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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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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로와촌은 1889년 4월 1일 정촌제 시행에 따라 하이바라군에 단독으로 촌제를 시행하여 자치체를 형성하였다. 1955년 3월 31일 오마에자키촌과 합병하여 오마에자키정이 되었으며, 2004년 4월 1일 오마에자키정이 하마오카정과 합병하여 오마에자키시가 되면서 오마에자키시의 일부가 되었다. 농업 중심의 마을이었으며, 말린 고구마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20세기에는 원양어업과 관광 산업이 번성하였으나, 현재는 어업과 관광 산업 모두 부진하며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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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와촌 - [옛 지명]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폐지일1955년 3월 1일
폐지 이유신설 합병
폐지 상세시로와촌, 오마에자키촌오마에자키정
현재 자치체오마에자키시
읽는 법시로와무라
자치체 명칭시로와촌
구분
도도부현시즈오카현
하이바라군
인구4521
인구 시점1950년국세조사
인구 출처국세조사
인접 자치체오마에자키촌, 지토카타촌, 오가사군사쿠라촌
위치하이바라군 시로와촌
오이 강 유역의 정촌제 시행 당시의 정촌. 42가 시로와촌. (41. 오마에자키촌)
오이 강 유역의 정촌제 시행 당시의 정촌. 42가 시로와촌. (41. 오마에자키촌)

2. 역사

1889년 (메이지 22년) 4월 1일 정촌제 시행으로 시로와 촌이 단독 촌제를 실시하여 시로와촌이 발족하였다. 1955년 (쇼와 30년) 3월 31일 오마에자키 촌과 합병하여 오마에자키 정이 되었다. 2004년 (헤이세이 16년) 4월 1일 오마에자키 정이 하마오카 정과 합병하여 오마에자키 시가 되었다.

2. 1. 시로와촌의 성립

1889년(메이지 22년) 4월 1일 정촌제 시행에 따라 하이바라군 시로와촌이 단독으로 촌제를 시행해 자치체를 형성하였다.

2. 2. 오마에자키정과의 합병

1955년 (쇼와 30년) 3월 31일 - 오마에자키촌과 합병하여 오마에자키정이 되었다.

2. 3. 오마에자키시로의 편입

2004년 (헤이세이 16년) 4월 1일 오마에자키정하마오카정과 합병하여 오마에자키시가 되면서, 시로와촌 지역은 오마에자키 시의 일부가 되었다.[1]

3. 지리

시로와촌은 남쪽으로 엔슈나다에 접해 있었으며, 동쪽 일부는 스루가 만에 접해 있었다.

3. 1. 지역

촌 아래에 대자(大字)는 없었다.

4. 산업

시로와 촌은 농업 중심의 마을이었지만, 대부분 대지이고 수리 시설이 좋지 않았으며, 토양은 척박한 사양토였다. 논은 거의 없었고, 양파, 고구마, 무, 수박 등 채소 원예가 중심이었다. 1824년(분세이 7년) 시로와 촌의 쿠리바야시 쇼조가[1] 고구마의 새로운 가공법인 "니키리보시법"을 고안하여[2] "말린 고구마"의 원형을 만들었고, 이후 이바라키현에 이 제조법이 전해져 이바라키현의 향토 요리 "말린 고구마"가 되었다.[2]

20세기에 들어 오마에자키 촌에서 원양어업이 번성하면서 어업 종사자가 증가했다. 1950~60년대에는 마을에서 농업을 하는 것은 여자와 노인뿐이라고 할 정도로 남자 대부분이 어부가 되었다.

전후 오마에자키 등대와 신선한 생선을 내세운 관광 산업이 번성했고, 멜론이나 안개꽃 등 화훼를 재배하는 온실 원예도 발달했지만, 현재는 어업과 관광 모두 부진하여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4. 1. 농업

시로와 촌은 농업 중심의 마을이었지만, 대부분 대지이고 수리 시설이 좋지 않았으며, 토양은 척박한 사양토였다. 논은 거의 없었고, 양파, 고구마, 무, 수박 등 채소 원예가 중심이었다. 20세기에 들어 오마에자키 촌에서 원양어업이 번성하면서 어업 종사자가 증가했고,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는 마을에서 농업을 하는 것은 여자와 노인뿐이라고 할 정도로 남자들은 대부분 어부가 되었다. 전후에는 오마에자키 등대와 신선한 생선을 내세운 관광 산업이 번성했고, 멜론이나 안개꽃 등 화훼를 재배하는 온실 원예도 발달했지만, 현재는 어업과 관광 모두 부진하여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4. 1. 1. 말린 고구마

1824년(분세이 7년)에 시로와 촌의 쿠리바야시 쇼조가[1] 고구마의 새로운 가공법인 "니키리보시법"을 고안하여[2] "말린 고구마"의 원형을 만들었다.[2] 시로와 촌은 말린 고구마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1] 이후 이바라키현에 이 제조법이 전해져, 이바라키현의 향토 요리 "말린 고구마"가 되었다.[2]

4. 2. 어업

20세기에 들어 오마에자키에서 원양어업이 번성하면서 어업 종사자가 증가했다. 1950~60년대에는 마을에서 농업을 하는 것은 여자와 노인뿐이라고 할 정도로 남자 대부분이 어부가 되었다.[1]

4. 3. 관광업

전후, 오마에자키 등대와 신선한 생선을 내세운 관광 산업이 번성하였고, 멜론, 안개꽃 등 화훼를 재배하는 온실 원예도 이루어졌으나, 현재는 어업과 관광 산업 모두 부진하며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伝説のヒーロー、ふたりの『いもじいさん』の活躍を知っていますか? https://omaezaki.net[...] UMICO 2018-10
[2] 웹사이트 歴史・由来・関連行事 https://www.maff.go.[...] 農林水産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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