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이마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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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오이마쓰리는 6세기 킨메이 천황 시대에 시작된 일본의 축제이다. 가모 신사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시작되었으며, 헤이안 시대에는 황실 행사로 자리 잡았다. 주요 행사로는 행렬과 신사 의식이 있으며, 행렬은 교토 황궁에서 시모가모 신사와 가미가모 신사까지 진행된다. 축제 이름은 아욱 잎에서 유래되었으며, 사이오다이가 축제의 중심 역할을 한다. 사이오다이는 교토의 미혼 여성 중에서 선발되며, 헤이안 시대의 전통 의상을 착용하고 행렬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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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이마쓰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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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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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이름 | 아오이마쓰리 (葵祭) |
영어 표기 | Aoi Matsuri |
정식 명칭 | 가모사이 (賀茂祭) |
개최 시기 | 5월 15일 |
개최 장소 | 가미가모 신사(上賀茂神社), 시모가모 신사(下鴨神社) |
축제 개요 | |
종류 | 마쓰리(祭り) |
기타 정보 | |
관련 축제 | 교토 3대 축제 |
추가 정보 |
2. 역사
아오이마쓰리의 기원은 6세기 킨메이 천황(欽明天皇)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따르면, 당시 극심한 풍수해와 전염병으로 곡물 수확에 큰 어려움을 겪자, 천황은 가모 신(賀茂神)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사자를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 이 제사에는 말을 타고 질주하는 의식이 포함되었는데, 이것이 현재 아오이마쓰리의 기원이 되었다고 전해진다.[1]
이후 이 의식은 매년 반복되었고, 말을 타고 질주하는 의식은 기마 궁술 공연으로 발전했다. 속일본기(続日本記)에 따르면, 문무 천황(文武天皇) 2년(699년)에는 이 기마 공연을 보려는 관람객이 너무 많아 행사가 금지되기도 했다.[1]
9세기 간무 천황(桓武天皇)이 교토로 천도하고 헤이안 시대(平安時代)가 시작되면서, 가모 신사의 신들은 헤이안쿄(平安京)의 수호신으로 여겨졌고, 아오이마쓰리는 매년 열리는 황실 행사로 자리 잡았다.[2] 헤이안 시대 중기에 가장 번성했으나,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와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를 거치며 쇠퇴했다. 센고쿠 시대(戦国時代)에는 행렬이 중단되기도 했다.
에도 시대(江戸時代) 겐로쿠(元禄) 시대(1688년-1704년)에 부활했으나,[3] 메이지 시대(明治時代)(1869년)에 수도가 도쿄로 이전하면서 다시 중단되었다. 1885년(메이지 17년)에 교토 부흥의 일환으로 부활했으나, 태평양 전쟁(1944년)으로 다시 중단되었다가 1953년에 행렬이 재개되었다. 1956년부터는 사이오다이(斎王代) 제도가 도입되어, 교토의 미혼 여성 중에서 선발된 사이오다이가 축제의 중심 역할을 맡게 되었다.[3]
축제 명칭은 축제 장식과 제물로 사용되는 아욱(葵) 잎에서 유래했다.[4] 헤이안 시대에는 아욱 잎이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해준다고 믿었다.[5]
석청수제(石清水祭), 춘일제(春日祭)와 함께 3대 칙제(勅祭) 중 하나이며, 기온제(祇園祭)와 달리 귀족 중심의 행사였다.[14] 현재는 교토 3대 축제 중 하나로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헤이안 시대 이후 국가적인 행사로 거행되어 온 역사가 있으며, 일본 축제 중에서도 드물게 왕조 풍속의 전통이 남아 있다. 아오이꽃을 장식한 헤이안 후기 의상을 입은 행렬이 유명하며,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에도 묘사되어 있다.
대기가 불안정한 시기에 거행되어 비를 맞는 경우가 많으며, 1995년(헤이세이 7년)에는 악천후로 중지되기도 했다. 2020년(레이와 2년)과 2021년(레이와 3년)에는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해 행렬(로토노기(路頭の儀))이 중단되기도 했다.[15]
원래 가모 신사(賀茂神社)의 신문(神紋)으로 사용했던 후타바아오이(二葉葵, 가모아오이(賀茂葵))가 더 큰 유래이다.
2. 1. 한국과의 관계
아오이마쓰리는 고대 한국과의 문화 교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축제이다. 축제에 사용되는 악기, 음악, 복식 등에서 고대 한국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진보 진영에서는 아오이마쓰리가 한반도에서 전래된 문화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일 양국 간의 역사적, 문화적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한다. 보수 진영에서는 아오이마쓰리가 일본 고유의 전통을 보여주는 축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한국과의 문화 교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
3. 주요 행사
아오이마쓰리(葵祭)는 크게 행렬(로토노기(路頭の儀))과 신사 의식(샤토노기(社頭の儀))으로 나뉜다.[6][7]
행렬은 교토 황궁에서 시모가모 신사(下鴨神社)를 거쳐 가미가모 신사(上賀茂神社)까지 이어진다. 황실 사자(勅使)가 행렬 선두를 맡고, 소 두 마리가 끄는 수레, 소 네 마리, 말 서른여섯 마리, 그리고 헤이안 시대 귀족 의상을 입은 600명이 뒤따른다.[7][6] 수레(기샤(牛車))는 등나무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4]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에 히카루겐지(光源氏)가 칙사를 맡는 장면이 묘사될 정도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행사였으며, 1995년 악천후, 2020년과 2021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로토노기"가 중지되기도 했다.[15]
신사 의식에서는 사이오다이(斎王代)와 황실 사자가 신에게 경의를 표하고 칙서를 낭독한다.[8]
아오이 마쓰리에는 경마(쿠라베우마(くらべ馬))[11]와 기마궁술(야부사메) 시범도 열린다.[12]
5월 15일 본 행사 외에도 5월 3일 유소마(流鏑馬) 신사, 5월 12일 온애제(御蔭祭)・온례신사(御阿礼神事) 등 전의(前儀)가 거행된다.[19][20][21][22][23][24][25][26][27]
3. 1. 행렬 (로토노기(路頭の儀))
5월 15일 오전 10시 30분, 교토고쇼(京都御所)에서 출발하여 시모가모 신사(下鴨神社)와 가미가모 신사(上賀茂神社)까지 약 8km를 행진한다. 황실 사자(勅使)가 행렬의 선두를 맡고, 헤이안 시대 귀족 복장을 한 600여 명이 뒤따른다.[7][6] 소가 끄는 수레(기샤(牛車))는 등나무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4] 이 행렬에는 사이오다이(斎王代)와 황실 사자가 주요 인물로 참여한다.[2]사이오다이는 역사적으로 황제의 자매나 딸 중에서 선발되어 시모가모 신사에 봉헌되었으나, 오늘날에는 교토의 미혼 여성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2] 사이오다이는 주니히토에(十二単)를 열두 겹이나 입는 전통 의상을 착용한다.[10] 황실 사자는 말을 타고 행렬을 이끌며, 헤이안 시대에는 5품 궁정 신하가 이 역할을 맡았다.[2][8]
행렬에는 경비병(게비이시(警備士)), 정부 관리, 시민 관리, 군인, 야마시로 현(山城国) 대표 등이 함께한다.[5]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에서는 히카루겐지(光源氏)가 칙사를 맡는 장면이 묘사되어 아오이 마쓰리의 역사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1995년에는 악천후,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로토노기(路頭の儀)"가 중지된 바 있다.[15]
현재 행렬은 '''승마(乗尻)'''[19]를 선두로 '''검비위사(検非違使)'''[20], '''산성사(山城使)'''[21], '''내장료사생(内蔵寮史生)'''[22], '''마료사(馬寮使)'''[23], '''무사(舞人)'''[24], '''근위사(勅使) 대리(代)'''[25], '''배종(陪従)'''[26], '''내장사(内蔵使)'''[27] 등 기마 문관·무관으로 구성된 '''본열(勅使列)'''과, 사이오다이를 비롯한 '''여인열'''이 평안 시대(平安時代) 의상을 입고 수레와 함께 교토고쇼(京都御所)에서 시모가모 신사(下鴨神社)를 거쳐 가미가모 신사(上賀茂神社)까지 약 8km를 행진한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이나 진보 진영 인사가 교토 시장으로 당선된 경우, 당선 이후 처음 열리는 아오이 마쓰리에서 이 행렬에 참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3. 2. 신사 의식 (샤토노기(社頭の儀))
시모가모 신사와 가미가모 신사에 도착하면 사이오다이와 황실 사자가 의식을 거행한다. 사이오다이는 신에게 경의를 표하고, 황실 사자는 신을 칭송하고 계속된 은혜를 요청하는 칙서를 낭독한다.[8]시모가모 신사와 가미가모 신사에서는 실제 '''칙사(勅使)'''인 장전직(掌典職)의 장전이 제문(祭文)을 봉정하는 '''신사의 의식(社頭の儀)'''(샤토노기)이 거행된다.
3. 3. 전의(前儀)
5월 15일 본 행사에 앞서 다양한 전의(前儀)가 거행된다. 5월 3일에는 유소마(流鏑馬) 신사(神事)가, 5월 12일에는 온애제(御蔭祭)・온례신사(御阿礼神事) 등이 거행되는데, 그중에서도 유소마(流鏑馬) 신사가 유명하다. 다다스노모리(糺の森) 한가운데 있는 길이 500m의 마장(馬場)에서 공가풍(公家風) 의복 차림이나 무가풍(武家風) 사냥복 차림의 사수(射手)들이 말을 타고 질주하며 세 개의 과녁을 쏘는 것이다.야부사메(矢伏射馬)라고도 쓰이는 유소마(流鏑馬)는 글자 그대로 화살을 쏘는 것이다. 말을 달리면서 정확하게 과녁을 맞히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기 있는 행사 중 하나이다.
유랴쿠 덴노(雄略天皇) 즉위년(457년)에 「체사(騁射)」를 행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있고, 「가모사이(賀茂祭)에 민중을 모아 기사(騎射)를 금한다」는 기사가 『속일본기(続日本紀)』에 실려 있는 등, 일본 고유의 오랜 역사를 가진 마술(馬術)로 여겨진다.
사수의 외침 「인(イン), 요(ヨー)」는 「음양(陰陽)」을 의미한다. 화살이 명중하면 오곡(五穀)은 풍년이 들고, 여러 소원은 이루어진다고 전해진다. 분게이 2년(1502년)에 중단되었지만, 쇼와 48년(1973년) 시모가모 신사(下鴨神社) 시키 센구(式年遷宮) 기념 행사로 부활했다. 「다다스노모리 유소마 신사 보존회(糺の森流鏑馬神事保存会)」에 의해 공가 의복을 입고 하는 유소마(流鏑馬)가 보존·전승되고 있다.
또한, 가미가모 신사(上賀茂神社)에서는 쿠라베우마에 신사(競馬会神事) 등이 거행된다.
4. 사이오다이(斎王代)
1956년에 사이오(斎王)를 본떠 사이오다이와 여인 행렬이 창설되었다. 사이오(斎王)는 원래 가모 신사(賀茂神社)에 무녀로서 섬기기 위해 황실에서 보낸 내친왕·여왕을 가리킨다.[3]
사이오다이는 교토와 인연이 있는 일반 여성 중에서 선발되며, 사이오의 대리라는 의미에서 '사이오다이'라고 불린다. 사이오다이는 당의장복(唐衣裳装束)을 착용하고, 분을 칠하며, 오하구로(お歯黒)(검은 칠을 한 이)를 바른다.[3]
사이오다이는 일반 공모나 오디션으로 선발되지 않는다. 수천만 엔에 달하는 비용을 부담할 수 있어야 하며, 교토와 인연이 있는 사찰, 문화인, 실업가 등의 영애(주로 20대)가 추천 등으로 선발된다. 막대한 비용 부담과 제사 유지를 이해하는 일부 집안의 영애로 사실상 제한되기 때문에, 일부 자산가 집안에 역할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어머니도 사이오다이였던 경우가 많고, 자매가 함께 사이오다이가 되거나, 할머니·어머니·본인 3대에 걸쳐 사이오다이인 경우도 있다.[3]
1994년에는 화도(華道)·이케보(池坊) 가문의 이케보 센에이(池坊専永)의 차녀 이케보 미카(池坊美佳), 2005년에는 교토시의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토세(トーセ) 사장의 장녀, 2006년에는 사이고쿠 산주산쇼(西国三十三所) 15번 참배소·이마쿠마노 관음사(今熊野観音寺) 주지의 삼녀, 2008년에는 노포 요릿집 키쿠노이(菊乃井) 경영자인 무라타 요시히로(村田吉弘)의 장녀, 2009년에는 우라센케(裏千家)의 센소시쓰(千宗室) 가문의 장녀이자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三笠宮崇仁親王)의 손녀[29], 2010년에는 록파라미쓰지(六波羅蜜寺) 주지의 장녀, 2017년에는 학교법인 교토 문학학원(学校法人京都文教学園) 이사장의 손녀[30], 2023년에는 교토부 의사회(京都府医師会) 회장의 차녀[31]가 선발되었다.
1995년에는 우천으로 중지되었기 때문에 다음 해에 같은 여성이 선발되었다. 2002년에는 교토시 출신으로 도쿄에 거주하는 여대생이 선발되어 교토부 외 거주자로는 최초의 사이오다이가 되었다.[3]
매년 5월 4일에는 '''사이오다이 미소기의'''(斎王代禊の儀)가 거행된다. 사이오다이와 여인들이 미타라시이케(御手洗池)에 손을 담가 정화하는 의식으로, 시모가모 신사(下鴨神社)와 가미가모 신사(上賀茂神社) 양사에서 격년 교대로 진행된다.[3]
사이오다이를 중심으로 주변에는 내시부 수행원(蔵人所陪従), 명부(命婦), 녀조(女嬬), 동녀(童女), 기녀(騎女), 내시(内侍), 녀별당(女別当), 채녀(采女) 등 화려하고 아름다운 행렬이 이어진다. 모두 화장을 하지만, 사이오다이를 제외하고는 오하구로(お歯黒)를 하지 않는다.[3]
여인 행렬 | 취임 | 대 | 취임자 |
---|---|---|---|
제1회 | 1956년 | 초대 | 아라타 후미코(역학 아야)[28] |
제7회 | 1962년 | 제7대 | 야마다 히로코 |
제12회 | 1967년 | 제12대 | 모리가와 가오루 |
제23회 | 1978년 | 제23대 | 카나이 히데미 |
제25회 | 1980년 | 제25대 | 니시무라 카즈미 |
제29회 | 1984년 | 제29대 | 니시무라 카즈사 |
제30회 | 1985년 | 제30대 | 카와사키 토모코 |
제31회 | 1986년 | 제31대 | 이자와 미키코 |
제33회 | 1988년 | 제33대 | 사카시타 미호 |
5. 여인 행렬(女人列)
사이오다이를 중심으로, 내시부 수행원(蔵人所陪従), 명부(命婦), 녀조(女嬬), 동녀(童女), 기녀(騎女), 내시(内侍), 녀별당(女別当), 채녀(采女) 등 화려한 행렬이 이어진다.[19] 사이오다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검은 이빨(お歯黒)을 하지 않는다.[19]
6. 명칭의 유래
이 축제는 축제 장식과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사용되는 아욱(葵, 아욱) 잎에서 이름을 따왔다.[4] 헤이안 시대에는 이 잎이 지진이나 천둥과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한다고 믿어 집 지붕 밑에 걸어놓곤 했다.[5] 아오이 마쓰리에 사용되는 식물은 아욱이 아니라 세신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식물이 희귀하기 때문에 계수나무 잎과 같이 모양이 비슷한 다른 식물들이 대신 사용되기도 했다.[4]
원래 고대부터 가모 신사의 신문(神紋)으로 사용했던 아오이몬(葵紋)의 후타바아오이(二葉葵, 가모아오이(賀茂葵))가 더 큰 유래이다. 도쿠가와 가문(徳川家)의 아오이몬(葵紋) 중 미쓰바아오이(三つ葉葵紋)의 원형이라고도 하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선조인 마쓰다이라 노부미쓰(松平信光)가 가모아소닌(賀茂朝臣)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던 점과, 마쓰다이라 씨(松平氏)의 출신지가 미카와국 가모군 마쓰다이라향(三河国賀茂郡松平郷)이기도 한 점에서 "'미쓰바아오이'도 아오이마쓰리로 유명한 교토의 가모 신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연구자도 있다.[16] 실제로 도쿠가와 가문도 아오이마쓰리를 중시했으며, 도쿠가와 이에모치는 상락(上洛)한 1863년에 고메이 천황을 수행하여 함께 아오이마쓰리에 참례했다.[17][18]
가모미오야 신사(賀茂御祖神社)와 가모베쓰라이 신사(賀茂別雷神社)의 예제(例祭)로, 옛날에는 가모사이(賀茂祭) 또는 기타노마쓰리(北の祭り)라고도 불렀으며, 헤이안 시대 중기 귀족들 사이에서는 단순히 "마쓰리(祭り)"라고 하면 아오이마쓰리를 가리켰다. 가모사이가 아오이마쓰리로 불리게 된 것은 에도 시대 1694년(겐로쿠 7년)에 제사가 재흥된 후, 당일 내리(内裏) 신전(宸殿)의 미스(御簾)를 시작으로, 우샤(牛車, 고쇼구루마(御所車)), 칙사(勅使), 공봉자(供奉者)의 의관(衣冠), 우마(牛馬)에 이르기까지 모두 아오이과(アオイ科) 아오이(葵) 잎으로 장식하게 된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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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都女性憧れ「斎王代」に同大生 「精いっぱいご奉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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葵祭の斎王代に29歳女性会社員 行列4年ぶり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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むまのりおん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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ない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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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んなべっと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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うね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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