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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진량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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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만국진량의 종은 1458년 쇼 타이큐 왕 통치 기간에 주조된 류큐 왕국의 범종이다. 슈리성 정전에 걸려 있었으며, 1945년 오키나와 전투에서 손상되었지만, 1978년 일본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 오키나와 현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실물 크기 복제품이 슈리성 부지에 있다. 종에 새겨진 명문은 류큐 왕국이 해상 무역 국가로 번영했음을 나타내며, '모든 나라를 잇는 다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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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진량의 종
개요
만국진량의 종
만국진량의 종
명칭만국진량의 종 (일본어: 万国津梁の鐘, 반코쿠 신료-노 가네)
로마자 표기Bankoku shinryō no kane
종류동종
지정 문화재국가지정 중요문화재 (1972년 5월 15일 지정)
상세 정보
재료청동
높이154.7cm
지름93.1cm
제작 시기1458년
소재지오키나와현 나하시 슈리성 공원 내
소유자오키나와현
관리 단체오키나와현
역사
제작 배경1458년, 류큐 왕국의 상태왕이 슈리성에 걸기 위해 제작
종에 새겨진 내용"류큐는 남해의 아름다운 나라로서, 배를 통해 여러 나라와 교류하며 번성한다."는 내용
소실오키나와 전투 때 소실
복원1992년에 복원
현재 위치

2. 역사

오늘날 종의 복제품이 있는 슈리성 부지에 재건된 토모야


이 종은 1458년 쇼 타이큐 왕의 통치 기간에 주조되어 슈리성의 세이덴(정전)에 걸려 있었다고 전해진다. 종의 높이는 154.9cm, 입구 지름은 93.1cm이며, 무게는 721kg이다.[1]

1945년 오키나와 전투 중 연합군의 공격으로 검게 그을리고 손상을 입었으나, 기적적으로 파괴는 면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더 이상 종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2]

1978년 일본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1] 현재 원본은 오키나와 현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슈리성 터에는 실물 크기의 복제품이 걸려 있는데,[3] 복제품은 토모야라는 구조물 앞에 위치한다.[4] 다만, 종이 원래 세이덴의 정확히 어느 위치에 걸려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2]

2. 1. 주조 및 설치

만국진량의 종은 1458년 쇼 타이큐 왕의 명으로 주조되었다. 명문에는 '무인년(1458년, 간지명나라 천순 2년에 해당)[9] 6월 19일'이라는 날짜와 '대공(大工) 후지와라 구니요시(藤原国善)'라는 제작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9] 연구자들은 제작자 후지와라 구니요시를 지쿠젠 지역의 아시야 출신 주물 장인으로 추정한다.[11] 15세기 중반, 류큐 왕국에서 제작된 다른 범종들처럼 이 종의 제작에도 규슈 북부 지역의 주물 장인들이 참여했는데, 이는 당시 스오를 중심으로 규슈 북부를 장악했던 다이묘 오우치 씨와 류큐 왕국 간의 교류 관계가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11] 특히 오우치 노리히로와 오우치 마사히로 대에 걸쳐 오우치 가문은 남방과의 교역을 적극 추진했다.[11] 또한, 종의 명문을 비롯한 여러 류큐 종 명문을 작성한 계은안잠이 규슈 주물 장인들을 류큐로 초빙하는 데 관여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11]

종의 크기는 높이 154.9cm, 입구 지름 93.1cm이며, 무게는 721kg에 달한다.[1][10] 당시 류큐 왕국에서 만들어진 종들 중에서는 비교적 큰 편에 속하며, 일본식 범종(화종, 和鐘)의 형태를 따르면서도 세로띠를 4개만 두거나 종 아랫부분의 띠(하대, 下帶)를 생략하고, 말발굽 모양의 고리(고마노쓰메, 駒の爪)를 2단으로 크게 만드는 등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9]

종에 새겨진 명문은 임제종 승려 계은안잠이 작성한 것으로, 류큐 왕국의 해상 교역 번영을 찬양하고 불교를 통해 나라를 보호한다는 진호국가(鎭護國家) 사상을 담고 있다. 이 종의 주조는 쇼 타이큐 왕이 1457년 왜구에게 납치되었던 조선 백성을 송환하는 대가로 조선에서 대장경을 들여온 사건과 더불어, 당시 왕의 불교 진흥 및 진호 국가 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사업이었다.

종이 처음 설치된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근대에 슈리성 정전에 걸려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것이 원래 위치였는지는 불분명하다.[2] 원래 설치 장소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제기된다. 하나는 명문을 작성한 계은안잠이 주지로 있었던 상국사(相國寺, 18세기 이전에 폐사)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쇼 타이큐 왕의 깊은 불심을 고려하여 왕의 거처인 슈리성 정전 내부에 설치되었다는 설이다.

2. 2. 제작 배경

쇼타이큐 왕은 불교 진흥에 힘썼는데, 대표적으로 1457년 왜구에게 납치되었던 조선 백성을 송환하고 그 대가로 조선으로부터 대장경을 들여온 사례가 있다.[9] 이러한 왕의 불교를 통한 국가 진호 사상은 "만국진량의 종" 제작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범종은 무인년(1458년) 6월 19일에 제작되었으며[9], "대공(大工) 후지와라 구니요시(藤原国善)"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9] 제작자인 후지와라 구니요시는 지쿠젠 아시야의 주물사로 추정된다.[11]

15세기 중반 류큐에서 제작된 다른 범종들처럼, 이 종의 제작에도 부젠이나 지쿠젠의 주물사가 참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당시 스오를 거점으로 북 규슈 지역을 지배하던 수호 다이묘 오우치 씨와 류큐 왕국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11] 특히 오우치 노리히로와 오우치 마사히로는 남방과의 교역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인물들이다.[11] 또한, "만국진량의 종"을 포함한 여러 류큐 범종의 명문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케이인 안센(渓隠安潜)이 북 규슈 주물사를 류큐로 초빙하는 데 관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11]

범종의 명문은 쇼타이큐 왕의 불교 진흥 업적을 기리고 있으며, 왕이 들여온 대장경과 함께 국가의 보물로 여겨졌다. 다만, 범종이 원래 걸려 있던 장소에 대해서는 명문에 기록된 대로 왕의 거처인 슈리성 정전인지, 혹은 명문 작성에 관여한 케이인 안센이 주지로 있던 상국사(18세기 이전 폐사 추정)인지에 대해 학자들 간의 의견이 나뉜다.

2. 3. 오키나와 전투와 보존

제2차 세계 대전 중, "만국진량의 종"은 금속류 회수령에 따른 공출 대상에서 제외되었다.[12] 그러나 1945년 오키나와 전투 당시 연합군의 폭격과 총격으로 인해 검게 그을리고 손상을 입었으며,[2] 종 표면에는 이때 생긴 탄흔이 여전히 남아 있다.[12]

종은 기적적으로 거의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았지만, 더 이상 소리를 내지는 못하게 되었다.[2]

1978년 일본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1] 현재 이 종은 오키나와 현립 박물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고, 슈리성 터에는 실물 크기의 복제품이 걸려 있다.[3]

3. 명칭

복제 종의 비문


만국진량의 종(萬國津梁의 鐘)이라는 이름은 종에 새겨진 명문에서 유래했다.[3] '만국진량(萬國津梁)'은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만 개의 나라를 잇는 다리'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나라' 또는 '수많은 나라를 잇는 다리'를 의미한다. 이는 14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남중국해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서 중국,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와 활발한 교류를 펼쳤던 류큐 왕국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3] 영어로는 종종 "Bridge of Nations Bell"로 번역된다.[5][6][7]

일본어 명칭은 万国津梁の鐘|반코쿠 신료 노 카네일본어인데, 여기서 万国|반코쿠일본어는 '모든 나라', 津梁|신료일본어는 '나루의 다리' 즉 '다리'를 뜻하며, 鐘|카네일본어는 종을 의미한다. 종의 표면에 새겨진 비문에는 "류큐국은 남해의 뛰어난 곳으로, 삼한(한반도 국가들)의 빼어남을 모으고, 대명(명나라)과는 의지하는 관계이며, 일본과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이 두 나라 사이에 솟아난 봉래도(류큐)이다. 배를 타고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라는 내용이 있어, 당시 해양 무역 국가로서 번성했던 류큐 왕국의 기개를 엿볼 수 있다.[14] 오늘날 오키나와현에서 이 종을 '만국진량의 종'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이 종의 정식 명칭은 "구 슈리성 정전 종(旧首里城正殿鐘|큐 슈리조 세이덴 노 카네일본어)"이다.[1]

'만국진량'이라는 명칭은 현대에도 오키나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2000년 제26회 G8 정상회담(오키나와 G8 정상 회의)이 열렸던 나고시의 회의장 이름인 '만국진량관(万国津梁館)'은 이 종의 이름에서 따왔다.[19] 또한 오키나와현청의 제1지사 접견실에는 이 종의 명문을 새긴 병풍이 놓여 있으며,[20] 오나가 타케시 전 오키나와현 지사는 2016년 위령의 날 추도식에서 이 명문을 인용하며 오키나와가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일본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21]

4. 명문

이 종은 영어로 "Bridge of Nations Bell영어"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으며,[5][6][7] 이는 일본어 통칭인 万国津梁の鐘|반코쿠 신료노 카네일본어를 번역한 것이다. '반코쿠(万国)'는 '모든 나라' 또는 '수많은 나라'를, '신료(津梁)'는 '항구(津)를 잇는 다리(梁)'를 의미한다. 이 명칭은 14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류큐 왕국이 남양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서 중국,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번영했던 역사를 담은 종의 명문에서 유래했다.[3]

종의 공식 명칭은 旧首里城正殿鐘|구 슈리성 정전 종일본어이다.[1]

명문은 임제종 승려이자 류큐 상국사의 2세 주지였던 계은안잠이 한문으로 작성하였다.[13] 주요 내용은 류큐 왕국이 삼한(한국), 대명(중국), 일본 사이에 위치하여 '만국의 다리(津梁)' 역할을 하며 해상 무역으로 번성했음을 자부하는 구절[14]과 함께, 쇼타이큐 왕 치세 하에 불교를 융성시켜 국가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이는 당시 조선에서 대장경을 들여온 것에 대한 보답의 의미도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4. 1. 내용



종의 표면에는 임제종 승려이자 류큐·상국사의 2세 주지인 계은안잠이 지은 한문 명문이 새겨져 있다.[13] 명문은 "류큐국은 남해의 명승지로서, 삼한의 수려함을 모으고, 대명을 보차로 삼고, 일본을 혀와 이로 삼는다. 이 둘의 중간에 있어서 솟아나는 봉래도이다. 배와 노로 만국의 뱃길이 된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는 일본과 명나라 사이에 위치하여 해양 무역 국가로 번성했던 류큐 왕국의 기개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는다.[14] 이 구절 때문에 현재 오키나와에서는 이 종을 흔히 "만국진량의 종"(万国津梁の鐘|반코쿠 신료노 카네일본어)이라고 부른다. '진량(津梁)'은 다리 또는 나루터를 의미하며, 불교에서는 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15]

명문 후반부에는 불교의 흥륭을 기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이는 당시 내정이 불안정했던 쇼타이큐 왕 시대에 불교를 통해 나라를 안정시키려 했던 진호국가 사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쇼타이큐 왕은 1457년 조선에서 대장경을 들여왔으며, 이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 이 종을 만들어 세웠다고 전해진다. 명문의 대의는 다음과 같다.

> 중국과 일본에서 온 여러 문화 덕분에 류큐는 번영하고, 세상의 주인이신 왕[16]께서 하늘로부터 왕위를 받아 백성을 보살피니 땅은 풍요롭다. 삼보(불교)를 융성하게 하고 사은[17]에 보답하고자 이 종을 만들어 왕궁 정전에 건다. 왕께서는 중국의 제도를 따라 나라를 다스리고, 선왕의 가르침을 본받아 무예를 장려하신다. 이 종소리가 삼계의 모든 중생을 구원하고, 왕의 만수무강과 왕위의 영속을 기원한다.

이어서 사언시 형식이 이어진다. 명문 전문은 다음과 같다.

> 류큐국자는 남해 승지이요

> 종삼한지 수이 대명을

> 보차로 삼고 일역을

> 순치로 삼아

> 이 두 중간에 솟아나는 봉래

> 도이니 배와 노로 만국의

> 진량이 되도다. 이산지보가 십방에 가득하여

> 찰지의 영과 인물이 멀리

> 화하의 인풍을 떨치니

> 고로 우리

> 왕 대세주 경인에 경생하여 상태구가 이에

> 보위를 고천에 이어 창생을

> 후지에서 기르시니 삼보를 흥륭하게 하고 사은에 보답하려

> 새로이 거종을 주조하여

> 본주 중산 국왕 전전에 걸어

> 착하니 정헌장은 삼대의

> 후에 문무를 백왕의 앞에

> 다스리시고

> 삼계의 중생을 아래로 구제하며 위로는

> 만세 보위를 축원하노라. 명을 받아 상국 주지

> 계은안잠 노인이 명문을 구하여 이르되

> 수미산 남쪽 세계는 드넓고 크도다

> 우리 왕이 나타나 괴로운 중생을 구제하네

> 옥상아를 끊고 달의 고래를 부르짖으며

> 사해에 넘쳐 범음성을 떨치네

> 긴 밤의 꿈을 깨워 하늘의 정성을 전하네

> 요의 바람은 영원히 불고 순의 밝음은 날마다 빛나네

> 무인년(1458년) 6월 19일 신해에

> 대목수 후지와라 구니요시

> 상국 계은 노인이 기록하다[18]

종의 크기는 높이 154.9cm, 입지름 93.1cm, 무게 721kg으로[10], 류큐에서 만들어진 종 중에서는 비교적 큰 편이다. 일본식 종(和鐘)의 형태를 따르면서도 세로 띠를 4개만 두거나 아래쪽 띠(下帶)를 생략하고, 말굽 모양의 고리(駒の爪)를 크게 두 단으로 만드는 등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9] 제작 시기는 명문에 "무인 6월 19일"(1458년)[9]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제작자는 "대공(大工) 후지와라 구니요시(藤原国善)"로 명시되어 있다.[9] 연구자들은 이 제작자를 지쿠젠 아시야 지역의 주물사로 추정한다.[11]

15세기 중반 류큐 왕이 부젠이나 지쿠젠의 주물사를 초빙하여 종을 제작한 사례가 여럿 확인되는데, 이는 당시 스오를 중심으로 북규슈 지역을 장악했던 수호 다이묘 오우치 씨와 류큐 간의 교류가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11] 특히 오우치 씨는 오우치 노리히로와 오우치 마사히로 대에 걸쳐 동남아시아와의 교역을 활발히 추진했다.[11] 또한, 명문을 쓴 계은안잠이 북규슈 주물사의 류큐 초빙에 관여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11]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금속류 회수령의 대상에서는 제외되었으나, 오키나와 전투 과정에서 포탄 파편 등에 맞아 손상을 입었으며, 종 표면에는 당시의 탄흔이 남아있다.[12]

이나미네 케이이치 지사. 배경의 병풍에 "만국진량의 종" 명문


현대 오키나와에서는 이 종의 명문 전반부에 나타난 해양 교역 국가로서의 기개를 강조하며 '만국진량의 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14] 2000년 제26회 주요국 정상 회의(오키나와 G8 정상회의)가 열렸던 나고시의 회의장 명칭인 만국진량관도 이 종에서 유래했다.[19] 오키나와현청 제1지사 접견실에는 서예가 가야하라 난류가 쓴 이 명문 휘호 병풍이 놓여 있어, 지사의 기자 회견 등 언론 노출 시 자주 등장한다.[20] 오나가 타케시 전 오키나와현 지사는 2016년 위령의 날 추도식 연설에서 이 명문을 인용하며 오키나와가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일본을 잇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21]

4. 2. 명문 작성자

종의 표면에는 임제종 승려이자 류큐 상국사의 2세 주지였던 계은안잠이 작성한 한문 명문이 새겨져 있다.[13] 이 명문은 당시 류큐 왕국의 국제적 위상과 해양 무역 국가로서의 기개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류큐국은 남해의 명승지로서, 삼한의 수려함을 모으고, 대명을 보차로 삼고, 일본을 혀와 이로 삼는다. 이 둘의 중간에 있어서 솟아나는 봉래도이다. 배와 노로 만국의 뱃길이 된다"라는 구절은 조선(삼한), 중국(대명), 일본 사이에서 중계 무역으로 번영했던 류큐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14] 이 구절 때문에 종종 "만국진량(萬國津梁, 만국의 다리)"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명문 후반부에는 불교의 번영을 기원하고 쇼타이큐 왕의 통치를 찬양하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이는 불교를 통해 국가의 안정을 꾀하려 했던 당시의 진호국가 사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명문 마지막에는 "명을 받아 상국 주지 계은안잠 노인이 명문을 구하여 이르되" 및 "상국 계은 노인이 기록하다"라고 명시하여 작성자가 계은안잠임을 다시 한번 밝히고 있다.[18]

5. 형태

"만국진량의 종"은 높이 154.9cm, 구경 93.1cm, 무게 721kg이다.[10] 류큐에서 만들어진 범종 중에서는 비교적 작은 것이 많지만, 이 종은 대형 작품에 속한다.

전체적으로 일본식 종인 화종(和鐘)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일반적인 화종과 다른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세로 방향의 줄무늬인 세로띠(縦帯)를 4개만 두었고, 종 아랫부분의 테두리인 하대(下帶)를 생략했다. 또한 종을 거는 고리 부분의 말발굽 모양 장식(駒の爪)이 크고 2단으로 되어 있다.[9]

종에는 "무인(戊寅) 6월 19일"이라는 제작 날짜와 "대공(大工) 후지와라 구니요시(藤原国善)"라는 제작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9] 여기서 무인(戊寅)년은 서기 1458년(천순 2년)을 의미한다.[9] 제작자인 후지와라 구니요시는 지쿠젠 아시야 지역의 주물 장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1] 이는 범종 연구자인 츠보이 료헤이(坪井良平)와 스기야마 히로시(杉山洋)의 견해이다.[11]

6. 오키나와의 상징

"만국진량의 종"은 일본명나라 사이에 위치하여 해양 무역 국가로서 번영했던 류큐 왕국의 기개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여겨진다.[14]

2000년에 개최된 제26회 주요국 정상 회의(오키나와 G8 정상 회의)의 회장으로 사용된 나고시의 "만국진량관" 명칭은 이 종의 이름에서 유래했다.[19]

오키나와현청의 제1지사 접견실에는 가야하라 난류(茅原南龍)가 이 종의 명문을 휘호병풍이 놓여 있다. 이 병풍은 지사의 기자 회견 때 등 언론에 자주 노출된다.[20]

오나가 타케시 전 오키나와현 지사는 2016년 6월 23일 위령의 날 추념식 인사말에서 이 종의 명문을 인용하며, 오키나와가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일본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21]

종을 소장하고 있는 오키나와현립박물관·미술관에서는 관람객들의 "실제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는 의견에 따라 X선 등으로 종의 상태를 조사한 후, 2016년 11월 실제 종소리를 녹음했다. 2017년 2월부터는 개관 시간 중 매시 정각과 30분에 녹음된 종소리를 관내에 방송하고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Bankoku shinryō no kane http://word.uruma.jp[...] 2009-09-05
[2] 서적 Okinawa Chanpurū Jiten Yamakei Publishers
[3] 뉴스 Bankoku Shiryō no kane http://ryukyushimpo.[...] Ryukyu Shimpo 2003-03-01
[4] 웹사이트 Roukokumon Gate http://www.oki-park.[...] 2009-09-05
[5] 웹사이트 Shuri Castle - Bridge of Nations Bell http://www.hdrjapan.[...] 2009-09-05
[6] 웹사이트 The Ryukyuan Spirit of Hospitality http://www.ocvb.or.j[...] 2009-09-05
[7] 웹사이트 The History of the Ryukyus http://oki-park.jp/s[...] 2009-09-05
[8] 웹사이트 Translation based on Japanese summary given at Governor's Room; Okinawa Prefecture Official Site http://www.pref.okin[...] 2009-09-05
[9] 문서 銅鐘(旧首里城正殿鐘)
[10] Weblio 『沖縄大百科』「万国津梁の鐘」 https://www.weblio.j[...]
[11] 서적 日本の美術 No. 533 琉球の金工 2010-10-10
[12] 간행물 『みんなの文化財図鑑』有形文化財編 工芸品(梵鐘)01 https://www.pref.oki[...] 沖縄県教育委員会 2022-09-03
[13] 서적 琉球・沖縄史 東洋企画
[14] 뉴스 琉球新報 琉球新報 2003-03-01
[15] 사전 『デジタル大辞泉』「しんりょう【津梁】」 https://dictionary.g[...] goo国語辞書
[16] 문서 (琉球国王。ここでは尚泰久のこと)
[17] 문서 ここでは世の主、琉球神道、三宝、衆生の4つ。
[18] 웹사이트 知事応接室の屏風について(銘文全文と読み下し文) http://www.pref.okin[...] 沖縄県
[19] 웹사이트 万国津梁館の魅力 http://www.shinryoka[...] 万国津梁館
[20] 웹사이트 知事応接室の屏風について http://www.pref.okin[...] 沖縄県
[21] 뉴스 沖縄慰霊の日、翁長知事「非人間的な凶悪事件に、県民は不安と憤り」辺野古移設中止求める(全文) https://www.huffingt[...] ハフィントン・ポスト 2016-06-23
[22] 웹사이트 万国津梁の鐘、こんな音だったんだ… 沖縄県立博物館・美術館に響く「ゴーン」 http://www.okinawati[...] 沖縄タイムス 2017-02-26
[23] 웹사이트 「万国津梁の鐘」録音し放送、沖縄県立博物館・美術館 : お出かけ https://web.archive.[...] 読売新聞 2017-03-27
[24] 뉴스 Bankoku Shiryō no kane https://ryukyushimpo[...] Ryukyu Shimpo 200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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