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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유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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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토 유키에는 일본 출신으로, 한국 록 음악에 심취하여 1995년 일본인 밴드 '곱창전골'을 결성하여 한국에서 활동했다. 1999년 데뷔 음반을 발매했으며, 이후 전위 음악 공연 '불가사리'를 주최했다. 2005년에는 비자 문제로 강제 출국되었으나, 2006년 재입국하여 활동을 재개했다. 곱창전골 외에도 솔로 음반을 발매하고, 2013년에는 예술인 비자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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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유키에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사토 유키에
출생1963년
출생지일본 도쿄
음악 스타일
장르사이키델릭 록
어쿠스틱
실험 음악

2. 생애 및 경력

도쿄 출신으로, 어린 시절 비틀즈의 음악에 영향을 받아 일본 독립 음악계에서 활동했다. 1995년 우연히 서울을 여행하게 되었고, 이때 접한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에 큰 감명을 받아 한국 록 음악에 빠져들었다.[2]

같은 해, 한국 록 음악을 일본에 알리고 직접 연주하기 위해 밴드 '사토 유키에와 곱창전골'(후에 곱창전골로 변경)을 결성했다. 이후 주로 홍대 앞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한국 독립 음악계의 중요 인물로 자리 잡았다. 데뷔 과정에서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1999년 첫 음반 《안녕하시므니까?》를 발표했다.

2003년부터는 실험 음악 공연 시리즈 '불가사리'를 기획하여 한국의 다양한 전위 음악가들을 소개해왔다.[3] 그러나 2005년, 비자 문제로 강제 출국을 당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2] 이듬해 한국인 패션디자이너 한운희와 결혼하여 비자를 해결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을 재개했으며,[4] 이후 꾸준히 음반 발매와 공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6월 항쟁 기념 행사나 수요집회에 참여하는 등 사회 문제에도 목소리를 내왔다.[5] 2013년에는 예술인 비자(D-1)를 취득하여 안정적인 활동 기반을 마련했다.

2. 1. 곱창전골 결성 및 초기 활동

도쿄 출신의 사토 유키에는 어린 시절 비틀즈의 음악에 심취했으며 청소년 시절부터 일본의 독립 음악계에서 활동하였다. 32살이던 1995년, 그는 가장 저렴하다는 이유로 첫 해외 여행지로 서울을 택했다. 당시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음반 가게에서 신중현산울림의 음반을 구입하여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본으로 돌아가 신중현과 엽전들 1집(1974)의 '미인'을 듣고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이에 한국 록 음악을 연구하고 알리기 위해 1995년 8월 '사토 유키에와 곱창전골'을 결성했다.[2] 초기 멤버로는 후에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활동하게 되는 하세가와 요헤이(長谷川陽平|하세가와 요헤이일본어)가 있었다. 밴드 결성 직후 한국을 다시 방문하여 당시 막 생겨나던 홍대 앞의 독립 예술 문화를 접했으며, 이후 주로 홍대 앞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첫 음반 발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 규정상 밴드명이나 음반명에 일본인이 들어갈 수 없어 밴드명을 '곱창전골'로 줄여야 했고, 작사/작곡자 표기에도 일본인을 쓸 수 없어 급히 한국인 매니저의 이름을 대신 올리는 일도 있었다. 여러 어려움 끝에 신대철의 감독 하에 데뷔 음반 《안녕하시므니까?》(1999)를 발매할 수 있었다.

2. 2. 불가사리 주최 및 강제 출국

2003년부터 홍대 앞 독립 음악계에서도 비주류에 속하는 전위 음악가들을 모아 공연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SCUM in Seoul (Small Circle of Unknown Music)'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으며, 열 번째 공연부터는 '불가사리(Bulgasari)'로 명칭을 바꾸어 실험 음악 공연을 꾸준히 개최하였다.[3]

그러나 2005년, 사토 유키에는 예기치 못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관광비자 상태였던 그가 평균 관객 10여 명 정도의 소규모 공연인 불가사리에서 1인당 5천 원의 입장료를 받았다는 이유로 법무부로부터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결국 입국 금지 2년과 함께 벌금 300만을 부과받고 강제 출국 조치를 당했다.[2] 당시 김창완을 비롯한 여러 음악인들이 그의 구명을 위해 탄원서를 모아 제출하였으나, 법무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 3. 한국 귀환 및 이후 활동

2005년, 실험 음악 공연 '불가사리'를 기획하며 1인당 5천원의 입장료를 받았다는 이유로 관광비자 상태였던 그는 법무부로부터 입국 금지 2년과 함께 벌금 300만원을 부과받고 강제 출국되었다.[2] 당시 김창완 등 동료 음악인들이 탄원서를 제출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교제해 온 한국인 패션디자이너 한운희와 결혼하여 동거 비자를 받을 수 있었고, 강제 출국 8개월 만인 2006년 초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4] 같은 해 3월 26일, 홍대 앞 클럽 살롱 바다비에서는 그의 귀환을 환영하는 기념 공연이 열렸다. 사토 유키에는 이 자리에서 "'불가사리' 공연을 계속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불가사리' 공연은 이후에도 매월 국내외의 새로운 전위 음악가들을 소개하며 꾸준히 열리고 있다.

2009년에는 자신의 첫 단독 음반 《사랑스러운 그대》를 발표했다. 한편, 곱창전골의 2집 《나와 같이 춤추자》는 2009년에 녹음을 마쳤으나, 2010년 베이스 연주자 시바토 고이치로(柴藤耕一郞)와 2011년 매니저 홍종수가 연이어 사망하면서 음반 발매가 미뤄졌다. 결국 2011년 8월, 두 사람에게 바치는 헌정 음반으로 세상에 나왔다.

사토 유키에는 음악 활동 외에도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참여했다. 2012년 6월에는 6월 항쟁 25주년을 기념하는 국민 행사에 참가하여 정동 서울시립미술관 앞에서 공연했으며, 같은 해 8월 15일 광복절에는 폭우 속에서도 제1035회 위안부 수요집회에 참여하여 노래했다.[5]

2013년에는 곱창전골 3집 《그 날은 올거야》를 발표했으며, 같은 해 곱창전골 밴드는 대한민국 예술인비자(D-1)를 정식으로 취득하여 활동 기반을 마련했다. 이듬해인 2014년 11월에는 '노가리 트위스트'를 타이틀 곡으로 한 곱창전골 4집 《메뉴판》을 발매했다. 그는 공연 시 라쿤의 꼬리와 비슷한, 의미 불명의 긴 꼬리를 달고 연주하는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2. 4. 약력

3. 음반

사토 유키에는 밴드 곱창전골의 멤버로서 여러 앨범을 발표했다. 또한 솔로 아티스트로서 단독 음반을 발매했으며, 다른 음악가의 음반 작업에 피처링 등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3. 1. 곱창전골

순서앨범명발매 연도
1집《안녕하시므니까?》1999
2집《나와 같이 춤추자》2009
3집《그 날은 올거야》2013
4집《메뉴판》2014


3. 2. 단독 음반


  • 《사랑스러운 그대》 (2009)

3. 3. 참여 음반


  • 재즈말 《[https://www.youtube.com/watch?v=6GgNu39cN9E 고향] (feat. 사토 유키에)》 싱글 [SDP, 미러볼뮤직] (2017)

참조

[1] 웹인용 닻올림 정기연주회_05 : 사토 유키에 SATO Yukie https://web.archive.[...] 2008-11-18
[2] 뉴스 일본인 인디밴드 ‘곱창전골’ “우리에겐 신중현·산울림이 비틀스”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13-05-07
[3] 웹인용 정지연이 만난 사람-015, 사토 유키에Sato Yukie https://web.archive.[...] 스트리트 H 2018-12-15
[4] 뉴스 돌아온 '곱창전골' 사토유키에 http://www.segye.com[...] 세계일보 2006-03-25
[5] 뉴스 광복 수요집회서 일본인 밴드 '반전(反戰)' 열창 https://web.archive.[...] 국제신문 2018-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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