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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이라 이에히로 (가타노하라 마쓰다이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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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쓰다이라 이에히로는 가타노하라 마쓰다이라 가문의 3대 당주 마쓰다이라 친타다의 아들로, 센고쿠 시대에 활동한 무장이다. 그는 어린 시절 마타시치로 또는 사타로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아버지 친타다는 마쓰다이라 기요야스를 따랐지만, 이에히로는 오다 가문, 이마가와 가문,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마쓰다이라 모토야스) 사이에서 여러 번 입장을 바꾸며 복잡한 관계를 맺었다. 특히 이마가와 가문을 배신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귀순하는 과정에서 영토 분쟁으로 인해 다시 이마가와 가문으로 돌아가는 등 변동이 심했다. 묘소는 아이치현 가마고리시의 고추지에 있으며, 법명은 겐추인덴 닌요 코테이 도하쿠이다. 그는 미즈노 씨의 딸인 오타케노카타와 결혼하여 아들 마쓰다이라 이에타다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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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이라 이에히로 (가타노하라 마쓰다이라 가)
기본 정보
씨족가타하라 마쓰다이라 가
묘소아이치현가마고리시 니시우라초 기타마바의 고추지
인물 정보
시대센고쿠 시대
출생불명
사망1571년4월 3일
개명사타로, 마타시치로 (유명) → 이에히로
계명겐추인덴 진요 고케이 도하쿠
관위사쓰마노카미
주군마쓰다이라 모토야스이마가와 우지자네 → 마쓰다이라 모토야스
가족 관계
부모아버지: 마쓰다이라 지카타다, 어머니: 불명
배우자정실: 미즈노 다다마사의 딸・오조노카타
자녀이에타다, 이에후사, 사콘, 도리이 모토타다 정실, 이시카와 가즈마사 실
가계
가타하라 마쓰다이라 가 당주전임: 마쓰다이라 지카타다
후임: 마쓰다이라 이에타다
대수: 4

2. 약력

3대 당주 마쓰다이라 친타다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사타로(佐太郎) 또는 마타시치로(又七郎)였다.

아버지 친타다는 마쓰다이라 기요야스를 섬겼으나, 기요야스가 모리야마성 오다씨 공략전(모리야마 붕괴) (덴분 4년, 1535년)에서 사망한 이후 오다 노부히데이마가와 요시모토 사이에서 가문의 입지가 불안정했다. 이에히로 역시 이 시기에 오다 씨와 이마가와 씨 사이에서 복잡한 관계를 겪었으며, 한때 이마가와 요시모토에 의해 가타하라(가타노하라) 영지를 빼앗겼다가 고지 연간(1555년~1558년)에 복귀하여 이마가와 씨를 따르기도 했다.

오케하자마 전투 이후, 마쓰다이라 씨의 당주 마쓰다이라 모토야스(후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마가와 우지자네로부터 독립하자 이를 따랐다. 그러나 에이로쿠 4년(1561년), 후카미조 마쓰다이라 가와의 영토 분쟁에서 불리한 판결을 받자 이에 불만을 품고 이마가와 씨에게 다시 항복하며 모토야스를 배반했다. 하지만 같은 해, 이번에는 이마가와 진영 내에서 하즈 오가사와라 씨의 오가사와라 히로시게 등과 또 다른 영토 분쟁을 겪게 되자, 다시 모토야스에게 귀순하였다.

마쓰다이라 이에히로의 묘(아이치현 가마고리시 고추지)


묘소는 아이치현 가마고리시 니시우라 정 기타바바의 고추지에 있다. 법명은 겐추인덴 닌요 코테이 도하쿠(見中院殿仁誉考呈道伯)이다.

2. 1. 출생과 가독 상속

3대 당주 마쓰다이라 친타다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사타로(佐太郎) 또는 마타시치로(又七郎)였다.

아버지 친타다는 마쓰다이라 기요야스를 섬겼으나, 기요야스가 모리야마성 오다씨 공략전(모리야마 붕괴) (덴분 4년, 1535년)에서 사망한 이후의 행적은 명확하지 않다. 특히 오다 노부히데가 안쇼 성(안조시 안조정 아카즈카 소재)을 공격했을 때(덴분 9년, 1540년)나 아즈키자카 전투 (덴분 11년, 1542년) 당시 친타다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에히로는 아내의 친정인 미즈노 씨가 이마가와 씨를 배신하고 오다 씨에게 접근하자, 자신의 주군인 마쓰다이라 히로타다와 마찬가지로 아내와 이혼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에히로가 후처 오타케노카타와의 사이에서 아들 이에타다를 낳은 시점이 히로타다의 이혼 시점보다 늦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즉, 이에히로가 미즈노 씨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미즈노 씨나 마쓰다이라 노부타카(히로타다와 대립했던 인물)와 손잡고 히로타다에게 반기를 들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한, 덴분 16년(1547년)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가타하라(가타노하라) 지역을 오쿠다이라 사다토모에게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당시 오다 측에 가담하여 히로타다와 대립하던 이에히로가 이마가와 씨에 의해 가타하라에서 쫓겨났음을 시사할 수 있다. 그러나 고지 연간(1555년~1558년)에는 이에히로가 다시 가타하라로 돌아와 이마가와 씨를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2. 2. 오다 가문과의 관계

아버지 마쓰다이라 친타다는 마쓰다이라 기요야스를 따랐으나, 기요야스가 모리야마 붕괴 (덴분 4년, 1535년)로 사망한 후 오다 노부히데의 안쇼 성 공격(덴분 9년, 1540년)이나 아즈키자카 전투 (덴분 11년, 1542년) 당시 아버지 친타다의 행적은 명확하지 않다.

이에히로의 아내 친정인 미즈노 씨가 이마가와 씨를 배반하고 오다 씨에게 접근하자, 통설에 따르면 이에히로는 주군 마쓰다이라 히로타다와 마찬가지로 아내와 이혼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타케노카타와의 아들인 이에타다의 탄생이 히로타다의 이혼보다 늦은 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즈노 씨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동 씨족이나 마쓰다이라 노부타카와 결탁하여 히로타다에게 반기를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덴분 16년(1547년)에는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가타하라를 오쿠다이라 사다토모에게 주었는데, 이는 오다 측에 속해 히로타다와 대립했던 이에히로가 이마가와 씨에게 가타하라를 쫓겨났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하지만, 고지 연간(1555년-1558년)에는 이에히로가 가타하라로 복귀하여 이마가와 씨를 따랐다.

오케하자마 전투 이후, 마쓰다이라 씨의 당주인 마쓰다이라 모토야스 (후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마가와 우지자네로부터 배반하자 이를 따랐지만, 후카미조 마쓰다이라 가의 마쓰다이라 이타다・야스사다와의 영토 분쟁에서 불리한 판결이 내려진 것에 불만을 품은 이에히로는 에이로쿠 4년(1561년)에 이마가와 씨에게 항복하여 배반해 버린다. 하지만, 이번에는 같은 이마가와 진영에 속한 하즈 오가사와라 씨의 오가사와라 히로시게 등과의 영토 분쟁으로 같은 해에 다시 모토야스에게 귀순했다.

2. 3. 이마가와 가문과의 관계

통설에 따르면, 아내의 친정인 미즈노 씨가 이마가와 씨를 배반하고 오다 씨에게 접근하자, 주군인 마쓰다이라 히로타다와 마찬가지로 아내와 이혼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타케노카타와의 사이에서 아들 이에타다가 태어난 시점이 히로타다의 이혼보다 늦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에히로가 미즈노 씨와의 관계를 유지하며 마쓰다이라 노부타카 등과 결탁하여 히로타다에게 반기를 들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덴분 16년(1547년),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가타하라 성을 오쿠다이라 사다토모에게 주었는데, 이는 당시 오다 측에 속해 히로타다와 대립하던 이에히로가 이마가와 씨에 의해 가타하라에서 쫓겨났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고지 연간(1555년~1558년)에는 이에히로가 가타하라로 복귀하여 이마가와 씨를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오케하자마 전투 이후, 마쓰다이라 씨의 당주 마쓰다이라 모토야스(후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마가와 우지자네를 배반하자 이에히로도 모토야스를 따랐다. 하지만 에이로쿠 4년(1561년), 후카미조 마쓰다이라 가의 마쓰다이라 이타다 및 야스사다와의 영토 분쟁에서 불리한 판결을 받자 이에 불만을 품고 이마가와 씨에게 다시 항복하며 모토야스를 배반했다. 그러나 같은 해, 이번에는 같은 이마가와 진영에 속한 하즈 오가사와라 씨의 오가사와라 히로시게 등과의 영토 분쟁으로 인해 다시 모토야스에게 귀순하였다.

2. 4. 도쿠가와 이에야스(마쓰다이라 모토야스)와의 관계

오케하자마 전투 이후, 마쓰다이라 씨의 당주 마쓰다이라 모토야스(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마가와 우지자네에게서 독립하자 이에히로는 모토야스를 따랐다. 그러나 후카미조 마쓰다이라 가의 마쓰다이라 이타다 및 마쓰다이라 야스사다와의 영토 분쟁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이 내려지자 불만을 품었다. 결국 이에히로는 에이로쿠 4년(1561년)에 이마가와 씨에게 항복하며 모토야스를 배반했다. 하지만 같은 해, 이마가와 진영 내에서 하즈 오가사와라 씨의 오가사와라 히로시게 등과 또 다른 영토 분쟁을 겪게 되자, 다시 모토야스에게 귀순했다.

3. 가계


  • 아버지: 마쓰다이라 지카타다
  • 어머니: 불명
  • 정실: 오타케노카타 - 미즈노 타다마사의 딸, 오다이노카타의 언니
  • * 아들: 마쓰다이라 이에타다

  • 생모 불명의 자녀
  • * 아들: 마쓰다이라 이에후사
  • * 딸: 토리이 모토타다의 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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