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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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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손도심은 1947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주도하고, 6.25 전쟁 당시 대한학도 의용대 호국단 총본부 대장을 역임했다. 1954년 제3대 민의원의원에 당선되어 자유당 소속으로 활동했으며, 서울신문 사장을 지냈다. 4·19 혁명 이후 3.15 부정선거 관련 의원직을 사퇴했다. 1960년에는 육군 헌병과 군 고위 장성의 비리를 폭로했다. 정계 은퇴 후에는 전도 활동, 한국장기협회 창설 및 이사장 역임, 골동품 수집 및 고미술협회 창설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2. 생애

1947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고려대학교이철승과 함께 신탁통치 반대를 중심으로 한 우익 학생 운동을 주도했다. 한국 6.25전쟁 발발 시 전국 대학생 의용단인 대한학도 의용대 호국단 총본부 대장을 맡으며 휘하에 김영삼 등을 두었다.

1955년 잠시 단국대학 강사를 지냈다. 1954년 제3대 민의원의원에 당선되어 제1공화국 정치인이자 자유당 소장 강경파의 한 사람으로 활동했다. 1956년 미국 국무성 초청 국회의원 시찰단의 일원으로 민관식, 박영출, 정준모, 황성수와 함께 95일간 미국을 시찰했다.

1958년 제4대 민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서울신문 사장을 지냈으며, '자유당의 입'으로 불리며 황성수, 구철희와 함께 주요 연설 논객으로 활동했다. 4·19 혁명 이후 3.15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자진 사퇴하였다. 3.15 부정선거 투표용지 서울신문사 연관설로 조사받았으나 무혐의 처리되었다. 사사오입 개헌에 관련하여 "이 얼마나 구차스러운 이론이었으며, 이 얼마나 자유당이 수모받는 끔찍끔찍한 단어인가?"라는 말을 남겼다. 남전노조 노동조합 운동을 함께 지원한 정대천은 "손도심 의원의 중역진에 대한 호통은 대단했으며 불의에 대한 절개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기개였다."라고 회고했다.

1960년 4월 11일 민의원 본회의에서 이규광 준장과 그의 친형인 이규동 준장이 막대한 국고를 유용하고, 부정 사실을 은폐하며, 부정 축재를 자행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순자의 부친인 이규동의 부정을 제보한 영관급 장교들의 투서와 증거서류 원본(거액의 예금통장, 각종 영수증 등)을 공개했다.

1966년 자유당 정권 의원으로서 국민에게 사죄하는 의미로 전남 화순 탄광지역 등에서 대한성서공회의 협찬으로 무료 쪽복음 전도를 하였다. 한국장기협회를 창설하여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고, 고려 청기와 연구에 몰두했다.

1975년부터 건설 공제 조합 이사, 감사 역임을 하였다. 골동품과 고미술에 대한 심미안으로 골동품 수집가로 일가를 이루었으며 '고미술협회'를 창설하였다. 황해도 실향민들이 안산사리 마을에 정착할 수 있도록 소와 농지를 제공하는 등 난민정착사업을 지원했다.

저서로는 '경세가와 정략가', '원수는 없다.', '세계의 국기', '호랑이', '지렁이 흉내' 등이 있다.

2. 1. 초기 활동 (1947년 ~ 1954년)

1947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고려대학교이철승과 함께 신탁통치 반대를 중심으로 한 우익 학생 운동을 주도했다. 1950년 한국 6.25전쟁 발발시 전국 대학생 의용단인 대한학도 의용대 호국단 총본부 대장을 맡으며 휘하에 김영삼 등을 두었다.

2. 2. 정치 활동 (1954년 ~ 1960년)

1954년 제3대 민의원의원에 당선되어 제1공화국 정치인이자 자유당 소장 강경파의 한 사람으로 활동했다. 자유당 당원의 이론 무장에 크게 기여했으며, '자유당의 입'으로 불릴 정도로 황성수, 구철희와 함께 주요 연설 논객으로 활동했다. 1956년에는 미국 국무성의 초청으로 국회의원 시찰단(민관식, 박영출, 정준모, 황성수, 손도심)의 일원으로 95일간 미국을 시찰했다.

1958년 제4대 민의원의원 선거에서도 당선되었다. 서울신문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4·19 혁명 이후 3.15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자진 사퇴하였다. 3.15 부정선거 투표용지 서울신문사 연관설로 조사받았으나 무혐의 처리되었다. 사사오입 개헌에 관련하여 "이 얼마나 구차스러운 이론이었으며, 이 얼마나 자유당이 수모받는 끔찍끔찍한 단어인가?"라는 말을 남겼다. 남전노조 노동조합 운동을 함께 지원한 정대천은 사측에 노조를 인정하고 해고자를 복직시키게 건의하던 중 "손도심 의원의 중역진에 대한 호통은 대단했으며 불의에 대한 절개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기개였다."라고 하였다.

1960년 4월 11일 민의원 본회의에서 신상발언을 통해 "육군 헌병관 이규광 준장과 그의 친형인 육본 경리감 이규동 준장이 막대한 국고를 유용하고, 부정 사실을 은폐하고, 부정 축재를 자행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규동은 훗날 대통령이 되는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의 부친이다. 손도심은 이들의 부정을 제보한 영관급 장교들의 투서와 증거서류 원본(거액의 예금통장, 각종 영수증 등)을 공개했다.

2. 3. 정치 은퇴 이후 (1960년 ~ )

1966년 자유당 정권의 의원이었던 과거를 반성하며 전남 화순 탄광지역 등을 돌며 대한성서공회의 협찬으로 무료 쪽복음으로 전도하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한국장기협회를 창설,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고려 청기와를 연구하는 데 몰두하기도 하였다.

1975년부터 건설 공제 조합 이사, 감사 역임을 하였고, 골동품과 고미술에 대한 심미안으로 골동품 콜렉터로 일가를 이루었으며 '고미술협회'를 창설하였다. 황해도 실향민들이 안산사리 마을에 살 수 있도록 소와 농사 지을 땅을 주어 돕는 난민정착사업을 지원했다.

3. 경력

4. 역대 선거 결과

선거명소속 정당득표수득표율(%)순위당선 여부비고
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자유당16,667표48.891위당선초선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자유당19,086표50.671위당선재선
대한민국 제10대 국회의원 선거민주통일당10,492표5.185위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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