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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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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장은 본래 백제 시대의 무송현과 장사현이 병합된 지역으로, 신라 경덕왕 때 무송현과 장사현으로 개칭되어 무령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시대에도 유지되다가, 조선 태종 17년에 두 고을을 병합하여 무장으로 칭하고 진을 설치했다. 이후 고종 32년 군으로 승격되어 전주부에 속했다가 전라남도, 전라북도로 소속이 변경되었으며,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고창군에 병합되었다.

2. 역사

무장은 본래 무송과 장사 두 고을이 병합된 고을이다. 무송은 백제 시절의 송미지현인데 신라 경덕왕 16년 무송현으로 고쳤고, 장사는 백제 시절 상로현인데 신라 경덕왕 16년 장사현으로 고쳤다. 이 두 현은 모두 이웃 무령군의 영현이었고, 고려에 들어서도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장사에는 감무를 두어 무송을 겸임시켰다. 조선 태종 17년 이 두 고을을 병합하여 무장이라 하고 진을 설치, 병마사가 현 행정까지 겸임시켰다(나주진관). 세종 5년 병마사를 첨절제사로 고치고, 그 뒤 현감을 두었다. 고종 32년 군으로 승격되어 전주부에 속했다가 1896년(건양 원년) 전라남도, 1907년(융희 원년) 전라북도로 소속이 변경되었으며, 1914년 고창군에 병합되었다.

2. 1. 백제와 통일신라 시대

무송현은 백제 때 송미지현이라 불렸으며, 신라 경덕왕 때 무송현으로 개칭되어 무령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시대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장사현은 백제 때 상로현이라 불렸으며, 신라 경덕왕 때 장사현으로 개칭되어 무령군의 영현이 되었고, 고려 시대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1]

2. 2. 고려 시대

무송현과 장사현은 고려 시대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장사현에 감무가 파견되어 무송현을 겸임하게 되었다.[1]

2. 3. 조선 시대

조선 태종 17년(1417년) 무송현과 장사현을 통합하여 무장현이라 칭하고, 진(鎭)을 설치하여 병마사가 현 행정을 겸임시켰다(나주진관).[1] 세종 5년(1423년) 병마사를 첨절제사로 고치고, 그 뒤 현감을 두었다.[1]

2. 4. 대한제국 시기

1895년 (고종 32년): 무장군으로 승격되어 전주부에 속하였다.[1] 1896년(건양 원년): 전라남도에 소속되었다.[1] 1907년 (융희 원년): 전라북도로 소속이 변경되었다.[1]

2. 5. 일제강점기

1914년 일제는 행정구역 통폐합을 실시하여 무장군을 폐지하고 고창군에 병합하여 무장면이 되도록 하였다.[1]

2. 6. 1914년 이후

령 제111호에 따라 행정구역이 개편되었다. 기존 무장군 지역은 무장면, 공음면, 상하면, 해리면, 성송면, 대산면, 심원면 등으로 분할되어 고창군에 편입되었다.[1]

1914년의 행정구역[1]과 현재의 행정구역 비교
구 행정구역신 행정구역 (고창군)
무장군 일동면, 이동면무장면
무장군 탁곡면, 백석면석곡면
무장군 동음치면, 와공면공음면
무장군 상리면, 하리면상하면
무장군 오리동면, 청해면해리면
무장군 성동면, 원송면성송면
무장군 대제면, 대사면, 장자산면대산면
무장군 심원면심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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