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는 개근천 위에 건설된 아치형 쌍굴 교각으로, 1934년 경부선 열차 운행을 위해 지어졌다. 한국 전쟁 당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이 발생한 현장으로, 1950년 7월 미군에 의해 250~300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되었다. 이 사건은 1999년 AP통신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이후 미국의 조사와 보고서 발표가 있었지만 공식적인 사과나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근리 사건 희생자들을 기리고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기 위해 노근리 평화공원이 조성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한국 전쟁에 관련된 시설 - 제1훈련소
제1훈련소는 한국 전쟁 당시 징집 병력의 기초 군사 훈련을 담당한 대한민국 국군 훈련 기관으로, 제주도를 중심으로 운영되었으며, 휴전 후 기능이 이관되어 폐쇄되었으나 일부 시설이 국가등록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 1934년 작품 -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은 라흐마니노프가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 주제를 바탕으로 작곡한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광시곡으로, 24개의 변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18번째 변주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1934년 작품 - 예산성당
예산성당은 충청남도 예산군에 위치한 1934년 완공된 성당으로,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조화롭게 사용되었고 한국 전통 건축 기법이 반영되어 서양 건축 문화의 토착화 사례로 평가받으며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충청북도의 국가등록문화유산 - 심천역
심천역은 1905년 개업한 경부선 소재의 지상역으로 섬식 승강장과 등록문화재 역사를 가지며 무궁화호가 정차하고 여객취급이 중단되었다가 재개되었으며 인근에 면사무소, 사찰, 우체국, 초등학교 등이 위치한다. - 충청북도의 국가등록문화유산 - 충청북도청
충청북도청은 충청북도의 행정을 총괄하는 기관으로, 도지사, 행정 및 정무부지사 산하의 여러 국·실, 직속기관, 사업소 등으로 구성되어 여성정책, 감사, 재난안전, 보건복지, 농정, 문화체육관광, 균형건설, 바이오환경 등 다양한 행정 업무를 수행하며 청주시 외 옥천군, 제천시에 출장소를 운영한다.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이름 |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
유형 | 국가등록문화재 |
지정 번호 | 59 |
지정일 | 2003년 6월 30일 |
주소 |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1길 3-2 (노근리) |
시대 | 일제강점기 |
소유자 | 국토해양부 |
면적 | 512.83m2 |
수량 | 교량 1기 |
문화재청 ID | 79,00590000,33 |
2. 역사적 배경
노근리 쌍굴다리는 개근천(愷勤川) 위에 무근콘크리트조로 축조된 아치형 쌍굴 교각이다. 1934년 경부선 열차의 운행을 위해 지어졌다.[2] 영동역에서 하행하여 황간역에서 3km 정도 못 미치는 지점에 있다.[3]
노근리 쌍굴다리는 한국 전쟁 당시 많은 양민들이 피살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의 현장이다.[4] 전쟁이 일어난 지 한달 뒤인 1950년 7월 25일부터 7월 29일까지 후퇴하던 미군이 영동읍 주곡리, 임계리 주민과 피난민들을 굴다리 안에 모아 놓고 집단 약 250명에서 300여명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학살하였다.[5] 굴다리에는 지금까지도 총탄 흔적(○, △ 표시)이 남아 있어 당시 상황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오랫동안 알려져 있지 않던 노근리 학살 사건은 1999년 미국 AP통신의 보도로 널리 알려졌고, 그 이후 국내 여러 주요 언론도 보도하였다. 미군이 일으킨 학살이기에 AP 내에서도 보도 결정이 쉽지 않았다.[6] 노근리 학살에 대한 보도는 그 이전에도 있었으나 미국 언론이 보도하기 전에는 한국의 주요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다.[7]
보도 이후 미국은 사건을 부정하려 하였고[4], 조사를 하는 동안 사건 당시 "진지로 접근하는 모든 피난민을 사살"하라는 협조가 공군에 요청된 것이 입증되었음에도[8], 이를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 즉 고의가 아닌 사고로 평가해 비판을 받았다.[9] 미국은 1년의 조사 이후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는 보고서를 작성하였으나[10], 2017년 6월까지도 공식적인 사과나 보상은 없는 상태이다.[11]
2. 1. 노근리 쌍굴다리의 건설
노근리 쌍굴다리는 개근천(愷勤川) 위에 무근콘크리트조로 축조된 아치형 쌍굴 교각이다. 1934년 경부선 열차의 운행을 위해 지어졌다.[2] 영동역에서 하행하여 황간역에서 3km 정도 못 미치는 지점에 있다.[3]
2. 2.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1950년 7월 25일부터 7월 29일까지 후퇴하던 미군이 영동읍 주민과 피난민들을 쌍굴다리 안에 가두고 약 250명에서 300여 명을 학살하였다.[5] 굴다리에는 당시 총탄 흔적이 남아있다.[5]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은 오랫동안 알려져 있지 않다가 1999년 미국 AP통신의 보도로 널리 알려졌고, 그 이후 국내 여러 주요 언론도 보도하였다. 미군이 일으킨 학살이기에 AP 내에서도 보도 결정이 쉽지 않았다.[6] 노근리 학살에 대한 보도는 그 이전에도 있었으나 미국 언론이 보도하기 전에는 한국의 주요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다.[7]
보도 이후 미국은 사건을 부정하려 하였고[4], 조사를 하는 동안 사건 당시 "진지로 접근하는 모든 피난민을 사살"하라는 협조가 공군에 요청된 것이 입증되었음에도[8], 이를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 즉 고의가 아닌 사고로 평가해 비판을 받았다.[9] 미국은 1년의 조사 이후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는 보고서를 작성하였으나[10], 2017년 6월까지도 공식적인 사과나 보상은 없는 상태이다.[11]
2. 3. 사건의 은폐와 폭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은 오랫동안 알려져 있지 않다가 1999년 미국 AP통신의 보도로 널리 알려졌다.[6] 미군이 일으킨 학살이었기 때문에 AP통신 내부에서도 보도 결정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6] AP통신의 보도 이후 국내 여러 주요 언론도 노근리 학살 사건을 보도하였다. 노근리 학살에 대한 보도는 그 이전에도 있었으나, 미국 언론이 보도하기 전에는 한국의 주요 언론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7]보도 이후 미국은 사건을 부정하려 하였고[4], 조사를 하는 동안 사건 당시 "진지로 접근하는 모든 피난민을 사살"하라는 협조가 공군에 요청된 것이 입증되었음에도[8], 이를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 즉 고의가 아닌 사고로 평가해 비판을 받았다.[9] 미국은 1년의 조사 이후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는 보고서를 작성하였으나[10], 2017년 6월까지도 공식적인 사과나 보상은 없는 상태이다.[11]
2. 4. 미국의 대응과 비판
미국은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에 대한 보도 이후 사건을 부정하려 하였다.[4] 조사 과정에서 "진지로 접근하는 모든 피난민을 사살"하라는 협조가 공군에 요청된 것이 입증되었음에도[8], 미국은 이를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 즉 고의가 아닌 사고로 평가해 비판을 받았다.[9] 미국은 1년의 조사 이후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는 보고서를 작성하였으나[10], 공식적인 사과나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11]3. 노근리 평화공원
노근리 사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역사적 교훈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다.
노근리 사건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노근리 특별법이 제정된 후,[12] 2008년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의 보전과 희생자의 추념을 위한 평화공원의 건립이 추진되었다.[13] 역사공원은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와 인접하여 지어졌으며 기념관과 위령탑, 조각공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14]
노근리 평화공원의 관람은 무료이며 3월에서 10월까지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한다.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과 추석은 휴관한다.[15]
3. 1. 조성 배경
노근리 사건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노근리 특별법이 제정된 후,[12] 2008년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의 보전과 희생자의 추념을 위한 평화공원의 건립이 추진되었다.[13] 역사공원은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와 인접하여 지어졌으며 기념관과 위령탑, 조각공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14]3. 2. 시설 및 구성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는 노근리 사건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노근리 특별법이 재정된 후,[12] 2008년 보전과 희생자의 추념을 위한 평화공원의 건립이 추진되었다.[13] 역사공원은 쌍굴 다리와 인접하여 지어졌으며 기념관, 위령탑, 조각공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14]
3. 3. 운영 정보
노근리 사건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노근리 특별법이 제정된 후[12] 2008년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의 보전과 희생자의 추념을 위한 평화공원의 건립이 추진되었다.[13] 역사공원은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와 인접하여 지어졌으며 기념관과 위령탑, 조각공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14]노근리 평화공원의 관람은 무료이며 3월에서 10월까지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한다.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과 추석은 휴관한다.[15]
4.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4. 1. 진상 규명 노력
4. 2. 역사적 교훈과 과제
참조
[1]
문화재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http://www.heritage.[...]
문화재청
[2]
문화재
노근리 쌍굴다리
http://www.e-minwon.[...]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종목 정보
[3]
지도
노근리 쌍굴다리
https://www.google.c[...]
구글 지도
[4]
뉴스
노근리 진실 ‘의도적 은폐’
http://h21.hani.co.k[...]
한겨레21
2000-12-12
[5]
웹사이트
사건개요
http://nogunri.yd21.[...]
노근리 평화공원
2018-07-11
[6]
뉴스
AP도 ‘노근리학살’ 기사 1년간 보도 못했다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08-11-13
[7]
간행물
한 미 언론의 노근리 사건 보도 비교 연구
https://www.kacis.or[...]
2018-07-11
[8]
뉴스
결과 없는 미군 조사
http://h21.hani.co.k[...]
한겨레21
2000-08-02
[9]
뉴스
"민주주의"라는 작전 외 사람들
http://h21.hani.co.k[...]
한겨레21
2014-07-17
[10]
뉴스
WP, 미 국방부 조사 결과 미군 노근리 양민 학살 인정
https://www.rfa.org/[...]
자유아시아방송
2000-12-05
[11]
뉴스
1950년 노근리 사건, 美 사과·보상 아직 없다니 충격
http://www.hankookil[...]
한국일보
2017-06-02
[12]
웹사이트
조성 배경
http://nogunri.yd21.[...]
노근리 평화공원
2018-07-11
[13]
뉴스
노근리 역사공원 ‘첫 삽’ 떴다
http://www.hani.co.k[...]
한겨레
2018-07-11
[14]
웹사이트
조감도 및 시설안내
http://nogunri.yd21.[...]
노근리 평화공원
2018-07-11
[15]
웹사이트
관람안내
http://nogunri.yd21.[...]
노근리 평화공원
2018-07-1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