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미쉬 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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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즈미쉬 카간은 742년 카간에 오른 돌궐의 통치자이다. 그는 당나라의 신복 요구를 거부하고 독립을 유지하려 했으나, 당 현종의 명을 받은 왕충사가 조직한 바스밀, 위구르, 카를루크 연합에 의해 패배했다. 오즈미쉬는 도주했으나 744년 아사나 시에게 살해당했으며, 그의 죽음으로 돌궐 제국은 붕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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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미쉬 카간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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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칭호 | 오즈미쉬 카간 |
칸의 이름 (중국어) | 乌苏米施可汗 |
재위 기간 | 742년 - 744년 |
계승 | 튀르크 카간국의 카간 |
선임 | 쿠틀루크 야브구 카간 (주장자) 아시나 시 (바스밀 족장) |
후임 | 쿨룬 베그 (튀르크) 아시나 시 (바스밀 족장) |
가문 | 아시나 |
아버지 | 판 쿨 테긴 |
출생 이름 | 아시나 우시미시 阿史那乌苏米施 |
사망일 | 744년 1월 6일 |
2. 배경
오즈미쉬 카간의 아버지 판 퀼 테긴[3]은 돌궐 제2제국의 텡그리 카간 치세 동안 좌(左) 샤드(shad, 총독)[2]를 지냈다. 판 퀼 테긴은 텡그리 카간을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했지만, 곧이어 벌어진 아시나 시와 바스밀 부족과의 전투에서 741년 사망했다.
오즈미쉬 카간은 혼란스러운 시기에 돌궐의 카간으로 즉위했으나, 그의 통치는 짧고 불안정했다. 즉위 직후부터 북방 유목 민족 전체를 복속시키려던 당나라의 압력을 받았다. 당현종은 오즈미쉬에게 신하로서 복종할 것을 요구했으나, 오즈미쉬는 처음에는 동의하는 듯하다가 독립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5]
판 퀼 테긴 사후, 쿠틀룩 야브구 카간이 잠시 권력을 잡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혼란이 이어졌다. 742년, 쿠틀룩 야브구 카간은 위구르, 카를루크, 바스밀 3부족 연합 세력에게 살해당했다.[4] 이후 바스밀 부족의 추장인 아시나 시가 힐첩이시가한(頡跌伊施可汗, Ilterish Khagan)으로 추대되었고, 위구르와 카를루크의 추장들도 각각 좌우 야브구(Yabghu)를 칭했다.[4]
이러한 상황에 반발한 돌궐의 유력자들은 742년 판 퀼 테긴의 아들인 오즈미쉬를 새로운 카간으로 옹립했다. 이로써 오즈미쉬 카간이 즉위하게 되었다.
3. 통치
이에 당나라는 장군 왕충사(王忠嗣)에게 토벌을 명했고, 왕충사는 당에 협력하던 바스밀, 위구르, 카를룩 부족 연합을 동원하여 오즈미쉬를 공격했다. 결국 오즈미쉬는 연합군에게 패배하고 도주했으나, 744년 아시나 시에게 살해당했다.[1][5] 그의 사후 아들 쿨룬 벡(Kulun Beg)이 카간으로 추대되었지만, 돌궐 제국은 오즈미쉬의 죽음과 함께 사실상 멸망한 것으로 평가된다.[1]
3. 1. 당나라와의 관계
당나라는 북쪽 국경 너머의 모든 유목 민족을 복속시키려는 정책을 가지고 있었으며, 오즈미쉬 카간에게도 조공을 바치고 신하로서 복종할 것을 요구했다. 처음에 오즈미쉬는 당 현종 황제를 직접 만나 예를 갖추는 것에 동의하는 듯했으나, 곧 마음을 바꿔 돌궐의 독립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오즈미쉬의 이러한 태도는 당 현종을 불쾌하게 만들었고, 황제는 장군 왕충사(王忠嗣)에게 오즈미쉬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왕충사는 오즈미쉬를 공격하기 위해 이미 당나라의 종주권을 인정한 바 있던 세 튀르크 부족, 즉 바스밀, 위구르, 카를룩으로 구성된 연합군을 조직했다.
연합군은 오즈미쉬의 군대를 격파했다. 오즈미쉬는 전장에서 탈출했지만, 곧 다시 패배했으며 결국 744년 아시나 시에게 살해당했다.[5][1]
오즈미쉬 카간이 사망한 후, 돌궐 부족들은 그의 아들인 쿨룬 벡을 새로운 카간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돌궐 제국은 오즈미쉬의 죽음과 함께 사실상 멸망한 것으로 여겨진다.[1]
3. 2. 위구르, 카를루크, 바스밀과의 관계
742년 경, 위구르, 카를루크, 바스밀 세 부족은 당시 동돌궐의 골돌엽호가한(쿠트 야브구 카간)을 살해하였다. 이후 바스밀 부족의 추장인 아사나 시(阿史那施)가 힐첩이시가한(頡跌伊施可汗, 일테리쉬 카간)으로 추대되었고, 위구르와 카를루크의 추장도 각각 좌우 야브구(葉護, yabgu)를 칭했다.[4] 이러한 혼란 속에서 돌궐의 귀족들은 판궐특근(判闕特勤, 판 쿨 테긴)[3]의 아들을 오즈미쉬 카간으로 추대하였다.[2]
당시 당나라는 북쪽 국경의 모든 유목 민족을 복속시키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고, 오즈미쉬 카간에게도 복속을 요구했다. 처음 오즈미쉬 카간은 현종 황제를 알현하고 조공을 바치기로 동의하는 듯했으나, 곧 마음을 바꿔 독립을 유지하려 했다.[5] 그의 불복에 당 현종은 불쾌감을 느끼고 장군 왕충사(王忠嗣)에게 오즈미쉬 카간 체포를 명령했다.
왕충사는 이미 당나라의 종주권을 인정한 바스밀, 위구르, 카를루크 세 부족과 연합하여 오즈미쉬 카간을 공격했다.[1] 오즈미쉬 카간은 이들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도주했으나, 내부 세력도 그를 따르지 않아 점차 고립되었다. 그의 서엽호(西葉護, 서 야브구) 아부사와 아들인 서살(西殺, 서 샤드) 갈랍타는 5천여 무리를 이끌고 당나라에 항복했으며, 갈랍타는 현종에 의해 회은왕(懷恩王)에 봉해지기도 했다.
결국 744년 8월, 오즈미쉬 카간은 바스밀 부족에게 다시 패배하고 살해당했다. 그의 목은 당나라 수도 장안으로 보내져 태묘에 바쳐졌다.[1] 비록 돌궐인들이 오즈미쉬 카간의 아들 쿨룬 벡(Kulun Beg)을 새로운 카간으로 선출했지만[1], 사실상 오즈미쉬 카간의 죽음으로 동돌궐 제국은 붕괴한 것으로 여겨진다.[5] 한편, 오즈미쉬 카간 사후 동생인 백미특근골롱복(白眉特勤鶻隴匐)이 백미가한(白眉可汗)으로 잠시 추대되기도 했다.
4. 몰락과 죽음
당나라는 북쪽 국경 너머의 모든 유목 민족을 복속시키려 했고, 오즈미쉬 카간에게도 신하로서 복종할 것을 요구했다. 처음 오즈미쉬는 당현종을 찾아가 신하 예를 갖추는 것에 동의하는 듯했으나, 곧 마음을 바꿔 독립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5] 이러한 오즈미쉬의 태도는 당현종을 불쾌하게 만들었고, 현종은 장군 왕충사(王忠嗣)에게 오즈미쉬를 생포하거나 토벌하라고 명령했다.
왕충사는 당나라의 종주권을 이미 인정한 바스밀, 위구르, 카를룩 세 튀르크 부족과 연합하여 오즈미쉬를 공격했다. 이 연합군은 오즈미쉬의 군대를 격파했다. 오즈미쉬는 도망쳤으나, 내부에서도 지지 기반이 약했고 따르는 세력이 많지 않았다. 심지어 오즈미쉬가 바스밀, 위구르, 카를룩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도주하는 와중에, 그의 서엽호(西葉護) 아부사와 아들인 서살(西殺) 갈랍타는 5천여 무리를 이끌고 당나라에 항복했다. 당현종은 항복한 갈랍타를 회은왕(懷恩王)에 봉했다.
결국 천보 3년(744년) 8월, 오즈미쉬 카간은 바스밀 부족의 엽호(葉護, 야브구) 등에게 살해당했다.[1] 그의 머리는 당나라의 수도인 경사(京師, 지금의 시안)로 보내져 태묘(太廟)에 바쳐졌다.
오즈미쉬 카간이 살해된 후, 돌궐 본국에서는 그의 동생인 백미특근골롱복(白眉特勤骨朧匐)을 백미가한으로 옹립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튀르크인들이 오즈미쉬의 아들 쿨룬 벡(Kulun Beg)을 새로운 카간으로 선출했다는 기록도 있으나[1], 일반적으로 돌궐 제2제국은 오즈미쉬 카간의 죽음으로 사실상 멸망한 것으로 여겨진다.[5]
5. 영향
참조
[1]
서적
Göktürkler
AKDTYK yayınları
[2]
문서
Šad(シャド、設、殺)とは、突厥可汗国において各地方に置かれた総督。この頃になると東西2人のシャドがいたらしく、東のシャドを'''左シャド'''、西のシャドを'''右シャド'''といった。
[3]
문서
Tägin(テギン、特勤)とは、突厥可汗国において皇太子や王子に与えられる称号。可汗の兄弟などにも見受けられる。
[4]
문서
Yabγu(ヤブグ、葉護)とは、突厥可汗国における大臣級の官名。
[5]
서적
Göktürkler
AKDTYK yayınlar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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