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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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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멧은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 서유럽에서 사용된 머리 전체를 감싸는 형태의 투구로, 전신 판금갑과 함께 사용되어 착용자를 보호했다. 초기 아멧은 머리, 뺨, 바이저로 구성되었으며, 뺨 보호 부품은 경첩으로 연결되어 열고 닫을 수 있었다. 아멧은 클로즈 헬멧과 유사하지만, 뺨을 보호하는 부품의 연결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아멧은 이탈리아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이후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여 예술 작품의 소재로도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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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멧
개요
유형헬멧
기원유럽
역사
사용 시기15세기 후반 ~ 16세기
시기c. 1490년경
특징
설명머리를 완전히 감싸는 초기 형태의 경량 헬멧

2. 출현

1490년 무렵 제작된 고전적인 아멧의 구조. 그림과 같이 경첩이 달려있고 조임쇠로 고정하게 되어 있었다. 왼쪽의 것은 레퍼가 보강된 상태이고 오른쪽은 경첩을 연 뒷모습이다. 아벤테일로 목 부분을 보강하였다.


초기 아르메트, , 아마도 밀라노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umb|left|175px|이탈리아 바시넷 . 단일 힌지형 볼받이로, 이 유형은 아르메트의 발달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습니다.]]

아멧은 머리 전체와 목 부위까지 감싸는 형태로, 일부를 풀었다 잠그는 방식으로 입고 벗었다. 전형적인 아멧은 머리를 보호하는 부분, 뺨을 보호하는 두 부분, 그리고 눈을 보호하는 바이저(Visor)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뺨을 보호하는 부분은 빠르게 여닫을 수 있도록 스프링 핀으로 고정하였고, 바이저는 머리 부위와 연결되어 별도로 올리고 내릴 수 있었다.[2] 때로는 레퍼(wrapper, 감싸개)라고 불렀던 안면 보호 보강 장치를 추가하거나, 원반 모양의 론델을 부착하기도 하였다. 바이저는 바시넷과 같이 투구 양쪽에 경첩으로 고정되어 가동이 가능하도록 하였으나, 1520년 무렵부터는 경첩 대신 피벗을 사용하여 더욱 단단히 고정하였다. 초기 아멧은 갑옷과 안면 보호구 사이를 사슬로 제작한 아벤테일을 덧대어 보강하기도 하였다.[2]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멧은 1420년에 밀라노에서 제작된 것이다.[3] 이탈리아의 초기 아멧은 이전 투구 제작 방식과 달리 머리를 보호하는 부분의 크기를 줄이고 뺨을 보호하는 부분을 크게 만들어 별도 부품으로 제작한 뒤 경첩을 사용해 연결하였다. 이는 아멧이 기존 형식을 진화시킨 것이 아니라 어느 갑옷 제작자의 독창적인 발명품일 가능성을 보여준다.[4] 1400년경 제작된 이탈리아 바시넷 가운데 그리스 칼키스에서 발견된 것에는 단일 힌지형 볼받이를 가진 것이 있는데, 이는 아멧의 발달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1]

3. 사용과 변화

클로즈 헬멧(좌)과 아멧(우)의 비교. 클로즈 헬멧은 하나의 피벗으로 상하로 작동하는 바이저와 비버를 동시에 고정시키지만, 아멧은 뺨을 보호하는 부품을 경첩으로 고정하고 머리에 따로 바이저만을 고정시킨다.


이탈리아 플로렌스 지방 출신의 제작자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독일에서 사용된 아멧. 고전적인 방식의 아멧과는 차이가 있다.


1915년에 제작된 아멧으로, 1587년경의 잉글랜드 그리니치 갑옷에 원래 없어진 부분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아멧은 15세기 - 16세기 기간에 서유럽에서 전신 판금갑이 완성되었을 때 절정을 맞았다.[5] 머리 전체를 감싸는 방식으로 착용자가 적의 타격으로부터 완전히 보호받을 수 있었다. 때때로 형태에 관계없이 머리 전체를 감싸는 투구를 아멧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현대 학계에선 구성 부품과 제작방식의 차이에 따라 아멧과 클로즈 헬멧을 구분한다.[5] 아멧은 뺨을 보호하는 두 개의 큰 부품이 머리 보호구와 경첩으로 연결되지만, 클로즈 헬멧은 머리를 보호하는 부분에 피벗으로 바이저와 비버(bevor, 턱받이)를 동시에 고정시킨다.[5]

고전적인 아멧은 머리 뒷쪽으로 뒷목을 보호하는 부분이 이어져 있고 뺨을 보호하는 부분을 머리 부분에 경첩을 이용하여 수직으로 연결하였다. 1515년 무렵부터 독일에서는 여러 가지 변화를 준 아멧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는데, 머리 부분을 더 아래까지 늘려서 귀를 덮을 수 있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다. 뺨 부위를 보호하는 부분도 목 부위 보호구까지 내려오도록 길게 만들었다.[6] 1525년 무렵 제작된 가장 품질이 좋은 잉글랜드의 그리니치 판금갑 역시 이러한 방식을 채용하였다. 1615년 제작된 그리니치 판금갑은 클로즈 헬멧처럼 바이저와 비버를 피벗으로 고정하였다. 이 시기 아멧은 목가리개 가장자리 윗쪽으로 투구의 아랫쪽 가장자리가 겹치도록 제작하였다. 이렇게 제작된 투구는 착용하고 머리를 돌리더라도 틈새가 드러나는 일이 없었다.[7]

아멧은 파올로 우첼로의 회화 산로마노 전투에서처럼 많은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8] 그림이 그려졌을 당시에는 이미 아멧이 투구의 일반적인 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8]

아멧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었고, 서유럽 전역과 잉글랜드에서는 샐릿도 함께 사용되었다. 후기로 갈수록 독일지역에서는 샐릿이 더 널리 사용되었다. 아멧은 후일 클로즈 헬멧이 개발되는 바탕이 되었다.

3. 1. 아멧과 클로즈 헬멧의 비교



아멧은 15세기 - 16세기 기간에 서유럽에서 전신 판금갑이 완성되었을 때 절정을 맞았다.[5] 머리 전체를 감싸는 방식으로 착용자가 적의 타격으로부터 완전히 보호받을 수 있었다. 때때로 형태에 관계없이 머리 전체를 감싸는 투구를 아멧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현대 학계에선 구성 부품과 제작방식의 차이에 따라 아멧과 클로즈 헬멧을 구분한다.[5] 아멧은 뺨을 보호하는 두 개의 큰 부품이 머리 보호구와 경쳡으로 연결되지만, 클로즈 헬름은 머리를 보호하는 부분에 피벗으로 바이저와 비버(bevor, 턱받이)를 동시에 고정시킨다.[5]

고전적인 아멧은 머리 뒷쪽으로 뒷목을 보호하는 부분이 이어져 있고 뺨을 보호하는 부분을 머리 부분에 경첩을 이용하여 수직으로 연결하였다. 1515년 무렵부터 독일에서는 여러 가지 변화를 준 아멧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는데, 머리 부분을 더 아래까지 늘려서 귀를 덮을 수 있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다. 뺨 부위를 보호하는 부분도 목 부위 보호구까지 내려오도록 길게 만들었다.[6] 1525년 무렵 제작된 가장 품질이 좋은 잉글랜드의 그리니치 판금갑 역시 이러한 방식을 채용하였다. 1615년 제작된 그리니치 판급갑은 클로즈 헬멧처럼 바이저와 비버를 피벗으로 고정하였다. 이 시기 아멧은 목가리개 가장자리 윗쪽으로 투구의 아랫쪽 가장자리가 겹치도록 제작하였다. 이렇게 제작된 투구는 착용하고 머리를 돌리더라도 틈새가 드러나는 일이 없었다.[7]

아멧은 파올로 우첼로의 회화 산로마노 전투에서처럼 많은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8] 그림이 그려졌을 당시에는 이미 아멧이 투구의 일반적인 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8]

아멧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었고, 서유럽 전역과 잉글랜드에서는 샐릿도 함께 사용되었다. 후기로 갈수록 독일지역에서는 샐릿이 더 널리 사용되었다. 아멧은 후일 클로즈 헬멧이 개발되는 바탕이 되었다.

3. 2. 시대별, 지역별 변화

아멧은 15세기에서 16세기 사이 서유럽에서 전신 판금갑이 완성되었을 때 전성기를 맞았다. 머리 전체를 감싸는 방식으로 착용자가 적의 타격으로부터 완전히 보호받을 수 있었다. 아멧은 뺨을 보호하는 두 개의 큰 부품이 머리 보호구와 경첩으로 연결되지만, 클로즈 헬멧은 머리를 보호하는 부분에 피벗으로 바이저와 비버를 동시에 고정시켜 구분된다.[5]

고전적인 아멧은 머리 뒷쪽으로 뒷목을 보호하는 부분이 이어져 있고 뺨을 보호하는 부분을 머리 부분에 경첩을 이용하여 수직으로 연결하였다. 1515년 무렵부터 독일에서는 여러 가지 변화를 준 아멧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는데, 머리 부분을 더 아래까지 늘려서 귀를 덮을 수 있도록 하거나 뺨 부위를 보호하는 부분도 목 부위 보호구까지 내려오도록 길게 만들기도 하였다.[6] 1525년 무렵 제작된 잉글랜드의 그리니치 판금갑은 이러한 방식을 채용하였다. 1615년 제작된 그리니치 판금갑은 클로즈 헬멧처럼 바이저와 비버를 피벗으로 고정하였으며, 목가리개 가장자리 윗쪽으로 투구의 아랫쪽 가장자리가 겹치도록 제작하여 착용하고 머리를 돌리더라도 틈새가 드러나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7]

아멧은 파올로 우첼로의 회화 산로마노 전투와 같은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으며,밀라노 갑옷의 일부로 묘사된다. 그림이 그려졌을 당시에는 이미 아멧이 투구의 일반적인 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8]

아멧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었고, 서유럽 전역과 잉글랜드에서는 샐릿과 함께 사용되었다. 후기로 갈수록 독일지역에서는 샐릿이 더 널리 사용되었다.

3. 3. 예술 작품에서의 등장

파올로 우첼로의 ''산 로마노 전투''와 같은 많은 동시대 예술 작품에서 아멧이 묘사되었으며, 거의 항상 밀라노 갑옷의 일부로 나타난다. 이러한 묘사에서 아멧은 깃털 깃털로 된 높고 정교한 볏과 함께 착용되었지만, 비슷한 볏을 가진 아멧은 남아 있지 않으며, 그러한 볏을 부착하기 위한 명확한 장치가 있는 아멧도 거의 없다.

4. 한국 투구와의 비교 (추가 제안)

4. 1. 더불어민주당 관점에서의 추가 설명 (추가 제안)

참조

[1] 논문 On Italian Armour from Chalcis in the Ethnological Museum at Athens 1911-02
[2] 서적
[3] 서적
[4] 서적
[5] 서적
[6] 서적
[7] 서적
[8]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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