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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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손정남은 북한 출신으로, 조선인민군에서 복무하다가 제대 후 공연 예술 센터에서 일했다. 아내의 체포와 형의 중국 도피를 겪은 후, 1998년 탈북하여 중국에서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생활했으나 아내의 사망 후 기독교로 개종했다. 2001년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어 고문을 받았고, 2006년 다시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이후 국제 사회의 구명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8년 12월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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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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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남 | |
본관 | 밀양 손(密陽 孫) |
출생 | 1972년 |
사망 | 2010년 |
국적 | 북한 |
직업 | 개신교 선교사 |
종교 | 개신교 |
주요 활동 | 탈북자 |
2. 초기 생애
손정남은 청진시, 함경북도에서 태어났다.[2] 1973년부터 1983년까지 조선인민군에서 대통령 경호 부대원으로 복무하며 상사 계급까지 진급했다. 제대 후에는 군이 운영하는 공연 예술 센터에서 일했다. 1992년경 딸을 한 명 두었다. 1997년, 그의 아내는 둘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김정일 정권의 경제 운영 실패를 비판하고 고난의 행군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그녀는 구금 중 폭행을 당해 유산하는 비극을 겪었다. 같은 해, 손정남의 형 손정훈은 전략 물자 불법 수출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그는 해당 혐의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며 중국으로 도피했다.[1]
1998년 1월, 손정남은 아내와 딸을 데리고 북한을 탈출하여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의 옌지에 있는 형에게 합류했다. 그들이 도착한 후, 목재 사업에 관여하는 척하며 그 지역에 살던 한 대한민국 선교사가 잠시 그들을 보호했다. 그러나 손정남의 아내는 탈북 7개월 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아내를 잃은 큰 슬픔 속에서 손정남은 선교사와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결국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 후, 그는 중국에 있는 다른 탈북자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는 선교 활동을 도왔다.
손정남은 중국에 오래 머물지 않고, 개종 활동을 위해 성경과 카세트 테이프를 가지고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2006년 1월, 회령 자택에서 성경이 발견되어 다시 체포되었다.[1] 그의 형제에 따르면, 손정남에게 적용된 혐의는 불법 국경 침범, 국가의 적과의 만남, 반국가 선전물 배포 등이었다.[3] 체포 후 그는 국가안전보위부 지하 감옥에 수감되었다.[2]
3. 탈북과 강제 북송
2001년 1월, 손정남은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그의 형제는 북한에서 손정남이 전기 고문과 곤봉 구타를 당해 다리를 절게 되었고, 체중이 32kg이나 줄었다고 증언했다. 2004년 석방된 후, 그는 딸을 만나기 위해 다시 중국으로 몰래 들어갔다.[1]
4. 마지막 귀환과 사망
2009년 11월에 나온 국가안전보위부 수감자의 증언에 따르면, 손정남은 2008년 12월 7일 수감 중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1]
4. 1. 국제사회의 구명 노력
손정남의 석방과 처형 중단을 위해 그의 형제를 중심으로 국내외에서 구명 노력이 전개되었다.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에 청원이 제출되었고,[2] 크리스천 솔리대리티 월드와이드와 같은 국제 인권 단체,[2] 미국 국무부 및 미국 의회 관계자,[3] 순교자의 소리 등 기독교 단체도 그의 구명에 관심을 보이며 활동했다.[4]
4. 1. 1. 엇갈린 평가
손정남의 형제는 그의 구명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2006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에 공개 처형 중단을 요청하는 청원을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소극적 대응을 비판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 측은 북한이 개입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청원에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2] 국제적인 활동도 이어졌다. 크리스천 솔리대리티 월드와이드(Christian Solidarity Worldwide)는 런던 주재 북한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계획했으며,[2] 같은 해 7월에는 손정남의 형제가 미국 국무부 관리 및 의회 의원들과 만나 형의 상황을 알렸다. 이 자리에는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 짐 인호프 상원 군사 위원회 위원, 리처드 루가 상원 외교 위원회 위원 등이 참석했다.[3] 미국의 기독교 단체 순교자의 소리(Voice of the Martyrs) 역시 북한 정부에 대한 국제적 압력을 조직하려 시도했다.[4]
손정남의 형제는 이러한 국제적 관심과 압력이 북한 당국으로 하여금 공개 처형을 취소하게 만들었지만, 대신 비공개적인 고문을 통해 그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한다. 2009년 11월에 나온 국가안전보위부의 한 수감자 증언에 따르면, 손정남은 2008년 12월 7일 수감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1]
참조
[1]
간행물
AP Exclusive: NKorean killed for spreading Gospel
https://www.google.c[...]
Associated Press
2010-07-05
[2]
간행물
'Halt Public Execution in North Korea', Petition to South Korean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http://www.dailynk.c[...]
Daily NK
2006-04-30
[3]
간행물
Race To Save a Korean Christian: Congress Gets Appeal as Execution Nears
https://web.archive.[...]
The New York Sun
2007-07-13
[4]
간행물
Houses of the Hidden
http://www.newsweek.[...]
Newsweek
200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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