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구 성지곡수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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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산 구 성지곡수원지는 1909년 완공된 한국 최초의 콘크리트 중력식 댐으로, 대한제국 정부와 일본 거류민단의 합의로 건설되었다. 당시 부산 인구 증가에 대비하여 건설되었으며, 서면~수정동 일대에 수돗물을 공급했다. 1972년 낙동강 상수도 공사 완공 이후 1985년 용수 공급이 중단되었고, 현재는 부산어린이대공원에 편입되어 호수와 교육 및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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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구 성지곡수원지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 | |
이름 | 부산 구 성지곡수원지 |
영어 이름 | Former Seongjigok Valley Reservoir, Busan |
지정 유형 | 국가등록문화재 |
등록 번호 | 376 |
지정일 | 2008년 7월 3일 |
시대 | 1909년 |
소유자 | 부산광역시 |
참고 유형 | 등록문화재 / 기타 / 산업시설 |
면적 | 수원지 유역 260,895m2 |
위치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새싹로 295, 외 (초읍동) |
꼬리표 | 부산 초읍동 |
문화재청 ID | 79,03760000,21 |
추가 정보 |
2. 역사
1909년 대한제국과 부산의 일본거류민단이 공사비 공동 부담과 공동 경영 계약을 체결하고 건설한 상수도 수원지이다. 처음에는 부산 지역에 식수를 공급하였고, 이후 산업용 용수로도 사용되었다. 현재는 부산어린이대공원 내 교육 관광 자원으로 쓰이고 있다.[1]
정초석에는 대한제국 연호로 준공 시기를 알리는 “隆熙 3년 竣工”이라는 기록과 함께, 건설에 참여한 일본인 기술자 이름이 영문으로 기록되어 있다.[1] 수원지 댐과 침전지 댐은 콘크리트 구조체 표면에 거칠게 다듬은 석재를 붙여 마감하였으며, 댐의 단면은 물에 접하는 안쪽은 수직에 가깝고, 바깥쪽은 밑이 넓고 위로 가면서 체감되는 형태이다.[1]
1972년 낙동강 상수도 취수 공사가 완공되면서 상수도 공급 기능이 중단되고, 수원지 일대가 공원화되어 부산어린이대공원에 편입되었다.[1] 수원지는 한국 지형을 닮은 형태로, 착공 당시 부산 인구는 4만 명 정도였으나, 30만 명으로 인구가 늘어날 것을 대비하여 건설되었다.
2. 1. 건설 배경
1906년 대한제국 정부와 일본 거류민단은 성지곡수원지 공사비 분담과 공동 운영에 합의하고, 1907년 4월에 착공하였다. 당시 부산 인구는 4만 명 정도였으나, 30만 명으로 인구가 늘어날 것을 대비하여 수원지를 건설하였다.[1] 융희 3년(1909년) 9월에 완공된 수원지는 서면~수정동에 이르는 지역까지 수돗물을 공급하였다.[1]2. 2. 대한제국과 일본의 공동 건설
1906년 대한제국 정부와 일본 거류민단이 공사비 분담과 공동 운영에 대하여 합의하고 1907년 4월에 착공, 2년 5개월 뒤인 융희(隆熙) 3년(1909년) 9월에 완공하였다.[1] 정초석에는 대한제국 연호로 준공 시기를 알리는 "隆熙 3년 竣工"이라는 기록 외에도 영문으로 건설에 참여한 일본인 기술자 이름 등이 기록되어 있다.[1]2. 3. 용수 공급 및 기능 중단
1909년 수원지가 준공되면서 서면~수정동에 이르는 지역까지 수돗물을 급수하였다.[1] 1972년 낙동강 상수도공사가 완공되면서 상수도 공급 기능이 중단되었고, 1985년 1월부터 용수 공급이 중단되어 현재는 호수로서 부산의 랜드마크로 사용되고 있다.[1]3. 구조 및 규모
성지곡 수원지는 저수량 610000ton, 제방 길이 112m, 제방 높이 27m, 수심 22.5m 규모이다. 댐과 침전지는 콘크리트 구조체 표면에 거칠게 다듬은 석재를 붙여 마감하였으며,[1] 댐 단면은 안쪽은 수직, 바깥쪽은 밑이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수압을 분산시킨다.[1]
3. 1. 구조적 특징
부산 구 성지곡수원지의 댐과 침전지 댐은 콘크리트 구조체 표면에 거칠게 다듬은 석재를 붙여 마감하였다.[1] 댐 단면은 물에 접하는 안쪽은 수직에 가깝고, 바깥쪽은 밑이 넓고 위로 가면서 줄어드는 형태인데, 이는 댐이 받는 수압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1]3. 2. 규모
항목 | 값 |
---|---|
저수량 | 610000ton |
제방 길이 | 112m |
제방 높이 | 27m |
수심 | 22.5m |
4. 현재의 활용
현재 수원지 일대는 공원화되어 부산어린이대공원에 편입되었으며, 교육 및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1]
4. 1. 부산어린이대공원 편입
1972년 낙동강 상수도 취수 공사가 완공되면서 상수도 공급 기능이 중단되었고, 수원지 일대가 공원화되어 부산어린이대공원에 편입되었다.[1]4. 2. 교육 및 관광 자원
부산 구 성지곡수원지는 1909년에 부산 지역에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건립된 상수도 수원지였다. 이후 산업용 용수를 공급하다가, 1972년 낙동강 상수도 취수 공사가 완공되면서 상수도 공급 기능이 중단되었다. 현재는 수원지 일대가 공원화되어 어린이 대공원 내 교육 및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1]5. 한국 상수도 역사에서의 의의
부산 구 성지곡 수원지는 대한제국 시기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건설된 한국 최초의 근대적 상수도 시설이라는 점에서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1909년 완공되어 부산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함으로써 시민들의 생활 환경 개선에 기여하였다. 1972년 낙동강 상수도 건설 이후 상수원으로서의 기능은 중단되었지만, 한국 상수도 역사의 중요한 발자취로 평가받고 있다.
5. 1. 한국 최초의 콘크리트 댐
성지곡 수원지는 한국 최초의 콘크리트 중력식 댐이다. 1906년 대한제국 정부와 일본 거류민단이 공사비 분담과 공동 운영에 합의하여 1907년 4월에 착공, 2년 5개월 뒤인 융희(隆熙) 3년(1909년) 9월에 완공하였다.[1] 수원지 댐과 침전지 댐은 콘크리트 구조체 표면에 거칠게 다듬은 석재를 붙여 마감하였으며, 댐의 단면은 물에 접하는 안쪽은 수직에 가깝고, 바깥쪽은 밑이 넓고 위로 가면서 체감된 형태이다.[1] 1972년 낙동강 상수도 취수 공사가 완공되면서 상수도 공급 기능이 중단되고 수원지 일대가 공원화되어 부산어린이대공원에 편입되었다.[1]5. 2. 근대 상수도 시스템 도입
대한제국 정부와 부산의 일본거류민단은 공사비를 공동으로 부담하고 공동 경영하는 계약을 체결하여 성지곡수원지를 건설하였다. 1907년 4월에 착공하여 2년 5개월 뒤인 융희 3년(1909년) 9월에 완공되었으며, 정초석에는 대한제국 연호로 “隆熙3년 竣工”이라는 기록과 함께 영문으로 건설에 참여한 일본인 기술자 이름 등이 기록되어 있다.[1]이 시설은 1906년 대한제국 정부와 일본 거류민단이 공사비 분담 및 공동 운영에 합의하면서 부산 지역에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건설된 상수도 수원지이다.[1] 수원지 댐과 침전지 댐은 콘크리트 구조체 표면에 거칠게 다듬은 석재를 붙여 마감하였으며, 댐의 단면은 물에 접하는 안쪽은 수직에 가깝고 바깥쪽은 밑이 넓고 위로 가면서 체감되는 형태이다.[1]
수원지 공사 착공 당시 부산 인구는 4만 명 정도였으나, 30만 명으로 인구가 늘어날 것을 대비하여 건설되었다. 수원지가 준공되면서 서면~수정동에 이르는 지역까지 수돗물을 급수하였으나, 1972년 낙동강 상수도 공사가 완공되면서 상수도 공급 기능은 중단되었다.[1] 1985년 1월부터 용수 공급이 중단되고 현재는 호수로서 부산의 랜드마크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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