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정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오구정은 현재의 도쿄도 아라카와구 동부와 기타구 일부에 해당했던 지역으로, 1889년 오구촌으로 시작하여 1923년 정으로 승격했다. 1932년 도쿄시에 편입되면서 아라카와구에 흡수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우엉 산지로 유명했고, 다이쇼 시대에는 온천 유흥가로 번성했으나, 지하수 고갈로 쇠퇴했다. 현재는 소규모 공장, 상점가, 주택이 혼재된 서민적인 지역이며, 도덴 아라카와 선이 지나간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아라카와구의 역사 - 닛포리정
닛포리정은 1920년에 정으로 승격되어 1932년 도쿄시에 편입되기 전까지 존재했던 일본의 행정 구역으로, 현재의 아라카와구 남부 중앙 지역에 해당하며 공업이 주요 산업이었다. - 아라카와구의 역사 - 미나미센주정
미나미센주정은 1889년부터 1932년까지 존재했던 도쿄부 기타토시마군의 정으로, 현재의 도쿄도 아라카와구 미나미센주와 히가시닛포리 일부 지역에 해당하며, 1932년 도쿄시에 편입되어 아라카와구의 일부가 되면서 소멸하였다. - 기타토시마군 - 오지정 (도쿄부)
오지정은 1909년부터 1932년까지 존재했던 도쿄부 기타토시마군의 정으로, 여러 촌이 합병되어 왕자촌이 된 후 정으로 승격했으며 현재의 도쿄도 기타구 일부 지역에 해당하고, 1932년 도쿄시에 편입되어 오지구가 되었다. - 기타토시마군 - 시촌
시촌은 현재 도쿄도 이타바시구 북동부 지역을 포괄하는 역사적인 지명으로, 시대에 따라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지리적으로 무사시노 대지와 아라카와 범람원으로 이루어져 용출수와 우물이 많다. - 도쿄도의 폐지된 시정촌 - 구와타촌
구와타촌은 1889년 가나가와현 미나미타마군에 성립되어 1893년 도쿄부 기타타마군으로 이관되었으며, 1901년 히노정과 합병하여 폐지되었고, 촌 내에 도요다역이 위치했다. - 도쿄도의 폐지된 시정촌 - 조후정
조후시는 1889년에 설립된 조후정을 전신으로 1955년 진다이정과 합병하여 시로 승격된 도쿄도의 시로, 게이오 전철 노선과 고슈가도가 지나며 후타텐진자, 구니사토 신사, 곤도 이사미 생가터 등의 역사적인 명소가 있다.
오구정 - [옛 지명]에 관한 문서 | |
---|---|
위치 정보 | |
기본 정보 | |
자치체 이름 | 오구정 |
한자 표기 | 尾久町 |
가나 표기 | おぐまち |
폐지일 | 1932년 10월 1일 |
폐지 이유 | 도쿄시 편입 |
폐지 상세 | 오구정、미나미센주정、닛포리정、미카와시마정 → 도쿄시 아라카와구 |
현재의 자치체 | 도쿄도아라카와구 |
도도부현 | 도쿄부 |
군 | 기타토시마군 |
면적 | 2.48 |
인구 | 73368 |
인구 조사 시점 | 1930년 10월 1일 |
위치 | 기타토시마군 오구정 오아자 가미오구 아자 구마노마에 2630번지 |
인접 자치체 | 기타토시마군미카와시마정、다키노가와정、오지정、미나미아다치군고호쿠무라、니시아라이무라 |
이미지 | |
![]() |
2. 지리
현재 지명으로는 동오구, 서오구의 거의 전 지역과 마치야 5~7정목 대부분에 해당한다. 아라카와의 범람원이며, 일반적으로 평탄하다.
에도 시대에는 네리마의 네리마 무(무), 센쥬의 파 , 메구로의 죽순 등과 함께 우엉의 산지로 알려졌다. 메이지 시대에는 그 외에도 많은 채소가 생산되었다.
오구 역의 소재지는 기타구이며 아라카와구 오구가 아니다. 다이쇼 시대에는 이 지역이 온천을 중심으로 한 유흥가로 상당한 인지도를 자랑했던 것을 알 수 있다.
3. 역사
예전에는 '오구'를 「おうぐ」라고 발음했고, 小具, 越具, 奥라고도 썼다. 가마쿠라 시대의 『아즈마카가미』에 「武蔵国豊嶋庄犬食名」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 「犬食」은「大食(おおぐい)」의 오기이며, 오구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설도 있다. 또한 무로마치 시대의 『조로쿠에도즈』에는 이미 오구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설에는 「도요시마군의 안쪽」 또는 에도의 북쪽 끝인 스미다강을 등지고 있어 「에도의 안쪽」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오구향은 가마쿠라 시대에는 쓰루가오카하치만구의 사유지였다. 원래는 가나스기촌(현재의 히가시닛포리, 다이토구 네기시)도 포함하고 있었지만, 이후 분리되었다. 이후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쇼호의 개정 전까지는 가미오구촌, 시모오구촌, 후나카타촌(이후의 후나카타촌)으로 나뉘었고, 에도 시대에는 가미오구촌, 시모오구촌은 오사토료에, 후나카타촌은 이와부치료에 속했다.
1889년(메이지 22년), 기타토시마군 가미오구촌, 시모오구촌, 후나카타촌의 일부가 합병하여 오구촌이 성립되었다. 후나카타촌의 대부분은 오지촌, 도요시마촌, 호리노우치촌, 가미주조촌, 시모주조촌과 합병하여 오지촌이 되었기 때문에, 예전의 오구향의 범위보다 더 작아졌다. 오구촌은 1923년(다이쇼 12년)에 오구정이 되었고, 1932년(쇼와 7년) 오구정에 미나미센주정, 미카와시마정, 닛포리정이 합병하여 아라카와구가 탄생하면서, 자치단체명에서 오구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메이지 시대에는 농업 지역이었지만, 기누강이나 이나와시로호 등의 변전소 건설 이후, 다이쇼 시대까지는 공업 지역으로 변모했다.
다이쇼부터 쇼와에 걸쳐, 오구 온천(라듐 광천)이 용출되면서, 유곽(요리점, 기생집, 마치아이)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 유명한 아베 사다 사건은 이곳 니시오구에서 일어났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고도 경제 성장기에 지하수가 고갈되어 온천이 사라지면서, 그 번화함도 사라졌다.
현재의 오구 지역은 소규모 공장, 상점가, 주택이 혼재하여 밀집된 지역이며, 서민적인 분위기가 짙게 남아 있다. 도쿄 도내 유일의 도덴이 다니고 있으며, 도쿄도 교통국 아라카와 전차 영업소(아라카와 차고 앞 정류장)가 있다. 또한, 아라카와구가 운영하고 있는 유원지, 아라카와 유원이 있다.
3. 1. 연혁
1873년, 대구소구제에 따라 상오구촌, 하오구촌은 니쿠리무라, 야나카혼무라 등과 함께 제10대구 1소구가 되었다. 후나타무라는 스가모마치 등과 함께 제9대구 3소구가 되었다. 1878년 11월, 군구정촌편제법에 따라 기타토요시마군이 설치되었다. 그 후, 연합호장역장이 설치되어 상오구촌, 하오구촌은 오지무라와 3개 촌 연합이 되고, 후나타무라는 토요시마무라, 호리노우치무라와 3개 촌 연합이 되었다.
1889년 5월 1일, 시정촌제 시행에 따라 상오구촌, 하오구촌과 후나타무라의 일부가 합병되어 오구촌이 성립하였다. 1917년 8월, 촌청 청사를 신축하였다. 1923년 4월 1일, 정으로 승격하여 오구정이 되었다. 1926년 4월, 기타토요시마군청이 폐지되고 도쿄부 직할이 되었다.
1932년 10월 1일, 도쿄시에 편입되면서 오구정은 미나미센주정, 닛포리정, 미카와시마정과 합병하여 아라카와구가 되었다.
3. 2. 명칭 유래
오구정(尾久町)이라는 명칭은 1889년 시정촌제 시행으로 기타토시마군 미나미아다치군에 속했던 세 개의 촌, 즉 가미오구촌(上尾久村), 시모오구촌(下尾久村), 후나가타촌(船方村)이 합병되어 성립될 때, 이전의 촌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조합한 것이다. 각 촌에는 아자가 있었는데, 예를 들어 가미오구촌(上尾久村)에는 신다(神田), 기지마(鬼島), 후나가타마에(船方前) 등이 있었고, 시모오구촌(下尾久村)에는 히루다(蛭田), 코누마(小沼) 등이, 후나가타촌(船方村)에는 무코하타(向端), 코바시(小橋) 등의 아자가 있었다.
3. 3. 산업 발전과 쇠퇴
4. 행정
오구정의 행정 수장은 시장 또는 군수, 구청장이다. 1917년에는 오구보통고등소학교 안에 있던 오구정 청사를 신축했다. 오구정 청사에는 오구정농회, 오구정신용조합이 병설되었다.
5. 경제
5. 1. 산업
오구정은 상업과 공업이 발달하였으나, 농업은 감소 추세이다.상업은 오구 온천(尾久温泉) 발견으로 번성하였다.
공업은 증가 추세에 있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토지가 경작지였으며, 채소 생산이 활발하였으나, 경작지가 주택지, 공업지, 상업지로 전환되면서 농업은 감소하였다.[1]
오구의 지주로는 토다 쿠라노스케(戸田倉之助), 토다 리조(戸田利蔵), 토다 토라조(戸田寅蔵), 토다 하츠고로(戸田初五郎), 토다 몬자에몬(戸田紋左衛門) 등이 있었다.[1]
5. 2. 지주
6. 지역
6. 1. 교육
아라카와구립 오구 소학교는 과거 오구정에 있던 오구보통소학교였다. 아라카와구립 오구서소학교는 과거 오구정립 오구서보통소학교였다.7. 교통
7. 1. 철도
국철 (→ JR동일본) 도호쿠 본선 (우쓰노미야선)이 지나간다. 오구역은 정식 소재지가 다키노가와정이지만, 도호쿠 본선(우츠노미야 선)에 속해있다.오지 전기궤도(현·도덴 아라카와 선)의 후나가타마에 정류장 - 코다이 정류장 - 미야노마에 정류장 - 쿠마노마에 정류장 - 시모오구 정류장 구간이 오구정을 지난다. 오지 전기철도의 아라카와샤코마에 정류장이 있다.
7. 2. 도로
- 도쿄부비 지변도 아사카마도
- 도쿄부비 지변도 오구도
- 도쿄부비 지변도 다바타도
- 도쿄부비 지변도 니쿠리도
8. 명소 및 유적
8. 1. 신사
오구하치만 신사는 무라샤이다.8. 2. 사찰
- 화장원
- 보장원
- 석운사
8. 3. 유적
야마토 정권이 실시한 조리제의 흔적이다. “조리남도”라고 적힌 비석은 1887년경, 인문지리학자 오다우치 미츠토시가 도쿄부 사적 조사를 실시했을 때, 이 근처에 남아 있던 조리제의 유구 보존을 건의하여 세워졌다. 오구니시 초등학교 부근 일대에는 반전제에 의한 조리의 유적이라고 여겨지는 논 구획이 남아 있었다고 전해지며, 당시 시모오구무라나 마치야에도 이러한 전원 구획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아라카와 유역에는 많은 조리제 유구가 있었지만, 현재는 상류・중류에 약간 남아 있을 뿐이다. 조리제는 645년 이후 실시된 토지정리이며, 주로 평야나 분지 등의 평지에 보이기 때문에 조리가 있었다는 것은 나라 시대에는 이미 이곳이 평지였음을 알 수 있다.도쿄도립대학 아라카와 캠퍼스 부근은 옛날에 십삼방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신편무사풍토기고』의 기록에 따르면, 1.5m 높이, 지름 13~15m 정도의 塚이 총 12기 정도 있었던 것 같다. 십삼방이라는 지명은 고대의 조리제에 기반한 지명으로 보이며, 塚에서 칼이나 갑옷류가 출토되었다는 기사로부터 무기를 부장한 고분군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며, 아라카와 구보에서는 고분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