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옹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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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도는 옹진군에 속한 섬으로, 총면적 7.16km²이며 해안선 길이는 16.1km이다. 섬의 대부분은 완만한 구릉 지형이며, 서쪽에는 구봉산이 위치해 있다. 고려 시대 몽골의 침략을 피해 온 피난민들이 정착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금광 개발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한국 전쟁 중에도 피난민들이 섬에 정착했으며, 1992년 시도와 연도교로 연결되었다. 영종도와 페리 서비스가 운영되며, 자전거 여행객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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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는 고구려, 발해 등의 영토였으며 여진족 거주지였고,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조선 농민들이 이주하여 거주했으나 현재는 중국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영유권 분쟁은 중조변계조약으로 종식되었지만 두만강 위치와 '토문' 명칭 해석 차이로 한국 내 논쟁의 여지가 있다.
신도 (옹진군)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한국어) | 신도 |
이름 (한자) | 신도 (信島) |
로마자 표기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 Sindo |
면적 | 6.92km² |
최고점 | 구봉산 |
높이 | 180m |
![]() | |
지리 | |
위치 | 황해 |
위치 (좌표) | 37°32′N 126°27′E |
행정 구역 | |
국가 | 대한민국 |
광역시 | 인천광역시 |
군 | 옹진군 |
2. 지리
신도는 총면적 7.16km2, 해안선 길이 16.1km이다.[1] 섬 대부분은 완만한 구릉 지형이며, 서쪽에는 해발 178m의 구봉산이 있다.[1][2] 구봉산에는 영종도를 조망할 수 있는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다.[2]
2. 1. 자연 환경
섬의 대부분은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벼농사와 기타 작물 재배가 이루어진다. 어업도 이루어지지만, 농업이 섬의 주된 경제 활동이다.[1]2. 2. 인구 및 생활
2010년 기준으로 신도의 인구는 809명(남자 401명, 여자 408명)이었다. 신도의 취락은 주로 남쪽, 동쪽, 서쪽 해안에 형성되어 있다. 섬의 대부분은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으며, 일부는 벼농사 및 기타 작물 재배에 사용된다. 어업 또한 이루어지지만, 농업이 섬의 주요 경제 활동이라고 한다.[1]
3. 역사
1231년부터 1270년까지 고려 시대 몽골의 고려 침략 당시 강화도에서 온 피난민들이 신도에 정착했다.[1]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섬에서 금광 개발이 이루어졌고, 한국 전쟁 중에는 전쟁을 피해 온 피난민들이 섬에 정착했다.[1]
3. 1. 일제 강점기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동안 섬에서 금광 개발이 이루어지기도 했다.[1]3. 2. 한국 전쟁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 전쟁으로 인해 피난민들이 섬에 정착했다.[1]4. 교통
신도는 1992년에 건설된 시도와의 연도교로 연결되어 있다.[1] 영종도와 신도 사이에는 페리 서비스가 운영된다.[1][2] 자전거를 페리에 싣고 다리를 건너 다른 섬으로 이동할 수 있어, 자전거 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코스로 알려져 있다.[2]
참조
[1]
간행물
신도 (信島)
https://encykorea.ak[...]
Academy of Korean Studies
2024-06-15
[2]
웹사이트
예술 향기 가득한 인천 신시모도
https://korean.visit[...]
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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