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윌리엄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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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이 윌리엄슨(Roy Williamson)은 스코틀랜드의 음악가로, 코리스(Corries)의 멤버였으며, 스코틀랜드 국가 후보로 꼽히는 "플라워 오브 스코틀랜드(Flower of Scotland)"를 작곡했다. 그는 변호사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음악적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학창 시절에는 리코더를 독학하기도 했다. 1955년 로니 브라운을 만나 코리스를 결성하여 1960년대부터 포크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에는 여러 악기를 결합한 '콤볼린'이라는 악기를 발명하기도 했다. 윌리엄슨은 1990년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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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윌리엄슨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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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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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로이 머독 뷰캐넌 윌리엄슨 |
출생 | 1936년 6월 25일 |
출생지 | 에든버러, 스코틀랜드 |
사망 | 1990년 8월 12일 (향년 54세) |
사망지 | 포레스, 머레이셔, 스코틀랜드 |
활동 기간 | 1960년대–1989년 |
웹사이트 | corries.com |
음악 스타일 | |
장르 | 스코틀랜드 민요 |
악기 | |
악기 | 기타 만돌린 보란 콤볼린 잉글리시 콘서티나 노섬브리아 파이프 휘슬 |
관련 활동 | |
관련 그룹 | 더 코리스 더 코리스 포크 트리오 |
2. 초기 생애
로이 윌리엄슨은 변호사인 아버지 아치볼드 모이어 맥레이 윌리엄슨과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 아그네스 에텔 커밍 뷰캐넌 윌리엄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접했으나,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학창 시절, 악보를 보지 않고 귀로 리코더를 연주하는 등 음악적 재능을 보였으나, 이 때문에 음악 수업 참여를 금지당하기도 했다. 웨스터 엘키스 학교, 애버라우어 하우스, 모레이의 고든스톤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에든버러 예술 대학에 진학하기 전에는 버그헤드에서 항해술을 가르쳤다.
1955년 에든버러 예술 대학에서 로니 브라운을 만났고, 럭비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통해 가까워졌다. 이 만남은 훗날 스코틀랜드 포크 그룹 코리스 결성으로 이어져 약 30년간 음악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2. 1. 가족 및 배경
로이 윌리엄슨의 아버지는 변호사인 아치볼드 모이어 맥레이 윌리엄슨이었고, 어머니 아그네스 에텔 커밍 뷰캐넌 윌리엄슨은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였다. 어머니는 로이와 그의 형 로버트 뷰캐넌 윌리엄슨을 자주 음악 행사에 데리고 다녔다. 로이 윌리엄슨이 여덟 살 때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윌리엄슨은 학생 시절 악보를 읽는 척하며 귀로 리코더를 연주하는 법을 배웠으나, 이를 알게 된 선생님에 의해 음악 수업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그는 웨스터 엘키스 학교와 애버라우어 하우스를 거쳐 모레이의 고든스톤에서 교육받았다. 이후 버그헤드에서 항해술을 가르치다가 에든버러 예술 대학에 진학했다.
1955년 에든버러 예술 대학에서 로니 브라운을 만났고, 이 만남은 훗날 포크 그룹 코리스 결성으로 이어져 약 30년간 파트너십을 유지하게 된다. 윌리엄슨과 브라운은 럭비에 대한 공통된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각각 에든버러 원더러스와 보로우뮤어 럭비 클럽에서 윙 포워드로 뛰며 서로 경쟁하기도 했다.
윌리엄슨은 두 번 결혼했다. 첫 번째 부인은 바이올렛 톰슨이었고, 두 번째 부인은 네덜란드 출신의 니콜레트 반 헐크였다. 그는 두 딸 카렌과 시나를 두었다.
2. 2. 학창 시절
로이 윌리엄슨의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였다. 어머니는 로이와 그의 형 로버트를 자주 음악 행사에 데리고 다니며 음악적 환경에 노출시켰다. 그가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학생 시절, 윌리엄슨은 악보를 읽는 척하며 귀로 리코더를 연주하는 법을 익혔다. 하지만 한 선생님이 이를 알아차리고 그에게 음악 수업 참여를 금지하기도 했다. 그는 웨스터 엘키스 학교와 애버라우어 하우스를 거쳐 모레이의 고든스톤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에든버러 예술 대학에 진학하기 전에는 버그헤드에서 항해술을 가르쳤다. 1955년 에든버러 예술 대학에 입학하여 로니 브라운을 만났고, 이는 훗날 포크 그룹 코리스 결성으로 이어져 약 30년간 파트너십을 유지했다. 윌리엄슨과 브라운은 럭비에 대한 열정도 공유했는데, 각자 에든버러 원더러스와 보로우뮤어 럭비 클럽에서 윙 포워드로 활동하며 서로 맞붙기도 했다.
3. 음악 경력
로이 윌리엄슨은 1962년 에든버러에서 빌 스미스, 론 크루이크생크와 함께 포크 그룹 "코리 포크 트리오"를 결성하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1][2] 초기 멤버 변화를 거쳐 로니 브라운과 함께 2인조 "더 코리스"로 재편되었고, 이들은 스코틀랜드 포크 음악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게 되었다.
윌리엄슨은 다재다능한 음악가이자 작곡가로서, 특히 스코틀랜드의 비공식 국가로 널리 불리는 스코틀랜드의 꽃을 작곡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3] 이 곡은 현재 각종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노래로 사용된다.
또한 그는 창의적인 악기 제작자이기도 했다. 1969년에는 투어 시 가지고 다니는 악기의 수를 줄이기 위해 만돌린, 기타, 12현 반두리아, 심지어 시타르의 공명 현과 유사한 구조까지 결합한 독창적인 악기인 '콤볼린'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여 연주했다.[4]
3. 1. 코리스 결성
윌리엄슨은 1962년 빌 스미스, 론 크루이크생크와 함께 "코리 포크 트리오"를 결성했다.[1][2] 트리오의 첫 공연은 에든버러의 세인트 메리 스트리트에 있는 웨이벌리 바에서 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론 크루이크생크가 임파선 열병으로 탈퇴했다. 트리오는 이미 에든버러 페스티벌 공연 계약을 맺은 상태였기 때문에, 윌리엄슨은 멤버 수를 다시 세 명으로 맞추기 위해 로니 브라운에게 합류를 제안했다.[2] 이후 그룹은 북아일랜드 출신 여성 가수 패디 벨을 영입하여 "코리 포크 트리오 앤 패디 벨"로 활동했다. 트리오의 데뷔 무대에는 관객이 8명뿐이었지만, 페스티벌이 끝날 무렵에는 모든 공연이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1966년, 패디 벨과 빌 스미스가 그룹을 떠났다. 벨은 트리오의 음악과 다른 스타일의 노래를 하고 싶다는 이유였고, 스미스는 로니 브라운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기 때문이었다(스미스 본인은 자신이 완벽주의자였다고 언급했다). 이 변화로 윌리엄슨과 브라운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윌리엄슨은 재능 있는 멀티 악기 연주자이자 가수였고, 브라운 역시 재능 있는 가수였으며 다양한 악기 연주법을 익혔다. 두 사람은 몇 달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집중적으로 연습에 매진했다. 그룹 이름을 "더 코리스"로 바꾸고, 앵거스 코타키에 있는 주빌리 암스 호텔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공연은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고, 이를 계기로 듀오 활동을 이어가며 스코틀랜드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나아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3. 2. 코리스 활동
윌리엄슨은 1962년 빌 스미스, 론 크루이크생크와 함께 "코리 포크 트리오"를 결성했다.[1][2] 트리오의 첫 공연은 에든버러의 세인트 메리 스트리트에 있는 웨이벌리 바에서 열렸다. 몇 주 후 론 크루이크생크는 임파선 열병으로 인해 탈퇴했다. 트리오는 이미 에든버러 페스티벌 공연을 수락한 상태였고, 윌리엄슨은 다시 3명의 멤버를 갖추기 위해 로니 브라운에게 그룹 합류를 제안했다.[2] 이후 그룹은 북아일랜드 출신 여성 가수 패디 벨을 영입하여 "코리 포크 트리오 앤 패디 벨"이 되었다. 트리오의 데뷔 무대에는 관객이 8명에 불과했지만, 페스티벌이 끝날 무렵에는 모든 공연이 만석을 기록했다.1966년까지 패디 벨과 빌 스미스가 탈퇴했다. 벨은 트리오가 부르는 노래와 다른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스미스는 브라운과의 불화로 그룹을 떠났다(스미스는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변화로 윌리엄슨과 브라운 두 사람이 그룹을 이끌게 되었다. 윌리엄슨은 재능 있는 멀티 악기 연주자이기도 한 가수였고, 브라운은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법을 배운 재능 있는 가수였다. 두 사람은 몇 달 동안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더 코리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그들은 앵거스 코타키에 있는 주빌리 암스 호텔에서 공연했다. 공연은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고, 이를 계기로 그들은 듀오 활동을 계속하며 스코틀랜드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점차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얻게 되었다.
3. 3. "스코틀랜드의 꽃" 작곡
윌리엄슨은 1960년대에 스코틀랜드의 꽃을 작곡했으며, 이 노래는 현재 스코틀랜드의 국가의 가장 인기 있는 후보이다. 이 노래는 현재 국제 럭비 및 국제 축구 경기, 그리고 코먼웰스 게임에서 스코틀랜드를 대표한다.[3] 로니 브라운은 2007년 코먼웰스 게임에서 이 노래를 불렀지만, 감정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고 말하며 다시는 부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3. 4. 콤볼린 발명
윌리엄슨은 미술에서 목공에 이르기까지 다재다능했으며, 첫 번째 부인 바이올렛과의 사이에서 얻은 막내딸의 이름을 딴 "쉬나 마가렛"이라는 보트를 공동 설계하기도 했다.[4] 1969년 여름, 그는 여러 악기를 하나로 결합한 두 개의 보완적인 악기인 '콤볼린'을 발명했다. 이는 투어 시 가지고 다니는 많은 악기들을 줄여보고자 고안된 것이었다.콤볼린은 로니 브라운과 로이 윌리엄슨이 각각 연주하는 두 개의 악기로 구성되었다. 브라운의 악기에는 슬라이드를 사용하여 연주하는 4개의 베이스 현이 있는 만돌린과 기타가 결합되었고, 윌리엄슨의 악기에는 기타와 함께 스페인 12현 반두리아가 포함되었다. 반두리아는 그가 코리 포크 트리오 초창기부터 연주해 온 악기였다. 윌리엄슨의 콤볼린에는 인도의 시타르처럼 공명하도록 설계된 13개의 공명 현도 추가되었다.
원래 악기 수를 줄이려는 목적과 달리, 콤볼린은 오히려 투어 밴에 두 개의 악기를 더 추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브라운은 주로 베이스 현이 있는 기타/만돌린 콤볼린을 연주했고, 윌리엄슨은 다른 콤볼린을 연주했다.
콤볼린 제작에는 고급 하드우드 가구와 프리미엄급 티롤산 가문비나무 목재가 사용되었으며, 은과 자개로 장식하여 윌리엄슨의 예술적 감각을 보여주었다. 코리스의 1970년 앨범 《Strings and Things》는 이 새로운 악기를 선보이기 위해 특별히 제작되었으며, 앨범 뒷면 커버에는 악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실렸다.
윌리엄슨은 콤볼린을 완성하기 1년 전에 이미 광고를 했으나, 정작 콘서트 직전에 처음으로 시험 연주를 했을 때는 소리가 끔찍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콘서트 전에 급히 악기들을 다시 만들고 브라운과 함께 연주법을 익혀야만 했다. 콤볼린을 연주할 때 브라운과 윌리엄슨은 종종 무대 위에서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연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4. 개인사
로이 윌리엄슨은 변호사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형제가 한 명 있었다. 그는 두 번 결혼하여 두 딸을 두었다. 젊은 시절 에든버러 원더러스에서 럭비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평생 천식으로 고생했다. 1990년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4. 1. 결혼과 가족
로이 윌리엄슨의 아버지는 변호사인 아치볼드 모이어 맥레이 윌리엄슨이었으며, 로이가 여덟 살 때 자살했다. 어머니 아그네스 에텔 커밍 뷰캐넌 윌리엄슨은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였다. 형제로 로버트 뷰캐넌 윌리엄슨이 있다.윌리엄슨은 두 번 결혼했으며, 두 딸 카렌과 시나를 두었다. 첫 번째 부인은 바이올렛 톰슨이었고, 두 번째 부인은 네덜란드 출신의 니콜레트 반 헐크였다.
관계 | 이름 | 비고 |
---|---|---|
아버지 | 아치볼드 모이어 맥레이 윌리엄슨 | 변호사, 로이가 8살 때 자살 |
어머니 | 아그네스 에텔 커밍 뷰캐넌 윌리엄슨 | 피아니스트 |
형제 | 로버트 뷰캐넌 윌리엄슨 | |
배우자 | 바이올렛 톰슨 | 첫 번째 부인 |
배우자 | 니콜레트 반 헐크 | 두 번째 부인, 네덜란드 출신 |
자녀 | 카렌 윌리엄슨 | 딸 |
자녀 | 시나 윌리엄슨 | 딸 |
4. 2. 건강 문제
로이 윌리엄슨은 젊은 시절 에든버러 원더러스에서 럭비 선수로 활동했다.[5] 이는 밴드 동료인 로니 브라운이 활동했던 팀 보로뮤어의 라이벌 팀이었다. 윌리엄슨은 평생 천식으로 고생했으며, 보통 공연이나 콘서트 전에는 천식 치료를 중단하곤 했다.[6] 그는 1989년 말, 마지막 병세가 나타나기 전까지 꾸준히 공연 활동을 이어갔다.4. 3. 사망
윌리엄슨은 1990년 8월 12일 뇌종양으로 사망했다.[7]5. 유산과 평가
(내용 없음)
5. 1. 음악적 혁신
윌리엄슨은 미술에서 목공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재능을 보였으며, 첫 번째 부인 바이올렛과의 사이에서 얻은 막내딸의 이름을 따 "쉬나 마가렛"이라는 보트를 공동 설계하기도 했다.[4] 그는 음악 분야에서도 혁신을 추구했는데, 1969년 여름 동료 로니 브라운과 함께 여러 악기를 하나의 악기로 결합한 두 개의 상호 보완적인 악기, '콤볼린'(Combolin)을 발명했다. 브라운의 콤볼린은 슬라이드를 사용하여 연주하는 4개의 베이스 현이 있는 만돌린과 기타를 결합한 형태였고, 윌리엄슨의 콤볼린은 기타와 함께 스페인 12현 반두리아를 포함했는데, 이 반두리아는 그가 코리 포크 트리오 시절부터 연주해 온 악기였다.콤볼린은 원래 투어 시 가지고 다니던 많은 악기들을 줄이기 위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지만, 실제로는 투어 밴에 악기 두 개가 더 추가되는 결과를 낳았다. 브라운은 주로 베이스 현이 있는 기타/만돌린 콤볼린을 연주했고, 윌리엄슨은 기타/반두리아 콤볼린을 연주했는데, 이 악기에는 인도의 시타르처럼 소리가 공명하도록 설계된 13개의 공명 현이 추가로 달려 있었다.
콤볼린 제작에는 고급 하드우드 가구에 사용되는 목재와 최상급 티롤산 가문비나무가 사용되었으며, 은과 자개 장식을 더해 윌리엄슨의 예술적인 감각을 드러냈다. 코리스의 1970년 앨범 《Strings and Things》는 이 새로운 악기를 선보이기 위해 특별히 제작되었으며, 앨범 뒷면 커버에는 콤볼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실렸다.
윌리엄슨은 콤볼린을 완성하기 1년 전에 이미 광고를 했지만, 정작 콘서트 직전에 처음으로 시험 연주를 했을 때는 소리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결국 그는 콘서트 직전 악기를 급히 다시 손보고 브라운과 함께 연주법을 익혀야만 했다.
콤볼린을 연주할 때 브라운과 윌리엄슨은 종종 무대 위에서 서로의 자리를 바꿔가며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참조
[1]
웹사이트
The Corrie Folk Trio and Paddie Bell - the Corrie Folk Trio and Paddie Bell
http://www.theballad[...]
2015-10-20
[2]
웹사이트
The Corries Official Website
http://www.corries.c[...]
2018-02-28
[3]
뉴스
The Flower of Scotland
http://news.bbc.co.u[...]
2018-02-28
[4]
웹사이트
Sheena Margaret AH 127 - A Look back in time - Gallery
http://www.trawlerpi[...]
2019-09-30
[5]
웹사이트
True story of man behind The Corries
https://senscot.net/[...]
2011-05-17
[6]
웹사이트
True Story of Man Behind The Corries
http://www.senscot.n[...]
The Herald
2016-04-19
[7]
뉴스
On this day in 1990: Flower of Scotland composer Roy Williamson dies
https://www.scotsman[...]
scotsman.com
2020-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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