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밤과 안개 (1956년 영화)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밤과 안개 (1956년 영화)는 알랭 레네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나치 강제 수용소의 참상을 흑백과 컬러 영상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1950년대 프랑스 해방 10주년 기념 전시회를 계기로 제작되었으며, 장 카이롤의 시집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영화는 수용소의 모습, 나치 이데올로기, 희생자들의 고통을 묘사하며, 검열과 논란을 거쳐 역사 교육 자료로 활용되었다. 또한, 2014년에는 역대 최고의 다큐멘터리 영화 중 하나로 선정되었으며, 다른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한스 아이슬러 - 베르톨트 브레히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20세기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으로, 서사극 이론을 정립하고 소외 효과를 통해 관객의 비판적 시각을 유도했으며, 나치의 집권으로 망명 생활을 거쳐 동독에서 베를리너 앙상블을 설립했다.
  • 한스 아이슬러 - 루트 피셔
    루트 피셔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공산주의 운동가로, 독일 공산당에서 활동하다 스탈린 노선에 반대하여 제명된 후 반공주의 활동을 하였으며, 나치 정권의 집권으로 망명하여 미국 정보 기관에서 활동하다 파리에서 사망했다.
  • 알랭 레네 감독 영화 - 스모킹/노스모킹
    스모킹/노스모킹은 앨런 레네가 연극을 각색한 영화로, 특정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인물들의 삶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여주며,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다.
  • 알랭 레네 감독 영화 - 입술은 안돼요
    《입술은 안돼요》는 알랭 레네가 연출한 2003년 프랑스 뮤지컬 코미디 영화로, 1931년 동명의 오페레타를 각색하여 배우들이 립싱크로 노래하며, 부유한 파리 사교계 부인의 비밀과 관련된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를 다룬다.
  • 프랑스의 단편 영화 - 몽소 빵집
    몽소 빵집은 파리 몽소 지역을 배경으로 법대생이 이상형의 여성을 찾아 헤매는 과정과 빵집에서 만난 여성과의 관계, 그리고 그 사이에서 겪는 내면의 갈등을 중심으로 사랑, 욕망, 자유 의지와 같은 주제를 탐구하는 에릭 로메르 감독의 1963년 단편 영화이다.
  • 프랑스의 단편 영화 - 품행제로 (1933년 영화)
    억압적인 기숙 학교 학생들의 반항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초현실주의적으로 그린 장 비고 감독의 프랑스 영화 품행제로는 개봉 당시 상영 금지 처분을 받았지만, 이후 영화사에 중요한 작품으로 재평가받았다.
밤과 안개 (1956년 영화) - [영화]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영화 포스터
영화 포스터
원제Nuit et Brouillard
한국어 제목밤과 안개
감독알랭 레네
제작자아나톨 도망
각본장 케이롤
해설미셸 부케
음악한스 아이슬러
촬영기슬랭 클로케, 사샤 비에르니
편집알랭 레네
배급사Argos Films
개봉일1956년
상영 시간32분
제작 국가프랑스
언어프랑스어
제작
제작비알 수 없음

2. 제작 배경

1954년은 프랑스 해방 및 강제 수용소 해방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를 기념하는 여러 행사 중 하나로 올가 웜서와 앙리 미셸이 기획한 '저항, 해방, 강제 이송' 전시회가 파리의 국립 교육 연구소에서 1954년 11월 10일에 열렸다.[3] 이 전시회는 1954년 초 ''제2차 세계 대전 역사 저널'' 특별호에 게재된 미셸과 웜서의 논문을 바탕으로 했다.[1][2]

앙리 미셸은 참전 용사 단체로부터 프랑스 레지스탕스 투사들을 기리는 영화를 제작하라는 압력을 받았지만, 올가 웜서는 강제 수용소를 독일 전쟁 경제의 축소판으로 보여주는 학술적인 접근을 주장했다. 미셸은 이러한 접근 방식이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두 사람은 영화를 "현대 미디어를 통해 역사 연구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했다.[3] 바르샤바 출신인 아나톨 다우만은 아르고스 영화사를 통해 제작을 담당하고 폴란드 국영 제작 회사인 필름 폴스키와 공동 자금 조달을 준비했다.

영화의 가제는 '저항과 강제 이송'이었으나, 이후 독일어 용어 ''밤과 안개''(Nacht und Nebel)의 프랑스어 번역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1941년 12월 7일 힘러가 공포한 법령에 따라 제2차 세계 대전 포로를 처리하는 데 사용된 용어였다. 이 법령은 나치 독일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수용소로 이송되어 "밤과 안개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2. 1. 감독 및 각본

알랭 레네 감독은 강제 수용소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연출을 망설였다.[4][5] 그러나 시인이자 소설가인 장 카이롤이 프로젝트에 협력하는 조건으로 동의했고, 1955년 5월 24일 영화 계약서에 공식 서명했다.[6][4] 장 카이롤은 마우트하우젠-구센 강제 수용소 생존자로, 1946년에 쓴 시집 《밤과 안개》에서 영화 제목이 유래되었다.[7]

2. 2. 촬영

1955년, 알랭 레네 감독과 제작진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서 촬영을 진행했다.[6] 이어서 10월 7일부터 10일까지는 마이다넥에서 촬영을 이어갔다.[6]

이 영화는 과거의 참상을 담은 흑백 기록 영상과 현재(1955년)의 모습을 담은 컬러 영상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흑백 영상은 여러 기록 보관소의 스틸 이미지, 프랑스, 소련, 폴란드의 뉴스릴, 베스터보르크 네덜란드 수용소 억류자들의 영상, 연합군의 "정리" 작전 영상 등을 활용했다.[9] 컬러 영상은 이스트만컬러로 촬영되었으며,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마이다넥, 스트루토프, 마우트하우젠 등 여러 강제 수용소의 황량한 모습과 제2차 세계 대전 중 그곳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들을 대조했다.

레네 감독은 촬영 중 악몽에 시달렸지만, 아우슈비츠 현장 촬영을 시작하면서 악몽이 멈췄다고 한다.[8]

2. 3. 음악

한스 아이슬러가 영화 음악을 작곡했다.[13] 프로듀서 도망의 지지로 아이슬러는 1955년 10월 18일 아르고스 필름(Argos Films)으로부터 음악 작곡 제안을 받았고, 200000FRF과 프랑스 입국 비자 취득을 지원받았다.[13] 그는 10월 25일 전보로 제안을 수락했다.[13]

아이슬러는 1955년 11월 30일 파리에 도착하여, 10일 안에 모든 것을 끝내도록 압박을 받았다고 언급했다.[13] 녹음은 1955년 12월 19일에 이루어졌고, 사운드 편집은 같은 해 12월 24일에 완료되었다.[13]

서곡은 아이슬러가 영화 작업을 제안받기 전에 요하네스 R. 베허의 연극 ''빈터슐라흐트''(''Winter Battle'')를 위해 쓰였다.[14] 아이슬러는 이 곡에서 호라티오의 ''햄릿'' 독백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나중에 이 서곡을 자신의 노래 ''Monolog Horatio's (Hamlet)''로 재작업했다.[14]

아이슬러는 그의 음악을 ''밤과 안개''와는 별개의 오케스트라 작품으로 구상하는 것을 고려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14] 그는 이 음악의 일부를 자신의 부수 음악인 ''코뮌의 날들''(''Die Tage der Commune'')과 ''빌헬름 텔''(''Wilhelm Tell'')에 재사용했다.[14] 이 스코어는 2014년 ''한스 아이슬러 전집(Hanns Eisler Gesamtausgabe)''의 일부로 처음 출판되었다.[14]

3. 내용 구성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역사적인 흑백 영상과 새로 촬영된 컬러 영상을 사용하여 구성되었다. 첫 부분은 아우슈비츠의 잔해를 보여주며, 내레이터 미셸 부케가 나치 이데올로기의 부상을 설명한다. 영화는 친위대(Schutzstaffel)의 생활과 수용소의 굶주린 수감자들의 삶을 비교하며, 수감자들에게 가해진 가학적 성격 장애를 보여준다. 이어지는 흑백 영상은 가스실과 시체 더미의 이미지를 묘사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국가의 해방, 수용소의 공포 발견, 그리고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미셸과 웜서의 1954년 전시회 "저항, 해방, 추방"은 9개의 파트로 구성되었으나, 영화 초고에서는 7개의 파트로 개편되었다. 1955년 4월, 웜서와 미셸이 폴란드를 방문하면서 영화의 윤곽이 크게 바뀌었다. 이들은 아우슈비츠의 현재 모습을 담은 영상을 포함시키고, 폴란드 기록 보관소의 자료를 추가하여 영화의 범위를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더 넓은 유럽적 관점으로 확장했다. 르네가 팀에 합류한 후, 새로운 대본은 12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1954년 전시회초고 (7개 파트)1955년 대본 (12개 섹션)


3. 1. 수용소의 참상

영화는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여러 강제 수용소의 참혹한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흑백 기록 영상과 현재의 컬러 영상을 교차하여 보여주며, 나치 이데올로기의 부상과 친위대의 생활, 그리고 굶주린 수감자들의 삶을 대조한다. 수감자들에게 가해진 가학적 성격 장애적인 실험, 처형, 강간 등의 만행과 가스실과 시체 더미 등 충격적인 장면을 통해 홀로코스트의 비극성을 강조한다.

3. 2. 나치 이데올로기 비판

영화 《밤과 안개》는 나치 이데올로기의 부상을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영화는 친위대(Schutzstaffel)의 생활과 수용소의 굶주린 수감자들의 삶을 비교한다. 내레이터 미셸 부케는 과학적, 의학적 실험, 처형, 강간 등 수감자들에게 가해진 가학적 성격 장애(sadism)를 보여준다. 가스실과 시체 더미의 이미지를 묘사하며, 나치즘의 잔혹성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3. 3. 역사적 맥락

이 영화는 1941년 12월 7일 힘러가 공포한 법령에 따라 제2차 세계 대전 포로를 처리하는 데 사용된 용어인 "밤과 안개"(''Nacht und Nebel'')에서 제목을 따왔다.[7] 이 법령에 따르면, 나치 독일에 저항하여 자기 나라에서 체포되었지만 즉시 처형되지 않은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수용소로 이송되어 "밤과 안개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고 규정했다. 영화에서는 강제 수용소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죽음이 첫 번째 선택을 하고", "밤과 안개 속에서 도착하면 두 번째 선택이 이루어진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밤과 안개 속에 도착하는 기차 장면을 통해 그들의 상황의 불확실성을 비춘다.

영화 제작 초기, 프랑스 레지스탕스 투사들을 기리는 영화를 만들라는 압박이 있었지만, 올가 웜서는 강제 수용소를 독일의 전쟁 경제를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미시 세계로 제시하는 학술적인 접근 방식을 주장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더 광범위한 자금 조달을 가능하게 했고, 영화는 "현대 미디어를 통해 역사 연구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재구상되었다.

1954년 11월 10일 파리의 ''국립 교육 연구소''에서 올가 웜서와 앙리 미셸이 기획한 '저항, 해방, 강제 이송' 전시회가 열렸다.[3] 이 전시회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강제 수용소 내부를 보여주는 자료들을 통해, 이전까지 프랑스에서 부차적인 문제로 여겨졌던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영화 제작자 아나톨 다우만은 이 전시회에 영향을 받아 알랭 레네 감독에게 다큐멘터리 제작을 제안했다.[3][4] 알랭 레네는 강제 수용소를 직접 경험한 사람만이 이 주제를 다룰 수 있다고 믿어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장 카이롤과의 협력을 조건으로 수락했다.[5][4] 장 카이롤은 마우트하우젠-구센 강제 수용소 생존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집 '밤과 안개 (시집)'를 통해 영화에 참여하게 되었다.[6]

1955년 4월, 올가 웜서와 앙리 미셸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해방 1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폴란드를 방문했다. 이들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현재 모습을 영화에 담고, 폴란드 기록 보관소와의 협력을 통해 영화의 범위를 넓혀, 단순한 프랑스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유럽적 관점으로 확장했다.

4. 검열과 논란

밤과 안개》는 프랑스 검열 당국으로부터 일부 장면 삭제 압력을 받았다.[6] 특히, 피티비에 강제 이송 수용소를 경비하는 프랑스 경찰관이 나오는 장면은 논란이 되었다.[15] 이 장면은 프랑스 경찰의 비시 정권 협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 레네 감독이 삭제를 거부하여, 검열 당국은 영화의 마지막 10분을 삭제하겠다고 위협했다.[5] 결국 레네는 프랑스 장교의 케피를 가리는 가짜 지지대를 그려 넣는 방식으로 타협했다.[5]

《밤과 안개》의 스틸 컷으로, 케피로 식별 가능한 프랑스 경찰관이 피티비에 강제 이송 수용소를 경비하고 있다. 이 장면은 영화의 일부 버전에서 검열되었다.


검열된 이미지 버전으로, 지지대가 특징적인 머리 장식을 부분적으로 가리고 있다.


검열된 장면은 2003년 DVD 출시 때 원래 형태로 복원되었다.

칸 영화제에서 영화 상영을 철회하라는 독일 대사관의 요청도 있었으나,[16] 프랑스 언론은 나치 범죄자와 독일 국민의 차이를 영화가 명확히 했다고 언급하며 철회에 반대했다.[16]

4. 1. 희생자 수 논란

일부 수정주의자들은 이 영화가 "나치가 인간 비누를 만들었다"거나, 아우슈비츠에서 900만 명이 살해되었다고 주장한다고 말한다. 로베르 포리송과 게르마르 루돌프는 2024년 현재에도 "밤과 안개 (영화)"에서 아우슈비츠에서 900만 명이 살해되었다고 방송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900만 명"이라는 숫자가 언급된 내레이션 전체를 보면, "'''900만 명의 사망자'''가 이 전원 지대를 배회하고 있다."라고 되어 있을 뿐, 아우슈비츠만의 사망자라고는 언급하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이 내레이션의 배경으로 아우슈비츠 제2 수용소인 비르케나우 수용소의 영상을 보여주지만, 아우슈비츠 외의 강제 수용소 영상도 함께 사용되었으며, 어디라고 특정하지 않았다. 즉, 900만 명은 영화 전체에서 다룬 나치 독일의 강제 수용소 전체 희생자 수를 가리키는 것이며, 유대인에게만 한정되지도 않았다.

감독 알랭 레네 자신도 2006년에 당시 받아들여지던 숫자는 '''전체''' 희생자를 의미하는 900만 명이었다고 말했다. 영화에 조언을 했던 역사학자들 역시 당시 아우슈비츠 희생자 수를 900만 명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앙리 미셸이 편집장을 맡았던 잡지에서는 아우슈비츠 사령관 루돌프 헤스의 증언을 소개하며 희생자 수를 300만 명(가스실 250만 명 + 굶주림과 질병 50만 명)으로 보도했고, 1956년에는 아우슈비츠 희생자 수를 400만 명으로 기술했다. 또한, 두 역사학자의 저서에서는 수용 시스템 '''전체''' 희생자 총수를 800만 명으로 적고 있다.

프랑스 역사학자 실비 린데페르그는 '밤과 안개'에 대해 면밀한 조사를 한 결과, '''사망자 900만 명'''이라는 숫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만의 것이 아니라, '''강제 수용소 시스템의 희생자와 살해된 유대인을 포함한 막연한 합계'''라고 밝혔다. 따라서 '''영화에서 언급된 900만 명이 아우슈비츠만의 사망자 수가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비누"라는 단어는 내레이션에 한 번 등장하지만, "나치"나 "유대인" 등의 특정 없이 "유해를 사용해서...비누를 만들려고 했다..."라고 언급될 뿐이다. 나치 독일이 유해를 사용해 비누를 공업적으로 생산한 것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단치히의 실험실에서 시도된 적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은 역사학자의 신용을 실추시키려는 목적이라는 주장이 있다.

4. 2. 인간 시체로 만든 비누

이 영화에서는 나치가 인간 시체로 비누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언급되지만, 이는 현재 학계에서 전쟁 당시 소문에서 비롯된 신화로 여겨지고 있다.[31][32] 나치 독일에서 유해를 사용한 비누의 공업적 생산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단치히의 실험실에서 시도되었던 것은 있다고 알려져 있다.

5. 영화의 의의 및 영향

이 영화는 예술적으로 큰 성취를 이루었으며, 다른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크 도니올-발크로즈는 ''영화 노트''에 이 영화가 프란시스코 고야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에 비견될 만하다고 평가했다.[23] 프랑수아 트뤼포는 《밤과 안개》를 역대 최고의 영화라고 언급했다.[24] 장뤼크 고다르는 영화 《결혼한 여자》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25]

토드 기틀린은 이 영화를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것을 파악하려는 정신적 노력을 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말하는, 견딜 수 없는 황폐함의 정점—역사가 우리에게 부과한 의무"라고 묘사했다.[26] 로튼 토마토는 24개의 리뷰를 기반으로 100%의 평론가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으며, 가중 산술 평균은 8.99/10이라고 보고했다.[27] 2014년 ''사이트 앤 사운드'' 설문 조사에서 영화 평론가들은 《밤과 안개》를 역대 최고의 다큐멘터리 영화 중 4위로 선정했다.[29]

알랭 J. 파큘라는 1982년 윌리엄 스타이론의 소설 소피의 선택을 각색할 때 《밤과 안개》를 연구했다.[33] 오시마 나기사는 1960년 자신의 영화 제목을 《밤과 안개》에서 따와 《일본의 밤과 안개》라고 지었다.[34] 미하엘 하네케는 《몰락》(2004) 및 《쉰들러 리스트》(1993)와 같은 영화가 관객을 조작한다고 비판하며, 역사적 사건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밤과 안개》를 칭찬했다.[35]

5. 1. 예술적 성취

자크 도니올-발크로즈는 ''영화 노트''에 이 영화가 프란시스코 고야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에 비견될 만한 강력한 작품이라고 썼다.[23] 프랑스 영화 평론가이자 감독인 프랑수아 트뤼포는 《밤과 안개》를 역대 최고의 영화라고 언급했다.[24] 장뤼크 고다르는 자신의 영화 《결혼한 여자》에서 연인들이 만나는 영화관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는 장면을 보여준다.[25]

토드 기틀린은 이 영화를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것을 파악하려는 정신적 노력을 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말하는, 견딜 수 없는 황폐함의 정점—역사가 우리에게 부과한 의무"라고 묘사했다.[26]

로튼 토마토는 24개의 리뷰를 기반으로 100%의 평론가가 이 영화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으며, 가중 산술 평균은 8.99/10이라고 보고했다.[27]

2014년 ''사이트 앤 사운드'' 설문 조사에서 영화 평론가들은 《밤과 안개》를 역대 최고의 다큐멘터리 영화 중 4위로 선정했다.[29]

5. 2. 다른 작품에 미친 영향

알랭 J. 파큘라는 1982년 윌리엄 스타이론이 1979년에 쓴 아우슈비츠 생존 폴란드계 가톨릭 신자에 관한 소설인 소설을 각색할 때 《밤과 안개》를 연구했다.[33]

오시마 나기사는 1960년 자신의 영화 제목을 레네의 영화에서 따와 《일본의 밤과 안개》라고 지었다. 《밤과 안개》는 1963년이 되어서야 일본에서 개봉했지만, 오시마는 레네의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영화에 대해 읽고 제목을 정했다.[34]

미하엘 하네케는 《몰락》(2004) 및 《쉰들러 리스트》(1993)와 같은 영화가 관객을 조작하여 사건을 주관적으로 인식하게 하고 객관적인 관점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반면 그는 그러한 역사적 사건을 묘사한 《밤과 안개》를 칭찬했다.[35]

6. 한국어판 위키백과 추가 정보

이 영화와 관련하여 빅터 프랭클의 저서 ''밤과 안개''가 있다. 이 책은 심리학자이기도 한 저자가 독일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을 기록한 수기로, 영화와 동일한 주제를 다룬다.

6. 1. 관련 작품


  • 빅터 E. 프랭클의 저서 ''밤과 안개''는 1946년에 출간된 책으로, 심리학자이기도 한 저자가 독일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을 기록한 수기이다. 원제를 직역하면 "어떤 심리학자의 강제 수용소 체험"으로, 영화와 동일한 테마를 다룬다.
  • 오시마 나기사의 ''일본의 밤과 안개''(1960년)는 안보 투쟁 시기 학생 운동의 내실을 즉흥적인 수법으로 파헤친 작품이다. 영화와 테마는 다르다.
  • 키타 모리오의 ''밤과 안개의 구석에서''(1960년)는 나치의 "밤과 안개 작전" 하에 정신병자에 대한 안락사 작전(T4 작전)에 저항하는 정신과 의사들의 고뇌를 그린 작품으로, 제43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다. 모티브는 비슷하지만, 영화와 테마는 다르다.
  • 데이비드 모렐의 ''밤과 안개의 맹약''(1987년)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밤과 안개" 작전의 재래를 암시하는 실종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 작품이다. 영화와 테마는 다르다.
  • 사노 신이치의 ''아편왕 만주의 밤과 안개''(2005년)는 만주 제국에서 행해진 아편 밀매를 통해, 군인, 정치인, 여성 등이 펼친 내실을 파헤친 작품이다. 영화와 테마는 다르다.

7. 관련 작품


  • 빅터 E. 프랭클 『밤과 안개 - 독일 강제 수용소의 체험 기록』(1946년. 심리학자이기도 한 저자의 수용소 체험 보고서. 원제 직역은 "어떤 심리학자의 강제 수용소 체험"으로 테마는 동일)[1]
  • 오시마 나기사 『일본의 밤과 안개』(1960년. 안보 투쟁학생 운동의 내실을 즉흥적인 수법으로 파헤친 작품. 테마는 다름)[1]
  • 키타 모리오 『밤과 안개의 구석에서』(1960년. 나치의 "밤과 안개 작전" 하, 정신병자에 대한 안락사 작전 (T4 작전)에 저항하는 정신과 의사들의 고뇌를 그린 제43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 작품. 모티브는 비슷하지만, 테마는 다름)[1]
  • 데이비드 모렐 『밤과 안개의 맹약』(1987년. 제2차 세계 대전 후, "밤과 안개" 작전의 재래를 암시하는 실종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 작품. 테마는 다름)[1]
  • 사노 신이치 『아편왕 만주의 밤과 안개』(2005년. 만주 제국에서 행해진 아편 밀매를 통해, 군인, 정치인, 여성 등이 펼친 내실을 파헤친 작품. 테마는 다름)[1]

참조

[1] 간행물 No. 15 1954-07-01
[2] 문서 Wormser had been researching concentration camps as far back as 1940. After the war, she collected survivors' testimonies for ''Opération Lutetia'' and helped with the French prosecution for the [[Nuremberg trials]]. In 1952, Henri Michel called on her to join the ''Comité d'histoire de la Deuxième Guerre mondiale'', and she also became a member of the Réseau du souvenir, an association of former members of the [[French Resistance]] who wanted their efforts commemorated. In 1955, Michel and Wormser published ''Tragédie de la Déportation 1940-1945: Témoignages de survivants des camps de concentration allemands''(Paris: Hachette, 1955).
[3] Booklet essay "Origins and Controversy" Night and Fog The Criterion Collection
[4] 문서 Barsam 1992, pg. 262
[5] Audio interview with Resnais from 1994 Night and Fog The Criterion Collection
[6] 문서 Knaap 2006, pg. 8
[7] 문서 Rashkin 2008, pg. 83
[8] 문서 Wilson 2006, pg. 25
[9] 문서 Haggith 2005, pg. 130
[10] 문서 Knaap 2006, pg. 14
[11] 문서 Knaap 2006, pg. 15
[12] 웹사이트 Resnais, at 84, still doing it his own way - Arts & Leisure -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https://www.nytimes.[...] 2006-09-07
[13] 문서 Knaap 2006, pg. 22
[14] 문서 Knaap 2006, pg. 24
[15] 문서 Emma Wilson, ''Alain Resnais'', French film directors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2006), p25
[16] 문서 Knaap 2006, pg. 39
[17] 문서 Knaap 2006, pg. 40
[18] 문서 Knaap 2006, pg. 36
[19] 문서 Knaap 2006, pg. 35
[20] 웹사이트 "Le procès de quatre profanateurs néo-nazis après six ans de fausses pistes" https://www.humanite[...] 1997-03-17
[21] 문서 Knaap 2006, pg. 42
[22] 문서 Knaap 2006, pg. 44
[23] 문서 Knaap 2006, pg. 43
[24] Booklet introduction Night and Fog The Criterion Collection
[25] 서적 Godard a portrait of the artist at 70 Bloomsbury
[26] 뉴스 Please Be Disturbed: Triggering Can Be Good for You, Kids http://tabletmag.com[...] Tablet 2013-03-13
[27] 웹사이트 Night and Fog - Rotten Tomatoes http://www.rottentom[...] Fandango Media
[28] 문서 Nitzan Lebovic, "An Absence with Traces: The Reception of Nuit et Brouillard in Israel", in Knaap, pp. 86- 105.
[29] 뉴스 Silent film tops documentary poll https://www.bbc.co.u[...] 2014-08-01
[30] 웹사이트 Night and Fog (Criterion Collection) > Overview http://allmovie.com/[...]
[31] 웹사이트 The Soap Myth: A Holocaust artifact in a post-truth era. https://reviewcanada[...] 2019-05-13
[32] 웹사이트 Jewish Victims of the Holocaust: The Soap Myth https://www.jewishvi[...]
[33] 서적 Indelible Shadows: Film and the Holocaust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34] 서적 Eros plus Massacre: An Introduction to the Japanese New Wave https://archive.org/[...] Indiana University Press 1988
[35] 웹사이트 The Hollywood Reporter: Judd Apatow, John Krasinski and more Writers on THR's Roundtable Oscars 2013 https://www.youtube.[...] The Hollywood Reporter 2012-11-15
[36] 웹사이트 New ‘Official’ Changes in the Auschwitz Story https://codoh.com/li[...]
[37] 웹사이트 ゲルマー・ルドルフ著 ホロコースト講義 2023年版 127ページ https://holocausthan[...]
[38] 웹사이트 Les mensonges de Faurisson Sur Nuit et Brouillard : une présentation frauduleuse de Faurisson https://phdn.org/neg[...]
[39] 웹사이트 Nazi shrunken heads, human skin lampshades, human soap, textiles from human hair? Sorting out the truth from the legends. https://holocaustcon[...]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