순항을 위한 긴 개장에 들어갔다.[11]
1893년부터 1895년까지 재정비 기간 동안 6문의 45구경 6인치 포, 10문의 45구경 약 11.94cm 포, 그리고 6문의 47mm 포로 재무장했다.[5] 이 시기에 보일러가 교체되었을 수 있으며, 돛대는 3개의 폴 마스트로 교체되었다.[2]
재정비가 완료된 후, 1903년 10월 7척의 구축함과 5척의 어뢰정을 지중해로 호송했고, 그곳에서 비레니우스 소장의 지휘 아래 지중해 함대에 배속되었다. 해군 참모는 12월에 지중해 함대를 태평양 함대로 증강하기로 결정했지만, 전함 오슬랴뱌가 좌초된 후 수리로 인해 출발이 지연되었다. 1904년 2월에 러일 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 함대는 홍해에 있었고, 일본에 의해 항해 중에 붙잡혀 파괴될 것을 우려하여 발트해로 소환되었다.[13]
3. 1. 건조 및 초기 활동 (1880-1891)
1880년 9월 22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신 해군 제독에서 건조가 시작되었고, 1881년 5월 21일에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1882년 8월 30일에 진수되었고, 1885년 초에 완공되었다. 이 배의 총 비용은 3,421,468 루블이었다. 이 배는 모스크바 대공 드미트리 돈스코이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10]1885년 8월 8일 지중해로 항해하여 1887년 3월 6일 극동으로 가는 도중에 포트사이드에 도착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1887년 5월 19일에 나가사키에 도착하여 몇 달 동안 일본 해역에 머물렀다. 1887년 7월 20일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고, 어뢰 훈련을 하던 중 1887년 10월 12일에 실수로 좌초되었으나, 경미한 손상만 입고 다음날 부양되었다.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그 해 일본에서 겨울을 보냈고, 1888년 2월에 옌타이와 상하이를 방문했다. 1889년 1월 20일에 발트해로 귀환하기 전에 요코하마에서 재정비를 받았다. 1889년 6월 12일 크론시타트에 도착한 후 알렉산드르 3세 황제의 검사를 받았다.[11]
3. 2. 1, 2차 해외 순항 (1891-1901)
1891년 10월 3일,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지중해로 다시 파견되어 항해 도중 브레스트를 방문했다. 1892년 2월 13일에는 1급 순양함으로 재분류되었고, 한 달 정도 지중해에 더 머물렀다. 이후 6월 29일, 아덴, 싱가포르, 홍콩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그 해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티르토프 소장의 기함 역할을 여러 번 수행했다. 요코스카와 나가사키에서 겨울을 보낸 후, 1893년 초에는 미국 발견 400주년 기념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미국으로 항해했다. 3월에는 알제에서 러시아 대공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를 태웠고, 전시회에서 모든 러시아 함선을 지휘한 카즈나코프 소장의 기함이 되었다.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4월 25일에 뉴욕에 도착하여 이틀 후 대통령 검열에 참여했다. 9월 초 크론시타트로 돌아오기 전 필라델피아, 보스턴, 뉴포트를 방문했다.[11]

1893년부터 1895년까지 이어진 재정비 기간 동안,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6문의 45구경 6인치 포, 10문의 45구경 약 11.94cm 포, 그리고 6문의 47mm 포로 재무장했다.[5] 이 시기에 보일러가 교체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돛대는 3개의 폴 마스트로 교체되었다.[2] 1895년 말, 빌헬름 비트게프트가 함장으로 임명되었고,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11월 10일에 극동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1898년 3월,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뤼순 점령에 참여한 러시아 함선 중 하나였으며, 1900년 중반에는 의화단 운동 진압에 참여했다. 1901년 말, 본국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12]
3. 3. 러일 전쟁 참전 및 침몰 (1904-1905)
1904년 러일 전쟁 발발 후,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제2태평양 함대에 배속되어 1급 함장 레베데프의 지휘 하에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항해 중 10월 21일/10월 22일 북해에서 발생한 도거 뱅크 사건 당시 일본 함선으로 오인되어 7척의 자매함으로부터 아군 사격을 받아 손상을 입었다.[14] 1905년 5월 27일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 함대는 일본군에 의해 요격당했다.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함대 후방의 수송선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다.저녁 무렵, 주력 함대와 분리된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일본 함대를 뚫고 북쪽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려 했으나, 밤중에 일본 구축함과 어뢰정의 공격을 받았지만 격퇴했다. 다음 날 아침, 심각하게 부상당한 함대 사령관 로제스트벤스키 부제독을 구축함 Буйный|부이니ru에서 구축함 ''비에도비''로 옮기는 것을 도왔고, ''부이니''의 기계 고장으로 자침시켰다. ''부이니'' 자침 전, 구축함 승무원과 ''오슬랴비야''에서 온 205명의 생존자가 순양함으로 옮겨졌다.
북쪽으로 항해하던 중,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여러 일본 함선에 발견되어 교전 끝에 심하게 손상되었다. 레베데프 함장은 울릉도에 배를 좌초시키려 했으나, 대신 닻을 내리고 모든 승무원을 섬으로 대피시켰다. 전투 중 승무원 약 60명이 사망하고 120명이 부상당했다. 5월 29일 아침,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울릉도에서 약 1.5nmi 떨어진 해상에서 자침했다. 생존자들은 같은 날 오후 구축함 吹雪|후부키일본어와 무장 상선 순양함 ''가스가 마루''에서 온 상륙 부대에 의해 포로로 잡혔다.[14]
4. 인양 시도 및 보물 논란
2000년 동아건설과 2018년 신일그룹은 드미트리 돈스코이 인양을 시도했으나, 신일그룹의 경우 '150조 원 보물선'이라는 과장된 홍보로 투자자들을 현혹한 뒤 사기극으로 밝혀져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다.
2018년 7월 17일, 신일그룹은 울릉도 인근 해역에서 드미트리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고 발표하며, 금화와 금괴 5,000상자 등 현재 시세로 1500억원 가치의 200ton의 보물이 실려 있다고 주장했다.[25] 그러나 동아건설은 자신들이 먼저 발견했으며, 금의 양은 500kg 정도로 현재 시세 220억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26]
4. 1. 동아건설의 인양 시도 (2000-2003)
2000년, 대한민국 5위의 건설 회사였던 동아건설산업㈜은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의뢰하여 드미트리 돈스코이의 잔해를 발견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15] 동아건설은 한 달 전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갔지만 주식 거래는 계속 허용되었다.[15] 언론 보도를 통해 14,000톤(지구에서 채굴된 모든 금의 10%)의 금이 선박에 실려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가가 일주일 만에 41% 상승했지만, 해상에서 아무것도 인양하지 못했고, 결국 동아건설은 파산했다.[16]이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2003년에 난파선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2007년부터 웹사이트에 관련 사진을 게재하고 있다.[17]
4. 2. 신일그룹의 인양 시도 (2018)
2018년 7월 17일, 신일그룹은 "지난 15일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서 1.3km 떨어진 수심 434m 지점에서 돈스코이호 선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25] 신일그룹은 돈스코이호에 금화와 금괴 5000상자 등 현재 시세 150조 원 가치의 200ton의 보물이 실려 있다고 주장했다.[25] 그러나 동아건설은 자신들이 먼저 발견했으며, 500kg 정도로 현재 시세 220억 원에 해당하는 양만 있다고 주장하였다.[26]2018년 7월, 대한민국의 보물 탐사 회사인 신일그룹은 수면 아래 약 426.72m 지점, 울릉도에서 약 1.61km 떨어진 해역에서 ''드미트리 돈스코이''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신일그룹의 계획에 따르면,[17] 중국의 해양구조 회사가 이 난파선 안에 들어있다고 추정되는 5,500개의 금괴 상자와 200ton의 금화, 총 1013억파운드 (약 1330억달러) 상당의 금을 인양할 계획이었다.[18] 금의 절반은 러시아에 반환될 예정이었다.[19]
2018년 6월에 설립된 신일그룹은 대한민국의 해양수산부에 인양 권리를 신청하지 않았다. 신일그룹은 침몰 당시 배에 금이 실려 있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20] 대한민국 금융감독원은 대중에게 보물 탐사 사업에 대한 투자를 경고했다.[17] 신일그룹 대변인 박성진은 자신들의 것으로 위장한 가상 화폐 거래소 웹사이트가 가짜라고 말했다.[17]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중앙 해군 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드미트리 돈스코이''의 난파선에 금이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21]
7월 26일, 신일그룹은 사명을 신일해양기술로 변경하고 약 5300만달러의 자금을 모금한 후 ''드미트리 돈스코이''에 대한 주장을 철회했다. 신일해양기술이 거리를 두려고 했던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가상 화폐 거래소 신일그룹 PTE는 124,000명의 사전 판매 투자자가 등록했으며 코인의 가치가 25,000%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경찰은 사기 조사를 시작했고 한국 법인 대표들에게 출국 금지 조치를 내렸다.[22] 대한민국 법원은 신일그룹 부회장에게 사기 혐의를 인정하여 5년 징역형을 선고하고, 핵심 공범에게도 유죄 판결을 내렸다. 신일그룹 전 회장은 2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23]
4. 3. 평가 및 의의
드미트리 돈스코이호 인양 시도는 대한민국 사회에 만연한 '한탕주의'와 '묻지마 투자'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특히, 신일그룹 사건은 가상 화폐 투기 광풍과 맞물려 더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2018년 7월, 신일그룹은 울릉도 인근 해역에서 드미트리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고 발표하며, 1500억원 가치의 금화와 금괴 200톤이 실려 있다고 주장했다.[25] 그러나 동아건설은 자신들이 먼저 발견했으며, 금의 양이 500Kg(220억원) 정도라고 반박했다.[26] 신일그룹은 인양을 위해 중국의 해양구조 회사와 협력하여 1.33조달러 상당의 금괴와 금화를 인양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인양된 금의 절반은 러시아에 반환할 예정이었다.[17][18][19]
하지만 신일그룹은 대한민국 해양수산부에 인양 권리 신청을 하지 않았고, 배에 금이 실려 있었다는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20] 대한민국 금융감독원은 보물 탐사 사업에 대한 투자를 경고했으며,[17] 신일그룹 측은 가상 화폐 거래소 웹사이트가 가짜라고 해명했다.[17]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앙 해군 박물관 관계자는 드미트리 돈스코이호에 금이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21]
결국 신일그룹은 사명을 신일해양기술로 변경하고 주장을 철회했다. 이후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가상 화폐 거래소 신일그룹 PTE는 사전 판매 투자자를 모집하고 코인 가치 상승을 예상한다고 홍보했다. 대한민국 경찰은 사기 조사를 시작했고, 관련자들에게 출국 금지 조치를 내렸다.[22] 법원은 신일그룹 부회장 등에게 사기 혐의를 인정하여 징역형을 선고했다.[23]
일부 언론은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무분별하게 보도하여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는 보수 언론의 전형적인 행태로 평가된다. 러시아 정부와 전문가들 역시 드미트리 돈스코이에 금괴가 실려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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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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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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