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촌 (돗토리현 게타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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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호촌은 1889년 10월 1일에 돗토리현 게타카군에 발족하여, 1953년 7월 1일 돗토리시에 편입되어 폐지된 촌이다. 1889년 정촌제 시행으로 시모아지노, 아사즈키, 가미아지노, 다케오, 무카이쿠니야스, 겐타 6개 촌이 합병되어 설립되었으며, 1896년 게타군에 속하게 되었다. 1915년에는 대자 명칭이 변경되었고, 1953년 돗토리시에 편입되면서 7월 1일 폐지되었다. 촌장으로는 가나야 요시치카 등이 역임했으며, 겐타 다리와 같은 교통 시설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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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호촌 (돗토리현 게타카군) - [옛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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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자치체 명칭 | 미호촌 |
로마자 표기 | Mihoson |
구분 | 촌 |
폐지일 | 1953년 7월 1일 |
폐지 이유 | 편입 합병 |
폐지 상세 | 고베촌, 다이와촌, 미호촌, 다이쇼촌, 도고촌, 메이지촌, 도요미촌, 마쓰보촌, 다이고촌, 요시오카촌, 지요미즈촌, 고야마촌, 스에쓰네촌, 구라타촌, 오모카게촌 → 돗토리시 |
현재의 자치체 | 돗토리시 |
위치 | 기가 군 미호 촌 아사즈키 27번지 |
면적 | 5.77 |
인구 | 2555 |
인구 조사 시점 | 1950년 |
지리 | |
인접 자치체 | 돗토리시, 다이와촌, 도고촌, 이와미군 구라타촌 |
기타 정보 |
2. 역사
에도 시대 당시 현재의 미호촌 지역은 돗토리번 영지로, 고쿠사군 아지노고(味野郷)에 속했던 가미아지노촌, 시모아지노촌(가지 마을 아사즈키촌 포함), 지쿠부촌과 오미군 미토코보(三戸古保)에 속했던 구니야스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1]. 이 중 구니야스촌은 센다이가와의 큰 홍수로 강 흐름이 바뀌면서 서쪽 강둑의 무카이쿠니야스촌과 겐타촌으로 나뉘었다. 게이초 연간(1596년~1615년)에 오미군을 다스리던 이케다 나가요시와 고쿠사군을 다스리던 가메이 고레노리 사이에 홍수 후 생긴 땅의 소유권을 두고 다툼이 있었으나, 막부의 결정으로 구니야스촌의 영지가 되었다고 전해진다[13]. 이후 무카이쿠니야스촌과 겐타촌은 정식으로 분리되어 고쿠사군에 편입되었고, 기존 아지노고의 4개 촌과 합쳐 총 6개 촌이 미호촌의 영역이 되었다.
촌의 이름은 본래 쌀 생산지임을 나타내는 '미즈호(瑞穂)'로 정하려 했으나, 이미 기타군에 미즈호 촌이 존재했기 때문에 (당시 다카쿠사군과 기타군은 같은 군청 관할이었다) '미즈호'에서 '즈'를 제외한 '미호'로 명명되었다[13].
1889년 (메이지 22년) 10월 1일, 정촌제 시행에 따라 다카쿠사군 소속의 시모아지노촌, 아사즈키촌, 가미아지노촌, 다케오촌, 무카이쿠니야스촌, 겐타촌이 합병하여 '''미호촌'''이 발족하였다. 1896년 (메이지 29년) 4월 1일에는 군제 시행으로 다카쿠사군과 게타군의 구역이 통합되어 게타카군이 설치되면서 게타카군 미호촌이 되었다. 이후 1953년 (쇼와 28년) 7월 1일, 돗토리시에 편입되면서 미호촌은 폐지되었다[3][4].
2. 1. 연혁
에도 시대에는 돗토리번 영지인 고쿠사군 아지노고에 속했던 가미아지노촌, 시모아지노촌(가지 마을로 아사즈키촌 포함), 지쿠부촌과, 오미군 미토코보에 속했던 구니야스촌이 있었다[1].구니야스촌은 센다이강의 대홍수로 유로가 변경되면서 서쪽 강둑에 위치하게 된 가지 마을인 무카이쿠니야스촌 및 톳치인 겐타의 3개 지역으로 나뉘었다. 게이초 연간(1596년~1615년) 오미군을 지배하던 이케다 나가요시는 홍수 후 생긴 하천 가운데의 땅(中州)의 영유권을 두고 고쿠사군을 지배하던 가메이 고레노리와 다투었으며, 막부의 재정에 따라 구니야스촌의 영지가 되었다고 전해진다[13].
이후 무카이쿠니야스촌과 겐타촌은 정식으로 분리되어 고쿠사군에 편입되었고, 기존 아지노고의 4개 촌을 더한 총 6개 촌이 합병하여 미호촌의 영역이 되었다.
- 1834년 (덴포 5년) - 구니야스촌에서 가지 마을인 무카이쿠니야스촌을 구니야스촌 신덴으로 분촌[13].
- 1868년 (메이지 원년) - 구니야스촌에서 분리된 땅인 겐타를 하나의 촌으로 분촌[13].
- 1869년 (메이지 2년) - 시모아지노촌에서 가지 마을인 아사즈키촌을 분촌. 단, 막말에는 실질적으로 독립했던 것으로 보임[13].
- 1873년 (메이지 5년) - 무카이쿠니야스촌, 겐타촌의 소속 군이 오미군에서 다카쿠사군으로 변경됨.
- 1889년 (메이지 22년) 10월 1일 - 정촌제 시행에 따라 시모아지노촌, 아사즈키촌, 가미아지노촌, 다케오촌, 무카이쿠니야스촌, 겐타촌이 합병하여 다카쿠사군 '''미호촌'''이 발족. 구 촌 이름을 계승한 6개의 오아자를 편성함.
- 1896년 (메이지 29년) 4월 1일 - 군제 시행에 따라 다카쿠사군, 게타군의 구역을 합쳐 게타카군이 발족하면서, 게타카군 미호촌이 됨.
- 1915년 (다이쇼 4년) 1월 1일 - 「미호촌 오아자 ○○촌」 표기에서 오아자 명칭 뒤의 「촌」 글자를 삭제하고, 「미호촌 오아자 ○○」로 개칭함[2].
- 1953년 (쇼와 28년) 7월 1일 - 돗토리시에 편입됨. 같은 날 미호촌은 폐지됨[3]. 합병 기념식은 닛신 초등학교에서 거행됨[4].
3. 행정
미호촌의 행정 중심지인 역장(役場)은 여러 차례 위치를 변경하였다. 1883년(메이지 16년)에는 연합 호장역장이 죽생촌의 카나야 요시치카 자택에 설치되었다.[13] 이후 1889년(메이지 22년) 10월 1일 정촌제 시행으로 미호촌이 발족하면서 초대 역장은 오아자 아사즈키촌에 마련되었다.[5]
역장 위치는 다음과 같이 이전되었다.
- 1891년(메이지 24년): 오아자 카미아지노촌으로 이전[6]
- 1900년(메이지 33년): 오아자 카미아지노촌 내에서 위치 변경[13]
- 1911년(메이지 44년): 오아자 카미아지노 글자 후케 419번지, 미호 심상 고등 소학교 재봉실(현재의 닛쇼덴키 제작소 자리)로 이전[13][7]
- 1934년(쇼와 9년) 8월 12일: 오아자 카미아지노 글자 가부가부 375번지, 미호 심상 고등 소학교 동쪽 옆(현재의 카미아지노 집회소 서쪽 옆)으로 이전[13][8][9]
- 1944년(쇼와 19년) 6월 1일: 오아자 아사즈키 27번지, 미호 농협 사무소 인접 부지(후의 JA 돗토리 이나바 미호 지점 자리)로 이전[10] 이는 전시 체제 하에서 행정과 농업 단체 간의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13]
1953년(쇼와 28년) 5월 4일, 농협 시설에서 발생한 화재로 역장 청사와 농협 사무소가 소실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후 소학교 이과실을 임시 청사로 사용하여 업무를 지속했다.[13] 같은 해 7월 1일, 미호촌이 돗토리시에 편입되면서 돗토리시청 미호 지소가 발족하였고, 구 미호 농협 부지 내 농업 창고 동쪽 옆 모퉁이에 2층 건물의 사무소를 신축하여 업무를 시작했다.[13]
3. 1. 역대 촌장
타케오 촌 외 15개 촌 연합 호장후루우미 촌 외 11개 촌 연합 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