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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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근군은 현재의 양평군 일대에 있었던 옛 행정 구역이다. 삼국 시대에는 백제, 고구려, 신라의 영토였으며,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가 신라 경덕왕 때 빈양현으로 개칭되어 기천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양근현으로 개칭되어 광주목의 속현이 되었다가 감무를 두면서 독립하였으며, 영화현, 익화현으로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는 양근군으로 이어졌고, 도평군에 편입되거나 현으로 강등되는 등 변화를 겪었지만, 1747년 치소를 갈산으로 옮겼다. 1895년 춘천부, 1896년 경기도에 속했다가 1908년 지평군과 통합되어 양평군으로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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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근군 | |
|---|---|
| 지도 정보 | |
![]() | |
| 일반 정보 | |
| 명칭 | 양근군 (楊根郡) |
| 로마자 표기 | Yanggeun-gun |
| 역사 | |
| 설치 | 고려 시대 |
| 폐지 | 1914년 조선총독부 행정 구역 개편 |
| 관련 법령 | 칙령 제69호 군을합치는데관한안건(勅令 第六十九號 郡을合치는데關한案件) |
| 위치 | |
| 대동여지도 위치 | x=4.2, y=13.1, zoom=11 |
2. 역사
양근군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여러 차례 행정 구역 변화를 겪었다. 백제, 고구려, 신라에 차례로 속했으며, 신라 경덕왕 때에는 빈양현(濱陽縣)으로 개칭되어 기천군(현 여주시)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양근현, 영화현, 익화현, 익화군, 양근군 등으로 여러 차례 이름과 행정 구역이 바뀌었다.
조선 시대에는 양근군으로 유지되었으나, 도평군에 편입되거나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747년(영조 23년) 치소를 갈산(현 양평읍 양근리)으로 옮겼다. 1895년 23부제 시행으로 춘천부 양근군이 되었다가, 1896년 13도제 시행으로 경기도 양근군이 되었다. 1908년 지평군과 통합되어 양평군이 되었다.
2. 1. 삼국시대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의 영토였다가, 고구려의 남하로 고구려에, 이후에는 신라에 속했다. 당시 거사참현(去斯站縣) 또는 항양현(恒陽縣), 양근현(楊斤縣)으로 불렸다.[5]2. 2. 고려 시대
940년(고려 태조 23년) 양근현(楊根縣)으로 개칭하였다.[5] 1018년(고려 현종 9년) 광주목의 속현이 되었다.[1] 1175년(고려 명종 5년)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1257년(고려 고종 44년) 영화현(永化縣)으로 이름을 바꾸었다.[1] 1269년(고려 원종 10년) 익화현(益和縣)으로 다시 개칭하고 현령을 두었다.[1] 1356년(고려 공민왕 5년) 익화군(益和郡)으로 승격되었다가 다시 양근군(楊根郡)으로 개칭되었다.[1]2. 3. 조선 시대
1356년(고려 공민왕 5년) 양근군(楊根郡)으로 승격되었고, 조선 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1]1658년(효종 9년)에 도평군(砥平郡)에 편입되었으나, 1668년(현종 9년)에 다시 양근군을 두었다.[1] 1728년(영조 4년)에 현으로 강등되었으나, 1741년(영조 17년)에 다시 군으로 복귀하고, 1776년(정조 1년)에 다시 현으로 강등되었으나, 1784년(정조 8년)에 다시 군으로 복귀하였다.[1]
1747년(영조 23년)에 치소(治所)를 갈산(葛山)으로 옮겼고, 1895년(고종 32년)에 춘천부 양근군으로 개편되었으며,[3] 1896년(건양 1년)에는 다시 경기도 양근군으로 개편되었으나,[4] 1908년 9월에 도평군과 합쳐져 양평군이 되었다.[2]
2. 4. 일제강점기 및 대한민국
참조
[1]
서적
증보 새 국사사전 (ENCYCLOPEDIA OF KOREAN HISTORY [증보] 새 국사사전)
교학사
[2]
법령
칙령 제69호 군을합치는데관한안건(勅令 第六十九號 郡을合치는데關한案件)
[3]
법령
칙령 제98호 지방제도의개정에관한안건(勅令 第九十八號 地方制度의改定에關한案件)
[4]
법령
칙령 제36호 지방제도와관제개정에관한안건(勅令 第三十六號 地方制度와官制改定에關한案件)
[5]
본문
[6]
법령
칙령 제98호 지방제도의개정에관한안건
[7]
법령
칙령 제36호 지방제도와관제개정에관한안건
[8]
법령
칙령 제69호 군을합치는데관한안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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