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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비암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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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종 비암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은 비암사 극락보전에 봉안된 흙으로 만든 아미타불 좌상이다. 전체 높이 196cm의 대형 불상으로, 건장한 체구와 안정된 자세, 촘촘한 나발의 머리, 직사각형에 가까운 얼굴, 큼직한 이목구비가 특징이다. 조선시대 후기 불상에서 유행한 변형된 우견편단식 착의법을 보이며, 자연스러운 옷주름과 생동감 있는 손 표현이 돋보인다.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17세기 소조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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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비암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전의 비암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
이름전의 비암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
지정 번호13
지정일2012년 12월 31일
소재지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비암사길 137
소유자비암사 주지
수량1구
참고 사항높이 196cm, 어깨넓이 89cm, 무릎너비 132cm, 무릎높이 16.5cm
시대17세기 전반
문화재청 ID21,00130000,45

2. 특징

세종 비암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은 비암사 극락보전에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으며, 흙으로 만든 후 개금하여 보존하고 있다.[2] 전체 높이는 196cm로 좌상으로는 대형에 속하며, 결가부좌한 무릎 높이가 유난히 낮다.[3]

아미타불은 건장한 체구를 가지고 있으며, 직사각형에 가까운 강건한 얼굴, 둥글면서도 벌어진 어깨, 결가부좌한 넓은 무릎 덕분에 안정된 자세를 보여준다.[2][3] 촘촘한 나발의 머리 위에는 육계가 큼직하고, 중간 부분에는 반원형의 넓적한 중간계주, 정상부에는 원형의 작은 정상계주가 표현되어 있다.[2] 얼굴은 직사각형에 가깝지만 턱 부분에 살이 많아 둥근 느낌을 준다. 이마 한가운데에는 작은 백호가 묘사되어 있고, 날카로운 각선의 코는 콧망울이 둥글어 복스럽게 보인다.[2] 가늘고 길게 뜬 두 눈은 눈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갔으며, 인중이 뚜렷하고 입술 또한 큼직하여 전체적으로 이목구비가 시원스럽게 표현되었다.[2][3] 목에는 뚜렷하게 삼도가 표현되었고 길게 늘어진 두 귀는 귓불이 두툼하다.[2]

어깨가 넓지만 둥글어 건장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법의는 통견처럼 보이지만 우견편단으로 입은 후 옷자락을 오른쪽 어깨에 걸친 변형된 우견편단식이다. 이러한 착의법은 조선시대 후기 불상에서 유행한 것으로, 이 불상은 그 선구적인 양식을 보여준다. 법의 사이로 드러난 가슴에는 군의를 걸치고 있는데, 가운데를 끈으로 묶어 윗부분에 주름이 잡혀 있고 아랫부분은 불룩하게 처리하였다. 결가부좌한 무릎을 감싸고 흘러내리는 옷자락은 옷주름이 매우 유려하고 사실적으로 처리되어 자연스럽다.[2]

왼손은 손가락을 살짝 구부려 배 아래쪽에 두었고,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데, 손가락 역시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우며 생동감이 넘친다. 결가부좌한 무릎은 다소 낮게 표현되어 하체가 약간 부실해 보이기는 하지만 폭이 넓어 안정감을 준다.[2]

비암사 소조아미타불좌상은 17세기적인 특징을 보이면서도 얼굴이나 무릎의 표현이 매우 독특하여 시대성을 짐작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얼굴 모습이나 볼 살을 늘어지듯 표현한 점은 매우 특이한데, 혹시 후에 개금하면서 외형의 변화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깨의 옷자락이 접힌 모습이나 자연스러운 옷주름의 표현에서는 16세기 후반경의 작품일 가능성도 엿보이지만, 현재로서는 확인이 어려우며 적어도 17세기 전반은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2] 불상의 정확한 조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표현 양식으로 보아 17세기 전반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3] 이 불상은 재료가 목조가 아닌 흙으로 만든 소조불상으로 17세기 소조불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3]

2. 1. 형태

2. 2. 착의법 및 수인

2. 3. 기타

3. 제작 시기 및 의의

비암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은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3] 어깨의 옷자락이 접혀진 모습이나 자연스러운 옷주름에서는 16세기 후반경 작품일 가능성도 엿보이지만, 현재로서는 확인이 어렵다.[2]

이 불상은 규모가 크고 양식이 우수하며, 조선 후기 불상 양식의 선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2] 특히 17세기 소조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3]

4. 비암사

참조

[1] 고시 충청남도 고시 제 2007 - 242호 http://www.chungnam.[...] 충청남도 2007-09-20
[2] 고시 세종특별자치시 지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 지정 고시 세종특별자치시장 2012-12-31
[3] 안내문 현지 안내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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