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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리그 마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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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켈리그 마이클은 아일랜드 케리주 해안에서 떨어진 대서양에 위치한 가파르고 험준한 바위섬으로, 고대 아일랜드어로 "작거나 가파른 바위 지역"을 의미하는 '스켈리그'에서 유래되었다. 6세기에서 8세기 사이에 수도원이 세워졌으며, 바이킹의 공격과 같은 역사를 거쳐 16세기 초부터 순례자들의 목적지가 되었다. 섬은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도원 유적과 은둔소가 남아있다. 이 곳은 199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초기 기독교 수도 생활의 독특한 모습과 극한 환경 속에서 발전한 수도 공동체의 예시를 보여준다. 최근에는 관광객 증가로 인해 섬으로의 입항이 제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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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리그 마이클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스켈리그 마이클
스켈리그 마이클
본명스켈리그 미힐
게일어 이름스켈리그 므히힐 (Sceilg Mhichíl)
게일어 (짧은 형태)스켈리그 모르 (Sceilig Mhór)
위치대서양
면적21.9 헥타르
최고 높이218 미터
위치아일랜드 공화국, 케리 주
인구0명
세계 유산 정보
공식 명칭스켈리그 므히힐 (Sceilg Mhichíl)
ID757
등재 연도1996년
등재 기준문화: iii, iv
지리
위치 (케리 해안으로부터)11.6 킬로미터
다른 이름스켈리그 베그 (Sceilig Bheag)
면적 (에이커)54 에이커
높이 (피트)714 피트
절벽 높이동쪽: 550 ~ 600 피트
북쪽 및 서쪽: 422 피트
남쪽: 120 피트

2. 어원

"스켈리그(Skellig)"라는 단어는 "작거나 가파른 바위 지역"을 의미하는 고대 아일랜드어 단어 ''스케일렉(sceillec)''에서 유래되었다.[1] 이 단어는 아일랜드 지명에서는 드문 경우이며, 코크주의 번스켈리그(Bunskellig)와 위클로주의 글렌달로에 있는 템플나스켈리그(Temple-na-Skellig) 교회를 포함한 몇몇 다른 경우에만 나타난다.[1] 이 단어는 "울려 퍼지는 자들"을 의미하는 ''스켈링가르(skellingar)''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고대 노르드어일 수도 있다.[1] 섬의 초기 아일랜드어 이름 중 드물게 사용되는 다른 이름으로는 ''글라스카라그(Glascarraig)''("푸른 바위")가 있다.[1]

스켈리그에 대한 최초의 알려진 언급은 아일랜드 연대기에 등장하는데, 아일랜드 신화에 나오는 초자연적 종족인 투아하 데 다난에 의해 발생했다고 하는 기원전 1400년경의 난파 사고를 재현한 것이다.[2] 전설에 따르면, 때때로 아일랜드의 식민지화를 이룬 것으로 여겨지는 밀 에스파인의 아들인 이르(Irr)가 이베리아 반도에서 여행하던 중 익사하여 섬에 묻혔다고 한다.[2] 다이르 도빈("세계의 왕")은 서기 200년경 근처 벤트리에서 핀 맥 쿰할의 군대를 공격하기 전에 그곳에 머물렀다고 한다.[2] 8세기 또는 9세기의 한 기록에 따르면, 서부 먼스터의 왕인 두아흐(Duagh)가 5세기경 캐셸 왕과의 불화 이후 "스켈렉(Scellecc)"으로 도망갔다고 하지만, 이 사건의 역사적 사실 여부는 확립되지 않았다.[3] 다른 초기 언급으로는 ''레보르 가발라 에렌''과 ''카스 핀트라가''의 서사적 산문, 그리고 중세의 ''탈라트 순교록''이 있다.[4]

3. 지리

섬 지도


스켈리그 마이클은 케리주 이베라 반도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대서양에 있는 가파르고 험준한 피라미드 모양의 바위섬(crag영어})이다. 면적은 45acre 정도이다. 이곳은 세인트 피니안 만 남쪽 끝에 있는 볼러스 헤드에서 서북서쪽으로 약 11.27km 떨어져 있다. 쌍둥이 섬인 리틀 스켈리그는 육지에서 약 1.61km 더 가깝지만, 가파른 절벽 때문에 훨씬 접근하기 어렵다. 작은 레몬 록 섬은 내륙으로 약 3.22km 더 들어가 있다.[3] 인근의 퍼핀 섬은 또 다른 바닷새 서식지이다.[3] 스켈리그는 일부 블래스켓 제도와 함께 아이슬란드를 제외한 아일랜드와 유럽의 최서단 부분을 구성한다.

이 섬은 두 개의 봉우리로 정의된다. 수도원이 있는 북동쪽 정상(해발 185m)과 은둔지가 있는 남서쪽 지점(해발 218m)이 그것이다. 이 고도들은 구어체로 그리스도의 안장이라고 불리는 우울한 지형의 양쪽에 위치해 있다.

작은 스켈리그를 배경으로 한 갈매기


스켈리그 마이클은 노출된 해안 절벽과 세 개의 만으로 둘러싸여 있다. 내륙은 대부분 가파른 지형에 얇은 토양으로 덮여 있으며, 해양의 염수에 노출된 식물 군락이 존재한다.[8]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토보다 훨씬 다양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섬이기 때문에 아일랜드에서 보기 드문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의 안식처를 제공한다.[9] 현재 국가 소유의 자연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섬에 서식하는 다양한 바닷새들을 보호하고 있다.[10] 1986년에 특별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이는 섬이 유난히 다양한 종류와 많은 수의 새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인정받은 것이다.[11]

스켈리그 마이클의 퍼핀


섬에는 둥지를 짓는 가 서식하고 있다. 이 외에도 풀머갈매기, 검은등바다갈매기(''Puffinus puffinus''), 유럽 슴새, 바다제비, 세가락갈매기, 바다오리 및 대서양 퍼핀과 같은 새들이 있다.[12] 최근까지 염소 무리가 섬에 살았으며, 비교적 최근에 등대 관리인에 의해 유입된 토끼와 집쥐가 서식하고 있다. 회색 물개는 섬의 가장자리에서 휴식을 취한다.[13]

3. 1. 지질

이 섬들은 구 적색 사암과 압축된 셰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약 3억 6천만 년에서 3억 7천 4백만 년 전에 매길리카디스 리크스(MacGillycuddy's Reeks)와 카하 산맥(Caha Mountains) 산맥이 융기하면서 형성되었다. 이는 아일랜드가 더 큰 대륙의 일부였고 적도 남쪽에 위치했던 데본기에 발생했다.[1] 이 지역의 봉우리와 계곡의 지형은 약 3억 년 전 헤르키니아 시대의 습곡과 산 형성 과정에서 형성된 가파른 능선으로 특징지어진다.[1] 대서양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반트리 만(Bantry Bay)과 같은 깊은 해양 만이 생겨났고, 스켈리그는 본토에서 분리되었다. 이 암석은 고도로 압축되어 있으며 수많은 파단선과 절리를 포함하고 있다.[2] 암석의 큰 부분이 떨어져 나가 봉우리 사이의 움푹 들어간 부분인 '그리스도의 안장'(Christ's Saddle)을 만들었는데, 이는 주변 지역보다 훨씬 더 깨지기 쉬운 기반암을 포함하는 주요 북-남 방향 단층선을 따라 침식된 결과이다.[2] 섬의 암석은 바람과 물에 노출되어 심하게 침식되었다.[3]

'우는 여인' 암석은 섬 중앙, 그리스도의 안장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으며, 해발 약 121.92m 높이에 있는 3acre의 초원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섬에서 유일하게 평평하고 비옥한 지역으로, 중세 작물 재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안장에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길은 등반가들에게 닥치는 위험을 반영하여 '그리스도의 길'로 알려져 있다.[4]

3. 2. 생태



스켈리그 마이클은 노출된 해안 절벽과 세 개의 만으로 둘러싸여 있다. 내륙은 대부분 가파른 지형에 얇은 토양으로 덮여 있으며, 해양의 염수에 노출된 식물 군락이 존재한다.[8]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토보다 훨씬 다양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섬이기 때문에 아일랜드에서 보기 드문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의 안식처를 제공한다.[9] 현재 국가 소유의 자연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섬에 서식하는 다양한 바닷새들을 보호하고 있다.[10] 스켈리그 섬은 1986년에 특별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이는 섬이 유난히 다양한 종류와 많은 수의 새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인정받은 것이다.[11]

섬에는 둥지를 짓는 가 서식하고 있다. 이 외에도 풀머갈매기, 검은등바다갈매기(''Puffinus puffinus''), 유럽 슴새, 바다제비, 세가락갈매기, 바다오리 및 대서양 퍼핀과 같은 새들이 있다.[12] 최근까지 염소 무리가 섬에 살았으며, 비교적 최근에 등대 관리인에 의해 유입된 토끼와 집쥐가 서식하고 있다. 회색 물개는 섬의 가장자리에서 휴식을 취한다.[13]

스켈리그 마이클에는 흰꼬리사다새의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번식지가 있다.[8] 이 외에도 풀머갈매기, 검은날개바다제비, 바다직박구리, 세가락갈매기, 바다쇠오리, 넓적부리황새와 같은 바닷새가 서식하며[9], 자연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

4. 역사

588년에 해발 218m의 섬 산정에 켈트족에 의해 수도원이 세워졌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다. 823년 바이킹의 침략에도 견뎌냈으며, 서기 1000년 전후에는 교회가 확장되었다. 늦어도 1044년까지 성 미카엘을 모시는 수도원이 된 것으로 여겨지며, 그 후 100년 정도 지나 시설은 폐쇄되었고 섬에는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다.[7]

섬의 위치와 험준함 덕분에 수도원은 현재까지 그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초기 기독교 수도사들은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 아래, 돌을 쌓아 만든 오두막에서 생활했다.

1500년경부터 매년 바다가 잔잔해지는 시기를 틈타 순례자들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1826년에는 등대가 건설되었고, 1986년에는 일부 건축물이 수리되었다. 그러나 최근 관광객 증가로 유적이 훼손되고 있어 섬으로의 입항이 제한되고 있다. 섬으로 가려면 아일랜드 섬 서안의 포트마기에서 출발하는 소형선을 타야 하며, 수도원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600개의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8] 1996년에는 유네스코의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었다.[7]

4. 1. 수도원 시대

스켈리그 마이클 수도원


게일 기독교 수도사들은 6세기에서 8세기 사이에 스켈리그 마이클에 수도원을 세웠다.[1] 케리의 많은 초기 기독교 유적지처럼, 6세기 초에 성 피오난에 의해 세워졌다고 전해지지만, 역사가들은 이를 의심하고 있다. 아일랜드 남서부 해안에서 떨어진 많은 섬들에는 초기 기독교 수도원들이 있는데, 이 지역은 고립되어 있고 건축에 사용할 돌이 풍부하여 선호되었다. 이베라와 딩글 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수도원이 집중되어 있다.

섬에서의 수도원 활동에 대한 최초의 확실한 언급은 8세기의 "스켈리그의 수이비니"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다.[1] ''4대 사서 연대기''는 9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스켈리그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연대기는 823년 바이킹의 공격을 기록하고 있는데, "스켈리그는 이교도에 의해 약탈당했고, 에이트갈(수도원장)은 끌려가 굶어 죽었다".[1] 바이킹은 838년에 다시 공격하여 스켈리그, 켄메어, 이니스팔렌 섬의 교회를 약탈했다. 아우구스티누스파 발린스켈리그 수도원은 950년에 세워졌으며, 이 해는 스킬릭의 블라트마크가 사망한 해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연대기는 1040년 스켈릭-미힐의 아에드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다.

1987년 공중에서 본 벌집 오두막


한 번에 12명 이하의 수도사와 수도원장이 수도원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 말이나 13세기 초까지 계속 점유되었으며 현대 시대까지 순례지로 남아 있었다. 섬 수도사들의 식단은 본토의 수도사들의 식단과 다소 달랐다. 곡물을 재배할 수 있는 경작지가 적었기 때문에 채소 정원은 수도원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필수적으로, 섬에 둥지를 튼 새들의 생선과 고기, 알이 주식이었다. 이 유적지가 버려진 이유에 대한 이론으로는 스켈리그 마이클 주변의 기후가 더 추워지고 폭풍이 더 자주 발생했으며, 바이킹의 습격과 아일랜드 교회의 구조 변화 등이 있다. 아마도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공동체가 섬을 버리고 발린스켈리그의 수도원으로 이주하도록 촉구했을 것이다.

이 유적지는 최소 1044년까지 대천사 성 미카엘에게 봉헌되었다(스켈릭-미힐의 아에드의 죽음이 기록된 때).[2] 그러나 이 봉헌은 950년경, 수도원에 새로운 교회가 추가되어(일반적으로 봉헌을 기념하기 위해 수행됨) 성 미카엘 교회로 명명된 때에 이루어졌을 수 있다. 이 섬은 성 파트리치오와의 연관성을 바탕으로 뱀을 물리치는 전설적인 존재인 성 미카엘에게 봉헌되었을 수 있다. 13세기 독일 자료에 따르면 스켈리그는 파트리치오와 아일랜드를 괴롭힌 독사 사이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장소라고 한다.[2]

스켈리그 마이클은 16세기 초부터 순례자들의 정기적인 목적지였다. 588년에 해발 218m의 섬 산정에 켈트족에 의해 수도원이 세워졌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다. 1996년에는 유네스코의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었다.[7]

섬의 위치와 험준함 덕분에, 현재까지 수도원은 그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초기 기독교 수도사들은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 아래, 돌을 쌓아 만든 오두막에서 생활했다.

스켈리그 마이클의 수도원은 823년바이킹 침략에도 견뎌내어 서기 1000년 전후에는 교회가 확장되었다. 늦어도 1044년까지 성 미카엘을 모시는 수도원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 후 100년 정도 지나 시설은 폐쇄되었고, 섬에는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다.

서기 1500년경에는 매년 바다가 잔잔해지는 시기를 보아가며 순례가 방문하게 된다. 1826년에는 등대가 건설되었고, 1986년에는 일부 건축물의 수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최근 관광객 증가로 유적이 훼손되고 있어, 섬으로의 입항이 제한되고 있다. 접근은 아일랜드 섬 서안의 포트마기에서 출발하는 소형선뿐이며, 수도원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600개의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8]

4. 2. 수도원 이후 시대

에드윈 윈덤-퀸, 1861년 7월. 던레이븐의 ''아일랜드 건축에 관한 노트''에는 이 섬에 대한 최초의 완전한 고고학적 조사가 수록되어 있다.


스켈리그 마이클은 1578년 엘리자베스 1세의 종교 개혁으로 인해 발린스켈리그 수도원이 해산될 때까지 가톨릭 정규 참사회의 소유였다.[3] 섬의 소유권은 버틀러 가문으로 넘어갔고 (연간 "두 마리의 매와 상당량의 바다오리 깃털"을 임대하는 조건으로) 1820년대 초까지 그들의 소유로 남아있다가 더블린 항구 보존 및 개선 협회(아일랜드 조명 위원회의 전신)가 왓터빌의 존 버틀러로부터 강제 수용 명령으로 500GBP에 섬을 매입했다. 이 협회는 섬의 대서양 쪽에 두 개의 등대와 관련 거주지를 건설했으며, 모든 공사는 1826년에 완료되었다.

1871년, 던레이번 경은 그의 저서 ''아일랜드 건축에 관한 노트''에서 섬에 대한 최초의 포괄적인 고고학적 조사를 실시했다. 그는 수도원을 묘사하면서 "이곳은 너무나 엄숙하고 슬픈 곳이어서 순례자와 참회자 외에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 고독감, 저 멀리 펼쳐진 광대한 하늘, 그리고 그 아래의 숭고하고 단조로운 바다의 움직임은 정신을 압도할 것이지만, 그 정신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그럴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등대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1838년에 몇 개의 불쾌한 현대식 벽을 건설한 등대 작업자들"의 변경 사항이라고 설명하며 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공공사업청은 1880년에 수도원의 유적을 관리하게 되었고, 그 후 아일랜드 조명 위원회로부터 등대 및 관련 구조물을 제외한 섬을 매입했다.[3]

스켈리그 마이클은 1996년에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3] 국제 기념물 유적 협의회(세계유산위원회의 자문 기관)는 스켈리그 마이클을 "예외적인 보편적 가치"와 "초기 종교 정착지의 독특한 사례"로 묘사하는 한편, 이 유적지의 보존은 "놀라운 환경"과 "북아프리카, 근동, 유럽의 대부분을 특징짓는 기독교 수도원주의의 극단을 다른 어떤 곳보다 더 잘 보여주는 능력"의 결과라고 언급했다.

1500년경에는 매년 바다가 잔잔해지는 시기를 보아가며 순례가 방문하게 된다. 1826년에는 등대가 건설되었고, 1986년에는 일부 건축물의 수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최근 관광객 증가로 유적이 훼손되고 있어 섬으로의 입항이 제한되고 있다. 접근은 아일랜드 섬 서안의 포트마기에서 출발하는 소형선뿐이며, 수도원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600개의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8]

5. 수도원 유적

스켈리그 마이클의 수도원은 해발 180m 높이의 계단식 선반에 지어졌다. 여기에는 두 개의 예배당, 묘지, 십자가, 십자 석판, 6개의 클로찬(clochán)형 돔형 벌집형 오두막 (그 중 하나는 무너짐)과 중세 시대 교회가 있다. 오두막과 예배당은 모두 건식 내어쌓기 구조로 지어진 반면, 나중에 지어진 교회는 모르타르를 바른 석조 건물이다.[1]

수도사들의 거주 공간, 성 미카엘 교회, 수도승 묘지, 예배당, 은둔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각 하위 섹션을 참조하면 된다.

섬에 처음 정착한 수도사들은 세 개의 착륙 지점(동쪽, 남쪽, 북쪽 계단)에 긴 계단을 건설했다. 섬의 다른 곳에서 더 오래된 계단의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 계단들은 한때 더 큰 네트워크의 일부였을 수도 있다.[1][2]

5. 1. 수도사들의 거주 공간 (Cells)

클로찬(Clocháns); 건식 석조 오두막, 내밀기 지붕 사용


가장 큰 오두막인 A실은 바닥 면적이 14.5 x 3.8 미터이고 높이는 5미터이다. 다른 오두막과 마찬가지로 내부 벽은 돔형 지붕을 수용하기 위해 좁아지기 전에 곧게 뻗어 있다. 내부의 돌이 약 2.5미터 높이에 돌출되어 못 역할을 하며 지붕을 지지하고, 경우에 따라 위층 생활 공간을 지지했을 수 있다. 외부에 돌출된 돌은 지붕 덮개의 닻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부 실에는 찬장을 만들었을 수 있는 움푹 들어간 곳이 있다.[1] 주요 기도실은 배 모양이며, 크기는 3.6 × 4.3 미터이다. 동쪽 벽에는 제단과 작은 창문이 있다. 작은 기도실은 주요 단지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진 자체 테라스에 있다. 크기는 2.4 × 1.8 × 2.4 미터이며 낮은 문(0.9 × 0.5 미터)과 북동쪽 벽에 비교적 큰 1미터 높이의 창문이 있다.[2]

5. 2. 성 미카엘 교회 (St Michael's Church)

성 미카엘 교회는 10세기 또는 11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주로 발렌시아 섬에서 수입한 사암과 석회를 사용해 지어졌다. 현재는 대부분 붕괴되었으며, 동쪽 창문만 남아 있다.[1] 교회의 중앙에는 1871년에 등대지기 가족 구성원을 위해 세워진 현대식 묘비가 있다.[1]

5. 3. 수도승 묘지 (Monk's Graveyard)

수도승 묘지


수도승 묘지는 부분적으로 붕괴되었으며, 활발하게 사용되었을 때보다 규모가 작다. 묘지 서쪽에는 주로 단순한 장식 패턴이 새겨진 돌 십자가가 있으며, 그 중 두 개는 매우 정교하며 유적의 초기 특징으로 여겨진다. 섬 전체에서 100개가 넘는 돌 십자가가 발견되었다.[1] 묘지 북쪽과 서쪽에는 여러 개의 큰 정주석이 있다.[2] 부지에는 두 개의 건식 석조 렉트가 있다. 더 큰 렉트는 성 미카엘 교회와 주요 기도소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3] 둘 다보다 먼저 지어졌을 것으로 생각되며, 한때 서쪽 끝에 큰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지만 지금은 부러져 있다. 다른 렉트는 기도소 남쪽에 있는 수도원 옹벽에 붙어 있다. 두 렉트 아래에서 인골이 발견되었다.[4]

5. 4. 예배당 (Oratory)

묘지와 큰 오라토리


오라토리는 해발 200m 높이로, 정상에서 15m 아래에 있다.[1] 이곳은 가장 크고 상태가 양호하다.[2] 주요 오라토리는 원래의 제단, 벤치, 물 저장소, 신사의 잔해로 보이는 것을 포함하여 거의 손상되지 않은 상태이다.[3] 석조 공사는 초기 기독교 시대의 아일랜드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주요 건물 내부는 길이 2.3m, 너비 1.2m이다. 울타리 벽은 주로 작은 돌로 만들어졌으며, 현재는 닳아 없어지고 대부분 무너졌지만 한때 높이가 약 1.5m 정도였을 것이다. 오늘날 내부에는 구조물에서 떨어진 돌 부스러기와 2.14m 높이의 돌 십자가 조각으로 가득 차 있다.[4] 바깥쪽의 leacht는 아마도 신사나 제단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며, 매장지였을 만큼 크지는 않다.[5]

5. 5. 은둔소 (Hermitage)

수도원 반대편 섬에는 은둔소가 있다. 남쪽 봉우리 아래에 위치해 있으며 접근하기가 훨씬 더 어렵고 위험하다. 오늘날 접근은 제한되며, 사전 협의 후에만 허용된다.[1] 남쪽 봉우리는 매우 좁고 가파른 일련의 석굴 건축 계단을 통해 그리스도의 안부에서 접근할 수 있다. 이 계단은 때때로 허리케인에 가까운 강풍에 모든 면이 노출되어 있다. 통로는 봉우리의 좁은 수직 균열로 형성된 암석 굴뚝인 니들 아이를 통과한다.[2]

은둔소의 기원과 역사는 수도원만큼 잘 연구되지 않았지만, 건설의 어려움을 고려할 때 은둔소가 나중에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거의 깎아지른 절벽 면으로 큰 돌덩이를 옮겨야 했고, 건설업자들은 수도원을 기지로 삼아야 했을 것이다.[3] 섬의 주요 단층선에 서리가 미치는 침식 작용은 석공에게 건설에 필요한 많은 재료를 제공했다.[4] 은둔소는 바위에 새겨진 세 개의 주요 테라스에 위치한 여러 개의 울타리와 플랫폼으로 구성되어 있다.[5] 이 테라스는 오늘날 예배당, 정원, 외부 테라스로 알려져 있다.

5. 6. 계단과 길 (Stairs and paths)

그리스도의 안장으로 가는 길


섬에 처음 정착한 수도사들은 세 개의 착륙 지점(동쪽, 남쪽, 북쪽 계단)에 긴 계단을 건설했다. 섬의 다른 곳에서 더 오래된 계단의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 계단들은 한때 더 큰 네트워크의 일부였을 수도 있다.[1][2]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각 계단 시리즈의 기초 부분은 암석을 깎아서 만들었으며, 파도가 더 이상 풍화시키지 않는 고도에 도달하면 더 안정적인 건식 석조 구조로 바뀌었다. 나중에 기단 계단은 건식 석재 길로 대체되었다.[3]

북쪽 계단은 블루 코브에서 시작하여 위쪽 계단과 아래쪽 계단으로 알려진 두 개의 길고 가파른 연속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쪽 길은 건식 석재로 만들어졌지만, 상태가 좋지 않은 곳도 있다. 건설된 가파른 경사면 때문에 침식되기 쉽고 바로 위에 있는 절벽에서 떨어지는 돌의 영향을 받기 쉽다.[4] 아래쪽 암석 절단 부분은 바다에 의해 심하게 풍화되었으며, 그 주변의 일부 지반이 붕괴되었다. 계단이 유실된 부분은 경사로로 대체되었다.[5] 1820년대에 가장 낮은 기단에 난간이 추가되었으며, 등대 건설 중에 폭이 넓어졌다.[4]

남쪽 계단 전경


남쪽 계단은 오늘날 가장 많이 사용되며, 그리스도의 안장에서 북쪽 계단과 합쳐져 수도원으로 이어진다. 기도소와 담장을 포함한 여러 고고학적 특징을 지나간다.[5] 상태가 좋으며, 아마도 등대 건설자들이 수리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안장 바로 위에 있는 가장 취약한 지점은 현대 방문객의 지속적인 사용으로 인해 마모되어 지속적인 유지 관리가 필요하다.[4] 착륙 계단은 등대 건설자들이 건설했을 수 있다. 주요 착륙 지점과 떨어진 14개의 계단은 접근할 수 없으며, 양쪽 끝에서 끊어져 바다로도, 가장 높은 곳으로도 이어지지 않는다.[6]

블라인드 맨스 코브 위의 동쪽 계단의 아랫부분은 1820년 부두와 등대 도로 건설 중에 다이너마이트로 심하게 폭파되었으며, 현재 착륙 지점에서 접근할 수 없다.[4] 이 수준 위의 계단은 가파른 경사를 따라 매우 가파르게 올라가며,[7] 보존 대상이 되었으며, 가장 최근에는 2002/2003년에 과도한 성장을 대량으로 제거했고,[7] 오늘날 상태가 좋다.[5]

6. 문화 속 스켈리그 마이클

1969년 BBC 다큐멘터리 ''문명: 케네스 클라크의 개인적인 시각''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는 섬의 건물과 길을 "용기와 끈기의 놀라운 성과"라고 묘사했다. 그는 "12세기 프랑스나 17세기 로마의 위대한 문명을 돌아보면, 꽤 오랫동안, 거의 백 년 동안이나 서구 기독교가 스켈리그 마이클과 같은 장소에 매달려 살아남았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 스켈리그 마이클은 아일랜드 해안에서 약 213.36m 떨어진 바위 봉우리이다"라고 말했다.[4]

여러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섬을 촬영 장소로 사용했다. 이 섬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2017),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2019)에서 행성 아치-토를 촬영하는 데 사용되었다.[4] 또한 ''유리 심장''(1976)의 마지막 장면 촬영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엠마 도노휴의 2022년 책 ''헤이븐''은 7세기에 스켈리그 마이클에 정착한 최초의 수도승들을 허구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5]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 섬에 사는 바다오리가 포그의 모델이 되었다.[10]

7. 접근 및 관광

섬에 접근하는 관광 보트


스켈리그 마이클은 날씨에 따라 수도승들이 다양하게 사용했던 세 개의 착륙 지점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이 섬은 연평균 11,000명의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 유적지를 보호하기 위해 공공사업국은 방문객 수를 하루 180명으로 제한한다. 현지 기후와 노출된 지형으로 인해 본토에서 스켈리그 마이클로 가는 길이 어렵다. 일단 상륙하면 섬의 지형은 가파르고, 보호받지 못하며 위험하다. 바위는 주요 섬 봉우리로 이어지는 600개의 중세 석조 계단을 통해 올라간다.[6]

수도원의 대강당 내부에서 본 스켈리그 베그의 모습


섬의 외딴 위치와 접근성은 오랫동안 방문객을 막아왔으며, 따라서 매우 잘 보존되어 있다. 관광은 19세기 후반에 노를 젓는 배를 25 실링에 빌릴 수 있게 되면서 시작되었다.[6] 1970년대 초 소형 전세 여객선이 더 빈번해지기 전까지는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되지 못했다. 1973년에는 5척의 배를 1인당 3파운드의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1990년까지 수요가 증가하여 공공사업국은 4개의 개별 항구에서 출발하는 10척의 배를 조직하기 시작했다.[6]

매년 최소 4개의 보트 면허가 여름 시즌(5월부터 10월까지) 동안 스켈리그 마이클로 여행을 운행하는 관광 운영자에게 부여되며, 날씨가 허락하는 경우에 한한다. 본토의 상황이 평온하더라도 섬 주변의 바다는 거칠 수 있다. 이 지역은 대서양의 먼 저기압에서 오는 해양 너울의 착륙 지점이다. 섬은 사방에서 물에 휩싸이며, 파랑 마루는 부두 위로 최대 10미터, 등대 옆으로 45미터까지 부서진다. 이러한 큰 파랑 골이 물러갈 때, 바위 표면에 거친 해초 줄기, 해면 및 말미잘이 노출되어 접근과 상륙을 더욱 방해할 수 있다.[6]

일반적인 방문은 약 6시간 동안 지속된다. 공공사업국은 이 여행이 안전 문제를 제시한다고 강조한다. 안전상의 이유로, 주로 계단이 가파르고, 바위가 많고, 오래되었으며,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젖거나 바람이 부는 날씨에는 등반이 허용되지 않는다. 바위 바로 주변, 주로 블루 코브 주변의 다이빙 장소는 여름에 허용된다.[6]

일부 보고서에 따르면, 강우량 증가, 해양 너울, 더 심한 폭풍의 형태로 나타나는 기후 변화가 스켈리그 마이클을 위협하고 있으며, 관광이 이러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6]

8.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준

스켈리그 마이클은 다음 기준에 따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기준 3: 스켈리그 마이클은 현재까지 보존된 수직적인 구조의 건축물들을 통하여 초기 기독교 수도 생활의 독특하고, 때로는 극심했던 모습을 증언해준다.
  • 기준 4: 스켈리그 마이클은 종교적, 문화적, 특히 극심한 기후 조건 속에서 수도 공동체가 발전한 시기를 보여주는 뛰어난 예시이다.

참조

[1] 웹사이트 Skellig Michael https://sacredsites.[...] 2021-07-27
[2] 서적 Beyond Snakes and Shamrocks: St. Patrick's Missional Leadership Lessons for Today https://books.google[...] Wipf and Stock Publishers 2018-07-02
[3] 간행물 Management of Isolated Islands: The example of Sceilg Mhichíl, Ireland https://intarch.ac.u[...] 2020
[4] 웹사이트 The Ultimate Ireland Star Wars Locations Guide https://www.letsgoir[...] 2020-07-16
[5] 뉴스 Haven by Emma Donoghue review – a seventh-century Room https://www.theguard[...] 2022-08-19
[6] 간행물 Impacts of Climate Change on Coastal Archaeological Sites in County Kerry, Ireland
[7] 웹사이트 デジタル大辞泉の解説 https://kotobank.jp/[...] コトバンク 2018-04-22
[8] 뉴스 石積みの僧坊 アイルランド 日本経済新聞 2020-05-03
[9] 웹사이트 Conservation objectives for Skelligs SPA [004007] https://www.npws.ie/[...] National Parks and Wildlife Service (Ireland) 2023-04-30
[10] 웹사이트 Star Wars' porgs are puffins on another planet https://www.cbc.ca/n[...] CBC 2024-12-25
[11] 웹인용 Skellig Michael http://whc.unesco.or[...] UNESCO 2012-05-29
[12] 뉴스 And . . . action! New 'Star Wars' film shoot kicks off on Skellig Michael http://www.independe[...] 인디펜던트 뉴스 & 미디어 2014-11-29
[13] 뉴스 JJ Abrams can't believe he got to shoot on Skellig Michael http://www.ew.com/ar[...] 201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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