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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태국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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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트남-태국 관계는 역사적으로 무역, 문화 교류를 통해 시작되었으며, 17세기 이후에는 갈등과 협력의 시기를 거쳤다. 19세기에는 캄보디아를 둘러싼 전쟁이 있었으며, 프랑스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복잡한 양상을 보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 태국은 미국 편에서 참전하기도 했다. 1975년 베트남 전쟁 종전 이후 양국 관계는 냉랭해졌으나, 1989년 베트남의 캄보디아 철수와 1995년 베트남의 아세안 가입을 계기로 관계가 개선되었다. 현재 태국은 베트남의 주요 투자 및 교역 국가이며, 관광 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축구 분야에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2. 역사

베트남태국은 지리적으로 가까워 고대부터 교류를 이어왔으나, 역사적으로는 협력과 갈등이 반복되는 복잡한 관계를 맺어왔다. 초기에는 남중국해를 통한 해상 교역이 이루어졌으며, 인도 문화의 영향을 함께 받았다. 딘 왕조, 리 왕조, 쩐 왕조 시기에는 시암(현 태국)과 공식적인 무역 관계를 맺기도 했으나, 참파 지역 등을 둘러싸고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17세기 이후 베트남의 남진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양국 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특히 하띠엔 지역의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과 시암의 아유타야 왕국 멸망 이후 벌어진 정치적 혼란은 양국의 직접적인 군사 충돌로 이어졌다. 떠이선 왕조 시기에는 응우옌푹아인(훗날 자롱 황제)이 시암의 지원을 받아 떠이선 군대와 맞섰으나 락검-쏘아이뭇 전투에서 크게 패배하기도 했다.

19세기에 응우옌 왕조가 건립된 후 초기에는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었으나, 민망 황제의 팽창 정책으로 인해 캄보디아의 지배권을 둘러싼 양국 간의 경쟁이 다시 격화되었다. 이는 두 차례의 주요 전쟁(1831년-1834년, 1841년-1845년)으로 이어졌으며, 19세기 후반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지화하기 전까지 긴장 관계가 지속되었다.

프랑스 식민 통치 시기와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양국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특히 베트남 전쟁 당시 태국은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남베트남을 지원하며 북베트남과 적대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1975년 베트남 통일 이후 1976년 양국은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으로 인해 관계가 다시 악화되기도 했으나, 1989년 베트남군이 캄보디아에서 철수하고 베트남이 도이머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관계는 빠르게 개선되었다. 1995년 태국의 지지 속에 베트남이 아세안(ASEAN)에 가입하면서 양국은 전략적 협력 관계로 발전하였다.

2. 1. 초기 교류 (17세기 이전)

현재의 베트남 북부 지역에는 중국 한나라 시대에 남중국해, 인도양으로 가는 해상 교통로가 있었다. 한나라 조정은 일남군(日南郡)에 요새를 두고 서문(徐聞)·합포(合浦, 두 지역 모두 현재의 중국 대륙에 위치함)와 함께 해외 항로의 기점으로 삼았다. 그 중에서도 현재의 태국으로 가는 해상 교통로가 있었다.[8]

동시에 동남아시아에 유입된 인도 문화는 고대 태국의 여러 제후국과 현재의 베트남 남부를 차지했던 참파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프놈 왕국은 현재의 베트남 남부와 태국의 짜오프라야강 삼각주 지역을 통치하기도 했다.[9]

딘 왕조·리 왕조·쩐 왕조 시대에 베트남은 시암(현재의 태국)을 비롯한 일부 해외 국가들과 무역 관계를 맺고 있었다. 시암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상인들은 1149년(리 왕조 다이딘 10년)에 대월 동부 해안에 도착하여 리 왕조 조정에 거주지와 통상 무역을 요청했다. 리 왕조 조정은 바다에 떠 있는 섬 안에 '번돈'(Vân Đồn)이라는 공동체를 세워 외국 상인들이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10] 1182년(리 왕조 찐푸 7년)에는 시암의 외교 사절단이 대월에 선물을 진상하러 왔다.[11] 1184년(리 왕조 찐푸 9년)에는 시암, 스리위자야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상인들이 대월 번돈에 가서 공물을 바치고 리 왕조 조정과 경제 무역 문제를 협의했다.[11]

쩐 왕조 시기이던 1313년(흥롱 21년)에 베트남과 시암이 군사 충돌을 일으켰다. 이 해에 시암군이 출병하여 점성(占城)을 침공했는데 이 도시는 쩐 왕조의 남쪽에 위치한 이웃 나라였다. 쩐 왕조는 응에안(Nghệ An), 럼빈(Lâm Bình)에 도티엔끼엔(Đỗ Thiên Kiến)이 이끄는 군대를 파견하여 시암군을 물리치도록 명령하였다.

시암인들은 일찍이 쩐 왕조에 선물을 보내 우의를 표했다. 1334년부터 1336년(카이흐우 6년 ~ 8년)까지 쩐 왕조가 애뢰(哀牢)로 출병했는데 이 전투와 관련된 비석의 기록에서 시암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각각의 물건을 받들고 앞을 다투어 맞이한다."고 언급했다.[12] 대월과 시암은 무역에서도 발전하였다. 베트남의 화폐학자에 따르면 쩐 왕조 시기에 시암은 수코타이 왕국(1238년 ~ 1351년)부터 아유타야 왕국(1351년 ~ 1767년) 초반까지 있었다고 한다. 수코타이 왕조의 무역은 개방형으로 활발했는데 특히 시암에서 쓰이던 화폐인 '땅콩 은'이 베트남으로 유입되었다. 아유타야 왕조 시대에도 베트남 출신 상인들이 시암에 가서 장사를 했다.[13] 두 나라의 교역 장소는 번돈이었는데 베트남의 역사서에 따르면 1360년(다이찌 3년)에 시암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상선이 번돈에 가서 물건을 팔고 다양한 물품을 보냈다고 한다.

1782년 방콕의 아마린 쓰론 홀에서 옹 치앙 수, 즉 안남(Annamese)의 통치자가 라마 1세 국왕과 알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마하 차크리 시린톤 공주의 메모가 있다.


16세기에 태국(오늘날의 태국)과 베트남 사이의 최초의 실제 접촉이 기록되었다.

2. 2. 베트남의 남진과 갈등 (17세기 ~ 18세기)

17세기 후반, 중국 광둥성 출신인 막끄우(Mạc Cửu)가 현재 베트남 남부의 하띠엔(Hà Tiên) 지역으로 이주했다. 하띠엔은 당시 시암(현 태국)과 베트남 응우옌 주의 경계에 위치하며 인도차이나반도 남부의 여러 세력이 교차하는 지점이었기에, 시암의 잦은 공격 대상이 되었다. 베트남 응우옌 왕조 시대 기록인 《하선진협진정씨가보》(河仙鎭協鎭鄭氏家譜)에 따르면, 막끄우는 17세기 말 벌어진 한 전투에서 시암군에게 포로로 잡혀 만세산(萬歲山, 현재 태국 사뭇사콘주)에 보내졌으나, 이후 시암에서 내란이 발생한 틈을 타 하띠엔으로 돌아왔다.[14]

막끄우 사후, 그의 아들 막티엔뜨(Mạc Thiên Tứ)가 하띠엔의 지배권을 계승했다. 1767년 시암의 아유타야 왕국이 멸망하자, 아유타야 왕자였던 เจ้าจุ้ย|차오추이tha(타이사 국왕의 손자)가 하띠엔으로 피신했다가 막티엔뜨의 손에 넘어갔다. 당시 시암은 혼란 속에서 여러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톤부리 왕국딱신(Taksin) 국왕은 짠타부리를 점령하고 그곳 총독인 พระยาจันทบุรี|프라야찬타부리tha를 추방하여 기지로 삼았고, 프라야찬타부리도 막티엔뜨에게 의탁했다. 딱신 국왕은 막티엔뜨에게 이들을 넘길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면서 양국 관계는 긴장 상태에 빠졌다. 막티엔뜨는 지속적으로 수군을 보내 시암 해역을 정탐했으며, 1769년에는 딱신이 เจ้าพระยานครศรีธรรมราช|차오프라야 나콘시탐랏tha(이름은 หนู|누tha)을 공격하는 사이 짠타부리를 기습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처럼 베트남과 시암은 수년간 군사적 충돌을 이어갔다.[15][16]

1777년, 베트남 남부를 통치하던 응우옌 주는 떠이선(Tây Sơn)의 응우옌냑, 응우옌후에, 응우옌르 삼형제에 의해 무너졌다. 응우옌 주의 마지막 생존자 중 한 명인 응우옌푹아인(훗날 자롱 황제)은 지지자들의 도움으로 잠시 자딘(현재의 호찌민시)을 되찾고 응우옌 왕을 자칭했으나, 1783년 떠이선 군대에 의해 다시 점령당했다. 푸꾸옥섬으로 피신한 응우옌푹아인 세력은 식량 부족에 시달렸고, 그의 부하 장수 쩌우반띠엡(Châu Văn Tiếp)이 방콕으로 가 시암의 지원을 요청했다. 베트남 기록에 따르면, 시암의 장군 탓씨다(Thát Xỉ Đa, 또는 쩟시다(Chất Si Đa))가 군대를 이끌고 이듬해 하띠엔에 도착했다. 응우옌푹아인은 그를 따라 방콕으로 후퇴했고, 그곳에서 라마 1세( พระบาทสมเด็จพระพุทธยอดฟ้าจุฬาโลกมหาราช|풋타엿파쭐라록tha ) 국왕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라마 1세는 시암군이 응우옌푹아인을 도와 잃어버린 왕국을 되찾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1785년, 시암은 응우옌 주 잔존 세력과 연합하여 남키(Nam Kỳ, 코친차이나)를 침공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시암-응우옌 연합군은 잔혹 행위를 저질렀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응우옌후에가 이끌던 떠이선 군대와의 락검-쏘아이뭇 전투에서 참패했다. กรมหลวงเทพหริรักษ์|끄롬 루앙 텝리락tha이 지휘하던 시암군은 도주하던 중 เจ้าพระยาอภัยภูเบศร|차오프라야 아파이푸베손tha과 합류하여 캄보디아를 거쳐 시암으로 퇴각했는데, 이때 생존자는 2,000명에서 3,000명에 불과했다.[17] 응우옌 군대는 거의 전멸했으며, 사령관 응우옌반우이(Nguyễn Văn Uy)도 전사했다. 응우옌푹아인은 소수의 측근과 함께 껀터로 도망쳤다가 결국 시암으로 망명했다.[18] 이 전투는 떠이선 왕조의 군사적 역량을 보여주는 동시에, 외세의 개입을 격퇴한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2. 3. 19세기: 갈등과 협력의 변주

18세기 후반 떠이선 왕조의 내란 시기 응우옌푹아인이 시암의 도움을 받은 인연으로, 응우옌 왕조 건국 초기에는 양국 관계가 비교적 우호적으로 유지되었다. 태국의 《라타나코신 왕실 연대기》에 따르면 응우옌푹아인은 황제로 즉위하기 이전에 6차례에 걸쳐 시암의 라마 1세 국왕에게 금은화(金銀花)를 진상하며 복속의 뜻을 표했다.[19][20][21][22][23][24] 그는 떠이선 왕조와의 전쟁 과정에서 캄보디아, 비엔티안 왕국 출신 병사 파병에 대한 라마 1세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응우옌 왕조를 세운 이후(자롱 황제)에는 시암에 금은화를 진상하지 않았으나, 사신을 교환하며 관계를 이어갔다. 1813년 캄보디아 문제를 둘러싸고 양국 간 충돌이 있었지만, 자롱 황제 시대에는 전반적으로 우호 관계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자롱 황제의 뒤를 이은 민망 황제 시기에 이르러 양국 관계는 갈등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민망 황제는 베트남을 청나라와 같은 강력한 제국으로 만들고자 영토 확장 정책을 추진했고, 이는 시암과의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다. 1826년, 비엔티안 왕국아누웡 국왕이 시암의 지배에 맞서 봉기하며 역사적인 란쌍 왕국의 부활을 시도하자, 응우옌 왕조는 아누웡을 지원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1831년, 시암은 캄보디아와 베트남 남부 지역을 정복하려 했으나 1834년 베트남 군대의 반격으로 물러났다.[25] 시암은 베트남 내부에서 일어난 레반코이(Lê Văn Khôi)의 반란을 지원하며 응우옌 왕조를 견제하기도 했다.

이러한 갈등은 결국 1841년부터 1845년까지 이어진 시암-베트남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이 전쟁에서 시암은 베트남이 점령하고 있던 캄보디아 지역에서 베트남군을 몰아내고 캄보디아의 복국을 성공적으로 지원했다. 전쟁은 교착 상태에 빠졌고, 1845년 시암의 เจ้าพระยาบดินทรเดชา|차오프라야 바딘톤데차th 장군과 베트남의 응우옌찌프엉(Nguyễn Tri Phương)·조안우언(Doãn Uẩn) 장군 사이에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약에 따라 양국은 점령지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휴전하며, 향후 캄보디아 내정에 간섭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19세기에 벌어진 두 차례의 주요 전쟁(1831–1834년, 1841–1845년)은 캄보디아에 큰 피해를 남겼으며, 양국의 경쟁 관계는 19세기 후반 프랑스가 베트남 지역(코친차이나)을 침공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2. 4. 근현대 관계

1884년 베트남프랑스에 점령되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식민지가 되면서, 베트남과 태국의 관계는 프랑스-태국 관계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1893년에는 태국이 라오스를 프랑스에 할양하기를 거부하면서 프랑스-시암 전쟁이 발발했고, 프랑스의 보호국이었던 베트남은 이 전쟁에 참전했다.

1945년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이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지만, 당시 반공주의를 내세웠던 태국 정부는 이를 외교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태국은 1955년에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을 베트남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베트남 전쟁 시기 태국은 미국과 남베트남의 주요 우방국으로 활동했다. 태국은 도미노 이론과 자국 내 공산주의 확산에 대한 우려로 전쟁에 참전했으며,[4] 약 11,570명의 군인을 파병하여 이 중 351명이 전사하고 1,358명이 부상당했다.[26][27] 다른 자료에 따르면 참전 군인은 12,000명에서 15,000명 사이였고, 2,000명 이상이 사상했다고도 한다.

1975년 북베트남에 의한 사이공 함락으로 베트남 전쟁이 종결되자, 태국은 1976년 8월 6일 통일 베트남 정부인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과 수교했다. 그러나 1978년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하여 폴 포트크메르 루주 정권(대량 학살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짐)을 전복시킨 베트남-캄보디아 전쟁이 발발하면서 양국 관계는 다시 악화되었다.[28] 태국은 베트남의 캄보디아 점령에 반대했으며, 이로 인해 양국 간 국경 마찰과 충돌이 발생하여 관계는 극도로 긴장되었다.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이 일어나자 태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중국) 군대의 베트남 철수와 베트남 군대의 캄보디아 철수를 동시에 요구하기도 했다.[29]

양국 간의 적대 관계는 1989년 베트남 군대가 캄보디아에서 철수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했다.[30] 베트남은 1986년 응우옌 반 린 주도로 도이머이 개혁을 시작하며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국제 사회와의 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태국과의 관계는 빠르게 개선되었다.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의 창립 회원국인 태국은 1995년 베트남의 아세안 가입을 지지했으며, 베트남은 같은 해 7월 28일 아세안의 7번째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31] 이를 계기로 한때 긴장 관계에 있던 양국은 전략적 협력과 동맹 관계로 발전했으며,[5] 고위급 지도자들의 상호 방문도 활발해졌다.[30][31]

3. 현대의 협력 관계

응우옌 반 린 서기장이 1986년에 시작한 도이머이 개혁 이후, 베트남은 기존의 사회주의 노선에서 벗어나 국제 사회와의 통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변화는 태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이어졌다. 특히 아세안 창립 회원국인 태국은 1995년 베트남의 아세안 가입을 지지하며 양국 관계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를 계기로 과거 냉각되었던 태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전략적 협력과 동맹 관계로 발전하는 전환점을 맞이했다.[5]

3. 1. 경제 무역 관계

2015년을 기준으로 태국베트남의 10대 투자 국가 중 하나였으며, 전체 투자액은 약 70억달러에 달했다. 또한 같은 해 태국은 베트남의 5대 교역 상대국이기도 했다.[32][6]

3. 2. 외교 관계

베트남은 태국 방콕에 대사관을 두고 있으며 콘깬에 총영사관을 두고 있다.[33] 태국은 베트남 하노이에 대사관을 두고 있고 호찌민시에 총영사관을 두고 있다.

3. 3. 관광 교류

베트남 여권을 소지한 베트남 국민은 최대 30일 동안 태국에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다.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태국에 입국하는 경우에는 최대 90일까지 체류가 가능하다.[36] 마찬가지로, 태국 여권을 소지한 태국 국민도 최대 30일 동안 베트남에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다.[37][38][39]

3. 4. 스포츠 라이벌 관계 (축구)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베트남 축구팀의 부상과 이로 인한 맹렬한 베트남 민족주의는 베트남과 태국 팀 간의 라이벌 관계를 심화시켰다.[7]

참조

[1] 웹사이트 ข้าราชการสถานเอกอัครราชทูตฯ และทีมประเทศไทย https://rtehanoi.tha[...] 2022-08-30
[2] 웹사이트 AMBASSADOR PHAN CHI THANH Biography https://vnembassy-ba[...] 2022-08-30
[3] 문서 Thai-Vietnamese relations http://www.nationmul[...]
[4] 문서 Thai soldiers in Vietnam War http://www.uhpress.h[...]
[5] 문서 Vietnam, Thailand's relations thrives http://vietnamnews.v[...]
[6] 웹사이트 VN, Thailand's relationship thrives http://vietnamnews.v[...]
[7] 웹사이트 World Cup qualifiers: Thailand under greater pressure, says Vietnam coach - VnExpress International https://e.vnexpress.[...]
[8] 문서 周振鶴《漢書地理志匯釋》,安徽教育出版社版,517頁。
[9] 서적 The Civilization of Angkor Weidenfeld & Nicolson, London 2001
[10] 문서 吳士連等《大越史記全書·李紀·英宗皇帝》,東京大學東洋文化研究所,290頁。
[11] 문서 吳士連等《大越史記全書·李紀·高宗皇帝》,東京大學東洋文化研究所,303頁。
[12] 문서 潘清簡等《欽定越史通鑑綱目》正編卷之九,陳憲宗開祐六年「上皇自將伐哀牢」條。
[13] 문서 《越南歷史貨幣》,中國金融出版社,27頁。
[14] 문서 武世營《河仙鎮葉鎮鄚氏家譜》,收錄於《嶺南摭怪等史料三種》,231-232頁。
[15] 문서 武世營《河仙鎮葉鎮鄚氏家譜》,收錄於《嶺南摭怪等史料三種》,235頁。
[16] 문서 戴可來《<嘉定通志>、<鄚氏家譜>中所見17~19世紀初葉的南圻華僑史迹》,附錄於《嶺南摭怪等史料三種》,315-316頁。
[17] 문서 潘輝黎,193頁
[18] 문서 潘輝黎,195頁
[19] 서적 พระราชพงศาวดารกรุงรัตนโกสินทร์ รัชกาลที่ 1 https://vajirayana.o[...] 2019-02-14
[20] 서적 พระราชพงศาวดารกรุงรัตนโกสินทร์ รัชกาลที่ 1 https://vajirayana.o[...] 2019-02-14
[21] 서적 พระราชพงศาวดารกรุงรัตนโกสินทร์ รัชกาลที่ 1 https://vajirayana.o[...] 2019-02-14
[22] 서적 พระราชพงศาวดารกรุงรัตนโกสินทร์ รัชกาลที่ 1 https://vajirayana.o[...] 2019-02-14
[23] 서적 พระราชพงศาวดารกรุงรัตนโกสินทร์ รัชกาลที่ 1 https://vajirayana.o[...] 2019-02-14
[24] 서적 พระราชพงศาวดารกรุงรัตนโกสินทร์ รัชกาลที่ 1 https://vajirayana.o[...] 2019-02-14
[25] 문서 "《大南寔錄/大南正編列傳初集/卷33》" "[:zh:s:大南寔錄/大南正編列傳初[...]
[26] 간행물 A Foreign Policy of Independence and Peace Vietnam Bulletin 1974-11-01
[27] 간행물 The Republic of Viet-Nam Strengthens Relations with other Developing Countries. Viet-Nam: Yesterday and Today 1975-01-01
[28] 웹인용 Cambodia Refugee Crisis: History http://forcedmigrati[...] 2015-06-27
[29] 뉴스 国际社会1979年就我对越自卫还击的态度 http://military.chin[...] 2006-12-27
[30] 뉴스 Expect Thailand, Vietnam to embrace each other even more https://www.nationmu[...] 2022-11-18
[31] 웹인용 Vietnam in ASEAN : Toward Cooperation for Mutual Benefits https://asean.org/vi[...] 2022-11-18
[32] 뉴스 VN, Thailand's relationship thrives http://vietnamnews.v[...]
[33] 웹인용 越南驻泰国孔敬总领事馆协助越南公民通过陆路返乡过年 https://zh.vietnampl[...] 2022-01-12
[36] 웹인용 越南公民以治病为目的入境泰国可停留90天免签 https://zh.vietnampl[...] 2017-07-14
[37] 웹인용 EXEMPTION OF ENTRY VISA TO VIETNAM http://lanhsuvietnam[...] 2014-03-28
[38] 웹인용 Vietnam offers visa exemption to Belarus http://english.vietn[...] 2015-06-01
[39] 웹인용 Visa-free travel for people from five countries soon http://vietnamtouris[...] 201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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