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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빙 스푼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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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빙 스푼풀은 1964년 존 세바스찬과 젤 야노프스키를 중심으로 결성된 미국의 록 밴드이다. 1965년 데뷔 싱글 "Do You Believe in Magic"을 시작으로 "Daydream", "Summer in the City" 등 여러 히트곡을 발표하며 인기를 얻었다. 1967년 야노프스키가 탈퇴하고, 1968년 세바스찬마저 밴드를 떠나면서 해체되었지만, 200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20년에는 원년 멤버들이 재결합하여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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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빙 스푼풀 - [음악 그룹]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65년의 러빈 스푼풀. 아래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존 세바스천, 잘 야노브스키, 조 버틀러, 스티브 분.
1965년 러빈 스푼풀 (시계 방향, 아래부터 존 세바스천, 잘 야노프스키, 조 버틀러, 스티브 분)
결성지그리니치 빌리지, 뉴욕
장르포크 록


사이키델리아
팝 록
활동 기간1964년–1968년
1991년–현재
1965년 - 1969년
1979년
1991년 -
레이블카마 수트라 레코드
부다 레코드
엘렉트라 레코드
스핀오프더 머그웜프스
웹사이트lovinspoonful.band
현재 멤버스티브 분
(투어 멤버는 § 멤버 참고)
이전 멤버존 세바스천
잘 야노프스키
잔 칼
조 버틀러
제리 예스터
존 마렐라
짐 예스터
리나 예스터
데이비드 제이코
랜디 챈스
멤버
현재 멤버조 버틀러
스티브 분
마이크 아츠리
필 스미스
머레이 웨인스톡
이전 멤버존 세바스천
잘 야노프스키
ジョン・マーレラ
짐 예스터
리나 예스터
데이비드 제이코
랜디 챈스
제리 예스터
잔 칼
음반 정보
음반 목록앨범 및 싱글

2. 경력

러빙 스푼풀은 1960년대 초 맨해튼 그리니치빌리지의 포크 음악계를 기반으로 성장했다.[129] 존 세바스찬은 잘 야노프스키와 함께 포크 그룹 머그웜프스에서 활동하며 경력을 시작했다. 머그웜프스는 캐스 엘리엇데니 도허티 등 훗날 마마스 앤 파파스를 결성하는 멤버들을 포함하고 있었다.[129]

이후 드러머 얀 칼과 베이시스트 스티브 분이 합류하며 밴드의 초기 라인업이 완성되었으나, 얀 칼은 곧 조 버틀러로 교체되었다.[135] 밴드는 엘렉트라 레코드와 계약 직전 카마 수트라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했다.[136] 1965년 싱글 〈Do You Believe in Magic〉으로 데뷔하여 빌보드 핫 100에서 9위를 기록하며 이름을 알렸다.[110] 이후 〈Daydream〉(미국 2위), 〈Summer in the City〉(미국 1위) 등의 히트곡을 연이어 발표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111][109]

1967년, 잘 야노프스키가 대마초 소지 혐의로 체포된 후 미국 재입국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여 밴드를 탈퇴했고,[9] 제리 예스터가 합류했다. 같은 해, 리더였던 존 세바스찬마저 탈퇴하면서 밴드는 해체되었다.

해체 이후 조 버틀러는 러빙 스푼풀의 이름으로 앨범을 냈지만, 사실상 솔로 앨범이었다. 존 세바스찬은 솔로 가수로 활동하며 1976년 〈Welcome Back〉을 히트시켰다. 2000년, 러빙 스푼풀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12]

2. 1. 결성 및 초기 (1964~1965)

러빙 스푼풀은 1960년대 초 맨해튼 그리니치빌리지의 포크 음악계를 배경으로 시작되었다.[129] 클래식 하모니시스트인 존 세바스찬의 아들 존 세바스찬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까지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미국 포크 음악 부흥과 관련된 여러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성장했다. 세바스천은 보헤미안 포크 그룹 머그웜프스에서 기타리스트 잘 야노브스키와 함께 지역 커피 하우스나 작은 클럽에서 음악을 연주했다. 당시 머그웜프스에는 이후 마마스 앤 파파스의 멤버가 되는 캐스 엘리엇데니 도허티가 속해 있었다.[129]

1964년 2월 9일, 존 세바스찬과 잘 야노프스키는 캐스 엘리엇의 아파트에서 처음 만났다.[2] 그날 밤 엘리엇은 비틀즈가 미국 텔레비전에 데뷔하는 ''에드 설리번 쇼''를 시청하기 위한 파티를 열었다.[4] 엘리엇, 세바스찬, 야노프스키는 모두 뉴욕시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활동하던 포크 음악계의 주요 인물들이었고,[5] 세 사람 모두 비틀즈의 공연에 큰 영향을 받았다. 세바스찬은 훗날 "그것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즉, 제 세대)에게 말이죠."라고 회상했다. 그날 밤 늦게 엘리엇은 세바스찬과 야노프스키에게 기타 연주를 권유했고,[6] 세바스찬은 그들이 서로에게 "엄청난 친화력"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고 기억한다.

세바스찬은 워싱턴 스퀘어 파크 근처 아파트에서 자랐으며,[7] 10대 시절에는 뉴저지의 예비학교에서 록 밴드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그는 기타, 하모니카, 피아노, 오토하프 등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가 되었다. 1960년대 초부터 그는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활동했다.

야노프스키는 캐나다 토론토 다운스뷰에서 자랐고, 요크빌 지역을 중심으로 한 포크 음악계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야노프스키는 데니 도허티의 포크 그룹 할리팩스 쓰리에 합류했고, 이 그룹은 나중에 그리니치 빌리지로 이전했다. 1964년 6월 할리팩스 쓰리가 해체된 후, 엘리엇은 야노프스키와 도허티를 자신의 그룹 머그웜프스에 영입했다. 같은 해 세바스찬은 이븐 더즌 저그 밴드에서 잠시 활동한 후, 하모니카 연주자로 머그웜프스에 합류했다.

세바스찬은 야노프스키에 대해 "[그는] 저를 완전히 즐겁게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과 대화, 농담, 연극을 흡입하고 내뿜었습니다. 그는 일종의 문화적 풍향계였고, 사람들은 그의 주위에 모여들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머그웜프스와의 라이브 공연에서 야노프스키와 세바스찬은 포크송을 그냥 연주하는 대신, 각각 기타와 하모니카로 서로 즉흥 연주를 자주 했다. 1964년 말 머그웜프스가 해체된 후, 세바스찬과 야노프스키는 자신들의 그룹을 결성할 계획을 세웠고, 그들은 그것을 일렉트릭 저그 밴드로 구상했다. 세바스찬은 "야노프스키와 저는 이 상업적인 포크 음악 모델이 다시 바뀌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자신의 악기를 연주하고 자신의 노래를 작곡하는 4인조 밴드가 대세라는 것을 말이죠."라고 회상했다. 야노프스키는 할리팩스 쓰리와 머그웜프스의 전 매니저였던 밥 카발로에게 연락했고, 그는 그들이 아직 공개적으로 공연한 적도 없고, 노래도 없고, 밴드 이름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바스찬과 야노프스키의 그룹을 매니지먼트하기로 동의했다.

1964년, 세바스찬은 에릭 야콥센과 이웃이 되었고, 두 사람은 곧 친해졌다. 야콥센은 세바스찬의 작품인 "웜 베이비"와 "루티-투트" 등의 데모를 녹음했다.

1962년부터 1964년까지, 스티브 분은 드러머 조 버틀러와 함께 롱아일랜드의 여러 로큰롤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했다. 1964년 12월, 버틀러의 권유로 분은 그리니치 빌리지의 빌리지 뮤직 홀에서 세바스찬과 야노프스키를 만났다. 세바스찬은 그에게 자신의 작품인 "굿 타임 뮤직"을 들려주었다. 세 명의 음악가는 즉흥 연주를 통해 척 베리와 R&B의 여러 곡들을 연주했다. 세바스찬은 그 후 야콥센의 아파트로 분을 초대했고, 거기서 분은 야콥센과 모던 포크 콰르텟의 제리 예스터를 만났다. 그 주에 분은 그리니치 빌리지 클럽에서 세바스찬의 공연을 관람했다. 프레드 닐, 팀 하딘, 버지 린하트, 펠릭스 파팔라르디 등으로 급조된 그룹의 세바스찬 공연은 분에게 큰 감명을 주었고, 그는 나중에 그것을 "내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밤 중 하나"라고 회상했다. 그는 또한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전에는 포크 그룹에서 그런 힘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이 공연은 분이 그리니치 빌리지 포크 음악계에 진입하여 세바스찬과 야노프스키의 그룹에 합류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밴드에는 여전히 드러머가 필요했고, 분은 킹스맨에서 파트타임으로 활동했던 얀 부흐너(얀 칼)를 추천했다. 밴드는 1964년 12월과 1965년 1월 몇 주 동안 불스 헤드 인에서 연습했고, 밤에는 브리지햄프턴의 현지 바에서 공연을 했다.

새로운 밴드가 계약을 맺기 전에 돈을 벌기 위해, 1964년 말과 1965년 초 세바스찬은 다른 아티스트의 녹음에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계속 활동했다. 1965년 1월, 밥 딜런은 세바스찬에게 그의 새 앨범 ''브링잉 잇 올 백 홈''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해달라고 요청했다. 1월 13일 앨범 세션 첫날에는 밥 딜런이 어쿠스틱 기타만 연주했고, 몇 곡에서 세바스찬이 베이스 기타를 연주했지만, 녹음된 내용은 최종 앨범에 사용되지 않았다.[7] 딜런은 다음 날 많은 부분을 다시 녹음하기 위해 돌아와 전날 시도했던 곡들을 재편하여 전기적인 반주를 추가했다. 딜런은 같은 날 저녁 별도의 세션에 세바스찬을 초대했고, 그들은 "서브터레이니언 홈식 블루스"의 리메이크를 녹음했다. 세바스찬은 숙련된 베이시스트가 아니었고, 파트를 연주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후 분에게 대신 연주하라고 제안했지만, 두 사람의 연주 모두 최종 앨범에 실리지 않았다.

드러머 얀 칼과 베이시스트 스티브 분이 들어오면서 밴드의 멤버가 완성되었지만, 칼은 그리니치빌리지에 위치한 나이트올에서의 공연 이후 드러머 겸 보컬리스트인 조 버틀러로 대체되었다. 당시 버틀러는 킹스멘이라는 그룹에서 분과 함께 연주를 한 적이 있었다. 첫 공연은 구단주가 나가라고 할 정도로 나빴으며, 밴드는 관객들의 관심을 끌 정도로 실력이 될 때까지 인근 호텔의 지하에서 연습하였다.[135]

밴드는 1965년 초 엘렉트라 레코드에서 첫 작품을 만들었고, 원칙적으로 엘렉트라에서 준 10000USD의 선금의 대가로 장기 계약을 맺기로 하였다. 하지만 카마 수트라 레코드는 이전에 계약한 프로덕션 계약의 일부로 러빙 스푼풀을 아티스트로 계약할 수 있는 옵션이 존재했기에, 엘렉트라의 밴드 계약 의도를 눈치채고 옵션을 행사하였다.[136] 엘렉트라에서 녹음된 4곡의 노래는 카마 수트라에서 밴드가 성공한 후 1966년 컴필레이션 《What's Shakin'》에 실렸다.

러빙 스푼풀의 결성 과정은 1967년 마마스 앤 파파스가 발매한 〈Creeque Alley〉의 가사에 설명돼 있다.[130] 밴드의 이름은 블루스 음악가 미시시피 존 허트의 노래 〈Coffee Blues〉의 가사에서 따왔다. 존 세바스천이나 조프 멀더와 같은 당대 신의 인물들은 프리츠 리치몬드가 러빈 스푼풀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고 밝혔다.[131][132][133][134]

2. 2. 미국 내 인기 (1965~1966)

1965년 7월, 싱글 〈Do You Believe in Magic〉 발매는 불과 몇 주 만에 러빙 스푼풀을 미국 전역에 알렸다.[16] 이 밴드는 마이애미 디스크 자키 릭 쇼(Rick Shaw)의 WPLG(채널 10) 쇼에서 미국 텔레비전에 첫 데뷔를 했고, ''아메리칸 밴드스탠드(American Bandstand)'', ''더 머브 그리핀 쇼(The Merv Griffin Show)'', ''더 로이드 택스턴 쇼(The Lloyd Thaxton Show)'' 등의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107] 싱글 발매와 함께 밴드 매니지먼트는 뉴욕시 외 지역에서의 첫 번째 본격적인 라이브 공연을 계획했다.[107] 8월부터 이 밴드는 미국 서부 해안을 순회 공연했다.[107]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마더스 나이트클럽(Mother's Nightclub)에서 2주간의 레지던시 공연을 가졌다.[17] 당시 이 클럽은 "세계 최초의 사이키델릭 나이트클럽"으로 홍보했다.[107] 8월 7일[18]에는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Pasadena, California)의 로즈볼 경기장(Rose Bowl (stadium))에서 영국 팝 그룹 허먼스 허미츠(Herman's Hermits)의 지원 공연 중 하나로, 터틀즈(the Turtles)와 바비 풀러 포(the Bobby Fuller Four)와 함께 3만 5천 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했다.[107]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선셋 스트립(Sunset Strip)의 여러 클럽, 시로스(Ciro's), 위스키 어 고 고(Whisky a Go Go), 더 크레센도(나중에 더 트립(The Trip (night club))으로 이름이 바뀜)에서 공연했다.[16]

러빙 스푼풀(The Lovin' Spoonful)의 1965년 라이브 공연


1965년 10월, 스푼풀은 미국 서부 해안으로 돌아왔다.[107] 그들의 이미지와 사운드는 신흥 샌프란시스코 음악씬[19], 특히 1960년대 반문화의 중심지였던 헤이트 애슈베리(Haight-Ashbury) 지역에 영향을 미쳤다.[19] 이 밴드는 미국의 포크 음악계에서 가장 유명한 클럽 중 하나인 헝그리 아이(hungry i)에서 일주일 동안 공연했고,[20][21] 10월 24일[22]에는 샌프란시스코 피셔맨스 워프(Fisherman's Wharf, San Francisco) 지역의 선원 노조 회관(Longshoreman's Union Hall)에서 댄스 파티의 헤드라이너로 공연했다.[17][23] 콘서트 제작 단체 패밀리 독 프로덕션(Family Dog Productions)이 주최한 이 행사는 라이트 쇼와 사이키델릭 약물을 결합한 록 음악 공연이었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런 종류의 최초 행사 중 하나였다.[107] 야콥센은 "음악을 듣고 마약을 복용하는 그 모든 아이디어가 거기서 시작되었다"고 회상했다.[107] 이 공연에는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 멤버들이 참석했고, 스푼풀의 공연에 영감을 받아 그들의 스타일을 "일렉트릭"으로 전환했다.[107]

1965년 헨리 딜츠(Henry Diltz)가 촬영한 더 러빙 스푼풀(The Lovin' Spoonful) 홍보 사진


1965년 말까지 스푼풀은 ''웨어 더 액션 이즈(Where the Action Is)'', ''신디그!(Shindig!)'', ''훌라발루'' 등 가장 인기 있는 미국 텔레비전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했다.[107]

1965년 11월, 빅 티엔티 쇼(The Big T.N.T. Show)에서 공연하는 러빙 스푼풀


1965년 11월, 러빙 스푼풀은 미국 걸그룹 슈프림스(The Supremes)와 19일간의 패키지 투어를 시작했다.[27] 이들은 미국 남부 여러 대학에서 공연을 펼쳤는데,[27] 11월 10일 루이지애나주 라파예트에서 시작했다.[28]

슈프림스와의 투어를 마친 후, 러빙 스푼풀은 필 스펙터의 초청으로 콘서트 영화 빅 티엔티 쇼(The Big T.N.T. Show)에 출연하기 위해 곧바로 로스앤젤레스로 향했다.[107] 11월 29일과 30일에 촬영을 마친 후, 밴드는 선셋대로에 있는 나이트클럽인 트립(The Trip)에서 몇 주간의 레지던시 공연을 했다.[107]

카마 스트라 레코드(Kama Sutra Records)의 "데이드림" 싱글 광고는 밴드 이름이 마약 사용을 암시한다는 언론의 추측을 부채질했다.


"데이드림" 발매는 언론과 대중들 사이에서 밴드와 마약 사용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추측을 불러일으켰다.[107] 언론은 종종 "러빙 스푼풀"이 헤로인 주사에 사용되는 스푼을 암시한다고 잘못 추측했기 때문이다.[107]

"데이드림"은 12주 동안 핫 100에 머물렀고, 4월 중순 2주 동안 2위에 올랐다.[15] 이 싱글은 빌보드 차트에서 더 라이트어스 브라더스(the Righteous Brothers)의 "(유어 마이) 소울 앤 인스피레이션((You're My) Soul and Inspiration)"에 밀려 1위를 차지하지 못했지만,[31] 캐시박스(Cash Box) 잡지 차트에서는 1위를 차지했고 캐나다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32][33] 이 노래의 성공으로 러빙 스푼풀의 인기가 높아져 지원 공연이 아닌 헤드라이너로 공연할 수 있게 되었다.[107]

2. 3. 국제적 인기 (1966)

러빙 스푼풀은 북미에서는 빠르게 성공했지만, 영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42] 그들의 싱글 중 어느 것도 영국 차트에 진입하지 못했다.[45] 밴드의 국제적 인기를 확장하기 위해, 매니지먼트는 1966년 4월 영국과 스웨덴에서 여러 라이브 공연과 TV 출연을 주선했다.

4월 12일,[40] 스푼풀은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여 10일간의 영국과 스웨덴 투어를 시작했다.[41][42] 영국 음악인 노동조합과의 협상 문제로 인해 밴드는 영국에서의 출연 횟수를 제한해야 했다.[43] 투어 첫 주에 밴드는 버밍엄맨체스터에서 공연을 하고, ''탑 오브 더 팝스'', ''레디 스테디 고!'', ''행복한 별에게 감사하세요'' 등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BBC 라디오에서 방송하고, 아일랜드 사교계 명사 타라 브라운의 런던 자택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 영국에서의 시간은 그들에게 영국의 최고 음악가들과 교류할 기회를 제공했다. 4월 18일, 그들은 런던 중심부 소호의 워도어 스트리트에 있는 마르케 클럽에서 초청 공연을 했다. 존 레논, 조지 해리슨, 레이 데이비스,[44] 브라이언 존스, 스티브 윈우드, 스펜서 데이비스, 에릭 클랩튼 등 영국의 많은 최고 음악가들이 참석했다. 밴드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레논과 해리슨은 그 후 피카딜리의 메이페어 호텔에서 아침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밤, 켄싱턴의 블레이즈 클럽 공연 후 밴드는 존스와도 친분을 쌓았다.

스웨덴 TV 출연을 위해 스톡홀름으로 이동한 후, 스푼풀은 4월 23일 브라운의 21번째 생일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아일랜드로 향했다. 당시 스푼풀을 가장 좋아하는 밴드로 여겼던 브라운은 밴드의 투어와 녹음 일정에 맞추기 위해 파티를 7주 연기했다. 브라운은 사비로 밴드를 아일랜드로 초청하여 비공개 공연을 열었고, 공연료로 10000USD를 지불했다. 위클로 산맥의 고딕 리바이벌 건축 양식 저택인 러갈라 부지에서 열린 이 파티에는 롤링 스톤즈 멤버, 피터 바든스, 아니타 팔렌버그, 크리시 슈림프턴, 존 폴 게티 2세, 루퍼트 라이셋 그린, 마이크 맥카트니 등 유명한 스윙잉 런던 인물들이 참석했다. 버틀러는 멤버들이 모두 술에 취하고 마리화나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밴드의 공연이 형편없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여러 손님들도 LSD를 복용했고, 버틀러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스푼풀은 하룻밤 묵었다.

스푼풀은 4월 마지막 주에 미국으로 돌아왔다. 특히 존경하는 동시대 음악가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은 후 밴드의 사기는 높아졌다. "데이드림"은 주요 국제 히트곡이 되었다. 5월 중순까지 영국 주요 싱글 차트에서 2위, 스웨덴 크벨토펜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45][46]

2. 4. 마약 사건과 멤버 교체 (1967~1968)

1966년 5월 20일, 존 세바스찬과 졸리 야노프스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마리화나 소지 혐의로 체포되었다.[9] 당시 마리화나는 불법 약물이었다. 경찰은 두 사람의 차를 세우고 수색하는 과정에서 마리화나를 발견했다.[9] 야노프스키와 부운은 하룻밤 감옥에서 보낸 후 다음날 아침 러빙 스푼풀의 로드 매니저인 리치 키아로에 의해 보석으로 풀려났다.[9] 칼로와 찰리 코펠만은 상황 관리를 위해 밴드를 만나러 왔고, 유명 변호사인 멜빈 벨리를 고용했다. 스티브 부운과 존 세바스찬은 체포 사실을 바로 알지 못했고, 밴드는 5월 21일 예정대로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그리스 극장에서 공연을 진행했다.[9]

샌프란시스코 경찰과 지방 검찰과의 회의에서 야노프스키는 캐나다로 추방될 위협을 받았다.[9] 벨리는 야노프스키와 부운이 재판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낮으며, 기소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국에 협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9] 두 사람은 처음에는 이 제안을 거부했지만, 야노프스키의 추방을 막기 위해 결국 협조하기로 했다. 그들은 이것이 밴드 해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9] 야노프스키와 부운은 당국에 마약 공급자를 알려주는 것으로 협조했다.[9] 그들은 경찰의 비밀 요원을 지역 파티에서 마약 공급자에게 안내했다.[9] 그 대가로 모든 혐의는 취하되었고, 체포 기록은 삭제되었으며, 두 사람은 법정에 출두할 필요가 없었고, 체포와 관련된 어떠한 언론 보도도 없었다.[9] 그들의 마약 공급자는 체포되어 짧은 기간 감옥에 수감되었다.[9]

1966년 12월 마약 사건이 법정에 회부된 후, 야노프스키와 부운의 체포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9] 특히 언더그라운드 프레스는 밴드를 강하게 비판했다.[9] 1967년 초, 러빙 스푼풀의 서부 해안 공연은 때때로 '60년대 반문화 운동' 구성원들에 의해 피켓 시위를 당했다. 시위대는 밴드를 "밀고자"이자 운동의 배신자라고 비난하는 피켓을 들고 밴드를 보이콧하고 레코드를 불태울 것을 팬들에게 촉구했다.[9] 마약 단속 사실이 공개되면서 세바스찬과 부운, 그리고 야노프스키와 부운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었다.[9] 부운은 나중에 보이콧이 밴드의 상업적 실적에 타격을 입혔다고 주장했지만,[9] 리치 운터버거는 "러빙 스푼풀의 레코드를 구입한 사람들 대부분은 평범한 미국 십대들이었지, 히피가 아니었다"는 점을 들어 그 영향이 다른 저자들에 의해 과대평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47] 1967년 6월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을 다룬 기사에서 저자 마이클 라이든은 마약 단속과 관련된 문제로 러빙 스푼풀이 페스티벌에 출연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48]

1966년 말부터 1967년 초까지 세바스찬의 밴드 동료들은 그가 밴드의 방향에 대해 과도한 통제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3] 분은 세바스찬과 야노프스키의 관계가 특히 어색해졌다고 회상했다. 야노프스키는 자신의 우려를 직접적으로 표명하기보다는 종종 반항했기 때문이다.[3]

1967년 5월, 세바스찬은 버틀러와 분과 함께 밴드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회의를 소집했다. 세바스찬은 야노프스키의 점점 더 불규칙해지는 공개 행동과 밴드 동료들에 대한 경멸적인 태도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세바스찬은 야노프스키를 해고하거나 자신이 밴드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결론지었다.[3] 야노프스키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3] 점점 야노프스키의 모욕의 표적이 되고 있던 버틀러는 세바스찬에 동의했다.[3] 이후 세바스찬의 아파트에서 열린 그룹 회의에서 밴드는 야노프스키에게 해고 통보를 했다.[3] 그는 그룹의 남은 일정을 계속 수행하는 데 동의했지만,[3] 6월 내내 밴드가 해체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3] 그는 1967년 6월 24일 뉴욕 퀸즈의 포레스트 힐스 뮤직 페스티벌에서 러빙 스푼풀과 마지막 공연을 가졌다.[3]

제리 예스터(왼쪽)가 야노브스키를 대체한 러빙 스푼풀 (1967~68년경)


러빙 스푼풀은 리드 기타리스트 자리에 제리 예스터를 영입했다. 1967년 5월 야노브스키가 해고된 후, 세바스찬이 예스터를 영입할 것을 제안했고, 다른 대체 인물은 고려되지 않았다. 예스터는 "Do You Believe in Magic" 녹음에 참여하는 등 오랫동안 밴드 및 자콥슨과 친분을 쌓아왔다.[3] 예스터의 밴드인 모던 포크 콰르텟이 1966년 중반 해체된 이후,[3]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션 뮤지션 및 프로듀서로 활동했다.[3] 1967년 6월 초, 그는 뉴욕주 이스트 쿼그에 있는 세바스찬의 집에서 스푼풀과 리허설을 했고, 6월 30일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메모리얼 콜리세움에서 밴드와 함께 데뷔 무대를 가졌다.[3]

1968년 초, "Everything Playing"과 "Money"의 상업적 실패 이후, 세바스찬은 멤버들에게 스푼풀의 앞으로 3개월간의 예정된 투어 일정을 마치면 그룹을 떠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3] 그는 1968년 6월 20일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마지막으로 밴드와 함께 공개적으로 공연했으며,[3] 그의 탈퇴는 9월에 공개되었다.[79][80] 12월까지, 영국의 음악 잡지인 ''Disc and Music Echo''는 스푼풀이 해체되었다고 보도했다.[3] 세바스찬은 나중에 밴드의 경력을 "2년의 영광과 지루한 1년"으로 요약했다.[3]

2. 5. 해체 이후 (1968~현재)

1968년 초, "Everything Playing"과 "Money"의 상업적 실패 후, 존 세바스찬은 밴드를 떠날 계획을 발표했다.[79][80] 1968년 6월 20일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마지막 공연을 한 후, 9월에 그의 탈퇴가 공식 발표되었다.[79][80] 12월, 영국의 음악 잡지 ''Disc and Music Echo''는 스푼풀의 해체를 보도했다. 세바스찬은 밴드 활동을 "2년의 영광과 지루한 1년"으로 회고했다.

세바스찬 탈퇴 후, 남은 멤버들은 거의 교류하지 않았다. 조 버틀러는 레이블로부터 스푼풀 명의로 앨범을 녹음하고 제작할 권한을 얻었다. 1968년 말 발매된 ''레벨레이션: 레볼루션 '69(Revelation: Revolution '69)''에는 스티브 분과 제리 예스터는 참여하지 않았고, "조 버틀러가 참여한 러빙 스푼풀"로 표기되었다. 이 앨범은 차트에 진입하지 못했고,[15] 일반적으로 스푼풀의 음반 목록에서 제외된다. 존 스튜어트가 작곡한 이 앨범의 첫 싱글 "Never Going Back"은 세바스찬이 그룹을 떠나기 전 선셋 사운드 레코더스(Sunset Sound Recorders)에서 녹음되었지만, 세바스찬은 녹음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싱글은 1968년 7월 발매되어 73위를 기록했다.

스푼풀 해체 후, 세바스찬은 솔로 활동으로 초기 성공을 거두었다. 브로드웨이 쇼 ''지미 샤인''의 음악을 작곡했고(1968년 12월~1969년 4월 공연), 1968년 말 워너 레코드와 계약하여 솔로 앨범 ''존 B. 세바스찬''을 발매, ''빌보드'' 차트 20위에 올랐다. 크로스비, 스틸스 & 내쉬 멤버들이 앨범에 게스트로 참여했다. 세바스찬은 밴드 합류 제안을 받았으나, 솔로 활동에 집중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1974년 세바스찬, 야콥센, 야노프스키


이후 10년간 세바스찬은 콘서트와 페스티벌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연간 약 100회 공연했다. 1969년 8월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즉흥적으로 출연, 스푼풀의 노래 "Darling Be Home Soon"과 "Younger Generation"을 불렀다. 1974년 앨범 ''타자나 키드''는 차트에 오르지 못했지만, 에릭 야콥센이 프로듀서를 맡아 오랜 불화 후 처음으로 협업했다. 1976년 TV쇼 ''웰컴 백, 코터''의 주제가 "웰컴 백"으로 1위 히트를 기록했으나, 지속적인 성공으로 이어가지는 못했다.

젤 야노프스키는 부다 레코드(Buddha Records)와 계약,[81] 1967년 9월 데뷔 싱글 "As Long As You're Here"를 발매,[82][83] ''빌보드'' 핫 100 버블링 언더(Bubbling Under the Hot 100) 차트 101위에 올랐다.[84] 1968년 4월 첫 솔로 앨범 ''Alive and Well in Argentina''를 발매했다. 이 앨범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85] 야노프스키와 제리 예스터의 파트너십을 낳았다. 둘은 "헤어 셔츠 프로덕션"을 설립, 팻 분(Pat Boone), 팀 버클리(Tim Buckley) 등의 음반을 제작했다.

야노프스키는 1970년 크리스 크리스토퍼슨(Kris Kristofferson) 밴드에서 연주했으며,[85] 그 해 아일 오브 와이트 페스티벌에도 참여했다. 세바스찬은 페스티벌에서 솔로로 공연했고, 야노프스키는 그의 무대에 합류해 함께 연주했다. 이후 야노프스키는 음악계를 은퇴, 캐나다로 돌아가 1979년 온타리오주 킹스턴(Kingston, Ontario)에 셰즈 피기(Chez Piggy) 레스토랑을 열었다.[85]

1969년, 분은 솔로 앨범을 시도했으나 무산되었다. 같은 해 버지니아 포크 그룹 옥페탈스의 앨범을 프로듀싱한 후 음악계를 떠났다. 버틀러는 브로드웨이 배우로 전향, 록 뮤지컬 헤어에 출연했다. 할리우드에서 사운드 에디터로도 일했지만, 1970년대 후반에는 택시 운전을 했다.

세바스찬은 스푼풀 재결합을 거부했고, 원년 멤버들은 단 두 번만 재결합했다. 1979년 폴 사이먼의 초청으로 영화 원-트릭 포니에 출연했고, 2000년 3월 록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다시 만났다. 야노프스키는 2년 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86]

버틀러, 분, 예스터는 1991년 스푼풀이라는 이름으로 투어를 시작했는데, 세바스찬과 야노프스키는 이에 반대했다. 1999년 라이브 앨범 Live at the Hotel Seville을 발매했다.[47] 세바스찬은 2020년 자선 콘서트에서 분, 버틀러와 다시 함께 무대에 올랐다.[87]

3. 영향

존 레논이 사용하던 개인용 주크박스에는 러빈 스푼풀의 노래 〈Daydream〉이 있었다. 존 세바스천은 레논이 〈Daydream〉을 부르는 비틀즈 리허설 테이프를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137]

폴 매카트니는 〈Good Day Sunshine〉이 〈Daydream〉과 비슷한 곡을 쓰려고 한 것이라고 밝혔다.[138]

킹크스데이브 데이비스는 자신과 형인 레이 데이비스가 러빈 스푼풀을 들었으며, 이들이 "블루스와 컨트리, 포크 음악, 약간의 록 등 많은 음악적 요소를 통합시켰다"고 평가했다.[139]

The Spoonful영어은 블루스와 주그 밴드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포크, 블루스, 컨트리, 록 음악의 영향을 혼합하여 전통적인 미국 음악을 현대 대중 음악 형식으로 업데이트했다.[88]

The Spoonful영어의 사운드는 비틀즈, 비치 보이스, 더 킨크스, 버팔로 스프링필드, 그레이트풀 데드와 같은 현대 음악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91] 1966년, "You Didn't Have to Be So Nice"는 부분적으로 비치 보이스의 "God Only Knows"에, "Daydream"은 비틀즈의 "Good Day Sunshine"과 더 킨크스의 "Sunny Afternoon"에 영감을 주었다.

4. 구성원



러빙 스푼풀은 1965년 존 세바스찬과 잘 야노브스키를 중심으로 결성되었다.[107] 조 버틀러(드럼), 스티브 분(베이스)이 합류했다. 더 머그웜프스가 분열하여 마마스 & 파파스와 러빙 스푼풀이 되었다.

1967년 야노브스키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대마 소지로 체포되어 미국 재입국 금지 가능성을 우려하여 탈퇴했다. 세바스찬의 작곡이 "개인적"이 되어가는 것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모던 포크 콰르텟의 제리 예스터가 후임으로 합류했다. 4집 《에브리씽 플레잉》 발표 후, 세바스찬이 탈퇴하며 밴드는 해산했다. 조 버틀러의 솔로 앨범 《레볼루션: 레볼루션 '69》가 계약 문제로 러빙 스푼풀 명의로 발매되었다. 존 세바스찬은 1976년 〈웰컴 백〉을 발표했다.

200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12] 2002년 야노브스키가 사망했다.[113] 2020년 자선 공연에서 조 버틀러, 스티브 분, 존 세바스찬이 재결합했다.[114]

현 멤버
조 버틀러 (Joe Butler) - 드럼, 보컬 (1965년 ~ 1969년, 1979년, 1991년 ~ )
스티브 분 (Steve Boone) - 베이스 (1965년 ~ 1969년, 1979년, 1991년 ~ )
마이크 아르투리 (Mike Arturi) - 드럼 (1996년 ~ )
필 스미스 (Phil Smith) - 리듬 기타, 리드 기타 (2000년 ~ )
머레이 와인스톡 (Murray Weinstock) - 피아노 (2019년 ~ )



과거 멤버
존 세바스찬 (John Sebastian) - 보컬, 리듬 기타 (1965년 ~ 1968년, 1979년, 2000년, 2020년)
잘 야노브스키 (Zal Yanovsky) - 리드 기타 (1965년 ~ 1967년, 1979년, 2000년) ※2002년 사망
존 마렐라 (John Marrella) - 드럼 (1993년 ~ 1997년)
짐 예스터 (Jim Yester) - 보컬, 리듬 기타 (1991년 ~ 1994년)
레나 예스터 (Lena Yester) - 피아노 (1993년 ~ 2000년)
데이비드 제이코 (David Jayco) - 피아노 (1992년 ~ 1993년)
랜디 챈스 (Randy Chance) - 리듬 기타 (1994년)
제리 예스터 (Jerry Yester) - 리드 기타, 리듬 기타 (1967년 ~ 1969년, 1991년 ~ 2017년)
얀 칼 (Jan Carl) - 드럼 (1965년)


5. 음반 목록

'''싱글'''

※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양면 모두 첫 수록 앨범은 동일하다.

제목(A면/B면)년도최고 순위인증첫 수록 앨범
미국[111]오스트레일리아[120]캐나다[121]핀란드[117]독일[122]네덜란드[123]노르웨이[124]뉴질랜드[125]스웨덴[126]영국[119]
「Do You Believe in Magic (song)|마법을 믿니?영어
196593마법을 믿니?
「즐거운 그 소녀」
104데이드림
「Daydream (The Lovin' Spoonful song)|데이드림영어
19662131203011112
「Did You Ever Have to Make Up Your Mind?|마음을 정했니?영어
21762620253마법을 믿니?
「저그 밴드 뮤직」
2
「볼드 헤디드 리나」
1
「여름 도시에서」
11112523348* 영국: 실버[127]* 미국: 골드[128]러빙 스푼풀의 험즈
「레인 온 더 루프」
103812281331152
「내슈빌 캣츠」
83623811761226
「Good Time Music|굿 타임 뮤직영어
「돈트 뱅크 온 잇 베이비」
1967
「Darling Be Home Soon|달링영어
159081644넌 이제 어른이야
「식스 오클락」
1812에브리띵 플레잉
「유어 어 빅 보이 나우」
넌 이제 어른이야
「걸, 뷰티풀 걸」
「그녀는 미스터리」
273에브리띵 플레잉
「머니」
4828에브리띵 플레잉
「전진뿐이다」
1968737149혁명
「너와 함께 나아가자」
혁명
「너 없는 나에게」
19699170혁명
「젊은 세대」
1970
「—」는 차트 밖이거나 해당 지역에서 미발매임을 나타냅니다.


5. 1. 스튜디오 앨범

원제설명최고 순위미국[115]캐나다[116]핀란드[117]노르웨이[118]영국[119]마법을 믿니?
Do You Believe in Magicstyle="text-align: left;"|32————데이드림
'Daydream''style="text-align: left;"|10—9—8러빙 스푼풀의 험즈
'Hums of the Lovin Spoonful''style="text-align: left;"|148—9—에브리띵 플레잉
Everything Playingstyle="text-align: left;"|118————혁명
'Revelation: Revolution 69''style="text-align: left;"|—————「—」는 차트 진입에 실패했거나 해당 지역에서 발매되지 않았음을 나타냅니다.


5. 2. 사운드트랙 앨범

러빙 스푼풀은 1966년 4월, 코미디언 우디 앨런의 감독 데뷔작인 타이거 릴리, 어서 와!(What's Up, Tiger Lily?)의 사운드트랙 제작 제안을 받았다.[39] 4월 11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뉴욕시의 내셔널 레코딩 스튜디오(National Recording Studios)에서 사운드트랙을 녹음했고,[41] 영화에 짧게 출연했다. 1966년 8월 발매된 사운드트랙 앨범은 빌보드 LP 차트에서 126위에 올랐다.[15]

'''사운드트랙 음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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