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태평양 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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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시아 태평양 박람회는 1989년 후쿠오카 시 시제 시행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국제 박람회이다. 후쿠오카시 모모치 지구와 지코 지구에 걸쳐 43개의 전시관이 설치되었으며, 후쿠오카 타워, 후쿠오카 시립 박물관 등 주요 시설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박람회는 심볼 마크와 마스코트 타이헤이군과 요코짱을 사용했으며, 다양한 문화 공연과 해상 이벤트를 진행했다. 박람회 부지는 '시사이드 모모치'로 재개발되었고, 박람회 기부금을 바탕으로 국제 교류 사업을 위한 '요카토피아 기념 국제 재단'이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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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후쿠오카현에 설치되었으나 1975년 후쿠오카시에 편입되어 폐지된 사와라정은 현재 후쿠오카시 사와라구 일부 지역에 해당하며, 과거에는 다양한 교통망을 갖춘 지역이었다.
아시아 태평양 박람회 | |
---|---|
지도 | |
기본 정보 | |
이벤트 명칭 | 아시아 태평양 박람회 |
영문 표기 | ASIAN-PACIFIC EXPOSITION:FUKUOKA'89 |
종류 | 지방 박람회 |
![]() | |
통칭 | 요카토피아 아시아 박람회 |
정식 명칭 | 아시아 태평양 박람회 - 후쿠오카'89 |
개최 시기 | 1989년 3월 17일 - 9월 3일 |
회장 | 후쿠오카시 주오구 지교하마, 사와라구 모모치하마 |
주최 | 재단법인 아시아 태평양 박람회 협회 |
출전 수 | 1,095 |
방문객 수 | 8,229,399명 (목표 700만 명) |
가장 가까운 역 | 후쿠오카시 교통국도진마치역 니시진역 후지사키역 |
기타 | |
관련 정보 |
2. 개최 배경
1989년 후쿠오카시 시제 시행 100주년을 기념하여 아시아 태평양 박람회 개최가 결정되었다. 1984년 후쿠오카 시장의 공약으로 시작되어, 시의회에서 박람회 촉진 결의안 가결[2] 및 후쿠오카시 경제국 내 준비실 설치를 통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2] 1985년에는 후쿠오카 국제박람회 개최 실행위원회가 발족되었고,[2] 박람회 개최 장소로 하카타만 서부 매립지 모모치 지구가 결정되었으며,[2] 테마 위원회가 발족되는[2] 등 준비 과정을 거쳤다.
개최 배경 연혁은 다음과 같다.[2]
연도 | 내용 |
---|---|
1984년 | |
1985년 |
3. 기본 이념 및 주제
4. 상징물
심볼 마크는 하나다 칸지(花田寛治)가 디자인했다. 지구, 사람들 간의 교류 및 만남 등 근원적인 연결을 나타내는 타원형 안에, 환태평양·아시아태평양의 강력한 파도, 하카타만의 지형 등 다양한 이미지를 담은 곡선과 점의 모티브를 넣어 아시아태평양을 시작으로 세계에 열린 미래에 대한 큰 가능성을 강조한 것이다.
마스코트는 '타이헤이군'과 '요코짱'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가 데즈카 오사무가 디자인했다. 마오리족을 소재로, 카누 "아시아호"를 탄 소년 "타이헤이군"과 소녀 "요코짱"이 다양한 만남을 찾아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규슈로 다가오는 이미지를 표현했고, 요코짱의 머리에는 후쿠오카시의 꽃인 부용을 장식했다. 그러나 데즈카 오사무는 박람회 개막 전에 사망하였다.[1]
4. 1. 마스코트 관련 논란
테즈카 오사무가 '''타이헤이군'''과 '''요코짱'''을 디자인하여 박람회 마스코트로 사용되었으나, 데즈카 오사무는 박람회 개막 전에 사망하였다.[1]5. 주요 시설
아시아 태평양 박람회에는 일본 33개, 외국 10개로 총 43개의 전시관이 설치되었다.[1] 후쿠오카 타워(福岡タワー), 후쿠오카시 박물관(福岡市博物館), 세이부가스 뮤지엄 등은 박람회 이후에도 계속 운영되고 있다.[1]
'아시아 태평양 존'은 일본과 아시아 태평양을 잇는 공간으로, 야외 전시 시설과 해외 파빌리온이 배치되었다.
5. 1. 가이드웨이 버스
일본 최초의 가이드웨이 버스인 '듀엣호(デュエット号)'가 운행되었다. 박람회 협회가 궤도 사업자였으며, 전시장 내 주요 지점(동쪽 게이트 - 플레이랜드)을 연결했다. 전후 간격 확인을 위해 운전사가 탑승하는 형태의 자동 운전 시스템이 도입되었다.[5] 8월 말 승객 대상 설문조사에서 7%가 자동 운전에 대한 불안을 응답했으나, 대부분은 승차감, 짧은 대기 시간, 전망에 만족했다는 분석이 있다. 이용객 수는 가이드웨이 버스 정류장에서 먼 남쪽 게이트 이용객이 많았던 점과 홍보 부족으로 인해 당초 예상을 밑돌았다.[6]자세한 운행 정보는 다음과 같다.
- 운행 구간: 동쪽 게이트 - 파빌리온 동쪽 - 파빌리온 서쪽 - 플레이랜드 (왕복 운행, 약 840m)
- 운행 간격: 평일 5분 간격, 토·일·공휴일 약 4분 간격
- 운영 시간:
- 통상: 9:30 - 18:00
- 5월 3-4일, 6월 토요일, 7월 1일-9월 2일: 9:30 - 21:00[6]
- 시설 참가: 서일본철도, 가이드웨이 버스 공동 실험 연구회
- 차량: 37인승 4대 (후면 극장 형식, 가이드웨이 버스 소개 비디오 상영)
- 총 주행 거리: 약 38,000km (1일 평균 약 200km)
- 총 이용객 수: 약 88만 명
- 총 운행 시간: 1663.5시간[6]
6. 주요 행사
- 리조트 시어터: 개막식, 폐막식, 뮤지컬, 콘서트, 국제 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나츠키 마리(夏木マリ) 주연의 뮤지컬, 카와이 나호코(河合奈保子)의 콘서트, 미나미 코세츠(南こうせつ)의 라이브 공연, 성룡(ジャッキー・チェン) 쇼 등이 열렸다.[2]
- 에스닉 퍼포먼스 플라자: 각국의 민속 공연, 텔레비전 공개 방송 등이 진행되었다. 국립 스리랑카 무용단의 공연, RKB매일방송(RKB毎日放送)의 텔레비전 공개 방송 등이 있었다.[2]
- 시민 플라자 오픈 스테이지: 규슈 아사히 방송(九州朝日放送)의 KBC 라디오(KBCラジオ) 공개 방송, 이케나미 시노(池波志乃) 사인회 등이 진행되었다.[2]
- 해안·해상 이벤트: 요트 레이스, 불꽃놀이, 해수욕장 개방 등이 진행되었다. 오클랜드-후쿠오카 요트 레이스, 불꽃놀이 대회 등이 열렸다.[2]
- 카니발 애비뉴: 낮과 밤에 퍼레이드가 진행되었고, 하카타 기온 야마카사(博多祇園山笠)도 열렸다.[2]
7. 교통
- '''대중교통:'''
- * 니시테쓰는 후쿠오카 공항, 하카타역 교통센터, 후쿠오카역 덴진 버스센터, 지하철 니시진역→후지사키→전시장 좌회전 순환, 니시진, 기타큐슈·지쿠호·아마기·사가에서 전시장 직통 버스를 운행했다.
- * 쇼와자동차는 가라쓰, 마에바루에서 전시장 직통 버스를 운행했다.
- * 후쿠오카 시영 지하철은 니시진역을 가장 가까운 역으로 했지만, 800m 떨어져 있었고 도시 고속도로 경유 직통 버스의 편리성이 더 뛰어났다.
- * 후쿠오카 시영 지하철, 니시테쓰 오무타선, JR 큐슈는 특별 디자인 전차 「요카토피아호」를 운행했다.
- * JR 큐슈는 JR 민영화 이후 최초의 신형 차량 811계를, 니시테쓰는 신형 특급 차량 8000형을 각각 데뷔시켜 임시 열차로서 (하카타역·니시테쓰 후쿠오카역에서 지하철·버스 등으로 환승해야 함) 운행을 실시했다.
- * JR 큐슈는 화물선인 하카타 린코선을 기간 한정으로 여객 운전을 실시하여 당시 「SL아소보이」에 사용되었던 증기기관차58654(8620형)가 견인하는 12계 객차, 키하58계 기동차 「아쿠아 익스프레스」를 접근 열차로 투입했다.
- '''자가용:''' 전시장 내외에 유료 주차장이 마련되었다.
- * 주차 요금(오후 5시 이후 오토바이 제외 반값, 버스는 평일 무료): 승용차 1000JPY, 버스 3000JPY, 오토바이 100JPY
- '''해상 교통:''' 안다산업기선이 우미노나카미치에서 박람회장까지 고속선 「오션라이너 5」를 운행했다.
8. 폐막 후
박람회장 일대는 '시사이드 모모치'로 재개발되었다. 후쿠오카 타워(福岡タワー), 후쿠오카시 박물관(福岡市博物館), 세이부가스 뮤지엄은 그대로 운영을 계속했고, 남은 부지는 주택지, 상업지, 공원으로 정비되었다. 후쿠오카 페이페이 돔(福岡PayPayドーム)도 이 곳에 건설되었다.[1]
폐막 후, 재단법인 "요카토피아 기념 국제재단"(よかトピア記念国際財団)이 설립되어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상(福岡アジア文化賞) 등 기념 사업과 국제 교류 사업을 실시하였다. 2014년에는 후쿠오카 국제교류협회와 합병하여 공익재단법인 "후쿠오카 요카토피아 국제교류재단"(福岡よかトピア国際交流財団)이 되었다.
9. 비판 및 논란
아시아 태평양 박람회는 다음과 같은 비판과 논란에 직면했다.
- 막대한 예산 투입: 초기 예산은 127억 엔이었으나, 1989년 3월 7일 제4차 재정 계획에서 소비세 시행과 복권 수입 등을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182억 엔으로 증가했다.[4] 이는 당초 예상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
- 교통 혼잡: 자가용 이용객 증가로 주변 도로에 극심한 정체가 발생했다. 특히 8월과 9월에는 매일 주차 용량이 한계에 달했다. 승용차 주차 요금은 1,000엔이었고, 오후 5시 이후에는 오토바이를 제외하고 반값 할인되었다.[4]
- 전시장 접근성 문제: 후쿠오카시 지하철 니시진역이 가장 가까웠지만, 800m나 떨어져 있어 불편했다. 도시 고속도로를 경유하는 직통 버스가 더 편리했기 때문에 지하철 이용률은 예상보다 훨씬 낮았다.
- 일부 전시관 내용 부실: 일부 해외 전시관은 단순 상품 판매 위주로 운영되어 박람회 취지에 맞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참조
[1]
문서
福岡タワーはその後テレビ・FM送信所としても使用。西部ガスミュージアムは2003年に閉館・解体。
[2]
웹사이트
【別冊シーサイドももち】〈039〉「地球をころがせ」を踊ってみた ―「よかトピア」オリジナル音頭―
http://fcmuseum.blog[...]
[3]
웹사이트
【別冊シーサイドももち】〈045〉2100年のパナコロニーからPAF522便に乗船したら、こうなった―よかトピアの松下館(1)―
http://fcmuseum.blog[...]
[4]
웹사이트
【別冊シーサイドももち】〈004〉開局! よかトピアFM(その1)KBC岸川均さんが育てた音のパビリオン
http://fcmuseum.blog[...]
[5]
서적
モノレールと新交通システム
グランプリ出版
[6]
간행물
アジア太平洋博覧会ガイドウェイバス
R&D神戸製鋼技報
1990-04
[7]
웹사이트
【別冊シーサイドももち】〈020〉よかトピア爆破事件 「警視庁捜査第8班(ゴリラ)」現る
http://fcmuseum.blog[...]
[8]
웹사이트
市史だよりFukuoka
http://www.city.fuku[...]
福岡市
2016-03-31
[9]
문서
일본어로 "좋다"는 뜻의 규슈 사투리인 "よか"와 이상향을 나타내는 "유토피아"의 합성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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