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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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촌은 현재의 도쿄도 이타바시구 북동부 지역을 포괄하는 역사적인 지명이다. 나라 시대에는 '무사시국 도요시마군 히로오카고'로 불렸으며, 가마쿠라 시대에는 '시노무라'로 불리다 시무라로 정착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대부분이 에도 막부의 덴료가 되었고, 1889년 주변 8개 마을이 합병되어 시무라가 되었다. 1932년에는 이타바시구에 편입되었다. 지리적으로는 무사시노 대지와 아라카와 범람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용출수와 우물이 많아 지명과 관련된 유적 및 명소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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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촌 - [옛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리 정보 | |
기본 정보 | |
자치체 이름 | 시촌 |
한자 | 志村 |
가나 | しむら |
폐지일 | 1932년 10월 1일 |
폐지 이유 | 도쿄시 편입 |
폐지 상세 | 시무라、이타바시정、가미이타바시촌、아카쓰카촌、네리마정、가미네리마촌、나카아라이촌、샤쿠지이촌、오이즈미촌 → 도쿄시 |
현재 자치체 | 도쿄도이타바시구 |
도도부현 | 도쿄부 |
군 | 기타토시마군 |
인구 | 12151 |
인구 조사 시점 | 1930년 10월 1일 |
위치 | 기타토시마군 시무라 |
인접 자치체 | 도쿄부:기타토시마군이타바시정、가미이타바시촌、아카쓰카촌、네리마정、이와부치정、오지정 사이타마현:기타아다치군도다정 |
추가 정보 |
2. 역사
나라 시대에는 이 주변을 '무사시국 도요시마군 히로오카고'라고 불렀으며, 고대에는 '시노촌'이라고도 했다. 가마쿠라 시대부터 무로마치 시대까지는 도요시마씨의 지배를 받았고, 에도 시대에는 에도 막부의 직할령(덴료)이 되었다. 1889년 시정촌제 시행으로 시무라가 성립되었고, 1932년 도쿄시에 편입되어 이타바시구의 일부가 되었다. 1939년에는 대규모 공장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1]
2. 1. 고대-중세
나라 시대에는 이 주변을 '무사시국 도요시마군 히로오카고'라고 불렀다. 고대에는 '시노촌'이라고도 불렀는데, 싸리가 무성했던 곳을 개촌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가마쿠라 시대의 『아즈마가가미』에 이미 이 이름이 보인다.가마쿠라 시대부터 무로마치 시대까지는 도요시마씨의 지배하에 있었고, 도요시마씨의 지류에 시무라씨가 있었다. 시무라성은 시무라씨가 쌓았다고 전해지지만, 무사시 치바씨가 쌓았다는 설도 있다. 마에노무라, 나카다이무라, 니시다이무라 등의 마을 이름은 시무라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 예로부터 이 지역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1]
2. 2. 에도 시대
에도 시대에는 이 지역 대부분이 에도 막부의 덴료(幕府直轄領)가 되었다. 시무라 성의 니노마루(二の丸)에 성을 쌓기 이전부터 있던 쿠마노 신사는 에도 시대에 시무라뿐만 아니라 아즈키자와무라, 렌누마무라, 마에노무라, 나카다이무라, 니시다이무라, 네바무라의 총진수(鎮守)였다. 또한 아라카와 강의 범람원이었던 초원은 시무라가하라(시무라의 벌판, 시모노하라)라고 불렸다.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에 의해 금지되었던 매사냥이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에 의해 부활되면서, 연이어 있는 도쿠마루가하라와 함께 쇼군의 매사냥터 중 하나인 도다스지(戸田筋)에 포함되었다.2. 3. 근대 (메이지 시대-쇼와 시대 초기)
1889년 4월 1일 시정촌제 시행으로 시무라, 아즈키자와무라, 혼렌누마무라, 마에노무라, 나카다이무라, 니시다이무라, 카미렌누마무라, 네바무라의 8개 마을이 합병되어 '''시무라'''가 성립되었다.[1] 각 마을은 오오아자 시, 오오아자 아즈키자와, 오오아자 혼렌누마, 오오아자 마에노, 오오아자 나카다이, 오오아자 니시다이, 오오아자 렌네(카미렌누마와 네바의 합병)가 되었다. 혼렌누마무라는 아즈키자와무라, 마에노무라와 이나츠키무라에 둘러싸인 본촌 부분과, 시무라, 카미렌누마무라와 아라카와(현재의 신카가시가와)에 둘러싸인 사카시타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이때 본촌 부분을 아즈키자와의 고아자로서 합병하였다.1932년 10월 1일, 시무라는 이타바시정 등 2정 6촌과 함께 도쿄시에 편입되어 이타바시구가 되었다.[1] 이타바시구 성립 당시 시무라초 1~4초메, 시무라아즈키자와초, 시무라혼렌누마초(구 혼렌누마무라의 본촌 부분), 시무라쵸고초(구 혼렌누마무라의 사카시타 부분, 구 오오아자 혼렌누마, 명칭은 아자 초고에서), 시무라마에노초 1~6초메, 시무라시미즈초(구 오오아자 마에노의 일부), 시무라나카다이초, 시무라니시다이초, 시무라렌네초가 설치되었다.
1939년 5월 9일, 시무라에 있던 대일본셀룰로이드 도쿄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더불어 인접한 일본화공 공장으로 번져 폭발하여, 사망자 32명, 부상자 245명이라는 참사가 발생했다.[1]
옛 시무라 역장이 있던 곳은 현재 도쿄도 청각장애인 생활지원센터(구・도쿄도 로아자 재생료)가 되어 있다.
3. 지리
환상 7호선 북쪽, 도쿄도 이타바시구의 북동부 지역으로, 아이오이정, 아즈키사와, 이즈미정, 오하라정, 사카시타, 시미즈정, 시무라, 나카다이, 니시다이, 하스누마정, 하스네, 히가시사카시타, 마에노정, 미야모토정, 와카기의 거의 전역과 후나도 4정목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타카시마다이라 1, 9정목의 대부분과 2정목 일부(구 마에야니즈가와 동쪽), 신카가시 1정목 일부에 해당한다.
중부 이남은 무사시노 대지, 북부는 아라카와의 범람원이다. 따라서 구 나카센도에는 시미즈자카(오키노미야자카, 오키자카, 지조자카라고도 함), 국도 제17호선(나카센도)에는 시무라자카가 있으며, 무사시노 대지 쪽을 자카가미(坂上), 범람원 쪽을 자카시타(坂下)라고 부르게 되었다.
용출수와 우물이 많은 지역으로, 도쿄도 수도국이 1952년에 발행한 『도쿄도 수도사』에 시무라 요쿠센(沃泉)과 시무라 산란센(三濫泉)의 기록이 있다. 시무라 산란센은 시무라 산센(三泉)이라고도 불리며, 각각 약사의 샘, 미나기의 샘, 데이이노이즈미이다. 데이이노이즈미는 데이이가와의 원천이며, 시미즈정, 이즈미정 지명의 유래이기도 하다. 현재, 아즈키사와의 다이젠지(시미즈 약사) 터에는 약사의 샘 공원이, 마에노정에는 미나기 공원이, 이즈미정에는 데이이노이즈미 공원이 있다.
또한, 이 용출수에 의해 구 시무라, 하스누마무라, 마에노무라 부근은 네리마 무의 일종인 미노와세 무, 시미즈 무의 우수한 산지이기도 했다.
- 하천: 아라카와, 신카가시가와, 데이이가와, 하스네가와, 마에야니즈가와(지류)
4. 교통
시촌은 교통의 요지였다. 국도 제17호선이 지나가며, 나카야마 가도와 후지 가도가 이 지역을 통과했다.
4. 1. 도로
- 국도 제17호선
- 구 나카야마 가도
- 후지 가도
4. 2. 과거 교통
과거에는 나카센도의 역참 마을이었던 와라비슈쿠와 아라카와강을 사이에 두고 도쿄도와 접해 있었기 때문에, 도쿄도와의 사이를 연결하는 나루터가 존재했다. 1910년에 도다 교가 가설될 때까지 도다나와시(戸田の渡し)가, 1926년에 사이쿄선의 전신인 일본국유철도 아카바네 선의 교량이 가설될 때까지 신소나와시(新曽の渡し)가 이용되었다.또한, 에도 시대에는 가와고에 가도의 분기점이기도 했던 후지 가도가 시역을 남북으로 종단하고 있었다.[1]
5. 명소 및 유적
- 시무라성
- 시무라 이치리즈카 유적
- 후지오야마도 도표, 고신즈카 유적
- 소센지
- 다이젠지 (약사의 샘)
- 도다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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