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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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블로러만은 아드리아해와 이오니아해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만으로, 카라부룬 반도와 케라우니아 산맥에 의해 경계를 이루며, 카라부룬-사잔 해양 공원이 인접해 있다. 다양한 조류와 식물 종의 서식지로서 중요 조류 지역 및 중요 식물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고대 시대에는 일리리아 해안의 남쪽 경계를 이루었으며, 고대 그리스 식민지, 로마 시대의 중요한 장소로 활용되었다. 18척의 상선이 침몰한 기록이 있으며, 블로러 대학교에서 연구가 진행되었다. 파샬리만 해군 기지는 고대부터 항구로 사용되었고, 냉전 시대에는 소련 해군 기지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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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바니아의 지리 - 발칸반도
발칸반도는 유럽 남동부의 반도로 아드리아해, 지중해, 흑해에 접하며 다뉴브강, 사바강, 쿠파강 이남 지역을 지칭하고, 다양한 국가들이 위치하며 역사적,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유럽의 화약고'라고도 불린다.
블로러만 | |
---|---|
개요 | |
위치 | 남유럽, 알바니아 |
해역 | 아드리아해, 이오니아해(지중해) |
면적 | 250km² |
길이 | 10km |
깊이 | 25m |
지리 | |
연안 국가 | 알바니아 |
주요 정착지 | 블로러 |
명칭 | |
로마자 표기 | Gjiri i Vlorës |
2. 지리
카라부룬 반도는 아드리아해와 이오니아해가 만나는 지점에 뻗어 있으며, 구조가 매우 언덕이 많고 불규칙한 만의 서쪽 해안선을 포함한다. 카라부룬-사잔 해양 공원이 이곳에 위치한다.[3]
2. 1. 생물 다양성
블로러만 만은 다양한 조류와 식물 종에게 훌륭한 서식지를 제공한다는 점 때문에 중요 조류 지역 및 중요 식물 지역으로 분류된다.[1][2]3. 역사
블로러 만은 고대 시대에 일리리아 해안의 남쪽 경계를 이루었으며, 카라부룬 반도와 케라우니아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 지역은 일리리아와 에피루스를 나누는 자연 경계였다. 해안 지역에는 그리스 식민지인들이 오리쿰, 트론니온, 아울론 등을 세웠고, 내륙에는 일리리아인들이 거주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카이사르가 브룬두시움에서 아드리아 해를 건너 블로러 만에 상륙하여 폼페이우스와 로마 내전을 벌였고, 디라키움 전투를 준비했다는 기록이 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아울론을 타울란티 지역에 위치시켰다.
블로러 만에서는 18척의 상선이 침몰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블로러 대학교에서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만 남서쪽 끝의 파샬리만은 고대에 오리쿰이라 불렸으며, 냉전 시대에는 지중해 유일의 소련 해군 기지였다.
3. 1. 고대
고대 시대에 블로러 만은 일리리아 해안의 남쪽 경계를 이루었다. 만은 남서쪽의 카라부룬 반도(고대 ''아크로케라우니아'')와 남쪽의 케라우니아 산맥으로 경계가 지어졌으며, 이는 일리리아와 에피루스를 분리하는 자연 경계를 나타냈다. 만의 해안 지역에는 고대 그리스 식민지인들이 정착했으며, 전통적으로 오리쿰, 트론니온 및 아울론을 설립했다. 일리리아인들은 만의 내륙에서도 발견되었다. 아크로케라우니아 산맥 기슭 지역, 즉 만 남쪽의 두카트 평야에는 최남단 일리리아인들이 거주했으며, 카오네스와 그들의 영토인 카오니아는 아크로케라우니아 남쪽에 위치했다.고대 로마 시대에 이 지역은 중요한 장소였으며, 예를 들어 카이사르의 몇몇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브룬두시움에서 아드리아 해를 건너 블로러 만 내로 상륙하여 일리리쿰에서 폼페이우스와 로마 내전을 벌이고, 기원전 48년 7월 10일에 곧 벌어질 디라키움 전투를 수행하려 했다는 설이 제기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아울론'' (블로러)을 언급하며, 이를 타울란티 지역에 위치시켰다.
한 기록에 따르면 18척의 상선이 만에서 침몰했다. 블로러 만 연구는 지난 몇 년 동안 블로러 대학교 항해학과의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만의 남서쪽 끝, 파샬리만 해군 기지는 고대부터 항구로 사용되었다. 이 도시는 오리쿰이라고 불렸다.




3. 2. 로마 시대
고대 시대에 블로러 만은 일리리아 해안의 남쪽 경계를 이루었다. 만은 남서쪽의 카라부룬 반도(고대 ''아크로케라우니아'')와 남쪽의 케라우니아 산맥으로 경계가 지어졌으며, 이는 일리리아와 에피루스를 분리하는 자연 경계를 나타냈다. 만의 해안 지역에는 고대 그리스 식민지인들이 정착했으며, 전통적으로 오리쿰, 트론니온 및 아울론을 설립했다. 일리리아인들은 만의 내륙에서도 발견되었다. 아크로케라우니아 산맥 기슭 지역, 즉 만 남쪽의 두카트 평야에는 최남단 일리리아인들이 거주했으며, 카오네스와 그들의 영토인 카오니아는 아크로케라우니아 남쪽에 위치했다.고대 로마 시대에 이 지역은 중요한 장소였으며, 예를 들어 카이사르의 몇몇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브룬두시움에서 아드리아 해를 건너 블로러 만 내로 상륙하여 일리리쿰에서 폼페이우스와 로마 내전을 벌이고, 기원전 48년 7월 10일에 곧 벌어질 디라키움 전투를 수행하려 했다는 설이 제기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아울론'' (블로러)을 언급하며, 이를 타울란티 지역에 위치시켰다.
한 기록에 따르면 18척의 상선이 만에서 침몰했다. 블로러 만 연구는 지난 몇 년 동안 블로러 대학교 항해학과의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만의 남서쪽 끝, 파샬리만 해군 기지는 고대부터 항구로 사용되었다. 이 도시는 오리쿰이라고 불렸다.
3. 3. 중세 이후
고대 로마 시대에 이 지역은 중요한 장소였으며, 카이사르의 몇몇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브룬두시움에서 아드리아 해를 건너 블로러 만 내로 상륙하여 일리리쿰에서 폼페이우스와 로마 내전을 벌이고, 기원전 48년 7월 10일에 곧 벌어질 디라키움 전투를 수행하려 했다는 설이 제기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아울론'' (블로러)을 언급하며, 이를 타울란티 지역에 위치시켰다.[1]한 기록에 따르면 18척의 상선이 만에서 침몰했다. 블로러 만 연구는 지난 몇 년 동안 블로러 대학교 항해학과의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1]
만의 남서쪽 끝, 파샬리만 해군 기지는 고대부터 항구로 사용되었다. 이 도시는 오리쿰이라고 불렸다. 냉전 시대에는 소련 해군 기지였으며, 지중해에서 유일한 기지였다.[1]
3. 4. 냉전 시대
냉전 시대에 블로러 만 남서쪽 끝에 있는 파샬리만은 고대부터 항구로 사용되었으며, 오리쿰이라고 불렸다. 냉전 시기에는 소련 해군 기지였으며, 지중해에서 유일한 기지였다.참조
[1]
웹사이트
Vlora Bay, Karaburun Peninsula and Cika mountain
http://datazone.bird[...]
[2]
웹사이트
Important Plant Areas of the south and east Mediterranean region
https://portals.iucn[...]
[3]
웹사이트
Management Plan for National Marine Park Karaburun-Sazan
http://mcpa.iwlearn.[...]
[4]
서적
[5]
웹사이트
UNIVERSITETI I VLORES 'Ismail Qemali' – Virtus Scientia Veritas
http://univlora.edu.[...]
Univlora.edu.al
2013-04-22
[6]
웹인용
UNIVERSITETI I VLORES 'Ismail Qemali' – Virtus Scientia Veritas
http://univlora.edu.[...]
Univlora.edu.al
2013-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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