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각사 석가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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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 정각사 석가불도는 1897년에 조성되어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각사에 봉안된 석가모니불화이다. 남장사 관음선원의 혜봉스님이 원불로 모시던 것을 1947년 정각사 주지 광우스님에게 기증되었다. 조선 말기 서울 지역의 대표적인 화승인 영운 봉수와 동호 진철 등이 참여하여 조성되었으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조성 연대가 확실하여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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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각사 석가불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서울 정각사 석가불도 | |
일반 정보 | |
국가 | 대한민국 |
위치 |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동1가 277-6 |
유형 | 문화재자료 |
지정 번호 | 35 |
지정일 | 2007년 5월 10일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 | 1폭 |
문화재청 ID | 31,00350000,11 |
2. 조성 배경 및 역사
성북구 정각사에 있는 석가모니불화는 1897년(건양 2년)에 조성되었다. 원래 남장사 관음선원의 혜봉스님이 원불로 모시던 것을 1947년 현 정각사 주지인 광우스님에게 기증한 것이다. 화폭은 세로 117cm, 가로 91cm로 작은 편인데, 일부 채색이 벗겨졌지만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1]
불화는 세로 117cm, 가로 91cm로 작은 편이다. 화면 중앙에 석가모니불이 크게 묘사되어 있고, 좌우로 협시보살과 제자 등 총 9존이 배치된 간단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본존은 원형 두광과 거대한 신광을 배경으로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얼굴은 갸름한 느낌이며, 둥근 눈썹과 가늘게 뜬 눈, 작은 입 등이 가는 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옷은 변형된 우견편단을 입고 있으며, 대의는 붉은 색을 주조로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수인은 오른손을 들어 올리고 왼손은 무릎 중간에 대어 손가락을 마주 잡고 있다. 권속들은 본존 좌우에 각 4구씩 배치되어 있으며,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지장보살, 가섭존자, 아난존자 등이 묘사되어 있다. 채색은 적색이 주조를 이루고 녹색, 청색, 흰색, 황색 등이 함께 사용되었으며, 필선은 철선묘가 사용되었다.[1]
화기에 따르면, 이 불화는 용악 결택, 뇌응 창휴가 증명하고, 영운 봉수, 동호 진철, 소현 등이 금어로 참여했다. 봉화, 상조, 긍엽, 전수, 취오, 각찬, 우성 등도 함께 불화 조성에 참여하였다.[1]
화기에 따르면 이 불화는 용악 결택(湧岳潔澤), 뇌응 창휴(瀨應昶烋)가 증명하고 금어(金魚)인 영운 봉수(影雲奉秀)와 동호 진철(東昊震徹), 소현(所賢), 편수인 봉화(奉華), 상조(尙照), 긍엽(肯曄), 전수(典守), 취오(取旿), 각찬(覺讚), 우성(祐成)이 함께 조성하였다.[1]
이 불화는 일부 채색이 벗겨지긴 했으나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조성 연대(1897년)가 확실하며, 조선 말기 서울특별시 지역의 대표적 화승인 영운 봉수와 동호 진철이 중심이 되어 조성한 불화이므로 지정 가치가 있다.[1]
3. 도상 및 양식 특징
4. 화승 및 화기
4. 1. 화기 내용
화기에 따르면, 이 불화는 1897년에 용악 결택(湧岳潔澤)과 뇌응 창휴(瀨應昶烋)가 증명하고, 금어(金魚)인 영운 봉수(影雲奉秀)와 동호 진철(東昊震徹), 소현(所賢) 등이 함께 조성하였다.[1] 불화 조성에 참여한 인물들의 역할과 이름은 다음과 같다.
역할 | 이름 |
---|---|
증명 | 용악 결택(湧岳潔澤), 뇌응 창휴(瀨應昶烋) |
금어 | 영운 봉수(影雲奉秀), 동호 진철(東昊震徹), 소현(所賢) |
편수 | 봉화(奉華), 상조(尙照), 긍엽(肯曄), 전수(典守), 취오(取旿), 각찬(覺讚), 우성(祐成) |
고종 건양 2년(1897년) 3월에 조성되어 조실(祖室)에 봉안되었다는 내용과 함께, 조실, 송주, 지전, 공사, 종두, 봉다, 시자, 화대, 별공, 별좌, 화주 등 각 소임과 담당자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1]
5. 가치 및 의의
이 불화는 1897년에 조성되어 조성 연대가 확실하며, 조선 말기 서울 지역의 대표적 화승인 영운 봉수와 동호 진철이 중심이 되어 조성한 불화이므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1] 채색 일부가 벗겨졌으나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보존 및 연구되고 있다.[1]
6. 보존 상태
이 불화는 세로 117cm, 가로 91cm로 작은 편인데, 일부 채색이 박락되긴 하였으나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1]
참조
[1]
간행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 지정
http://event.seoul.g[...]
서울특별시장
2007-05-03
[2]
간행물
서울특별시 지정 문화재 지정명칭 변경
http://event.seoul.g[...]
서울특별시장
200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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