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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창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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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숙창원비는 언양 김씨 가문 출신으로, 고려 충렬왕의 후궁이자 충선왕의 왕비이다. 본래 진사 최문에게 시집갔으나 과부가 되었으며, 충선왕이 부왕인 충렬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숙창원비를 바쳤다. 1297년 원비가 되었고, 충렬왕 사후 충선왕에게 숙비로 진봉되었다. 충선왕은 숙창원비에게 몽골식 머리 장식인 고고를 선물하고, 그녀의 집을 짓는 등 총애했다. 숙창원비는 순비 허씨와 갈등을 겪었으며, 이후 행적은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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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창원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작위
별칭숙비(淑妃)
시호숙창원비(淑昌院妃)
배우자충렬왕, 충선왕
자녀없음
왕조고려
아버지김양감
어머니미상
친척김문연(오빠)
출생일미상
출생지고려
사망지고려
사망일미상
능묘미상
국적고려
이름
한글숙창원비 김씨
한자淑昌院妃 金氏
로마자 표기Sukchang-wonbi Gimssi
원비 한글원비
원비 한자院妃
원비 의미"Primary Consort" (주요 배우자)
숙비 한글숙비
숙비 한자淑妃
숙비 의미"Pure Consort" (순수한 배우자)
시호 (숙창)숙창 (淑昌)
시호 의미"Charming and Prosperity" (매력적이고 번영)
본관언양 김씨 (Eonyang Kim)
주요 활동
충렬왕
칭호원비 (院妃)
충선왕
칭호숙비 (淑妃)
가족 관계
아버지김양감
어머니정주 정씨 부인
배우자최문, 충렬왕, 충선왕

2. 생애

숙창원비는 언양 김씨로, 김취려의 증손녀이자 김양감의 딸이다. 어머니는 정주 정씨로 태사 정준의 딸이다. 최문과 혼인하였으나 일찍 사별하였다. 1297년(충렬왕 25년) 음력 8월, 제국대장공주 사후 충렬왕의 총애를 받던 궁인 무비(無比)가 충선왕에 의해 살해되자, 세자였던 충선왕이 부왕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김씨를 바쳐 '''원비'''(院妃|원비한국어)가 되었다.[10]

1308년(충선왕 복위년) 충렬왕 사후, 충선왕과 정을 통하고 숙비(淑妃)로 진봉되었다.[14] 이 일로 우탁이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리기도 하였다.[15]

충선왕의 총애를 받으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였고, 순비 허씨와 사이가 좋지 않아 의복을 뽐내기 위해 연회에서 5번이나 옷을 갈아입기도 하였다.[18] 1312년(충선왕 4년) 음력 7월 충선왕은 삼현에 그녀의 집을 짓게 하였으며,[19] 1325년(충숙왕 12년) 음력 7월 26일 원나라에서 사망한 충선왕의 시신 빈소를 숙비궁에 차리기도 하였다.[20]

사망 날짜나 묘소 위치는 기록되지 않았으며,[1] 사후 '''숙창원비'''로 추존되었다.[1]

2. 1. 가계

본관언양이다. 김취려의 증손녀이며, 위위윤 김양감(金良鑑)의 딸로 자색(姿色)이 있었다. 언양군(彦陽君) 김문연과는 남매간이다.[9]

어머니는 정주정씨(貞州鄭氏)로 태사 정준(鄭準)의 딸이고, 외조부는 중랑장 정장(鄭莊), 외증조부는 낭장 정문청(鄭文淸)이다. 남자 형제간으로는 김광계, 김광연, 김문연 등이 있고, 언니로는 조윤온, 종실 영인후 왕성, 신여성 등에게 출가한 이들이 있고, 여동생이 1명 더 있다.

구분인물비고
증조부김취려(金就礪, 1172~1234)[11]시중(侍中)
조부김전(金佺)태부(太傅)
아버지김양감(金良鑑, 생몰년 미상)첨의중호(僉議中護)
어머니정주 정씨(貞州 鄭氏)태사 정준(鄭準)의 딸
오빠김광계(金光啓)
오빠김광연(金光衍)
오빠김문연(金文衍, ?~1314)
첫 번째 남편최문(崔文, 생몰년 미상)
두 번째 남편충렬왕(忠烈王, 1236~1308, 재위:1274~1298, 1298~1308)
세 번째 남편충선왕(忠宣王, 1275~1325, 재위:1298, 1308~1313)



평생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던 훗날의 숙창원비는 언양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김양감과 정주 정씨 정문청의 증손녀인 정씨 부인의 일곱 번째 자녀였다.[1] 그녀는 세 명의 오빠(김광계, 김광연, 그리고 언양군 김문연),[3] 세 명의 언니와 한 명의 여동생을 두었다.

2. 2. 왕비 책봉 이전

김씨는 원래 진사 최문(崔文)에게 시집을 갔으나 젊어서 남편을 잃었다. 제국대장공주가 사망하고 충렬왕의 총애를 궁인 무비(無比)가 독차지하자, 당시 세자였던 충선왕이 무비를 죽이고 1297년(충렬왕 25년) 음력 8월 부왕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김씨를 바쳤다.[10] 이는 동국통감 등에 전해진다. 숙창원비가 입궁한 후 그녀의 오빠 김문연은 30세의 나이에 정2품 첨의시랑찬성사에 올랐고, 숙창원비가 숙비로 진봉된 후에는 원나라 관직까지 얻었다.[11] 한편 그녀가 과부였다는 사실은, 당시 사회 풍습 및 이미 과부 출신의 왕비들이 있었던 점으로 볼 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듯하다.[12] 김씨 부인은 먼저 최문崔文|최문중국어과 혼인하였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고, 최문이 일찍 사망하여 그녀는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2]

2. 3. 충렬왕의 후궁 시절

김씨 부인은 먼저 최문과 혼인하였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고, 최문이 일찍 사망하여 그녀는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2] 하지만 당시 사회적 관습을 고려할 때, 그녀의 과부 신세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1]

충렬왕의 세자가 충렬왕의 후궁 중 한 명을 살해한 후, 김씨 부인을 아버지에게 보냈다.[5] 1297년, 그녀는 '''원비'''(院妃|원비한국어)의 작위를 받았다.[1] 그녀는 충렬왕과의 사이에 자녀가 없었다.

2. 4. 충선왕의 왕비 시절

1308년(충선왕 복위년) 충렬왕이 사망한 후, 그해 음력 10월 8일 충선왕이 김문연의 집에 행차하였는데, 이때 충선왕과 숙창원비는 오랜 시간을 함께 지냈다.[13] 음력 10월 24일, 충선왕은 숙창원비와 정을 통하고 그녀를 숙비(淑妃)로 진봉시켰다.[14]

이 일이 있자 당시 감찰규정 우탁이 왕이 부왕의 후궁과 관계를 가진 것을 두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도끼를 메고 궁으로 들어가 상소를 올리는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리기도 하였다.[15] 다만 당시 몽골에는 부왕이 사망할 경우 모후를 제외한 부왕의 후궁들을 그 아들이 취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충선왕은 이러한 풍습을 따라 그녀를 취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16]

숙창원비는 충선왕의 후궁이 된 후 며칠 밤을 왕에게 교태와 아양을 부렸고, 충선왕은 이에 혹하여 정사를 중단하고 팔관회까지 중지시켰다. 충선왕이 원나라 황후의 총애를 받을 때, 원나라 황후에게 청하여 그녀에게 몽골 고유의 머리 장식인 고고를 선물하게 하였다. 그녀가 고고를 쓰고 원나라 사신을 맞이하여 연회를 열자 재추 이하가 그녀에게 폐백을 바치고 축하를 하였다. 그녀는 어머니상을 당했을 때에도 연회를 열었는데, 이 연회에는 재상들이 참여하였고, 그녀가 은자원에서 법회를 열 때에도 재상들이 참여하였다. 평소 그녀가 입고 다니던 의복 등은 공주와 비교하여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17]

충선왕의 제6비 순비 허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순비도 숙창원비와 마찬가지로 원나라에서 고고를 받았는데, 이때 고고를 받은 것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리자 숙창원비와 순비는 각자 자신의 옷을 뽐내기 위해 연회장에서 5번이나 옷을 갈아입기도 하였다.[18]

1312년(충선왕 4년) 음력 7월 충선왕은 삼현에 그녀의 집을 짓게 하였으며,[19] 1325년(충숙왕 12년) 음력 7월 26일 원나라에서 사망한 충선왕의 시신이 고려로 들어왔을 때에는 그 빈소를 숙비궁에 차리기도 하였다.[20]

2. 5. 사망

김씨의 사망 날짜나 묘의 위치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1] 사후 '''숙창원비'''로 추존되었다.[1]

3. 평가

숙창원비에 대한 평가는 고려조선 시대의 사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조선 시대 유학자들은 숙창원비와 관련된 사건들을 유교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3. 1. 부정적 평가

고려사조선의 유학자들이 편찬한 책으로, 충선왕이 김씨를 후궁으로 삼은 것을 비판하였다.[5] 이는 몽골의 관습을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 몽골에서는 생모와 아버지의 정실 부인을 제외하고 아들이 아버지의 후궁을 취하는 것이 허용되었다.[7]

우탁 등 일부 관리들은 왕이 죽은 아버지의 후궁과 관계를 맺는 것에 반대하며, 왕에게 행동을 재고할 것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1]

4. 기타

5. 가족 관계

관계이름
증조부김취려(金就礪, 1172~1234[11])
조부김전(金佺)
아버지김양감(金良鑑, 생몰년 미상)
어머니정주 정씨(貞州 鄭氏) - 태사 정준(鄭準)의 딸
오빠김광계(金光啓)
오빠김광연(金光衍)
오빠김문연(金文衍, ?~1314[3])
첫 번째 남편최문(崔文, 생몰년 미상)
두 번째 남편충렬왕(忠烈王, 1236~1308, 재위:1274~1298, 1298~1308)
세 번째 남편충선왕(忠宣王, 1275~1325, 재위:1298, 1308~1313)



숙창원비는 김양감과 정주 정씨(정문청의 증손녀)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번째 자녀였다.[1] 형제로는 세 명의 오빠(김광계, 김광연, 김문연[3])와 세 명의 언니, 그리고 한 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참조

[1] 웹사이트 충렬왕 후비 숙창원비 김씨 http://db.history.go[...] 2021-09-15
[2] 웹사이트 고려시대 대표적인 자유부인 숙창원비(淑昌院妃) 김씨(金氏) https://www.culturec[...] 2021-09-15
[3] 웹사이트 https://web.archive.[...]
[4] 웹사이트 "[Why][이한우의 역사속 WHY] 충선왕과 밀통후 후궁된 충렬왕의 후궁 숙창원비" https://www.chosun.c[...] 2020-08-04
[5] 간행물 Popularization of Mongol Language and Culture in the Late Koryŏ Period https://ijkh.khistor[...] 2021-10-30
[6] 문서 《고려사》권33〈세가〉권33 – 충선왕 복위년 10월 – 왕이 숙창원비와 오랜 시간을 보내다
[7] 서적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들녘
[8] 문서 《고려사》권89〈열전〉권2 – 순비 허씨
[9] 웹인용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숙창원비〉항목 http://people.aks.ac[...] 2012-06-06
[10] 문서 《동국통감》권40 고려기 1297년 https://terms.naver.[...]
[11] 뉴스 (이한우의 역사속 WHY) 충선왕과 밀통후 후궁된 충렬왕의 후궁 숙창원비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12-06-06
[12] 뉴스 과부의 '재혼', 고려시대에는 신경도 안썼다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12-06-06
[13] 문서 《고려사》권33〈세가〉권33 - 충선왕 복위년 10월 - 왕이 숙창원비와 오랜 시간을 보내다
[14] 문서 《고려사》권33〈세가〉권33 - 충선왕 복위년 10월 - 왕이 숙창원비와 정을 통하고 숙비로 책봉하다
[15] 뉴스 (인문사회)충신의 直言… 간신의 曲言 http://news.donga.co[...] 동아일보 2012-06-06
[16] 서적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들녘 2000-03-25
[17] 문서 《고려사》권89〈열전〉권2 - 숙창원비 김씨
[18] 문서 《고려사》권89〈열전〉권2 - 순비 허씨
[19] 문서 《고려사》권34〈세가〉권34 - 충선왕 4년 7월 - 삼현에 숙비의 집을 짓게 하다
[20] 문서 《고려사》권35〈세가〉권35 - 충숙왕 12년 7월 - 상왕의 영구가 도착하자 숙비궁에 빈소를 차리다
[21] 문서 《동국통감》권42 고려기 1311년 https://terms.naver.[...]
[22] 뉴스 책 한 권으로 보는 찬란한 우리 佛畵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12-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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