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왈리드 2세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알 왈리드 2세는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이며, 709년에 태어나 744년에 사망했다. 그는 743년 히샴 이븐 압드 알-말리크의 뒤를 이어 칼리프가 되었으나, 그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관대함과 불구자 및 맹인에 대한 배려로 알려졌지만, 그의 "부도덕함"과 정책으로 인해 반발을 샀다. 결국 사촌 야지드 3세의 반란으로 폐위되었고, 744년 암살당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살해된 8세기 군주 - 유스티니아노스 2세
유스티니아누스 2세는 초기에는 유능한 군주였으나 잔혹한 성격과 과도한 세금 징수로 백성들의 원성을 사 폐위와 유배를 겪었으며, 복위 후 공포 정치로 다시 폐위 및 처형당해 헤라클리우스 왕조의 혈통을 단절시킨 동로마 제국의 황제이다. - 744년 사망 - 남악회양
남악 회양은 당나라의 선승이자 위앙종과 임제종의 조사로, 혜능의 제자였으며 마조 도일에게 법을 전수했고, 남악마전 고사를 통해 맹목적인 수행을 경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생애와 혜능과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진실성에는 논쟁이 있다. - 744년 사망 - 오즈미쉬 카간
오즈미쉬 카간은 630년경 암살당해 돌궐 제국의 분열을 가속화시킨 인물로, 그의 죽음 이후 제국은 동돌궐과 서돌궐로 분열되어 당나라의 세력 확장에 영향을 받았다. - 709년 출생 - 고닌 천황
고닌 천황은 쇼토쿠 천황 사후 즉위하여 후지와라 씨의 영향력 아래 정치적 갈등과 후계자 문제에 직면했으며, 국가 재건 노력에도 불구하고 혼란과 재난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를 살았다. - 709년 출생 - 장순 (당나라)
장순은 당나라의 군인이자 관료로서 안사의 난 때 뛰어난 용맹과 지략으로 수양성을 방어하며 당에 충성했으나, 함락 후 포로로 잡혀 처형되었고, 그의 식인 행위에 대한 논쟁과 국가에 대한 헌신이라는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알 왈리드 2세 | |
---|---|
기본 정보 | |
![]() | |
칭호 | 아미르 알무미닌 칼리파트 알라 |
전체 이름 | 알왈리드 이븐 야지드 이븐 압드 알말리크 |
출생 | 기원후 709년경 |
출생지 | 알샴, 우마이야 칼리파조 |
사망일 | 744년 4월 17일 (향년 35세) |
사망 장소 | 알샴, 우마이야 칼리파조 (현재의 요르단) |
사망 원인 | 암살 |
종교 | 이슬람교 |
통치 | |
계승 | 제11대 칼리파 (우마이야 칼리파조) |
재위 기간 | 743년 2월 6일 ~ 744년 4월 17일 |
이전 통치자 | 히샴 이븐 압드 알말리크 |
다음 통치자 | 야지드 이븐 알왈리드 |
가족 | |
왕조 | 우마이야 왕조 |
아버지 | 야지드 2세 |
어머니 | 움 알하자즈 빈트 무함마드 |
배우자 | 아티카 빈트 우트만 이븐 무함마드 |
자녀 | 알하캄 이븐 알왈리드 이븐 야지드 우트만 이븐 알왈리드 이븐 야지드 |
2. 출생과 배경
알 왈리드는 709년에 우마이야 왕조 칼리프 야지드 2세와 그의 아내 움 알-하지 바트 무함마드 알-사카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우마이야 왕조의 관리 무함마드 이븐 유수프 알-사카피의 딸이었다.[1]
알 왈리드 2세는 제9대 칼리파 야지드 2세의 아들이자, 제10대 칼리파 히샴의 조카였다. 743년 히샴이 사망하자 칼리파 자리를 이었으나, 자질 부족으로 744년 사촌 야지드 3세의 반란으로 폐위되었다.
그의 아버지 야지드 2세는 720년부터 724년 1월까지 칼리프 제국을 통치했다.[1] 야지드 2세는 105년 AH 샤반 26일 (724년 1월 28일) Jund Dimashq(다마스쿠스 군사 지구)의 발카 (즉, 트란스요르단) 하위 지역의 Irbrid에서 사망했다.[2] 그의 아들 알 왈리드 또는 이복 형제 히샴이 그의 장례 예배를 이끌었다.[2] 야지드는 알 왈리드를 자신의 직계 후계자로 임명하려 했지만, 마슬라마의 설득으로 히샴을 먼저 임명하고, 그 다음 알 왈리드를 임명하도록 했다.[2]
알 왈리드의 아버지는 제9대 칼리파인 야지드 2세이며, 제10대 칼리파 히샴의 조카였다.[3]
3. 초기 생애
3. 1. 히샴과의 갈등
히샴은 알 왈리드가 나이가 들면서 그의 행동, 특히 과도한 음주와 성적 취향에 불만을 품었다.[1] 히샴은 알 왈리드 대신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 계승권을 넘기는 것을 고려했다.[1] 그는 알 왈리드에게 술을 끊으라고 이야기하고, 가장 친한 술친구를 내쫓으라고 명령했으며, 왕위 계승자에 대한 자금 지원을 삭감하고 종교 문제에 더 신경 쓸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1]
735년, 히샴은 알 왈리드에게 마슬라마 이븐 히샴에게 양보하거나 마슬라마를 후계자로 지명하도록 설득하려 했지만, 알 왈리드는 이를 거부했다.[2] 이후 히샴은 알 왈리드를 약화시키고 은밀하게 마슬라마에 대한 지지를 모으려 했다.[3] 마슬라마 지지 세력은 그의 삼촌이자 유명한 장군인 마슬라마 이븐 압드 알-말리크, 히샴의 외할아버지이자 전 메디나 총독인 히샴 이븐 이스마일 알-마흐주미,[4] 그의 아들들인 이브라힘과 무함마드, 그리고 바누 압스의 수장이었던 북부 시리아의 알-카카 이븐 훌라드의 아들들이었다.[3] 마슬라마의 어머니 움 하킴도 아들의 계승을 위해 로비 활동을 벌였다.[5] 반면, 마슬라마의 계승에 반대한 인물은 이라크 총독 할리드 알-카스리였다.[6] 730년대 후반, 마슬라마 이븐 압드 알-말리크의 죽음은 히샴의 계승 계획에 큰 차질을 가져왔다.[7]
4. 즉위
히샴은 743년 2월에 사망했고 그의 아들 마슬라마가 장례 기도를 인도했다.[1] 알-왈리드 2세는 칼리프 자리에 올랐고 즉시 사촌 알-아바스 이븐 알-왈리드에게 팔미라 근처 루사파에 있는 히샴의 아들들을 체포하라고 명령했지만, 마슬라마나 그의 가족은 알-왈리드에 대한 칼리프 히샴의 변호와 오랜 우정을 존중하여 방해하지 말라고 명시했다.[2][3]
알 왈리드 2세의 아버지는 제9대 칼리파인 야지드 2세이며, 제10대 칼리파 히샴의 조카였다. 743년 히샴이 사망하자 뒤를 이었다. 그러나 칼리파로서의 재능과 그릇이 부족하여 744년 사촌인 야지드 3세에게 반란을 일으켜 폐위되었다.
5. 칼리프 시대
알-왈리드 2세는 제9대 칼리파 야지드 2세의 아들이자 제10대 칼리파 히샴의 조카였다. 743년 히샴이 사망하자 뒤를 이어 칼리파가 되었으나, 통치 능력 부족으로 744년 사촌 야지드 3세의 반란으로 폐위되었다.
5. 1. 종교적, 정치적 갈등
알-왈리드는 743년 2월 6일 히샴이 사망한 후 왕위에 올랐다. 그는 후계자 시절부터 관대함으로 널리 알려졌다. 칼리프가 된 후, 알-왈리드는 불구자와 맹인들을 특별히 보살펴 그들의 급여를 인상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는 알-타바리의 기록에 따라 743년 5월 21일 자신의 두 아들 알-하캄과 우스만을 후계자로 지명했다.[1]알-왈리드는 처음에 나스르 이븐 사이야르를 호라산의 총독으로 재확인했다. 그러나 유수프 이븐 우마르에게 뇌물을 받고 그를 해임하였다. 알-왈리드는 자신의 삼촌인 유수프 이븐 무함마드를 메디나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한편, 자이드 이븐 알리의 아들 야흐야 이븐 자이드가 호라산에서 발견되었다. 나스르는 야흐야에게 이슬람의 단결을 위해 칼리프에게 출두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야흐야는 다른 길을 택했고, 초기에 승리를 거두었으나 결국 살해되었다.
알-왈리드는 술라이만 이븐 히샴을 감옥에 가두었다. 이러한 행위와 더불어 그의 음주, 노래, 부도덕함은 많은 이들의 반발을 샀다. 알-왈리드는 시 짓기를 즐기고 경마를 주선하는 등 향락적인 생활을 하였다. 야지드 이븐 알-왈리드는 새 통치자의 도덕적 해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암살 음모가 시작되었고, 할리드 이븐 압달라 알-카스리는 음모 가담 제의를 거절하고 알-왈리드에게 경고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알-왈리드는 그의 모호한 경고에 분노하여 할리드를 투옥하고 유수프 이븐 우마르에게 에 넘겼다. 유수프는 할리드를 고문하여 살해했고, 이는 알-왈리드의 친척들마저 격분하게 만들었다.[2]
알-왈리드 2세의 통치 기간 동안, 야지드 이븐 알-왈리드는 왈리드의 "부도덕함"을 비난하며, 바누 카이스 아랍인에 대한 예멘인과 비아랍 무슬림 차별을 지적했다. 야지드는 카다리야와 무르지이야로부터 지지를 얻었다.[2]
음모 소식을 들은 마르완 이븐 무함마드는 아르메니아에서 편지를 보내 국가의 안정과 우마이야 가문의 유지를 위해 신중하게 행동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 편지는 무시되었고, 많은 무장 세력이 다마스쿠스로 이동했다.
5. 2. 암살 음모와 죽음
야지드는 쿠데타를 일으켜 다마스쿠스로 잠입해 알 왈리드를 폐위시킨 후, 국고에서 자금을 인출했다.[3] 칼리프는 도시 외곽의 성에서 포위되었다. 그는 용감하게 싸웠지만, 744년 4월 16일, 현재 요르단에 위치한 알 아그다프에서 수라이만 이븐 히샴의 군대에 패배하여 살해당했다.[3] 그의 뒤를 이어 사촌인 야지드 3세가 즉위했다.야지드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야지드는 압드 알 아지즈 이븐 알 하자지를 알 바크라에서 왈리드를 만나도록 보냈다.[4] 압드 알 아지즈는 왕국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한 부족 회의(''슈라'')를 제안했다. 왈리드는 이 제안을 거부하고 공격했고, 이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5]
6. 가족
알 왈리드 2세는 우트만 이븐 무함마드 이븐 아비 수피안의 딸 아티카 빈트 우트만 이븐 무함마드와 결혼했다.[6][7] 또한, 슈다와 알-나와르라는 두 명의 가희를 첩으로 두었다.[8]
알 왈리드 2세는 알-하캄과 우트만 두 아들을 두었으며, 이들을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했다. 그러나 야지드 3세가 승리하고 즉위하면서 우트만과 하캄은 투옥되었다.[9][10]
7. 혈통
알 왈리드 2세는 초대 칼리프 무아위야 1세와 제2대 칼리프 야지드 1세의 여자 계통 자손에 해당한다. 무아위야 1세의 외현손이자 야지드 1세의 외증손이다.
가계도는 다음과 같다.
- 무아위야 1세 - 야지드 1세 - 아티카 (무아위야 2세의 자매) - 야지드 2세 - 왈리드 2세
참조
[1]
서적
al-Tabari
[2]
간행물
Kadar
Encyclopedia of Islam 2nd Ed.
[3]
서적
Seeing Islam as Others Saw It
Darwin Press
[4]
문서
1234 Chronicle
[5]
서적
God's Caliph
Cambridge University Press
[6]
서적
[7]
서적
[8]
서적
Patronate And Patronage in Early And Classical Islam
Brill
[9]
서적
[10]
서적
God's Caliph
[11]
서적
千夜一夜物語と中東文化
東洋文庫
2000-10-04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