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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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문태수는 대한제국 시기 의병으로, 본명은 태현이며 태서, 태서로도 불린다. 1904년 금강산에서 병서를 배우고, 1905년 지리산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삼남 일대에서 활동했다. 1907년 13도연합 의병부대 호남창의대장으로 서울 진격 계획에 참여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무주를 근거지로 의병 활동을 지속했다. 1911년 체포되어 1913년 옥중에서 자결 순국했으며, 1963년 대한민국 정부는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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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은 1868년 출생하여 을미사변 이후 의병을 일으켰고, 13도 창의군 총대장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사형당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을 추서했다. - 13도 창의군 - 허위 (18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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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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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문태수는 본명이 태현이며, 태서라고도 불렸다. 1904년 금강산에서 병서를 배웠고, 1905년 지리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906년 팔공산으로 이동하여 장수읍 함락, 무주 부남면 습격 등의 활동을 벌였다. 이후 무주 덕유산을 근거로 삼남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했다. 1907년 12월, 13도연합 의병부대의 호남창의대장으로 서울 총공격에 참가했으나, 총대장 이인영의 부친상으로 인한 귀향으로 서울 진격 계획이 좌절되자 무주로 돌아왔다. 1908년 2월 무주주재소를 습격하다 체포되었으나 탈출, 4월에는 신명선 부대와 장수읍을 습격하여 학교와 군청 등을 불태웠다. 이후 용담군 이동면 장전리, 남원 이문성 동북방, 경부선 이원역 등을 습격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11월 이후 무주군을 중심으로 금산, 영동, 옥천, 상주, 청주, 보은 등지에서 활동했다. 1910년 서울 진격을 시도했으나 병력 부족으로 덕유산으로 돌아와 재기를 꾀하던 중 1911년 8월 체포되었다.
2. 1. 초기 의병 활동 (1904년 ~ 1907년)
문태수의 본명은 태현(泰鉉)이며, 태서(泰西)·태서(泰瑞)라고도 불렸다. 1904년 금강산에서 병서를 배웠고, 1905년 지리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906년에는 팔공산으로 이동하여 장수읍을 함락하고 무주 부남면을 습격하는 등 본격적인 의병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무주 덕유산을 근거지로 삼남 일대에서 활동했다.2. 2. 13도연합 의병부대 참여 및 좌절 (1907년)
1907년 12월, 각도 의병부대가 서울을 총공격하려고 할 때 호남군 100명을 이끌고 참가하여 13도연합 의병부대에서 호남창의대장을 맡았다. 그러나 총대장인 대한관동창의장 이인영이 부친상 때문에 귀향하면서 서울 진격 계획이 좌절되자 무주로 돌아왔다.2. 3. 후기 의병 활동 (1908년 ~ 1911년)
1908년 2월 무주주재소를 습격하다가 붙잡혔으나 탈출했다. 4월 신명선(申明善) 부대와 장수읍을 습격하여 학교와 군청 등을 불태웠다. 이후 용담군 이동면 장전리, 5월 남원 이문성 동북방, 10월 경부선 이원역을 습격하고 방화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11월 이후에는 무주군을 거점으로 금산, 영동, 옥천, 상주, 청주, 보은 등지에서 활동했다. 1910년 서울 진격을 계획했으나 병력 부족으로 덕유산으로 돌아와 재기를 도모하던 중 1911년 8월 체포되었다.2. 4. 체포 및 순국 (1911년 ~ 1913년)
대구형무소에서 서울로 옮겨진 뒤 1913년 2월 옥중에서 자결했다.3. 사후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문태수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3. 1. 대한민국 정부의 추서
1963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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