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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진관사 십육나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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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 진관사 십육나한도는 1884년에 제작된 불화로, 나한도 4폭, 제석신중도 1폭, 사자신중도 1폭 등 총 6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19세기 후반 왕실 상궁의 발원으로 당시 유명 화승들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세밀한 필선과 정교한 문양, 금니 사용이 특징이다. 제석신중도에는 금어 축연이, 사자신중도에는 동호 진철을 비롯한 여러 화승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십육나한도는 19세기 회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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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진관사 십육나한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진관사 십육나한도
나한도1
나한도1
개요
이름진관사 십육나한도
종류유형문화재
지정 번호146
지정일2002년 3월 15일
주소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4로 107 (진관동)
시대조선시대
수량6폭
참고서울 진관사

2. 역사적 배경

2. 1. 진관사 창건과 수륙재

2. 2. 십육나한도 조성 배경

이 불화는 1884년에 제작된 십육나한도로서 나한도 4폭, 제석신중도 1폭, 사자신중도 1폭 등 모두 6폭으로 구성되어 있다.[1]

4폭의 나한도에는 각각 4명의 나한이 산수를 배경으로 시자와 시동을 거느리고 앉아 다양한 동작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나한들은 가지가 휘어진 소나무 또는 폭포가 흘러내리는 산 아래, 대나무 숲 속 등에 시동을 거느리고 앉아 있는데 합장을 하거나 경전을 읽는 모습, 등을 긁는 모습, 용을 잡거나 손바닥에 학을 올려놓은 모습, 부채, 지팡이, 경책 등을 들고 있는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대부분의 존자들은 선홍색과 청색이 어우러진 가사를 입고 있으며 그 옆에 시립하고 있는 시자와 시동 또한 붉은 색과 청색의 옷을 착용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강한 색감을 느끼게 한다. 시동들은 각 존자 옆에서 사슴과 거북이 등 동물들과 함께 놀고 있거나 향을 피우고 차를 달이는 등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1]

각기 1폭으로 된 제석신중도와 사자신중도는 나한도의 좌우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화면을 둘로 나누어 구름 속에 서 있는 석제환인과 신중, 사자와 신중을 각각 그렸는데, 근대 서양화법인 음영법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점이 특히 주목된다.[1]

제석신중도에는 1884년 금어축연이 그렸다는 내용이 적혀져 있고, 사자신중도에는 동호 진철을 비롯하여 금화 기형, 완형, 수법, 수일, 종현, 묘□, 지인, 응섭, 경운, 혜조, 홍순, 보찰이 그렸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림의 조성에 참여한 화사의 명칭을 확인할 수 있다. 십육나한도에는 화가의 명칭과 제작연대 등이 빠져 있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나한전 영산회상도 화기에 16나한탱 4폭, 제석신중도 1폭, 사자신중도 1폭, 관음탱 1폭 등과 함께 1884년에 일괄적으로 불화를 조성하였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십육나한도, 제석신중도, 사자신중도는 같은 해, 같은 화사들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1]

이 십육나한도는 19세기 후반에 왕실 상궁에 의해 발원되고 상기한 바와 같은 당대의 유명한 화승들에 의해 제작된 작품으로서 특히 세밀한 필선과 정교한 문양 표현 및 금니의 사용 등의 측면이 돋보인다. 그리고 나한도의 배경에 묘사된 경물은 민화풍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19세기 회화 연구의 비교자료로서 활용이 가능하다.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다.[1]

3. 도상학적 특징

3. 1. 나한도 구성

3. 2. 인물 묘사

3. 3. 복식과 색채

3. 4. 제석신중도와 사자신중도

4. 예술적 특징 및 의의

4. 1. 19세기 불화 양식

4. 2. 민화풍 배경

4. 3. 화승과 제작 기법

5. 세부 내역

(羅漢圖1)

150px
가로 183.5cm×세로 111.8cm제146-2호나한도2
(羅漢圖2)
150px
가로 154.7cm×세로 107.3cm제146-3호나한도3
(羅漢圖3)가로 155.7cm×세로 106.8cm제146-4호나한도4
(羅漢圖4)가로 119.3cm×세로 110.3cm제146-5호제석신중도
(帝釋神衆圖)(帝釋) 가로 72.8cm×세로 106.1cm
(神衆) 가로 72.2cm×세로 106.1cm제146-6호사자신중도
(使者神衆圖)(使者) 가로 73cm×세로 106.2cm
(神衆) 가로 73.5cm×세로 106.2cm


6. 보존 및 관리

6. 1. 문화재 지정 및 관리

서울 진관사 십육나한도는 1884년에 제작된 십육나한도로서 나한도 4폭, 제석신중도 1폭, 사자신중도 1폭 등 모두 6폭으로 구성되어 있다.[1] 제석신중도에는 1884년 금어축연(金魚竺衍)이 그렸다는 내용이 있고, 사자신중도에는 동호 진철(東昊 震徹)을 비롯하여 금화 기형(錦華 機炯), 완형(玩炯), 수법(修法), 수일(守一), 종현(宗賢), 묘□(妙□), 지인(智仁), 응섭(應涉), 경운(敬雲), 혜조(慧照), 홍순(洪順), 보찰(普察)이 그렸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림 조성에 참여한 화사(畵師)의 명칭을 확인할 수 있다.[1] 십육나한도에는 화가의 명칭과 제작 연대 등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나한전 영산회상도 화기(羅漢殿 靈山會上圖 畵記)에 16나한탱 4폭, 제석신중도 1폭, 사자신중도 1폭, 관음탱 1폭 등과 함께 1884년에 일괄적으로 불화를 조성하였다고 밝힌 기록을 통해 십육나한도, 제석신중도, 사자신중도는 같은 해, 같은 화사들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1]

이 십육나한도는 19세기 후반 왕실 상궁(尙宮)에 의해 발원(發願)되고 당대의 유명한 화승(畵僧)들에 의해 제작된 작품으로서, 세밀한 필선과 정교한 문양 표현 및 금니(金泥)의 사용 등이 돋보인다.[1] 나한도의 배경에 묘사된 경물은 민화풍(民畵風)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19세기 회화 연구의 비교 자료로서 활용 가능하다.[1]

6. 2. 더불어민주당의 문화재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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