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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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체는 죽은 사람 또는 동물의 몸을 의미하며, 다양한 용어와 뉘앙스로 사용된다. 역사적으로 시체는 해부학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였으며, 과학 및 의학 발전에 기여했다. 그러나 시체 획득과 사용에 대한 윤리적 문제와 사회적 인식 변화가 있어 왔으며, 시체 강탈 및 매매와 같은 문제도 발생했다. 현대에는 해부학 연구 외에도 법의학, 자동차 안전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플라스티네이션과 같은 보존 기술이 개발되었다.
한국어에서 시체를 가리키는 고유어로는 주검과 송장이 있고, 한자어로는 시체, 시신, 사체 등이 있어 저마다 쓰임과 뉘앙스에서 차이가 있다. 언론에서는 신원 불명의 경우 '시체', 신원이 확인된 경우 '시신'으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44]
2. 용어
3. 인간의 부패
시신의 부패 단계를 관찰하면 사망 후 경과 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 분해 속도는 온도, 습도, 썩는 고기를 먹는 동물의 존재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따뜻하고 습한 환경에서 부패가 더 빨리 진행된다.[5]
3. 1. 분해 단계
자가융해는 흔히 자가 소화라고 알려져 있으며, 신체 세포가 자체 소화 효소에 의해 파괴되는 현상이다. 자가융해로 액체가 생성되어 피부 층 사이로 스며들면서 피부가 벗겨진다.[5] 이 단계에서 파리가 (존재할 경우) 눈, 콧구멍, 입, 귀, 열린 상처 등 구멍에 알을 낳는다. 부화한 구더기는 검정파리 유충으로 피부 아래로 들어가 신체를 먹는다.[5]
두 번째 단계는 팽창이다. 장내 세균이 신체 조직을 분해하며 가스를 방출하고, 이 가스는 소장의 조기 붕괴로 인해 갇혀 장에 축적된다. 팽창은 주로 복부에서 발생하며, 입, 혀, 생식기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이는 보통 분해 2주차에 일어난다. 가스 축적과 팽창은 신체가 충분히 분해되어 가스가 빠져나갈 때까지 계속된다.[5]
세 번째 단계는 부패이다. 이는 최종 단계이자 가장 긴 단계로, 신체의 더 큰 구조가 붕괴되고 조직이 액화되는 단계이다. 소화 기관, 뇌, 폐가 가장 먼저 분해된다. 정상적인 조건에서 장기는 3주 후 식별할 수 없게 된다. 근육은 박테리아나 동물에게 먹힐 수 있다. 결국, 수년 후에는 뼈대만 남게 되며, 산이 풍부한 토양에서는 골격이 기본 화학 물질로 용해된다.[5]
4. 역사
시체 사용의 역사는 논란과 과학적 발전, 그리고 새로운 발견으로 가득 차 있다. 고대에는 종교적, 윤리적 이유로 시체 해부가 금기시되었으나, 해부학적 지식 발전을 위해 은밀하게 시행되기도 했다.
해부에 대한 종교적 규제는 새로운 발견과 진보에 비추어 상당히 완화되었지만, 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시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인 출처는 일반적으로 교수형에 처해진 범죄자의 시체였다.[1] 해부를 "정당화"하는 범죄를 저지른 많은 범죄자들과 그 가족들은 해부가 범죄나 사형 자체보다 더 끔찍하고 굴욕적인 것으로 여겼다.[1] 사망자의 친척과 친구들이 시체가 교수형 장소에서 해부학자에게 전달되는 것을 막으려 할 때 많은 싸움이 벌어졌고, 때로는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8] 당시 정부(17세기)는 이러한 우려를 이용하여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대한 위협으로 해부를 이용했다. 심지어 교수형으로 처벌되는 범죄의 수를 200건 이상으로 늘렸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체 해부가 더욱 인기를 얻게 되자 해부학자들은 시체를 얻을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전 세계 대학교에서 시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사람들은 묘지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 시체들은 운송되어 지역 해부학 교수들에게 판매되었다.[1] 대중은 묘지 훼손에 대해서는 눈감아 주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는 피해자가 대개 가난하거나 소외된 사회의 일부였기 때문이다.[1] 부유하거나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물이 피해를 입는 경우 더 큰 항의가 있었고, 이는 1788년 부활 폭동(Resurrection Riot)으로 널리 알려진 뉴욕에서의 폭동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한 의사가 창문을 통해 훔쳐보는 어린 소년에게 시체의 팔을 흔들면서 시작되었고, 소년은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이야기했다. 최근 사망한 아내의 묘지가 훼손되었을까 걱정되어 확인하러 간 아버지는 묘지가 훼손되었음을 깨달았다.[1] 이 이야기가 퍼지면서 사람들은 지역 의사와 해부학자들을 비난했다. 폭동은 5,000명으로 확대되었고, 결국 의대생과 의사들이 구타당했으며 6명이 사망했다.[1] 이는 미국 정부가 제정한 해부법(Anatomy Acts)과 같은 많은 법적 조정을 가져왔다. 이러한 법안은 과학적 목적을 위해 시체를 얻을 수 있는 다른 길을 열었으며, 매사추세츠주가 최초로 시체 주인이 없는 시체를 해부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1830년, 1833년).[1] 거의 모든 주에서 법률이 통과되었고, 묘지 훼손은 사실상 근절되었다.
20세기 초, 미국 대중은 여전히 시체 해부를 매우 반대했다. 반대는 주로 종교적 반대와 시체가 주인 없는 시체와 연관되어 가난의 표식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1] 많은 사람들이 해부를 긍정적으로 보이려고 시도했는데, 예를 들어 뉴욕의 저명한 의사 200명이 사망 후 시신을 기증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1] 이러한 노력과 다른 노력들은 미미한 방식으로만 도움이 되었고, 대중의 여론은 부패한 장례 산업의 노출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받았다.[1] 사망 비용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으며, 많은 장례업체들이 사람들을 속여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게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1] 이러한 폭로는 반드시 낙인을 제거하지는 않았지만, 사기꾼 장례업체에 의해 사람과 그 가족들이 희생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조성하여, 사람들이 시신 기증을 재고하게 만들었다.[1]
역사적으로 병리 해부는 종교적, 도덕적으로 비인도적인 행위로 여겨지기도 했다.[44]
시체 처리에 관해서는 각국의 역사와 습속에 따라 다르지만, 많은 국가에서 이를 법률상의 절차 없이 방치하거나 훼손하는 행위(사체 유기나 사체 손괴)는 법률로 금지되어 있다.
- 사후 처형 - 이미 죽은 시체를 훼손하는 등의 처형 형벌. 전 세계에서 행해졌다.
- 옥문 - 형벌의 일종. 사형으로 잘린 머리는 효수(梟首)되었다.
- 베어보기
- 오자서 - "사시(死屍)에 채찍질한다"는 고사를 낳았다. 아버지와 형의 원수인 초나라 평왕의 시체를 처참하게 채찍질한 고사에서 유래한다.
- A급 전범 - 미군은 신성시되지 않도록 장소를 비밀로 하고 해상에 유기했다.
4. 1. 고대
기원전 3세기에 고대 그리스의 헤로필로스(칼케돈의 헤로필로스)와 에라시스트라토스(케오스섬의 에라시스트라토스)[6]라는 두 명의 의사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체 해부를 시행했는데, 이는 해부학을 배우는 주된 수단이었다.[7] 이 두 사람의 사망 후, 해부학적 해부의 인기는 감소하여 완전히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1]4. 2.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
12세기에 해부학적 해부가 부활하였고, 17세기에 들어 더욱 인기를 얻었다.[1] 1231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해부학 연구를 위해 인체 해부를 5년에 한 번씩 시행하도록 칙령을 발표했다.[1] 이로 인해 기원전 300년 이후 최초로 공식적으로 허가된 인체 해부가 이루어졌으며, 몬디노 데 루이지가 공개적으로 시행했다.[1] 이 시기는 인체 해부가 과학에 기여할 수 있는 바에 대한 큰 열정을 불러일으켰고, 유럽 전역에서 온 학생들이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4. 3. 근현대
19세기 이후, 병리 해부학과 임상 의학이 결합되면서 질병 연구에 시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체 획득의 어려움으로 인해 시체 강탈, 시체 매매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최초로 기록된 시체 강탈은 1319년에 묘지 도굴 혐의로 체포된 4명의 의대생에 의해 수행되었다. 1700년대에는 대부분의 시체 강탈범이 의사, 해부학 교수 또는 그들의 학생들이었다. 1828년까지 일부 해부학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발굴을 수행하도록 돈을 지불했다. 이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의료계에서 "부활자"로 알려졌다.[35]
런던 버로우 갱은 1802년부터 1825년까지 활동한 부활자 집단이었다. 이들은 여러 학교에 시신을 제공했고, 학교 구성원들은 이들이 감옥에 가지 않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경쟁 갱의 구성원은 종종 다른 갱의 구성원을 신고하거나, 대중을 동요시키기 위해 묘지를 훼손하여 경쟁 갱이 활동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35]

1827년부터 1828년까지 스코틀랜드에서 웨스트 포트 살인 사건이라 불리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여러 사람이 살해되었고 그 시체는 연구 목적으로 의과대학에 판매되었다. 이러한 사건에 대한 대중의 반응과 런던 버커가 저지른 행위는 1832년 해부법 제정에 영향을 미쳤다. 이 법은 사망자의 친족이 해부 및 기타 과학적 과정에 시신을 사용하는 데 동의하도록 장려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사람들이 시체를 얻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판매하는 사건도 있었다. 잘 알려진 사례는 다음과 같다.

- '''버크와 헤어(Burke and Hare)''': 버크와 헤어는 하숙집을 운영했다. 세입자 중 한 명이 사망하자 그들은 시체를 로버트 녹스의 에든버러 해부학 교실로 가져갔고, 7GBP를 받았다. 이익을 얻기 위해 그들은 다음 해에 16명을 질식사시켜 살해하고 녹스에게 시체를 팔았다. 결국 한 세입자가 침대에서 시체를 발견하면서 체포되었다. 헤어는 사면을 조건으로 버크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고, 버크는 유죄 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진 뒤 공개적으로 해부되었다.[36]
- '''런던 버커, 비숍, 메이, 윌리엄스(Bishop, May and Williams)''': 이 시체 강탈범들은 10세, 11세, 14세 소년 3명을 살해했다. 시체를 판매한 해부학자는 의심을 품고, 50GBP 지폐를 바꿔야 한다며 시간을 끌면서 경찰을 불러 그들을 체포했다. 비숍은 자백에서 500구에서 1000구의 시체를 강탈했다고 주장했다.[37]
5. 과학 및 의학 분야에서의 중요성
시체는 과학계 전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며, 특히 인체 해부학에 관한 방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기원전 3세기, 그리스 과학자 헤로필로스와 에라시스트라토스는 시체 해부를 통해 뇌, 신경, 눈, 심장, 간, 생식 기관 등 다양한 인체 기관의 구조와 기능을 밝혀냈다.[18]
갈레노스(130–201 AD)는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 의사들의 저작을 자신의 인체 이해와 연결시켰으며,[19]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1514–1564)는 갈레노스의 연구와 자신의 시체 해부를 바탕으로 해부학 지식을 발전시켰다. 베살리우스는 갈레노스가 시체를 직접 해부하지 않고 이전 지식에 의존했다고 비판했다.[20]
오늘날 시체는 육안 해부학 연구, 외과 수술 연습, 질병 원인 규명, 부검을 통한 약물 효과 및 부상 반응 연구 등에 활용된다.[23][24][25][26]
5. 1. 해부학 연구
시체 해부는 인체 구조와 기능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기원전 3세기에 고대 그리스의 헤로필로스와 에라시스트라토스[6]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체 해부를 시행했는데, 이는 해부학을 배우는 주된 수단이었다.[7] 이들은 시체 해부를 통해 뇌, 신경, 눈, 심장, 간, 생식 기관 등 다양한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밝혀냈다.갈레노스(130–201 AD)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른 그리스 의사들의 저작들을 자신의 인체에 대한 이해와 연결했다.[19]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1514–1564)는 갈레노스의 연구 결과와 자신의 인간 시체 해부를 바탕으로 지식을 쌓았다.[20][21] 베살리우스는 갈레노스가 인체 해부학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얻기 위해 시체를 사용한 적이 없고, 대신 그의 선배들의 이전 지식을 사용했다고 결론 내렸다.[20]
시체를 통해 과학자들이 발견한 인체 해부학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학자 | 발견 |
---|---|
헤로필로스 | 뇌 내부의 네 개의 뇌실, 7쌍의 뇌신경, 감각 신경과 운동 신경의 차이, 눈 안의 각막, 망막, 맥락막, 심장 판막, 간, 췌장, 남녀 생식 기관, 자궁이 하나의 방으로 구성됨.[18] |
에라시스트라토스 | 심장 판막을 통한 혈류의 비가역성, 인체의 정맥과 동맥 내의 세부 사항.[18] |
5. 2. 의학 발전
오늘날 시체는 의학과 외과 분야에서 인간의 육안 해부학 지식을 넓히는 데 사용된다.[23] 외과의들은 살아있는 환자에게 수술하기 전 시체를 해부하고 검사하여 수술 부위의 편차를 확인한다.[24] 새로운 유형의 수술 절차는 시체 해부를 통해 얻은 사전 지식을 통해 많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25]시체는 의대생과 의사들에게 인체의 다양한 기능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인체의 다양한 오작동 원인도 제공한다. 그리스 의사 갈레노스(서기 250년경)는 사망 후 발견된 내부적 결과와 인간의 삶 동안 발생한 사건을 연관시킨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간단한 부검은 치명적인 질병이나 장애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부검을 통해 특정 약물이나 시술이 시체 내에서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그리고 인간이 특정 부상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26]
충수 제거술은 미국에서 연간 28,000회 수행되며, 기술 시뮬레이션이 아닌 인간 시체에 대해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27] 인체의 시각적 구조를 연구하는 의과대학의 일반적인 과정인 육안 해부학은 학생들에게 실습 학습 환경을 제공한다.
5. 3. 기타 활용
충돌 시험용 마네킹이 개발되기 전에는 시체를 이용하여 자동차의 안전을 시험하였다.[38] 시체는 접합 유리창, 안전 벨트, 에어백 등 차량의 안전 기능에 대한 지침을 설정하는 데 사용되었다. 시체를 이용한 최초의 충돌 시험은 1930년대 로렌스 패트릭이 수행했는데, 그는 자신의 신체와 학생들을 사용하여 인체의 한계를 시험했다. 그가 시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시체를 엘리베이터 샤프트 아래로 던졌을 때였으며, 사람의 두개골이 손상을 입기 전에 1초 동안 최대 1.5톤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39]1995년 연구에 따르면, 시체 테스트를 통해 개선된 자동차 안전 기술은 143,000건의 부상과 4,250건의 사망을 예방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시체 시험 시에는 소형 가속도계를 시체의 시험 부위 뼈에 부착하고, 선형 충격기, 진자 또는 낙하 중량 등 다양한 도구로 시체에 손상을 가한다. 또한, 시체를 충돌을 시뮬레이션하는 충격 썰매에 배치하기도 한다. 이러한 테스트가 완료되면 시체를 엑스레이로 검사하여 손상 여부를 확인하고 해부학 부서로 돌려보낸다.[40] 시체 사용은 2011년 익스플로러에 도입된 포드의 팽창식 뒷좌석 안전 벨트 개발에도 기여했다.[41]
법의학에서는 시체를 통해 사망 원인을 규명하고, Body identification|시신 신원 확인영어 등에 활용한다.
고고학에서는 Biofact (archaeology)|유존체영어 분석을 통해 과거 인류의 생활상을 연구한다. Conservation and restoration of human remains|유존체의 보존과 복원영어을 통해 연구 자료를 보존하고, Bone age|골연령영어 측정 등을 통해 사망 당시의 연령을 추정하기도 한다.
6. 보존
시체는 해부학 연구와 해부에 적합하고 이상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사망 후 24시간 이내에 냉장 보관하거나 보존 처리를 시작해야 한다.[28] 시체 보존은 방부액 혼합물을 사용한 방부 처리 또는 비교적 새로운 방법인 플라스티네이션을 통해 수행될 수 있다. 두 방법 모두 교육 환경에서 해부학적 해부용 시체를 준비하는 데 있어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화학 액체를 이용한 방부 처리 관행은 수세기 동안 사용되어 왔다. 현대의 방부 처리에는 내장 적출이 포함되지 않는데, 이는 해부학 연구에 불리하게 장기를 손상시키기 때문이다.[29]
6. 1. 방부 처리(Embalming)
현대적인 방부 처리는 해부학적 목적을 위해 시신이 부패하는 것을 막고, 조직이 원래의 색과 부드러움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또한 생물학적 및 환경적 위험을 방지하며, 해부학적 구조를 자연 형태로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29] 이를 위해 소독제, 방부제, 변형제, 항응고제 등 다양한 화학 물질이 사용된다.[29]방부 처리에는 포름알데히드, 페놀, 메탄올, 글리세롤 등이 사용된다.[31]
화학 물질 | 설명 |
---|---|
포름알데히드 | 박테리아, 곰팡이, 곤충을 죽이고 부패를 방지한다. 조직을 경화시켜 미생물이 영양분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혈액 응고, 조직 경화, 피부 변색, 악취 및 유독성 등의 단점이 있다.[29] |
페놀 | 항균 및 항진균제로 작용하는 소독제이다. 단백질을 변성시키고 세포벽을 파괴하여 곰팡이 성장을 막지만, 조직 건조 및 변색을 유발할 수 있다.[29] |
메탄올 | 소독 성질을 가진 첨가제로, 방부액의 삼투압 균형을 조절하고 부동액 역할을 한다. 인체에 급성 독성을 나타낼 수 있다.[29] |
글리세롤 | 시신 조직에 액체를 보존하는 습윤제이다. 포름알데히드와 혼합하면 소독 효과를 크게 증가시킨다.[29] |
이러한 화학 물질들은 다양한 비율로 혼합되어 사용되며, 일반적으로 대량의 물과 섞인다. 현대의 방부 처리에는 내장 적출이 포함되지 않는데, 이는 해부학 연구에 불리하게 장기를 손상시키기 때문이다.[29] 방부액은 동맥계(일반적으로 경동맥 또는 대퇴동맥), 주요 신체강, 피부 아래에 주입될 수 있으며, 침수를 통해 피부 표면에 노출될 수도 있다.[30]
전통적인 방부 처리된 시신은 의학 교육의 표준으로 남아있으며, 많은 의과대학 및 치과대학에서 여전히 선호된다.[32]
6. 2. 플라스티네이션(Plastination)
군터 폰 하겐스가 1977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발명한 시체 보존 방법이다.[33] 이 방법은 시체의 체액과 가용성 지질을 플라스틱으로 대체하는 과정을 포함한다.[33] 이렇게 보존된 시체를 플라스티네이트라고 부른다.전신 플라스티네이션은 기존의 방부 처리와 거의 같은 방식으로 시작된다. 방부액과 물을 섞어 동맥 주사를 통해 시체에 주입한다. 이후 해부학자는 연구를 위해 특정 해부학적 구조를 드러내기 위해 신체 일부를 해부할 수 있다. 해부가 끝나면 시체를 아세톤에 담근다. 아세톤은 신체에서 수분과 가용성 지방을 제거하고 이를 대체한다. 그다음 시체를 시술자가 선택한 플라스틱 또는 수지 욕조에 넣고 강제 함침 단계를 시작한다. 이 욕조는 아세톤을 증발시키는 진공을 생성하여 플라스틱 또는 수지가 세포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이 과정이 완료되면 시체의 위치를 잡고 내부의 플라스틱을 경화시켜 표본을 사용할 준비를 한다.[34]
플라스티네이트는 해부학 연구에 있어 보존성이 뛰어나고, 독성이 없으며, 보관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방부 처리된 시체에 비해 아직까지는 실제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플라스티네이트 시체는 일부 기관에서는 접근이 어려우며, 일부 교육자들은 방부 처리된 시체 해부 과정에서 얻는 경험이 더 가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일부는 플라스티네이트를 구매하거나 사용할 자원이 부족하다.
7. 윤리적 문제 및 사회적 인식
시체 해부 및 활용은 역사적으로 종교적, 윤리적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19세기 이전까지 병리 해부는 종교적, 도덕적으로 비인도적인 행위로 여겨지기도 했다.[44] 많은 국가에서 법률에 따르지 않고 시체를 방치하거나 훼손하는 행위(사체 유기나 사체 손괴)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1993년 뉴욕 타임스 기사를 통해 대중은 시체를 이용한 충돌 시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 기사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약 200구의 성인 및 어린이 시체를 사용한 사례를 다루었다.[42] 대중의 항의 이후, 대학교는 시체 기증자 가족들의 동의를 증명해야 했다.[43]
7. 1. 시체 강탈 및 매매
해부용 시체 부족으로 인해 시체 강탈 및 매매가 성행하기도 했다. 최초로 기록된 시체 강탈은 1319년에 묘지 도굴 혐의로 체포된 4명의 의대생에 의해 수행되었다. 1700년대에는 대부분의 시체 강탈범이 의사, 해부학 교수 또는 그들의 학생들이었다. 1828년까지 일부 해부학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발굴을 수행하도록 돈을 지불했다. 이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의료계에서 "부활자"로 알려졌다.[35]스코틀랜드에서 여러 사람이 살해되었고, 시체는 연구 목적으로 의과대학에 판매되었는데, 이를 웨스트 포트 살인 사건이라고 한다. 웨스트 포트 살인 사건에 대한 대중의 반응과 런던 버커가 저지른 행위는 1832년 해부법 제정의 주요 요인이었다.[36]
사람들이 시체를 살해하고 판매하는 이야기가 등장했다. 잘 알려진 두 가지 사례는 다음과 같다.
- '''버크와 헤어''': 버크와 헤어는 하숙집을 운영했다. 세입자 중 한 명이 사망하자 그들은 시체를 로버트 녹스의 에든버러 해부학 교실로 가져갔고, 시체에 대해 7GBP를 받았다. 이익을 깨달은 그들은 다음 해에 16명을 질식사시켜 살해하고 녹스에게 시체를 팔았다. 헤어는 사면을 대가로 버크에 불리한 증언을 했고, 버크는 유죄 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공개적으로 해부되었다.[36]
- '''런던 버커''': 비숍, 메이, 윌리엄스는 10세, 11세, 14세 소년 3명을 살해했다. 그들이 시체를 판매한 해부학자는 의심을 품고 경찰을 불렀고, 경찰은 그들을 체포했다. 비숍은 자백에서 경력 동안 500구에서 1000구의 시체를 강탈했다고 주장했다.[37]
7. 2. 사회적 인식 변화
19세기 이후 병리 해부는 종교적, 도덕적으로 비인도적인 행위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병리 해부학과 임상 의학이 결합되었다.[44] (해부학 참조) 많은 국가에서 시체를 법률상의 절차 없이 방치하거나 훼손하는 행위(사체 유기나 사체 손괴)는 법률로 금지되어 있다.1993년 뉴욕 타임스 기사가 게재된 후, 대중은 시체를 이용한 충돌 시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해당 기사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가 약 200구의 성인 및 어린이 시체를 사용한 사례에 초점을 맞췄다.[42] 대중의 항의가 있은 후, 대학교는 시체 기증자 가족들이 시험 사용에 동의했음을 증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43]
8. 기타
예술에서 시체는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되어 왔다. 고대 네오아시리아의 조각 부조에는 강에 떠 있는 시체가 묘사되었고,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개구리』(기원전 405년)에도 시체가 등장한다. 이후 메멘토 모리와 시신 기념비에서도 시체를 찾아볼 수 있다.
해부학 연구와 교육은 인체 시체를 활용한 스케치와 그림을 통해 발전했다. 신체 부위의 배치를 예술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해부학 연구와 인체 관련 작업자들을 지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인체 내부를 엿볼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9]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와 협력하여 해부학적 특징에 라벨을 붙여 묘사하는 방식을 시작했다. 베살리우스는 사형된 범죄자들의 시체를 사용하고, 그림에 예술적 감각을 활용하기 위해 다른 예술가들을 고용하기도 했다.[9]
인체 연구는 의사와 학생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에게도 중요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인간과 동물의 해부학에 대한 상세한 연구와 시체 해부를 통해 인체를 더 정확하게 묘사했다. 그는 1466년부터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제자로 들어가 해부학을 연구했으며,[10] 도제 수업 기간 동안 근육과 힘줄과 같은 해부학적 구조의 상세한 그림을 그리는 데 능숙해졌다.[10]
다 빈치는 건축 연구와 유사하게 자신이 관찰한 것을 다양한 각도와 3차원적인 관점으로 제시했다. 1489년에 두개골을 그리는 데 3차원적 관점을 사용한 것이 그 예이다.[11] 그는 마르칸토니오 델라 토레와 협력하여 산타 마리아 누오바 병원과 밀라노, 로마의 병원에서 인체 시체를 해부했다. 다 빈치는 시체를 통해 임신한 여성과 태아의 자연스러운 위치를 정확하게 그린 최초의 인물이었을 것이다.[13] 그는 총 30번 정도의 해부를 실시한 것으로 추정된다.[14] 그는 탯줄, 자궁, 자궁 경부, 질의 최초의 그림을 묘사했으며, 다태 임신의 경우 자궁에 여러 개의 방이 있다는 믿음에 반박했다.[13] 1504년부터 1507년 사이에 그는 소의 뇌를 실험하여 뇌실의 모형을 만들기도 했다. 다 빈치의 노력은 뇌의 뇌실 시스템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다.[15] 그는 예술을 통해 신체를 더 잘 묘사하기 위해 피부 아래에서 기계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이해를 얻었다.[14] 예를 들어, 입술을 움직이는 근육을 더 자세히 관찰하고 그려서 그 시스템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얻기 위해 시체의 얼굴 피부를 제거했다.[16] 그는 발과 발목, 어깨에 대한 연구를 통해 현대의 움직임과 기능에 대한 이해를 반영했다.[14] 그는 신경해부학을 연구한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이었으며, 눈, 시신경, 척추의 해부학에 대한 이해에 큰 진전을 이루었다.[17]
수세기 동안 예술가들은 해부학 연구와 시체 활용을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품에서 인체를 더욱 정확하고 생생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도 해부를 실시했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9]
「시체(屍體)」는 즉물적인 인상을 주는 용어이므로, 사망자의 인격을 존중하는 상황에서는 「유체(遺體)」라는 말을 사용한다. 「사해」, 「시(屍)」도 「유해」, 「망해(亡骸)」 등으로 바꿔 쓸 수 있다.
형법에서는 「사체 유기(사체 손괴)」처럼 「시체」가 사용된다.
대중교통 기관의 반입 금지 휴대품에 관해서는, 철도·버스·택시에서는 「시체」, 선박·항공에서는 「유체」라고 표기되는 경우가 많다.
보도뿐만 아니라,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의 프로그램 내에서는, 「시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망자의 경우나, 무관계한 장소에서 불시에 발견된 경우 등에 주로 사용한다. 다만, 신원 불명이면서도 역사적 가치가 높은 자료와 같은 경우에는, 미라나 화석을 포함하여, 「시체」보다는 「사망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유체」라는 말은, 신원이 파악된 사망자의 케이스는 물론이고, 수색되고 있는 대상의 사망자라고 간주될 수 있는 케이스에 주로 사용한다. 유족의 존재를 상정할 수 있는 경우나, 장래적으로 유족이 밝혀질 수 있는 경우이다. 따라서, 승객 명부 등의 있는 비행기나 객선에서의 사고나 사건에서의 희생자, 국외로의 일본인 여행자가 탄 자동차나 열차의 사고, 국외의 호텔이나 스타디움과 같은 건축물의 손괴에 휘말린 일본인 희생자 등, 신원이 파악될 수 있는 불특정 다수의 사망자의 케이스에도 사용된다. 국내에서의 대규모 재해로 발견된 불특정 다수의 시신 등, 발견된 시점에서는 불명이며 확률은 낮지만 장래적으로 판명되어 가는 전제인 경우에는, 시청자 등에 대한 배려도 있어 「유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 관, 시체 수납 봉투
- 매장, 시체 안치소
- 방부 처리(遺体衛生保全) - 플라스티네이션, 미라
- 헌체, 사체 해부 및 보존법
- 시체 매매
- 시체 손괴 및 유기죄
- 식인 풍습(カニバリズム)
- 시체 성행위
- 사후 처형 - 이미 죽은 시체를 훼손하는 등의 처형 형벌.
- 옥문 - 형벌의 일종. 사형으로 잘린 머리는 효수(梟首)되었다.
- 베어보기
- 오자서 - "사시(死屍)에 채찍질한다"는 고사를 낳았다. 아버지와 형의 원수인 초나라 평왕의 시체를 채찍질한 고사에서 유래한다.
- A급 전범#처형 후 시체 처리 - 미군은 신성시되지 않도록 장소를 비밀로 하고 해상에 뿌렸다.
- Necrophoresis영어 - 개미나 벌과 같은 사회성 곤충에게서 보이는, 동료의 시체나 먹이가 된 곤충의 시체를 밖으로 옮기는 행동.
- 법의학, 해부학
- 병리 해부, 사법 해부, Body identification영어
- 사후 변화
- 자가 융해 - 사후 경직 - 사반 - 사후 냉각 - 부패
- 검안 - 생체 반응
- 시체 농장(Body Farm) - 시체의 부패 진행 등을 조사하는 연구에 사용되는 시설.
- 익사 (익사체)
- 세일리시 해에서 발견된 사람 발 - 신발로 보호되어 해양 생물이 먹기 어려운 발이 표류하기 쉬운 세일리시 만에 떠내려온 사건.
- Biofact (archaeology)영어, Conservation and restoration of human remains영어 - 고고학에서의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 자료.
- 시멘트질 - 치근부 바깥쪽에 형성되는 경조직으로 나이테 형태로 형성되므로 포유류 등의 사망 시 연령 추정에 이용된다.
- Bone age영어 - 뼈에도 나이테가 형성되므로 엑스레이 등으로 동물 등의 추정이 이루어진다.
- 화석, Age determination in dinosaurs영어
- 폼페이의 화산쇄설류 후 시체가 썩어 생긴 공동에 석고를 채운 예
- 구상도
- 트랑지 - 시체의 부패 과정을 재현한 조각을 사용한 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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