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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학도암 마애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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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 학도암 마애사리탑은 학도암 경내 진입로의 암벽에 나란히 조성된 2기의 마애사리탑이다. 왼쪽에는 여성 재가자 월영의 사리를 봉안한 "청신녀월영영주지탑"이, 오른쪽에는 환□당 취근 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환□당선사취근지탑"이 새겨져 있다. 두 사리탑은 1819년(순조 19)에 조성되었으며, 석비 형태에 사각형 감실을 갖추고 있어 19세기 초반 마애사리탑 연구의 기준작으로 평가받는다. 학도암의 연혁과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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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학도암 마애사리탑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개요
국가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자료
번호64
지정일2015년 8월 20일
주소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로14다길 89 (중계동, 학도사)
시대① 1819년(순조 19) ② 조선후기
소유자학도암
참고사항① 좌측 : 높이 147, 너비 56 ② 우측 : 높이 128, 너비 54
수량1건2점
꼬리표서울 학도암
참고자료

2. 지정 사유

서울 학도암 마애사리탑 2기는 학도암 경내 진입로 암벽에 나란히 조성되어 있으며, 명문을 통해 각각 여성 재가자 월영과 환□당 취근 스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왼쪽 마애사리탑에는 "가경이십사년기묘십월(嘉慶二十四年己卯十月) 청신녀월영영주지탑(淸信女月影靈珠之塔)"이라 새겨져 있고, 오른쪽에는 "환□당선사취근지탑(幻□堂禪師就根之塔)"이라고 새겨져 있다.[2]

두 마애사리탑은 치석 수법이나 양식으로 보아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마애사리탑 중에서 규모가 크고 석비 형태를 띠고 있다. 상부에는 사각형 감실이 잘 보존되어 마애사리탑의 용도와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왼쪽의 청신녀월영영주지탑은 1819년(순조 19)에 조성된 것으로, 명문을 통해 주인공과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따라서 19세기 초반 마애사리탑 연구의 기준작이 될 수 있다.[2]

3. 조사 보고서

학도암 마애사리탑 2기는 학도암 경내 진입로에 있는 큰 암벽에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왼쪽에는 "가경이십사년기묘십월(嘉慶二十四年己卯十月) 청신녀월영영주지탑(淸信女月影靈珠之塔)"이라는 명문이, 오른쪽에는 "환□당선사취근지탑(幻□堂禪師就根之塔)"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여성 재가자인 월영(月影)과 환□당(幻□堂) 취근(就根) 스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2]

두 마애사리탑은 돌을 다듬은 수법이나 양식이 비슷하여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마애사리탑 중에서 규모가 크며, 석비 형태이고, 상부에 봉안되었던 유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사각형 감실이 잘 보존되어 마애사리탑의 용도와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명문을 통해 주인공과 제작 연대를 알 수 있어, 19세기 초반 마애사리탑 연구에 기준작이 될 수 있다.[2]

향좌측 마애사리탑에는 “청신녀월영영주지탑(淸信女月影靈珠之塔)”이라고 새겨져 있어 여성 재가자인 월영의 사리를 봉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애사리탑 하부에는 낮은 받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 석비 형태로 마애사리탑을 조성하였다. 상부에는 사각형 구멍(21cm×16cm, 깊이 10cm)을 만들어 유골이나 사리 등 봉안물을 넣었으며, 그 아래 가운데 세로로 주인공을 알 수 있도록 오목새김(음각)으로 명문을 새겼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가경이십사년기묘십월(嘉慶二十四年己卯十月)”이라 기록되어 1819년(순조 19)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향우측 마애사리탑에는 “환□당선사취근지탑(幻□堂禪師就根之塔)”이라고 새겨져 있어 ‘환□당’ ‘취근(就根)’ 스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조성한 조형물임을 알 수 있다. 취근은 학도암에서 오랫동안 머물렀거나 인연이 깊었던 스님으로 추정된다. 이 마애사리탑은 하부에 낮은 받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 석비 형태를 오목새김으로 마애사리탑을 조성하였다. 상부에 사각형 구멍(20cm×15cm, 깊이 18cm)을 만들었다. 그 아래로 주인공을 알 수 있도록 명문을 새겼다. 돌을 다듬은 수법이나 양식으로 보아 청신녀 월영의 마애사리탑과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성 연대가 새겨진 마애사리탑으로는 1783년 안양 염불암 현진당부도, 1796년 추정 안양 불성사 각원선사마애부도, 1852년 청도 신둔사 마애현수이씨사리탑, 1873년 서울 강북 도선사 김상궁마애사리탑, 1890년 안양 염불암 여산송씨마애부도 등이 있다. 조성 연대가 불분명한 것으로는 19세기 안양 반월암 서영당마애부도, 20세기 서울 종로 안양암 춘학대화상마애부도, 상주 북장사 경암당부도 등이 남아 있다. 이 마애사리탑들은 스님이나 신도가 죽은 후 조성하는 추모적인 성격의 조형물이다.

학도암 마애사리탑은 명문을 통해 주인공을 알 수 있고, 특히 향좌측의 청신녀월영영주지탑은 조성 시기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또한 현존하는 마애사리탑 중에서 규모가 크고, 석비 형태를 따르고 있으며, 상부에 봉안되었던 유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사각형 감실이 잘 보존되어 마애사리탑의 용도와 성격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한편 이 마애사리탑은 학도암이 19세기 초반에도 지속적으로 법등(法燈)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려주며, 학도암의 연혁이나 위상과 관련하여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2]

4. 의의와 평가

서울 학도암 마애사리탑은 제작 연대와 주인공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희귀한 사례로, 조선 후기 불교 조형 미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특히 19세기 초반 마애사리탑 연구의 기준작이 될 수 있다.[2]

마애사리탑의 형태와 양식, 명문 등을 통해 당시 불교 신앙 형태와 장례 문화를 엿볼 수 있다. 학도암 마애사리탑은 경내 진입로에 위치한 대형 암벽에 2기가 나란히 조성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19세기 초반에도 학도암의 법등(法燈)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학도암의 연혁이나 위상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학도암 마애사리탑은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보존 가치가 높다.[2]

참조

[1] 뉴스 19세기 초 학도암 마애 사리탑 서울시 문화재 지정 http://news.kbs.co.k[...] 2013-06-07
[2] 간행물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지정 고시 http://event.seoul.g[...] 서울특별시장 201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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