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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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와이후는 1963년 효고현 다카라즈카시에서 미니 커뮤니티지로 창간된 잡지이다. 1975년 도쿄 이치가야로 편집부를 이전하며 제2차 와이후를 시작했고, 2006년 도쿄 구니타치시로 이전하여 제3차 와이후가 시작되었다. 전 편집장 다나카 키미코와 하야시 미치요시 사이에는 출판물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으며, 이는 당시 일본 사회의 가부장적 질서와 여성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촉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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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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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혁
연도 | 주요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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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 효고현 다카라즈카시의 한 단지에서 가리판 인쇄 방식의 미니 커뮤니티지로 창간되었다. |
1975년 | 편집부를 도쿄도 이치가야로 이전하고, 다나카 기미코 편집장과 와다 요시코 부편집장 체제로 138호부터 제2차 『와이후』를 시작했다. |
2006년 | 편집부를 도쿄도 구니타치시로 이전하고, 아카이 구미코 편집장과 마에 미쓰코 부편집장 체제로 320호부터 제3차 『Wife』를 시작했다. |
2. 1. 창간과 초기 활동
1963년 효고현 다카라즈카시의 한 단지에서 가리판 인쇄를 이용한 미니 커뮤니티지로 처음 시작되었다. 1975년에는 편집부를 도쿄도 이치가야로 이전하였고, 다나카 기미코 편집장과 와다 요시코 부편집장 체제로 138호부터 제2차 『와이후』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6년에는 편집부를 도쿄도 구니타치시로 다시 이전했으며, 아카이 구미코 편집장과 마에 미쓰코 부편집장 체제로 320호부터 제3차 『Wife』를 시작했다.2. 2. 도쿄 이치가야 시대 (제2차 와이후)
1975년 편집부를 도쿄도 이치가야로 이전하였다. 이때 편집장 다나카 기미코와 부편집장 와다 요시코 체제로 138호부터 제2차 『와이후』가 시작되었다.2. 3. 도쿄 구니타치 시대 (제3차 와이후)
2006년 도쿄도 구니타치시로 편집부를 이전했다. 편집장은 아카이 구미코, 부편집장은 마에 미쓰코 체제로 320호부터 제3차 『Wife』를 시작했다.3. 하야시・다나카 논쟁
와이후 전 편집장 다나카 키미코와 도쿄 여자 대학교 교수인 하야시 미치요시 사이에는 각자의 저서를 둘러싸고 주목할 만한 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은 주로 주부의 역할과 여성의 권리에 대한 시각 차이에서 비롯되었으며, 1998년 하야시 교수의 『주부의 복권』 출간과 이에 대한 다나카 전 편집장의 비판으로 시작되어 상호 비판으로 이어졌다. 이 논쟁은 1990년대 후반 일본 사회의 여성 관련 담론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상세한 논쟁 과정은 하위 문단에서 다룬다.
3. 1. 논쟁의 발단
전 편집장 다나카 키미코와 도쿄 여자 대학교 교수인 하야시 미치요시 사이에는 출판된 책을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다.1998년 4월, 하야시 미치요시가 고단샤에서 『주부의 복권』을 출판한 것이 발단이었다. 같은 해 9월, 다나카 키미코는 한 강연회에서 이 책을 직접 지목하여 비판했다.
3. 2. 논쟁의 전개
전 편집장 다나카 키미코와 도쿄 여자 대학교 교수인 하야시 미치요시 사이에는 출판한 책을 둘러싸고 여러 논쟁이 있었다.- 1998년 4월, 하야시 미치요시는 『주부의 복권』(고단샤)을 출간했다.
- 1998년 9월, 다나카 키미코는 한 강연회에서 하야시의 『주부의 복권』을 직접 언급하며 비판했다.
- 1999년 3월, 다나카 키미코는 하야시의 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주부의 복권」은 가능한가』를 샤카이 시소샤에서 출판했다.
- 1999년 8월, 하야시는 자신의 저서 『페미니즘의 해독』(제6장 "주부를 미혹시키는 컬트적 권유")을 통해 다나카 키미코의 『「주부의 복권」은 가능한가』와 다나카가 주최하는 "와이후"의 활동을 비판했다.
3. 3. 논쟁의 의의와 영향
전 편집장 다나카 키미코와 도쿄 여자 대학교 교수인 하야시 미치요시 사이에는 각자의 저서를 둘러싸고 주목할 만한 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은 주로 하야시 교수의 저서 『주부의 복권』과 이에 대한 다나카 전 편집장의 비판으로 시작되어, 상호 비판으로 이어졌다. 논쟁의 주요 경과는 다음과 같다.시기 | 저자/주체 | 저서/활동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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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4월 | 하야시 미치요시 (도쿄 여자 대학교 교수) | 『주부의 복권』 (고단샤) | 출판 |
1998년 9월 | 다나카 키미코 (전 편집장) | 강연회 | 하야시 미치요시의 『주부의 복권』을 지목하여 비판 |
1999년 3월 | 다나카 키미코 | 『「주부의 복권」은 가능한가』 (샤카이 시소샤) | 하야시의 『주부의 복권』을 비판하는 내용 출판 |
1999년 8월 | 하야시 미치요시 | 『페미니즘의 해독』 (제6장 "주부를 미혹시키는 컬트적 권유") | 다나카 키미코의 저서 『「주부의 복권」은 가능한가』 및 다나카가 주최하는 "와이후"지의 활동을 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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