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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봉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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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월봉서원은 고봉 기대승의 장남 기효증이 부친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1578년 망천사를 창건하면서 시작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여러 차례 이건과 사액을 거쳐 서원으로서의 규모를 갖추었으며, 박상, 박순, 김장생, 김집 등을 추가로 배향했다. 1868년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41년 빙월당을 신축하며 복원되었다. 현재 망천문, 명성재, 존성재, 빙월당, 숭덕사, 장판각, 묘정비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춘추향제와 교육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 역사

1578년(선조 11) 기대승의 아들 기효증이 광산구 신룡동에 망천사(望川祠)를 창건하면서 월봉서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1] 임진왜란으로 피해를 입은 후, 1646년(인조 24)에 광산구 산월동으로 옮겼다. 1654년(효종 5)에 '월봉'이라는 사액을 받았고, 1669년(현종 10)에 서원을 다시 지어 사액 서원으로서 규모를 갖추었다. 1671년(현종 12)에는 박상, 박순을, 1683년(숙종 9)과 1769년(영조 45)에는 김장생김집을 추가로 모셨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2] 1938년부터 복원 논의가 시작되어 1941년 빙월당[3]을 시작으로 여러 건물들이 복원 및 건립되었다. 1991년에 서원 복원이 완료되었고,[5] 현재는 춘추향제와 교육문화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2. 1. 창건과 사액 (16세기~17세기)

1578년(선조 11) 고봉 기대승의 장남 함재 기효증(奇孝曾)이 선친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고마봉(叩馬峯) 아래 낙암(樂菴, 현 광산구 신룡동)에 '''망천사'''(望川祠)를 창건하여 제향하면서부터 비롯되었다.[1]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었다.

1646년(인조 24) 망천사를 망월봉(望月奉) 아래 동천(현 광산구 산월동)으로 옮겼다.

1654년(효종 5) 8월 유림들의 청원으로 '''월봉'''(月峯)이라는 사액이 내려졌다. 1655년(효종 6) 4월 예조 낭관 원격(元格)이 제문을 받들고 와서 제사를 지냈다.

1669년(현종 10) 서원을 다시 지었다. 사우(祠宇)·동재(明誠齋)·서재(存省齋)·강당(忠儒堂)을 건립하여 사액 서원으로서의 규모를 갖추었다.

1671년(현종 12) 우암 송시열 등의 건의로 인근 덕산사(德山祠)에 모셔져 있던 눌제 박상과 사암 박순을 옮겨와 모셨다.

1683년(숙종 9)에 김장생을 추가로 모셨다.

2. 2. 훼철과 복원 (19세기~현재)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서원 철폐령 때 훼철되었다.[2]

1938년 문중 논의를 거쳐 서원 복원을 결의하여, 1941년 현 위치인 백우산 기슭 광곡(너브실) 마을 종가터에 빙월당[3]을 신축하여 강당으로 하였다.

1972년 4칸의 고직사(庫直舍)를 건립하였다. 1978년 외삼문(外三門)과 3칸의 장판각(藏板閣)을 건립하였다. 1979년 8월 빙월당이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9호로 등록되었다.

1982년 사당(祠堂) 숭덕사(崇德祠)와 내삼문(內三門)을 건립하고, 1983년 장판각(藏板閣)[4]을 건립하였다. 1990년 명성재(明誠齋) 4칸, 존성재(存省齋) 4칸 및 외삼문(外三門)을 건립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1991년 서원 복원을 완료하고, 위패를 봉안하여 의전(儀典)을 순성(順成)하였다. 1998년 묘정비를 건립하였다.[5]

춘추향제는 매년 음력 3월과 9월 상정일(上丁日)에 봉행되고 있다. 기타 기대승의 학덕을 기리며 추모하는 행사로 시민과 청소년을 위한 교육문화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3. 주요 시설

월봉서원의 주요 시설로는 망천문, 명성재와 존성재, 빙월당, 숭덕사, 장판각, 묘정비 등이 있다. 망천문은 서원의 정문이다.[6] 명성재와 존성재는 유생들이 기거하며 공부하는 기숙사이다.[6] 빙월당은 강당으로, 정조가 하사한 '빙심설월'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광주광역시의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었다.[6] 숭덕사는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매년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낸다.[6] 장판각은 책을 만드는 목판을 보관하는 곳으로, 오늘날의 출판소와 문서고라고 할 수 있다. 고봉집 목판 등이 보관되어 있다.[6] 묘정비는 1998년에 세워졌으며, 서원의 내력을 기록하고 있다.[1]

3. 1. 망천문(望川門)

서원의 입구 정문이다.[6]

3. 2. 명성재(明誠齋)와 존성재(存省齋)

서원의 기숙사로 동재를 '명성재'라 하여 '배움에 있어서 밝은 덕을 밝히는데 성의를 다하'라는 의미이다. 서재는 '존성재'라고 하였는데, '자기를 성찰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6]

3. 3. 빙월당(氷月堂)

빙월당(氷月堂)은 정조가 하사했다고 전해지는 <빙심설월>(氷心雪月)에서 당호(堂號)를 차용(借用)하였다.[6] 광주광역시의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었다.

3. 4. 숭덕사(崇德祠)

매년 음력 3월과 9월 상정일(上丁日)에 춘추향제를 지내는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6]

3. 5. 장판각(藏板閣)

책을 만드는 목판을 보관해 둔 곳으로 오늘날의 출판소와 문서고라고 할 수 있다. 장판각에는 고봉집 목판 474판과 <<논사록>> 등이 보관되어 있다.[6]

3. 6. 묘정비(廟庭碑)

1998년 성균관장 경주인 최근덕(崔根德)이 비명을 지었으며, 서원의 내력을 기록하여 세운 비이다.[1]

참조

[1] 문서 김장생 아버지 김계휘, 정철 관련 내용
[2] 문서 광주 최초 서원과 사액 서원 관련 내용
[3] 문서 빙월당 당호 유래
[4] 서적 고봉집
[5] 문서 비문 내용 (최근덕 작성) 1998-05
[6] 간행물 월봉서원 가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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