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크 요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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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지크 요제프는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활약한 헝가리의 축구 선수이다. 부다페스트 혼베드 FC에서 5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1952년 헬싱키 올림픽 금메달, 1954년 FIFA 월드컵 준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101번의 A매치에 출전하여 11골을 기록했으며, 1950년대 '매직 마자르' 헝가리 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은퇴 후에는 정치가로 활동했으며, 혼베드의 이사, 감독을 역임했다. 1978년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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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크 요제프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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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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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925년 11월 28일 |
출생지 | 키슈페스트, 헝가리 |
사망일 | 1978년 5월 31일 |
사망지 | 부다페스트, 헝가리 |
포지션 | 중앙 미드필더 |
애칭 | Cucu |
클럽 경력 | |
유소년 클럽 | 부다페스트 혼베드 (1937–1943) |
클럽 | 부다페스트 혼베드 (1943–1962) |
출장 (골) | 477 (33) |
국가대표 경력 | |
국가대표 | 헝가리 (1947–1962) |
출장 (골) | 101 (11) |
감독 경력 | |
감독 | 부다페스트 혼베드 (1966–1967) |
메달 | |
올림픽 | 1952 헬싱키 금메달 |
FIFA 월드컵 | 1954 스위스 준우승 |
2. 경력
보지크 요제프는 부다페스트의 키슈페스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친구 푸슈카시 페렌츠와 함께 축구를 시작했다. 11세에 키슈페스트 AC(KAC, 후의 혼베드) 유소년팀에 입단했고, 1943년 1군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혼베드에서 오랜 기간 활약하며 여러 차례 리그 우승과 1959년 미트로파컵 우승을 경험했다.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는 1947년 불가리아전에서 데뷔하여 1962년까지 총 101경기에 출전해 11골을 기록했다.[7] 그는 1950년대 매직 마자르의 핵심 멤버로, 1952년 헬싱키 올림픽 금메달과 1954년 FIFA 월드컵 준우승에 기여했다. 특히 1953년 웸블리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역사적인 6-3 승리 경기에서도 활약했다.[7]
전성기 시절 그는 세계 최고의 공격형 하프백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으며, 뛰어난 기술과 전술 이해도, 정확한 패스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1956년 헝가리 혁명 이후에도 팀에 남아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현역 은퇴 후에는 친정팀 혼베드의 이사와 감독을 역임했고, 1974년에는 잠시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나 건강 문제로 사임했다.[7] 이후 정치가로도 활동했다. 1978년 5월 31일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으며[5], 사후 키슈페슈트 명예 시민으로 추대되었고 혼베드의 홈 구장은 그의 이름을 따 '요제프 보지크 스타디움'으로 명명되었다.[5]
2. 1. 클럽 경력
보지크 요제프는 11세에 키슈페스트 AC(Kispesti AC, 이후 부다페스트 혼베드)의 유소년팀에 입단하여 축구를 시작했다. 그는 어린 시절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푸슈카시 페렌츠와 함께 키슈페스트 지역 축구장에서 성장했다. 1943년, 보지크는 바샤시 SC와의 경기에서 KAC 소속으로 1군 데뷔전을 치렀다.이후 KAC는 육군 클럽인 혼베드로 재편되었고, 보지크는 푸슈카시 페렌츠 등 동료들과 함께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5번의 리그 우승(1949년, 1950년, 1952년, 1954년, 1955년)을 이끌었다. 1956년 헝가리 혁명 이후 많은 선수들이 팀을 떠났지만, 보지크는 혼베드에 남아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1959년에는 팀의 미트로파컵 우승에 기여했다.
보지크는 혼베드(KAC 및 법적 승계자인 BHSE 포함)에서 총 477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33골을 기록했다.[2] (다른 자료에서는 리그 447경기 출전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선수 시절 보지크는 세계 최고의 공격형 하프백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뛰어난 기술, 전술 이해도, 창의적이고 정확한 패스 능력을 갖추었으나,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가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태클 능력 또한 뛰어나 처진 위치에서 경기를 조율하는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 역할도 소화했다.
현역 은퇴 후에는 혼베드의 이사로 활동했으며, 1966년 1월부터 1967년 9월까지 친정팀 혼베드의 감독을 맡아 47경기를 지휘했다.[7]
2. 2. 국가대표 경력
1947년 8월 17일, 21세의 나이로 불가리아를 상대로 헝가리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7] 그는 1962년 4월 18일 우루과이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할 때까지 총 101경기에 출전하여 11골을 기록했다.[2][7] 이 기록은 2016년 골키퍼 가보르 키랄리가 경신하기 전까지 헝가리 선수 역대 최다 출전 기록이었다.[2]보지크는 1950년대 매직 마자르로 불린 전설적인 헝가리 대표팀의 핵심 멤버였다. 그는 오른쪽 하프백으로 활약하며 중원의 지휘관으로서 뛰어난 패스 능력과 리더십을 발휘하여 공격진을 이끌었고[5], 처진 공격수 역할을 맡은 난도르 히데그쿠티를 지원했다.[6] 그는 1952년 헬싱키에서 열린 1952년 하계 올림픽에서 헝가리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고,[3] 1954년 FIFA 월드컵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1953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잉글랜드를 6-3으로 꺾은 세기의 경기에 출전하여 50분에 중거리 슛으로 팀의 5번째 골을 넣는 등 승리에 크게 기여했으며,[7] 이듬해 부다페스트에서 잉글랜드를 7-1로 대파한 경기에도 참가했다.
1956년 헝가리 혁명 이후 혼베드의 겨울 투어에서 돌아와 1958년 FIFA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현역 은퇴 후, 1974년 헝가리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건강 문제로 인해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임해야 했다.[7]
2. 3. 헝가리 혁명과 보지크
1956년-1957년, 보지크는 혼베드의 겨울 투어에서 돌아와 1958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하였다. 일 년 후, 그는 혼베드에서 미트로파컵 우승을 경험하였다.3. 플레이 스타일
보지크는 전성기 시절 세계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뛰어난 기술, 전술 이해도, 창의적인 경기 운영 능력과 정확한 패스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수준급의 태클 능력을 바탕으로 종종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다만, 속도가 다소 느리다는 단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헝가리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4]
4. 은퇴 후
현역 은퇴 후에는 정치가로서 활동하는 한편, 친정팀인 혼베드의 이사로 취임했다. 그는 1966년 1월부터 1967년 9월까지 혼베드 감독을 맡아 47경기를 지휘했으며[7], 이후 다시 이사직으로 복귀했다.
1974년에는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지만, 지병으로 인해 취임 직후 곧바로 사임해야 했다[7].
1978년 5월 31일, 보지크는 심부전으로 인해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5]. 그는 사후에 키슈페슈트의 명예 시민이 되었으며, 생전의 공적을 기려 혼베드의 홈 구장은 그의 이름을 딴 '요제프 보지크 스타디움'으로 개칭되었다[5].
5. 사망
1978년 5월 31일, 심부전으로 인해 52세의 나이로 부다페스트에서 사망했다.[5] 그는 사후에 키슈페슈트의 명예 시민이 되었다. 생전의 공적을 기려, 혼베드의 홈 구장은 '요제프 보지크 스타디움'으로 개칭되었다.[5]
6. 수상 내역
(혼베드)
(헝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