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타정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아부타정은 이부리 지청 서부에 위치하며, 우치우라만 북쪽 해안에 자리 잡고 있던 지역이다. 도야호 온천을 중심으로 관광 산업이 발달했으며, 2006년 도야촌과 합병하여 도야코정이 되었다. 지리적으로는 도야호 칼데라 벽과 해안선을 따라 험준한 지형을 이루며, 도오 자동차도, 국도 37호선, JR 무로란 본선 등이 지나 중요한 교통 거점 역할을 했다. 역사적으로는 조몬 시대부터 취락이 있었으며, 마쓰마에 번의 지배를 받으며 에조지와 말을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우스산의 분화로 여러 차례 피해를 입었으나, 온천 개발과 관광 산업 발전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아부타군 - 도야촌 (홋카이도)
도야촌은 홋카이도 시코쓰도야 국립공원 지역의 과거 촌으로, 도야호 북쪽 기슭에 위치하며 농업과 온천 관광을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1977년 우스산 분화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 도야코정 - 도야호
도야호는 홋카이도 남서부에 위치한, 약 10만 년 전 화산 폭발로 형성된 칼데라 호수로, 나카시마 섬이 있는 아름다운 경관과 주변의 화산, 온천, 그리고 지질학적 가치로 인정받는 관광지이다. - 도야코정 - 우스산
우스산은 홋카이도 도야호 남쪽 기슭에 위치한 활화산으로, 아이누어에서 유래한 이름과 절구 모양의 칼데라 지형을 가지고 있으며, 1663년부터 주기적인 분화 활동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 이부리 관내 - 이부리 종합진흥국
이부리 종합진흥국은 홋카이도 남중부에 위치하며 4개의 시와 7개의 정으로 구성되어 있고, 1897년 무로란 지청으로 시작하여 개편되었으며, 2018년 홋카이도 이부리 동부 지진이 발생한 지역이다. - 이부리 관내 - 아부타군
아부타 군은 1869년 홋카이도에 설치되어 이부리국에 속했던 군으로, 여러 소속 변경과 촌락 분합을 거쳐 2006년 도야코정 신설 및 G8 정상회의 개최를 통해 국제적 주목을 받았으며 현재는 이부리 및 시리베시 종합진흥국 관할 하에 자연경관과 관광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아부타정 - [지명]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 | |
![]() | |
공식 명칭 | 虻田町 (아부타초) |
유형 | 읍 |
소멸 | 도야코에 합병됨 |
소멸일 | 2006년 3월 27일 |
폐지 사유 | 신설 합병 (아부타정、도야촌 → 도야코정) |
현재 자치체 | 도야코정 |
면적 | 66.85 km2 |
인구 | 7,811 (2004년) |
인구 밀도 | 116.84/km2 |
시간대 | JST |
UTC 오프셋 | +09:00 |
우편 번호 | 049-5692 |
시청 주소 | 홋카이도 아부타군 아부타초 사카에마치 58 |
웹사이트 | 보존된 웹사이트 |
상징 | |
나무 | 차조팝나무 |
꽃 | 제비꽃 |
정치 | |
시장 | (정보 없음) |
행정 구역 코드 | |
코드 | 01572-5 |
폐지 당시 정보 | |
소속 | 홋카이도, 이부리 지청, 아부타군 |
인구 (2005년 12월 말) | 9325명 |
인접 자치체 | 다테시, 소베쓰초, 도야촌, 도요우라초 |
2. 지리
이부리 지청 서부에 위치하며, 우치우라만 북쪽 해안에 자리한다. 나가만부와 무로란의 중간쯤에 있으며, 이들을 연결하는 도오 자동차도, 국도 37호선, JR 무로란 본선 등이 해안을 따라 지나간다. 또한, 삿포로에서 나카야마 고개를 넘어가는 나카야마 국도(국도 230호선 일부)의 종점이기도 하여 중요한 교통 거점이 되고 있다.
아부타정 서부는 도야호의 칼데라 벽에서 이어지는 경사면이 바다로 뻗어 해식애를 이루는 등 지형이 험준하다. 이 때문에 이곳을 지나는 도로와 철도는 많은 터널을 통과한다.
남부는 아카가와와 이타야가와 강이 만들어낸 평지로, 모래사장이 펼쳐진 해안이 있다. 도야역과 관공서가 있는 사카에정은 이 평지의 북서부, 아카가와 강 우안에 있다. 아부타정 남쪽 끝에서 다테시 우스정까지는 분화만에서는 보기 드문 복잡한 해안선이 나타난다. 이는 약 7,000년 전 우스산의 폭발로 인한 분출물이 바다로 솟아오르면서 만들어진 지형으로, 곶 모양으로 튀어나온 부분의 그늘에 아부타 어항이 만들어졌다.
북동부의 도야호에 접한 지역과는 가파른 칼데라벽이 있고, 이곳을 넘어가는 국도 230호선은 크게 굽이치며 호숫가로 내려간다. 호숫가 남쪽의 도야호 온천은 1910년 우스산의 화산 활동 이후 발견된 온천으로, 대형 호텔이 많이 있다. 서쪽 기슭의 츠키우라 지구, 그 서쪽 고지대에 있는 하나와 지구, 그리고 인접한 도야촌·토요우라정에는 목장이 곳곳에 있다.
도야호는 도야 칼데라 안에 생긴 거의 원형의 호수로, 중앙에 있는 나카지마의 최고점을 중심으로 아부타정, 도야촌, 소베츠정으로 삼분되어 있다. 아부타정의 영역은 남서쪽의 4분의 1이 조금 못 미치는 벤텐섬 전역과 나카지마, 관음도의 일부를 포함하는 부분이다. 도야호는 바다와 가까운 거리에 비해 호수 표고가 약 84m로 높다. 이 때문에 중심 시가지에 가까운 아오바마치까지 도수관을 설치해 고저차를 이용한 수력 발전(출력 19500kW)이 이루어지고 있다.
기후는 해양성 기후로 겨울에도 따뜻하고 적설량이 적다.
- '''산:''' 코우스 (557m), 삼각산 (310m)
- '''하천:''' 이타야가와 (2급 하천), 토코탄가와 (준용 하천), 아카가와, 이리에가와, 호로나이가와, 코하나이가와
- '''호수:''' 도야호
3. 역사
아부타정의 역사는 선사 시대부터 시작된다. 남부 이리에 지구의 고지대에는 이리에 조개 무덤·다카스나 조개 무덤(국가 사적)이 있어, 조몬 시대부터 이 지역에 취락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조개 무덤에서는 조개는 적게 나오고, 해수와 물고기 뼈가 많이 출토되었다. 또한, 매장된 것으로 보이는 인골도 많이 발견되었다.[1]
"아부타(虻田)"라는 지명은 1704년(호에이 원년) 순회 승려 쇼코 큐넨의 기록에 "아후타"로 나타난다. 큐넨은 "아부타 마을 어른"(아부타 집락의 장)으로 "야이렌가"라는 인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른 사료에서는 하코다테시 중앙 도서관 소장 『마쓰마에 에조도(松前蝦夷図)』에 "아후타", 1727년(교호 12년)에 성립된 『마쓰마에 서동 재향 및 에조지 소부(松前西東在郷並蝦夷地所附)』에는 "아후타", 1739년경(겐분 4년경)에 성립된 『에조 상거 문서(蝦夷商賈聞書)』에는 "아부타"로 기록되어 있다.
쓰가루 번의 정사인 『쓰가루 일통지(津軽一統志)』에 따르면, 샤쿠샤인이 봉기한 1669년(간분 9년)에 아부타는 옛 이름인 "오코타라헤"로 기록되어 있다. 다음 해에 쓰가루 번사 노리타 야스에몬이 기록한 『간분 10년 적기 집서(寛文拾年狄蜂起集書)』에는 14~15채의 아이누 가옥이 있었다고 한다.
마쓰마에 번의 지배 하에 들어간 아부타에는 아부타 장소가 설치되었다. "장소"란 마쓰마에 번이 가신에게 아이누와의 교역권을 부여한 곳이다. 아부타 장소에는 레분게, 오프케시, 벤베, 후레나이의 각 코탄이 있었으며, 아부타는 이들 지역의 중심 취락이었다. 아부타 장소에서 거래된 해산물에는 다시마, 청어, 말린 연어, 이리코(말린 해삼) 등이 있었다. 특히 이리코는 에도 말기에 중국으로 수출되었으며, 에조산은 맛이 좋다고 귀하게 여겨졌다.
일본인이 아부타에 정주하게 된 것은 1799년(간세이 11년) 막부가 에조지를 가직할(가설 직할)로 한 이후이다. 에조 봉행의 토가와 야스론이 에조산 말의 성질이 좋다는 것을 알고, 이를 늘리기 위한 직할 목장 개설을 막부에 건의하여 우스·아부타 목장이 이 지역에 건설되었다. 암말 9마리와 수말 3마리로 개장한 것은 1805년(분카 2년)이다(이때 세워진 마두 관음비가 이리우에 지구에 현존하고 있으며, 도 지정 유형 문화재가 되었다). 이 목장의 목사 두취가 되는 무라타 우고로는 1800년(간세이 12년)에 아부타에서 정주를 시작하였으며, 아부타정에서는 이 해를 개기로 하고 있다. 에조지에서는 말이 매우 중요한 이동 수단이었기 때문에, 우스·아부타 목장은 에조지 각지에 말을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번식과 매입을 통해 개장 4년 만인 1809년에는 말이 147마리로 늘었다. 나중에는 4곳에 목장을 두고 말의 수는 1000마리를 넘게 된다.
1822년(분세이 5년) 우스 산이 분화했다. 화산쇄설류를 동반하는 대규모 분화로, 기슭의 아부타는 잿더미가 되었다. 무라타 우고로와 장소 청부인 와다야 시게에, 그리고 많은 아이누인이 희생되었다. 현재의 이리우에 지구에 있던 아부타는 "토코탄", 즉 폐촌으로 처리되어 아부타 시가지 쪽으로 이주해야 했다. 우스·아부타 목장도 2,500마리 가까이 늘었던 말 중 1,400마리 이상을 잃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남은 말로 인해 목장은 존속되었고, 1870년(메이지 3년)까지 말의 공급과 개량을 실시했다.
메이지 시대에 에조지는 개척사의 관할 하에 홋카이도라고 이름을 바꾸었지만, 초창기에는 일부 지역을 구 번이나 사찰 등에 분령 지배하게 했다. 아부타는 1869년부터 약 1년간 쇼나이 번(개칭하여 오이즈미 번)의 지배 하에 들어갔고, 1871년에는 다테 이남을 지배하던 구 와타리 번(센다이 번의 지번) 번주 다테 도고로 구니나리의 영지가 되었다. 이듬해에 겨우 개척사 무로란 출장소의 관할 하에 놓여, 니시몬베쓰 호장역장에 속했다. 1880년에 아부타에 아부타 군 각 촌 호장역장이 설치되고, 니시몬베쓰 호장역장으로부터 분리 독립했다.
당시의 아부타 마을은 현재의 아부타 군 전체에 해당하는 넓은 지역이었지만, 메이지 30년 전후부터 요테이산 기슭에서 개척으로 인해 취락이 생기면서, 이것들을 서서히 분촌하게 된다. 이 무렵의 아부타 시가지는 내륙부에 이주하는 개척자들의 중계지로서, 또는 개척에 필요한 물자의 집산지로서 급속한 발전을 했다.
마을 동쪽에 솟아 있는 우스 산은 일본에서 가장 활발한 화산 중 하나이며, 최근에는 25년부터 50년 주기로 대규모 분화를 반복하고 있다. 그 지근에 있는 아부타는 여러 번 분화로 인한 피해를 입어 왔다. 에도 시대에는 1822년의 분세이 분화 외에도, 1663년(간분 3년), 1769년(메이와 6년), 1853년(가에이 6년)에 화산쇄설류를 동반하는 분화 활동이 있었고, 그 때마다 사상자가 발생했다. 1910년(메이지 43년) 분화에서는 증기 폭발과 이류가 발생하여 사망자가 발생했다. 아부타정과 소베쓰정의 경계에서는 지각 변동이 일어나 요소미(사십삼)산(쇼와 신산의 형성 후에는, "메이지 신산"이라는 이름도 정착했다)이 형성되었다. 큰 피해를 낳은 이 분화였지만, 도야 호반에 온천을 솟아나게 하여, 아부타 발전의 계기를 만들게 된다.
1977년의 활동에서는 산기슭에 홋카이도 대학 우스 화산 관측소가 개설되어, 이후 우스산의 화산 활동에 관한 많은 데이터를 수집해 갔다. 이 성과가 나타난 것이 2000년 분화이다. 3월 31일 13시 10분, 우스산 서쪽 기슭에서 대규모 마그마 수증기 폭발이 발생하여 경석을 동반하는 화산재를 분출, 분연은 고도 3,200m에 달했다. 그 후에도 새로운 분화구를 형성하면서 폭발을 반복했다. 그러나 3월 27일부터 군발 지진이 발생하고 있었던 시점에서 우스 화산 관측소 등에 의해 며칠 내의 분화가 예지되었고, 29일까지 대부분의 주민의 피난이 끝나 있었기 때문에 사상자는 0명이었다. 분화 시기·분화 장소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정확한 예지가 이루어진 예는 드물다. 하지만 이 분화로 아부타정은 큰 피해를 입었다. 분화구에 가까운 도야코 온천 마을을 중심으로 분석과 지각 변동의 피해를 입었다. 갈라짐은 해안에 가까운 중심 시가지에까지 이르러, 도로와 철도도 끊어졌다. 전 마을에 걸쳐 피난 지시가 내려졌기 때문에, 역장의 기능도 인접한 도요우라정에 잠시 이전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같은 해 7월에는, 우스산으로부터의 공진음이 울리는 가운데 도야코 온천의 영업이 일부 재개되는 등, 복구는 비교적 빨랐다. 분화구를 견학하는 산책로가 설치되는 등, 오히려 분화를 관광에 활용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도야코 온천은 1910년 우스산 분화의 영향으로 1917년 6월에 발견되었다. 소베쓰정의 미마쓰 마사오, 스기야마 하루미, 안자이 이와키치 일행이 아부타 광산 견학의 귀로, 니시마루산 근처의 호반에서 김이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굴착해 본 결과 열수가 뿜어져 나왔다. 미마쓰 등은 다음 달에 도청으로부터 이용 허가를 받아, 가을에는 료코칸이라는 온천 숙소를 시작했으며, 이것이 도야 호의 온천 여관 제1호가 된다. 1928년에 국철 나가와 선(현재의 무로란 본선)이 전 노선 개통, 다음 해 아부타역(현재의 도야역)과 도야 호반 사이에 도야코 전기 철도가 개통(1941년에 폐지)되자, 도야코 온천은 많은 숙소가 늘어선 온천가가 되었다. 세계 대공황 시기였지만, 온천의 발전은 이것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1944년 우스산의 활동으로 출현한 쇼와 신산은,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새로운 관광지가 되었다. 1949년에는 일대가 시코쓰 도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도야"의 지명도가 높아진 것도 있어, 도야코 온천은 더욱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게 된다. 아부타는 전후의 불황기를 온천에 의해 구원받게 되었다. 1982년부터는 연일 밤마다 불꽃을 쏘아 올리는 롱런 불꽃놀이가 시작되어 온천의 새로운 명물이 되었다.
아부타정의 연혁은 다음과 같다.
연도 | 내용 |
---|---|
1880년 | 아부타 촌에 아부타 군 각 촌 호장 역장을 설치. 아부타 촌·후리마오이 촌·벤베 촌·레분 촌을 관할. |
1882년 | 후리마오이 촌을 병합. |
1893년 | 쿠 챠안 촌 (현재의 굿찬정, 쿄고쿠정)을 분촌. |
1897년 | 마카리 촌 (현재의 마카리 촌, 루스츠 촌, 니세코정, 키모베츠정)을 분촌. |
1902년 | 아부타 촌·벤베 촌 조합 역장 설치. 2급 정촌제 시행. |
1909년 | 벤베 촌 (현재의 토요우라정)을 분리하여 아부타 촌 역장을 설치. |
1920년 | 토야 촌을 분촌. |
1938년 | 4월 1일 1급 정촌제 시행. |
1938년 10월 1일 | 정제 시행하여 아부타 정이 됨. |
2006년 3월 27일 | 아부타 정과 토야 촌이 신설 합병하여, 도야코정이 성립. 이로 인해 아부타 정은 폐지. |
역대 호장, 촌장, 정장은 다음과 같다.
구분 | 이름 | 재임 기간 |
---|---|---|
호장 | 사세 사이츄 | 1880년 3월 18일 - 1889년 2월 16일 |
야마오카 마사나카 | 1889년 2월 16일 - 1890년 | |
아사바 마사미지 | 1890년 4월 - 1891년 11월 25일 | |
이구치 마사미치 | 1891년 12월 2일 - 1892년 11월 15일 | |
이토 타츠 | 1892년 11월 19일 - 1896년 | |
아이노시타 노부치카 | 1896년 - 1898년 9월 15일 | |
사토 기시치로 | 1898년 9월 15일 - 1900년 7월 11일 | |
무라타 쿠라노스케 | 1900년 7월 3일 - 1900년 10월 31일 | |
테다이기 시게아츠 | 1900년 11월 - 1901년 3월 31일 | |
촌장 | 테다이기 시게아츠 | 1901년 4월 1일 - 1904년 2월 29일 |
오노 이시스케 | 1904년 2월 29일 - 1904년 5월 28일 | |
아베 유테이 | 1904년 7월 25일 - 1906년 12월 8일 | |
타케이 토모아키 | 1906년 12월 8일, 취임하지 않음 | |
시가 겐지 | 1906년 12월 - 1910년 4월 1일 | |
수사미 마사루 | 1910년 4월 1일 - 1911년 9월 19일 | |
하야사카 요모키치 | 1911년 9월 19일 - 1914년 5월 29일 | |
타카하시 키치지 | 1914년 5월 29일 - 1916년 2월 22일 | |
모리야 슈이치로 | 1916년 2월 22일 - 1921년 8월 16일 | |
시미즈 헤이고로 | 1921년 10월 4일 - 1923년 10월 30일 | |
타카다 켄고 | 1923년 12월 11일 - 1925년 12월 2일 | |
미즈노 히로유키 | 1925년 12월 15일 - 1930년 5월 15일 | |
카와무라 토라오 | 1930년 6월 6일 - 1933년 4월 17일 | |
쿠와바라 세이노스케 | 1933년 4월 26일, 취임하지 않음 | |
정장 | 나스 카이치 | 1933년 5월 8일 - 1946년 11월 7일 |
쿠로키 타케카즈 | 1947년 4월 5일 - 1954년 12월 12일 | |
나스 카이치 | 1954년 12월 12일 - 1962년 5월 17일 | |
토키와 시로 | 1962년 6월 18일 - 1966년 6월 16일 | |
요코야마 츠토무 | 1966년 6월 17일 - 1974년 6월 16일 | |
오카무라 쇼키치 | 1974년 6월 17일 - 1998년 6월 17일 | |
나가사키 요시오 | 1998년 6월 17일 - 2006년 3월 27일 |
3. 1. 선사 시대
이리우에 조개 무덤·다카스나 조개 무덤(국가 사적)이 남부에 있으며, 조몬 시대부터 이 지역에 취락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1] 이 조개 무덤에는 조개가 적고, 해수(海獣)나 물고기의 뼈가 많이 출토된다.[1] 또한 매장된 것으로 보이는 인골도 많이 발견되었다.[1]3. 2. 아이누 시대
제공된 원본 소스에는 '아부타정'의 '아이누 시대'에 관한 내용이 없기 때문에, 해당 섹션은 작성할 수 없습니다. 이전 답변과 동일하게, 소스에 없는 내용은 추가할 수 없습니다.3. 3. 일본인 정착과 우스·아부타 목장
인접한 도요우라정, 도야촌과 법정 합병 협의회를 설치하여 주요 협의를 마쳤으나, 2005년 2월에 실시된 주민 투표에서 합병 반대가 많았던 도요우라정이 탈퇴했다. 이를 받아들여 아부타정, 도야촌 두 촌에서의 합병을 목표로 2005년 3월 합병 협정서에 조인, 각 촌 의회에서의 의결, 지사에게의 신청도 마쳤다. 합병 기일은 2006년 3월 27일이며, 신정(新町) 명칭은 도야코정이 된다.3. 4. 우스 산 분화와 피해
우스 산과 가까운 곳에 있는 도야호 온천은 1977년, 2000년 분화로 물리적 피해뿐만 아니라 관광객 감소로 인한 영업적 피해도 컸지만, 도야호 온천의 인기는 식지 않고 아부타정의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1] 1982년부터는 연일 밤마다 불꽃을 쏘아 올리는 롱런 불꽃놀이가 시작되어 온천의 새로운 명물이 되었다.[1]3. 5. 도야코 온천의 발전
1982년부터 연일 밤마다 불꽃을 쏘아 올리는 롱런 불꽃놀이가 시작되어 온천의 새로운 명물이 되었다. 유주산과 가까워 1977년, 2000년 분화로 물리적 피해뿐만 아니라 관광객 감소로 인한 영업적 피해도 컸지만, 도야코 온천의 인기는 식지 않고 아부타정의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3. 6. 아부타정과 도야촌의 합병
2006년 3월 27일 아부타정과 도야촌이 신설합병해 도야코정이 성립되었고, 이를 통해 아부타정은 폐지되었다.[1]4. 인구
연도 | 인구 |
---|---|
1925년 | 3,852명 |
1930년 | 4,664명 |
1935년 | 5,280명 |
1940년 | 6,024명 |
1947년 | 8,427명 |
1950년 | 9,065명 |
1955년 | 9,966명 |
1960년 | 11,248명 |
1965년 | 12,834명 |
1970년 | 13,292명 |
1975년 | 12,899명 |
1980년 | 11,915명 |
1985년 | 11,445명 |
1990년 | 10,699명 |
1995년 | 10,536명 |
2000년 | 8,352명 |
5. 경제
2000년 국세조사에 따르면 산업별 인구 비율은 제1차 산업 8.1%, 제2차 산업 23.0%, 제3차 산업 68.8%로, 제3차 산업의 비율이 높은 도시형 산업 구성으로 되어 있다. 특히 도야호 온천을 중심으로 한 관광 관련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커서 서비스업 및 소매업 종사자가 많다.
; 농림수산업
아부타정의 농업은 낙농, 축산, 채소, 화훼, 벼농사, 고구마류 등 생산물이 다채로우나 총 생산액은 작다. 임업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업은 아부타 어항에서 가리비, 연어, 대구 등이 어획된다. 도야호에서의 어업은 매우 소규모이다.
; 광업
아부타 광산은 갈철광의 광산으로, 1892년 구로다 유키치에 의해 발견되어 1905년에 채굴이 시작되었다. 그 광석은 무로란시의 제철소로 공급되었으나, 1947년에 휴광되었다. 1955년에 새롭게 황철광의 광상이 발견되어 재개되었으나, 1971년에 매장량 감소와 품질 저하로 인해 폐광되었다.
; 공업
공업 생산은 그 대부분이 식료품 제조업에 의한 것이다. 화학, 금속, 기계 등의 중공업은 보이지 않는다. 메이지 시대 후반부터 아마 제선, 다시마를 원료로 한 요오드 제조 등의 공장이 있었으나, 모두 1960년대까지 사라졌다.
6. 자매 도시
7. 교통
가장 가까운 공항은 신치토세 공항(지토세시, 도마코마이시)이다. 도오 자동차도 이용 시 약 110km, JR 특급 열차 이용 시 약 1시간 30분 거리이다. 홋카이도 여객철도 무로란 본선 도야 역에서 특급 열차를 이용할 수 있으며, 삿포로 역과 하코다테 역에서 약 1시간 30분 소요된다. 도야 역에서 도야 호 온천가까지는 도난 버스로 약 20분 걸린다.
도오 자동차도 아부타 도야호 나들목이 있으며, 삿포로 나들목에서 약 140km 떨어져 있다. 국도 37호선은 오샤만베정에서 약 45km, 무로란시에서 약 35km 거리에, 국도 230호선은 삿포로시에서 약 95km 거리에 있다. 홋카이도도 2호 도야호 노보리베츠 선, 홋카이도도 285호 도요우라 도야 선, 홋카이도도 578호 도야 아부타 선이 있다. 길의 역으로는 아푸타(이리에 지구)가 있다.
도야호 기선의 관광 유람선이 도야호 온천가와 나카지마를 잇고 있다.
7. 1. 철도
삿포로 역과 하코다테 역을 잇는 특급 열차가 도야 역에 정차하며, 두 역에서 모두 약 1시간 30분 소요된다. 도야 역에서 도야 호 온천가까지는 버스로 약 20분 걸린다.
7. 2. 도로
- 국도 37호선
- 국도 230호선
'''고속도로'''
- 도오 자동차도: 아부타 도야호 나들목
- 삿포로 나들목에서 약 140km
'''일반 국도'''
'''홋카이도도'''
- 홋카이도도 2호 도야호 노보리베츠 선
- 홋카이도도 285호 도요우라 도야 선
- 홋카이도도 578호 도야 아부타 선
'''길의 역'''
- 아푸타(이리에 지구)
7. 3. 버스
도난 버스7. 4. 공항
신치토세 공항 (지토세시, 도마코마이시)이 가장 가깝다. 도오 자동차도를 이용하면 약 110km이고, JR 특급 열차를 이용하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7. 5. 항만
도야호 기선의 관광 유람선이 도야호 온천과 나카지마를 잇고 있다.8. 관광
아부타정의 주요 관광 명소로는 도야호 온천, 화산과학관, 니시야마 분화구 산책로, 도야호 숲 박물관, 이리에 조개 무덤 공원, 도야호 빙 둘러 조각 공원 등이 있다. 니시야마 분화구 산책로에서는 2000년 우스산 분화로 생긴 새로운 분화구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주요 행사로는 도야호 롱런 불꽃놀이 대회와 도야호 마라톤이 있다. 도야호 롱런 불꽃놀이 대회는 4월 28일부터 10월 31일까지 매일 밤 도야호 온천가 근처 호수 위에서 열린다.
8. 1. 명소 및 고적
- 도야호 온천
- 화산과학관(도야호 온천마을 지구)
- 니시야마 분화구 산책로(이즈미 지구): 전망대에서는 2000년 우스산 분화로 생긴 새로운 분화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 도야호 숲 박물관(나카지마)
- 이리에 조개 무덤 공원(이리에 지구)
- 도야호 빙 둘러 조각 공원(소베츠정·도야촌에 걸쳐 있는 도야호 호반)
8. 2. 행사
9. 출신 인물
- 히라야마 코야(아크릴 장식, 야엔의 보컬, 도야코 온천 관광 친선 대사 역임)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