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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아이드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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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블루 아이드 소울은 백인 음악가들이 흑인 음악의 영향을 받아 연주하는 음악 스타일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 라이처스 브라더스, 영 라스칼스 등이, 영국에서는 스펜서 데이비스 그룹, 밴 모리슨 등이 이 장르의 선구자로 등장했다. 1970년대에는 홀 앤 오츠, 보즈 스캑스 등이 블루 아이드 소울로 인기를 얻었으며, 1980년대에는 컬처 클럽, 데키스 미드나잇 러너스 등이 이 스타일을 이어갔다. 이 용어는 흑인 음악을 백인이 모방한다는 비판과 함께, 음악적 가치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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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아이드 솔
음악 장르
스타일 기원소울 음악, 블루스, 리듬 앤 블루스, 가스펠 음악
문화적 기원1960년대 초, 미국
추가 정보
관련 장르없음
하위 장르없음
퓨전 장르없음
지역적 장면없음
기타 주제없음

2. 역사

블루 아이드 소울은 1960년대 초 조지 우즈가 만든 용어로, 리듬 앤 블루스 음악을 하는 백인 아티스트들을 지칭했다. 처음에는 The Righteous Brothers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나, 점차 리듬 앤 블루스 라디오 방송국에서 방송되는 백인 아티스트들을 일반적으로 지칭하게 되었다.

"블루 아이드 소울"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백인 음악가들은 R&B 음악을 연주했다. 1960년대 초 티미 유로는 다이나 워싱턴과 같은 흑인 가수들의 영향을 받은 보컬 스타일과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블루 아이드 소울은 다양한 아티스트들에 의해 발전했다. The Righteous Brothers, 톰 존스, The Spencer Davis Group (스티브 윈우드 포함), 반 모리슨 등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이후에도 릭 애스틀리, 조스 스톤, 파올로 누티니, 아델 등이 블루 아이드 소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2. 1. 1960년대: 태동과 초기 발전

The Righteous Brothers, 초기 블루 아이드 소울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아티스트 중 하나


조지 우즈는 1964년에 "블루 아이드 소울"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었다고 여겨진다. 처음에는 The Righteous Brothers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이후에는 리듬 앤 블루스 라디오 방송국에서 방송되는 백인 아티스트들을 일반적으로 지칭했다.[3][4][5] The Righteous Brothers는 1964년 LP ''Some Blue-Eyed Soul''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6][7] 빌 메들리에 따르면, 그들의 노래를 틀어준 R&B 라디오 방송국들은 그들이 인터뷰를 위해 나타났을 때 백인이라는 사실에 놀랐고, 필라델피아의 한 DJ (메들리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아마도 조지 우즈일 것이다)가 "여기에 나의 블루 아이드 소울 형제들이 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이는 청취자들에게 그들이 백인 가수라는 신호를 보내는 암호가 되었다.[8]

"You've Lost That Lovin' Feelin'"으로 히트를 기록한 The Righteous Brothers의 인기는 1960년대 중반 R&B 라디오 방송국들이 백인 아티스트의 노래를 틀게 하는 추세를 시작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는 당시 청취자들에게 더 통합적인 접근 방식이었다.[9] 그 후 "블루 아이드 소울"이라는 용어는 소니 앤 셰어, 톰 존스, 배리 맥과이어, 로이 헤드와 같은 아티스트들에게 적용되었다.[10]

백인 음악가들이 R&B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 것은 "블루 아이드 소울"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기 전이었다. 예를 들어, 1960년대 초, 희귀한 여성 블루 아이드 소울 가수 중 한 명은 티미 유로였는데, 그녀의 보컬 스타일과 레퍼토리는 다이나 워싱턴과 같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수들의 영향을 받았다.[11]

스티브 윈우드가 Traffic와 함께 공연하는 모습, 1969


로니 맥은 1963년 복음적인 보컬로 블루 아이드 소울 가수로 널리 호평을 받았다.[12] 더 도벨스의 전 리드 싱어인 렌 배리는 1965년과 1966년에 미국 데카 레코드에서 "1-2-3", "Like a Baby", "I Struck It Rich"를 녹음했으며, 이 곡은 필라델피아 인터내셔널 레코드 프로듀서인 갬블 앤 허프의 레온 허프와 함께 작곡했다. The Rascals와 같은 그룹은 소울풍의 팝송을 가지고 있었지만,[13] 그들에게 블루 아이드 소울 사운드를 부여한 것은 펠릭스 카발리에의 소울풀한 보컬이었다.

1960년대 중반까지 영국의 가수인 더스티 스프링필드, 에릭 버든, 톰 존스가 이 새로운 스타일의 주요 보컬 스타가 되었다. 블루 아이드 소울의 다른 주목할 만한 영국 대표자로는 The Spencer Davis Group (스티브 윈우드 포함), 반 모리슨, 그리고 전형적인 모드 밴드 The Small Faces가 있는데, 이들의 사운드는 Booker T. & the M.G.'s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금발의 블루 아이드 소울 가수 크리스 클락은 1966년 모타운 레코드와 함께 "Love's Gone Bad"로 R&B 히트를 기록한 최초의 백인 가수가 되었다. 1969년 키키 디는 모타운과 계약하고 녹음한 최초의 영국 아티스트가 되었다. 1960년대의 일부 영국 록 그룹 - 스펜서 데이비스 그룹, 롤링 스톤스 ("My Girl"), 더 후 ("Heat Wave") - 는 모타운과 리듬 앤 블루스 트랙을 커버했다.

1967년, 제리 리 루이스선 레코드 시절(1961–63)의 후반기에 R&B 커버를 특징으로 했는데, 스매시를 위해 ''Soul My Way''라는 앨범을 녹음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1969년에 블루 아이드 소울, 서던 소울, 컨트리 소울 앨범인 ''From Elvis in Memphis''를 발매했다. 델라니와 보니 (브램렛)는 1969년 스택스에서 블루 아이드 소울 앨범 ''Home''을 제작했다.[14] 마이클 셈벨로는 17세에 스티비 원더와 투어를 하기 위해 집을 떠났으며, 원더, 브라이언 맥나이트, 데이비드 샌본, 빌 챔플린, 바비 콜드웰을 위해 수많은 블루 아이드 소울 히트곡을 작곡하고 공연했다. 토드 룬드그렌폴 버터필드 블루스 밴드를 모델로 한 그룹인 우디스 트럭 스톱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퍼니에서 탈퇴한 후, 재니스 조플린은 키보드 연주자 스티븐 라이더와 색소폰 연주자 코르넬리우스 "스누키" 플라워스, 그리고 전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퍼니 기타리스트 샘 앤드루와 미래의 Full Tilt Boogie Band 베이시스트 브래드 캠벨과 같은 세션 뮤지션들로 구성된 새로운 백업 그룹인 코즈믹 블루스 밴드를 결성했다. 이 밴드는 오티스 레딩과 더 바-케이스로 대표되는 스택스-볼트 리듬 앤 블루스 (R&B)와 소울 밴드의 영향을 받았다.[15][16]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와 같은 소울 지향적인 곡들을 불렀던 조 코커는 ''시카고 선 타임스''에 의해 "그 이후 모든 블루 아이드 소울 가수들을 위한 문을 열었다"라고 칭찬받았다.[17]

흑인 연주에 동경하여 백인이 소울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서 거부감이 있었다. 블루 아이드 소울이라는 장르에 대해서는, 진짜 소울, R&B와 비교하여 경시하는 의견도 보였다. 하지만, 오늘날 이 장르에 분류되는 아티스트의 일부는, 음악 평론가나 음악 팬으로부터 정당하게 평가받게 되었다.

1960년대 전반에 라이처스 브라더스에 대해 "블루 아이드 소울"이라는 음악 용어가 사용되었고, 그 후, 라디오에서 방송되는 백인 리듬 앤 블루스 뮤지션에게도 이 용어가 사용되게 되었다. 1960년대에는 미국에서 라이처스 브라더스[29], 영 라스칼스[30], 영국에서 스펜서 데이비스 그룹[31], 밴 모리슨과 젭[31] 등이 등장하여 그들의 음악은 블루 아이드 소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2. 2. 1970년대: 다양화와 확장

해밀턴, 조 프랭크 & 레이놀즈는 "Don't Pull Your Love"(1971)로, 더 그래스 루츠는 "Two Divided by Love"(1971)와 "The Runway"(1972)로 성공적인 블루 아이드 소울 싱글을 발표했다. 1973년에는 미국의 밴드 스토리즈와 캐나다 그룹 스카이락이 각각 블루 아이드 소울 싱글 "Brother Louie"와 "Wildflower"로 성공을 거두었다. 1975년 2월, 타워 오브 파워는 최초의 백인/혼성 그룹으로 ''소울 트레인''에 출연했다.

같은 해, ''소울 트레인''에 출연한 또 다른 초기 백인 아티스트인 데이비드 보위는 스스로 "플라스틱 소울"이라고 칭한 인기 블루 아이드 소울 앨범 ''Young Americans''를 발매했다.[18] 이 앨범에는 펑크에서 영감을 받은 "Fame"이 수록되었으며, 이 곡은 보위의 미국 첫 번째 넘버원 히트곡이 되었다. 홀 앤 오츠의 1975년 앨범 ''Daryl Hall & John Oates''에는 발라드 "Sara Smile"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 곡은 오랫동안 블루 아이드 소울의 스탠다드로 여겨졌다. 또 다른 소울풀한 히트곡인 "She's Gone"은 원래 1973년에 발매되었지만, "Sara Smile" 이후 재발매되어 더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바비 콜드웰은 블루 아이드 소울의 가장 주목할 만한 대표자 중 한 명으로, 1978년에 그의 불후의 히트곡 "What You Won't Do for Love"를 발표했다.

1970년대 전반에는 스토리즈의 「브라더 루이」[32], 스카이락의 「와일드 플라워」, 레드본의 「컴 앤 겟 유어 러브」 등 블루 아이드 소울의 명곡, 수작이 탄생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홀 앤 오츠, 보즈 스캑스 등이 블루 아이드 소울 히트곡을 냈다.

2. 3. 1980년대: 전성기와 대중화

1980년대에는 홀 앤 오츠(Hall and Oates)의 싱글들이 어반 컨템포러리 라디오에서 많은 방송을 타면서 블루아이드 소울 음악의 차트 성공이 최고조에 달했다. 대표적인 곡으로는 "I Can't Go for That (No Can Do)", "Kiss on My List", "One on One", "Say It Isn't So", "Adult Education", "Out of Touch", "Method of Modern Love", "Everytime You Go Away" 등이 있다. 이 싱글들 중 대부분은 R&B와 댄스 차트에서 순위에 올랐으며, 일부는 1위를 차지했다. 1985년에는 심플리 레드(Simply Red)가 가장 성공적인 블루아이드 소울 발라드 중 하나인 "Holding Back the Years"를 발표했으며, "Money's Too Tight (to Mention)"를 비롯한 다른 싱글들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80년대의 다른 성공적인 블루아이드 소울 곡으로는 필 콜린스(Phil Collins)의 "You Can't Hurry Love" 커버 (1982), 컬처 클럽(Culture Club)의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 (1982), "Time (Clock of the Heart)" (1982) 및 "Church of the Poison Mind" (1983), 데시스 미드나잇 러너스(Dexys Midnight Runners)의 "Come On Eileen" (1983), 더 스타일 카운슬(the Style Council)의 "Shout to the Top" (1984), 티나 마리(Teena Marie)의 "Lovergirl" (1985), 폴 영(Paul Young)의 "Every Time You Go Away" (1985), 유리스믹스(Eurythmics)의 "Missionary Man" (1986),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의 "Roll with It" (1988) 등이 있다. 1980년대 말, 영국 출신 아티스트인 리사 스탠스필드(Lisa Stansfield)는 R&B 라디오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 세 개의 R&B 1위 히트곡을 기록했는데, 가장 인기 있는 곡은 "All Around the World"였다.

1980년대 중반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은 "Careless Whisper"와 "Everything She Wants"와 같은 히트 싱글로 미국 핫 R&B/힙합 송(Hot R&B/Hip-Hop Songs)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가 진정한 성공을 거둔 것은 멀티 플래티넘 앨범 ''Faith''(1987)을 발매하고 백인 소울 가수로 변신한 후였다.[20] 이 앨범은 톱 R&B/힙합 앨범(Top R&B/Hip-Hop Albums) 차트에서 서서히 정상을 차지하여 백인 아티스트의 앨범으로는 처음으로 해당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앨범에서 발매된 가스펠의 영향을 받은 싱글들, 특히 "Father Figure"와 "One More Try"의 성공에 기인했다.[21][22] 1989년에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페이보릿 소울/R&B 남성 아티스트 및 ''Faith'' 앨범으로 페이보릿 소울/R&B 앨범을 포함하여 세 개의 상을 수상했다.[23]

2. 4. 1990년대 이후: 지속적인 발전과 한국의 블루 아이드 소울

댄스 팝 가수 릭 애스틀리는 1990년대 초반, 히트곡 "Cry for Help"가 수록된 앨범 ''Free''를 발표하며 블루 아이드 소울과 성인 컨템포러리로 음악적 방향을 전환했다.

조스 스톤은 2003년 첫 앨범 ''The Soul Sessions''를 발매한 후 호평을 받았다. 파올로 누티니는 소울 음악의 영향을 받은 첫 두 앨범이 영국 음반 산업 협회(BPI)로부터 5배 플래티넘 음반 판매 인증을 받았다.[24] 아델의 데뷔 앨범 ''19''는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더피, 웨일스 소울 아티스트

3. 비판과 논쟁

1980년대 후반, 일부 흑인들은 백인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 있다고 느끼며 반발했다. 그러나 그 반발의 정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1989년, ''에보니''는 백인들이 R&B를 "장악"하고 있는지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에는 흑인과 백인 모두를 포함한 음악 산업 관계자들이 참여했으며, 이들은 협력이 통합의 힘이라고 믿었고, R&B의 미래가 현대적인 도시 사운드에 의해 위협받지 않는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1999년 ''에보니''에 실린 유사한 기사에서는 "블루 아이드"의 영향력에 대한 상반된 의견이 강조되었지만, 논쟁의 원인은 블루 아이드 소울의 예술적 가치가 아니라 미국 사회와 음악 산업 내에서 지속되는 경제적 불평등이었다.[25]

학자 조안나 테레사 데머스에 따르면, "블루 아이드 소울과 백인 펑크의 [엘비스의] 후계자"들은 시인 길 스콧-헤론을 격분시켰는데, 이는 "흑인들이 여전히 문화 전유의 피해를 입고 있으며, 미국 역사에 대한 그들의 기여가 사실상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게 만든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엘비스 이후 "흑인 문화 정체성을 백인들이 획득하는 오랜 전통"은 스콧-헤론의 말처럼 "예술적 도용"이었으며,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26]

대릴 홀은 "블루 아이드 소울"이라는 용어를 역차별적인 표현이라고 묘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은 내가 외부에서 온 것으로 가정한다. 미국에는 항상 그런 게 있었는데, 만약 백인이 흑인 음악으로 노래하거나 연주하면, '왜 저러는 거지? 외부에서 보고 있는 건가? 베끼는 건가? 무슨 의미가 있지?' 이런 식이다. 제발, 이건 음악이다! 음악이라고."[27]

흑인 연주에 동경하여 백인이 소울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 거부감이 있었다. 블루 아이드 소울이라는 장르에 대해서는, 진짜 소울, R&B와 비교하여 경시하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이 장르에 분류되는 아티스트의 일부는 음악 평론가나 음악 팬으로부터 정당하게 평가받게 되었다. 1960년대 전반에 라이처스 브라더스에 대해 "블루 아이드 소울"이라는 음악 용어가 사용되었고, 그 후, 라디오에서 방송되는 백인 리듬 앤 블루스 뮤지션에게도 이 용어가 사용되게 되었다.

4. 주요 아티스트 및 작곡가

"블루 아이드 소울"이라는 용어는 1964년 필라델피아의 라디오 DJ 조지 우즈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처음에 라이처스 브라더스를 묘사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으며, 이후에는 리듬 앤 블루스 라디오 방송국에서 방송되는 백인 아티스트들을 일반적으로 지칭하게 되었다.[3][4][5] 빌 메들리에 따르면, 라이처스 브라더스의 노래를 틀어준 R&B 라디오 방송국들은 그들이 백인이라는 사실에 놀랐고, 필라델피아의 한 DJ가 "여기에 나의 블루 아이드 소울 형제들이 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청취자들에게 그들이 백인 가수라는 신호를 보내는 암호가 되었다고 한다.[8]

1960년대 중반에는 소니 앤 셰어, 톰 존스, 배리 맥과이어, 로이 헤드와 같은 아티스트들에게도 "블루 아이드 소울"이라는 용어가 적용되었다.[10]

4. 1. 주요 아티스트



주요 아티스트


4. 2. 한국의 주요 아티스트

Blue-eyed soul영어는 R&B나 소울 음악을 노래하는 백인 아티스트를 가리킨다. 다음은 한국에서 잘 알려진 주요 Blue-eyed soul영어 아티스트들이다.

아티스트비고
애니멀스에릭 버든 재적
컬처 클럽 / 보이 조지
KC & 더 선샤인 밴드
재니스 조플린
조스 스톤
심플리 레드
스윙 아웃 시스터
스타일 카운슬
스티브 윈우드스펜서 데이비스 그룹 재적
더스티 스프링필드
덱시즈 미드나잇 러너스
홀 앤 오츠
보즈 스캑스
바비 콜드웰
폴 영
마크 론슨
유리스믹스 / 애니 레노스
라이처스 브라더스
리사 스탠스필드


4. 3. 주요 작곡가 및 프로듀서


  • 제리 리버와 스톨러[33]
  • 데니스 램버트 & 브라이언 포터
  • 댄 펜 & 스푸너 올덤
  • 칩스 모먼
  • 제리 라곳보이
  • Bert Berns|버트 번스영어

5. 같이 보기

참조

[1] 서적 Rock: From Elvis Presley to the Rolling Stones https://books.google[...] Quadrangle
[2] 웹사이트 Blue-Eyed Soul http://www.allmusic.[...] AllMusic 2014-11-16
[3] 간행물 Blue-Eyed Soul Artists Herald Musical Integration on Airways https://books.google[...] 1966-10-22
[4] 웹사이트 Blue-eyed Soul: Colour Me Soul http://www.soul-sour[...]
[5] 웹사이트 Georgie Woods http://www.broadcast[...]
[6] Gilliland Show 55 – Crammer: A lively cram course on the history of rock and some other things https://digital.libr[...]
[7] 웹사이트 Righteous Brothers, The – Some Blue-Eyed Soul at Discogs http://www.discogs.c[...] 2013-03-25
[8] 서적 The Time of My Life: A Righteous Brother's Memoir https://books.google[...] Da Capo Press 2014-04-24
[9] 간행물 R&B Stations Open Air Gates to 'White Soulists' https://books.google[...] 1965-10-09
[10] 간행물 Blue-Eyed Soul Artists Herald Musical Integration on Airways https://books.google[...] 1966-10-22
[11] 뉴스 Timi Yuro: Feisty white singer with a black soul voice https://www.theguard[...] The Guardian 2004-04-10
[12] 문서
[13] 웹사이트 Blue Eyed Soul Music – What is Blue Eyed Soul Music? – Oldies Music Songs and Artists http://oldies.about.[...] 2012-05-22
[14] 웹사이트 The Righteous Brothers "Blue-Eyed Soul" http://www.righteous[...] 2010-09-14
[15] 서적 Pearl: The Obsessions and Passions of Janis Joplin : A Biography https://archive.org/[...] Time Warner 1992-10-01
[16] 서적 Buried Alive: The Biography of Janis Joplin https://archive.org/[...] Crown Publishing Group 1992-09-15
[17] 뉴스 Joe Cocker opened the door for all blue-eyed soul singers https://chicago.sunt[...] 2014-12-23
[18] Consequence of Sound David Bowie Fell to Earth and Found His Plastic Soul on Young Americans https://consequenceo[...]
[19] 웹사이트 George Michael's music in Keanu: The singer was a black radio superstar in the 1980s http://www.slate.com[...] 2019-06-13
[20] 문서
[21] 웹사이트 Much more than a teen idol -- George Michael the musician https://www.cnn.com/[...] 2016-12-26
[22] DeepSoul George Michael - "One More Try" - Blinded by Sound http://blindedbysoun[...]
[23] 웹사이트 5 Times George Michael Showed His 'Blue-Eyed Soul' to Black America http://www.theroot.c[...] 2019-06-13
[24] 웹사이트 Paolo Nutini Biography, Discography, Chart History http://top40-charts.[...] 2017-11-09
[25] 뉴스 'Are Whites Stealing Rhythm & Blues? – conflicting opinions about the ''blue-eyed'' influence in rhythm and blues music http://findarticles.[...] 1999
[26] 서적 Steal this Music: How Intellectual Property Law Affects Musical Creativity University of Georgia Press 2006
[27] Something Else! "Please, don't categorize Hall and Oates this way: 'It's a racist term'" http://somethingelse[...] 2015-05-10
[28] 웹사이트 Blue-Eyed Soul https://www.allmusic[...] 2023-10-10
[29] 문서
[30] 웹사이트 http://zip2000.serve[...]
[31] 웹사이트 http://mentalitch.co[...]
[32] 웹사이트 https://www.allmusic[...]
[33] 웹사이트 http://www.leibersto[...]
[34] 문서
[35] 문서
[36] 문서 インビジブルがブルーアイド・ソウル曲である。
[37] 문서 1978年の「ハウ・マッチ・アイ・フィール」が該当曲。
[38] 문서 「イフ・アイ・キャント・ハブ・ユー」が該当する。
[39] 웹사이트 ヴァン・モリソン https://www.allmusic[...]
[40] 문서 「クッドゥン・ゲット・イット・ライト」がブルーアイド・ソウル曲
[41] 웹인용 Blue-Eyed Soul "{{올뮤직|class=explore[...] Allmusic.com 2010-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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