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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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는 19세기 말 사라 윈체스터가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건설한 대저택이다. 윈체스터는 남편의 사망 후 영매의 조언에 따라, 윈체스터 소총으로 희생된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 이 집을 짓기 시작했으며, 끊임없이 증축을 계속했다는 전설이 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으로 건물 일부가 파괴되었으며, 현재는 관광 명소로 운영되고 있다. 이 집은 다양한 미신과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이야기로 유명하며, 영화, 소설, 드라마 등 대중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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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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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 | |
위치 | 미국캘리포니아주산호세 525 South Winchester Boulevard, 95128 |
좌표 | 37° 19′ 6.10″ N, 121° 57′ 2.74″ W |
웹사이트 |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 공식 웹사이트 |
상세 정보 | |
유형 | 해당 없음 |
건축 양식 | 빅토리아 건축, 고딕 건축 |
건설 기간 | 1884년–1906년 |
등재 정보 | |
국가 사적 등록 번호 | 74000559 |
등재일 | 1974년 8월 7일 |
캘리포니아 역사 랜드마크 지정 번호 | 868 |
캘리포니아 역사 랜드마크 지정일 | 1925년 |
2. 사라 윈체스터
사라 윈체스터는 1839년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서 태어나 1862년 윌리엄 워트 윈체스터와 결혼했다. 1866년 딸 애니 파디 윈체스터를 낳았지만, 영양실조로 한 달 만에 사망했다. 1880년부터 1881년 사이 어머니, 시아버지, 남편이 모두 사망하면서 남편으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남편이 사망하면서 사라 윈체스터는 2000만달러 이상의 재산을 상속받았고, 윈체스터 리피팅 암스의 지분 50%를 소유하여 하루 약 1000USD (2006년 기준 약 21000USD)의 수입을 얻었다. 이 상속 재산은 1913년까지 과세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저택을 증축했다.[1]
1884년에는 맏언니마저 사망했고, 윈체스터는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기 시작했다.[1] 의사의 권유로 1885년, 46세의 나이에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1]
윈체스터는 남은 세 자매를 캘리포니아로 초대했고, 자매들은 이주했다. 1890년, 조카 메리언 메리먼(데이지)이 비서로 사업 서신과 은행 업무를 도왔다. 이들은 자선 기구 협회와 국제 적십자 및 적신월 운동 회원이었다. 1903년, 윈체스터는 데이지와 프레데릭 매리엇 3세의 결혼 비용을 지불하고 캘리포니아주 애더턴에 집을 마련해주었다. 1904년에는 코요테 포인트 레크리에이션 구역 북쪽 캘리포니아주 벌링게임에 하우스보트(당시 방주)를 구입했다.
윈체스터는 1922년 9월 7일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 1. 초기 생애와 결혼
사라 윈체스터는 1839년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서 태어났으며,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샐리(Sallie)라고 불렸다. 1862년, 그녀는 윈체스터 반복 사격 회사의 상속자인 윌리엄 워트 윈체스터와 결혼했다.
윈체스터 부부는 1866년에 딸 애니 파디 윈체스터를 낳았으나, 아이는 영양실조로 진단받아 한 달 만에 사망했다.
2. 2. 가족의 비극과 유산
사라 윈체스터는 1839년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서 태어나 1862년 윌리엄 워트 윈체스터와 결혼했다. 1866년 딸 애니 파디 윈체스터를 낳았지만, 영양실조로 한 달 만에 사망했다. 1880년 가을부터 1881년 봄 사이 어머니, 시아버지, 남편이 모두 사망하면서 남편으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남편이 사망하면서 사라 윈체스터는 2천만 달러 이상의 재산을 상속받았고, 윈체스터 리피팅 암스의 지분 50%를 소유하여 하루 약 1000USD (2006년 기준 약 21000USD)의 수입을 얻었다. 이 상속 재산은 1913년까지 과세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저택을 증축했다.[1]
2. 3. 캘리포니아로의 이주
1866년, 윈체스터는 딸 애니 파디 윈체스터를 낳았지만, 아이는 영양실조로 한 달 만에 사망했다.[1] 1880년 가을부터 1881년 봄 사이 윈체스터의 어머니, 시아버지, 남편이 모두 사망했다.[1] 1884년에는 맏언니마저 사망했고, 윈체스터는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기 시작했다.[1] 의사는 더 따뜻하고 건조한 기후가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1]1885년, 46세의 나이에 윈체스터는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1] 메리 조 이그노포(Mary Jo Ignoffo)는 저서 『미궁의 포로: 사라 L. 윈체스터, 소총 재산의 상속녀』에서 의사의 권유, 1870년대에 남편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여행했던 행복한 기억, 캘리포니아의 날씨와 건강상의 이점에 대한 광고가 윈체스터가 이주를 결정한 요인일 수 있다고 밝혔다.[1]
3.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의 건설
이 저택은 38년 동안 계속 건설되었고, 저주받았다는 소문이 있다. 이 저택은 윈체스터 리피팅 암스의 2대 경영주였던 윌리엄 워트 윈체스터의 미망인 세라 윈체스터의 개인 주택이었지만, 현재는 관광지가 되었다. 세라 윈체스터의 지시로 1922년 9월 5일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24시간 365일, 저택 공사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건설 공사비는 약 5500억달러로 추정된다. 저택은 기본적인 설계 계획 자체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세라 윈체스터는 남편과 딸이 갑작스럽게 질병으로 죽은 후, 총에 맞아 사망한 사람들의 영혼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믿었다고 알려져 있다. 저택이 윈체스터 라이플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들의 영혼의 저주를 받아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하여, 이를 피하기 위해 숨겨진 방과 비밀 통로를 계속 증축하였다고 한다.
3. 1. 건설 배경과 과정
사라 윈체스터는 1839년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서 태어나, 1862년 윈체스터 리피팅 암스의 2대 경영주인 윌리엄 워트 윈체스터와 결혼했다. 1866년 딸 애니를 낳았으나, 영양실조로 한 달 만에 사망했다. 1880년부터 1881년 사이 어머니, 시아버지, 남편이 모두 사망했고, 1884년에는 맏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남편으로부터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게 된 그녀는 의사의 권유와 캘리포니아의 좋은 환경을 찾아 1885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4]
1886년, 윈체스터는 윈체스터 반복 사격 회사의 샌프란시스코 에이전트의 안내로 산타클라라 계곡에서 45에이커 규모의 농장을 구입하고, 8개의 방이 있는 농가를 포함한 이 부동산을 '라냐다 빌라(Llanada Villa)'라고 이름 지었다.[4] 이후 그녀는 최소 두 명의 건축가를 고용했지만 해고하고, 스스로 계획을 세워 집을 증축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당시 흔했던 만국 박람회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건축 프로젝트를 직접 관리하며 당대 건축의 선구자로 여겨지기도 한다.[5]
윈체스터는 공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건축을 반복했고, 그 결과 미로와 같은 독특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1897년에는 7층 탑을 16번이나 다시 지었다는 기록도 있다. 증축 결과, 집이 커지면서 외부 창문과 문이 막혀 내부 벽으로 막히는 경우도 생겼다. 집의 여러 부분에 최대 5개 층이 추가되었으며, 빅토리아 시대 양식을 기본으로 고딕 건축[6]과 로마네스크 건축[7] 요소가 섞여 있다.
일반적으로 윈체스터가 남편에게서 2천만 달러의 유산과 매일 1,000달러의 수입을 얻었다고 알려져 있지만,[8] 실제로는 1881년 남편의 유산은 362330USD였으며, 시어머니 사망 후에야 상속받을 수 있는 주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윈체스터는 윈체스터 반복 사격 회사의 주식 777주를 소유하여 77700USD의 가치를 지녔고, 1880년에서 1885년 사이에 연평균 7770USD의 배당금을 받았다.[4]
윈체스터가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고 집을 짓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1967년에 출판된 책에서는 윈체스터가 보스턴의 영매 아담 쿤스를 만나 윈체스터 소총에 희생된 영혼들의 저주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그들을 위한 집을 짓되 절대 완공하지 말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윈체스터가 영매를 만났다는 증거는 없으며, 아담 쿤스라는 인물도 찾을 수 없었다.[4]
1895년경부터 윈체스터와 그녀의 저택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사들은 윈체스터가 건설을 중단하면 불운이 닥칠까 두려워 끊임없이 공사를 진행한다고 보도했지만, 윈체스터의 지인은 이러한 소문을 부인하며 그녀가 매우 분별 있는 여성이라고 주장했다.
윈체스터가 유령을 혼란시키기 위해 집을 기이하게 지었다는 믿음은 18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그녀가 사망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아무 데도 열리지 않는 문과 창문, 얕은 계단, 천장으로 끝나는 계단 등은 이러한 믿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사용되지만, 실제로는 1906년 지진으로 인한 피해, 윈체스터의 건강 악화, 온실의 배수 시설 등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하다. 윈체스터는 지진 피해 이후 집을 재건하지 않았다.
저택 건설은 1922년 9월 5일 윈체스터가 사망할 때까지 38년간 계속되었으며, 총 공사비는 약 5500000USD로 추정된다.
3. 2. 건축학적 특징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는 빅토리아 시대 양식을 기본으로, 고딕 건축[2]과 로마네스크 건축[3]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 이전에는 7층이었지만, 현재는 4층이 가장 높다. 건물은 주로 세쿼이아 목재 골조로 설계되었으며, 유동적인 기초 덕분에 1906년 지진과 1989년 로마 프리에타 지진에서 완전히 붕괴되지 않았다.
38년간의 지속적인 공사로 인해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1897년 ''샌호세 뉴스''에는 7층짜리 탑을 16번이나 다시 지었다는 보도가 있을 정도였다.[1] 윈체스터 부인은 공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건축을 반복했고, 이는 미로 같은 디자인으로 이어졌다.[1] 집이 커지면서 제거되지 않은 벽으로 막힌 외부 창문과 문이 생겨났다.[1]
이러한 독특한 구조는 윈체스터 부인이 윈체스터 총에 의해 희생된 영혼들을 피하기 위해, 또는 혼란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아무 데도 열리지 않는 문과 창문, 천장으로 끝나는 계단, 바닥의 함정문 등은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이한 구조들은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으로 인한 피해, 윈체스터 부인의 건강 악화, 온실의 배수 시설 등 현실적인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최대 규모였을 때, 이 집은 약 500개의 방을 가지고 있었다.[4] 현재는 40개의 침실, 2개의 무도회장을 포함하여 약 160개의 방이 있다. 또한 47개의 벽난로, 1만 장의 창유리, 17개의 굴뚝 (2개의 건설 흔적 포함), 2개의 지하실, 3개의 엘리베이터가 있다.
3. 2. 1. 내부 디자인과 장식
무도회장의 벽과 천장은 조각된 나무로 마감되었다. 바닥은 티크, 단풍나무, 마호가니 등의 나무를 사용하여 복잡한 패턴으로 꾸며졌다. 큰 벽돌 벽난로 양옆에는 셰익스피어의 인용구가 새겨진 두 개의 창문이 있었다.[1] 2층에는 응접실과 재봉실이 딸린 침실이 있었다. 벽은 린크루스타 벽 덮개로 가죽이나 금속 같은 느낌을 냈다.[1] 천장은 몰딩, 스텐실, 모조 마감 등으로 장식되었다.[1] 독일산 샹들리에, 오스트리아산 예술 유리, 아시아산 가구, 프랑스산 그림 등이 실내를 장식했다.[1]하인 호출용 안내기(초기형 인터콤)가 설치되었다.[1] 경사진 바닥의 실내 정원에는 배수구가 있어, 물이 빠져나가 야외 꽃에 물을 주는 파이프가 있는 트랩 도어로 연결되었다.[1] 물 펌프와 발전기도 설치되었다.[1] 윈체스터 부인의 키가 약 1.22m 약 25.40cm에 불과하고 건강 문제도 있어, 44개 계단으로 약 3.05m만 올라가는 계단이 만들어졌다.[1]
창문은 파스텔 색상의 비대칭 디자인에 날카로운 모따기가 특징이다. 위층 창문에는 당시 유행하던 거미줄 트레이서리가 있었다.[6] 벽돌 벽난로 좌우 창문에는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2세"와 "트로일루스와 크레시다" 구절이 새겨져 있다.[6] 오랫동안 창문이 티파니 & 컴퍼니(Tiffany & Co.) 제품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모따기 유리를 거의 사용하지 않은 점,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크레이그다로크 성 창문과 유사한 점 등으로 건축 역사가 짐 울프는 존 맬론(퍼시픽 아메리칸 데코레이티브 컴퍼니)을 유력 제작자로 추정했다. 이는 1894년 7월 소인이 찍힌 던스뮤어 회사 봉투와 윈체스터 부인의 메모가 복원 중이던 식당 벽에서 발견되면서 확인되었다.[8] 구입한 예술 유리 창문 중 다수는 설치되지 않고 보관되었다.[6]
3. 2. 2. 특별한 설비
이 저택에는 증기 난방, 공기 강제 난방, 현대적인 실내 화장실과 배관 시스템, 푸시 버튼 방식의 가스등, 실내 배관에서 나오는 온수 샤워 등 당시 건축물에서는 드물게 볼 수 있는 편리한 설비들이 갖춰져 있었다. 또한 3개의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미국에서 유일한 수평 수압식 엘리베이터 피스톤을 사용했다.3. 3.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의 영향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으로 란다 빌라(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1][2] 7층 탑과 대부분의 굴뚝이 무너졌고, 한쪽 날개 전체와 3층, 4층 증축 부분이 파괴되었다.[2] 윈체스터 부인은 잔해를 제거했지만, 이후 저택에 대한 추가적인 조치는 거의 하지 않았다.[2] 이 때문에 발코니가 있던 곳에 아무것도 연결되지 않는 문, 한때 창틀이었던 곳에서 튀어나온 파이프, 상층으로 이어지다 갑자기 끝나는 계단 등이 남게 되었다.[3]지진 당시 윈체스터 부인이 샌호세 자택에 갇혔다는 소문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3] 그녀는 캘리포니아에 여러 채의 집을 소유했으며, 지진 이후에는 애서턴 자택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2]
지진 이전 저택은 7층 건물이었지만, 피해로 인해 현재는 가장 높은 곳이 4층이다. 세쿼이아 목재 골조로 설계되었고, 기초가 다소 부동적인 구조였기 때문에 1906년 지진과 1989년 로마 프리에타 지진에서 완전히 붕괴되지 않았다.
4. 전설과 미스터리
윈체스터 리피팅 암즈의 2대 경영주 윌리엄 워트 윈체스터의 미망인 사라 윈체스터는 남편과 딸의 죽음 이후, 1922년 9월 5일 사망할 때까지 38년간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를 건설했다. 이 공사에는 약 550만 달러가 소요되었으며, 저택은 설계 계획 없이 지어졌다는 특징이 있다.
사라 윈체스터가 윈체스터 총에 희생된 영혼들의 저주를 받았다고 믿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다. 그녀는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피하기 위해 숨겨진 방과 비밀 통로를 계속 만들었다고 한다.[1]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윤색되고 과장된 측면이 있다.[1]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에는 숫자 13과 관련된 요소들이 많지만, 이것이 윈체스터 부인의 집착 때문인지, 후대에 추가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또한, 그녀가 매일 밤 강령회를 열었다는 전설도 있지만, 직원들은 이를 부인했다.
4. 1. 영매와의 만남과 저주
1866년에 딸 애니를, 1881년에 남편을 잃고 깊은 슬픔에 잠긴 사라 윈체스터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영매의 도움을 구했다. 통설에 따르면, "보스턴의 영매"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이 영매는 윈체스터 가문이 대대로 제조해 온 총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기 때문에, 가문에 걸린 저주가 존재한다고 사라에게 말했다고 한다. 영매는 총 때문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었고, 그들의 영혼이 지금 복수의 기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보스턴 영매는 사라 윈체스터에게 코네티컷 주뉴헤이븐에 있는 자택을 나와 서쪽으로 여행하라고 말했으며, "미국 서부에 도착한 그곳에 당신 자신과 그 끔찍한 총으로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집을 지으세요. 집 건설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만약 계속 짓는다면, 당신은 오래 살 것입니다. 만약 멈춘다면, 당신은 죽을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사라 윈체스터는 실제로 서쪽으로 이사하여 캘리포니아 주에 정착하여 그녀의 저택 건설 공사를 시작했다.하지만 윈체스터가 영매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수년에 걸쳐 다양한 소문, 과장, 신화에 의해 윤색되었으며, 대중적인 작가들은 전설을 강화하기 위해 집과 그 소유자에 대한 세부 사항을 왜곡하거나 만들어냈다.[1] 윈체스터가 영매를 만났다는 주장은 그 이후 팜플렛과 기사에서 반복되었다.[1] 이그노포에 따르면, 윈체스터가 당시 그녀의 지위의 여성들에게 흔한 관행이었기 때문에 초능력 영매를 만났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렇게 했다는 증거는 없다.[1] 학자인 에밀리 메이스와 다른 사람들은 영매 잡지인 ''배너 오브 라이트''와 이 지역의 영매들을 나열한 보스턴 시 디렉토리를 살펴보았지만, 아담 쿤스라는 이름의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1]
4. 2. 끊임없는 건설의 이유
사라 윈체스터가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의 건설을 멈추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그녀가 윈체스터 소총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영혼에 시달렸고, 그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 끊임없이 집을 지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윈체스터는 영매로부터 윈체스터 가문에 저주가 내렸으며, 서부로 가서 자신과 총에 희생된 영혼들을 위한 집을 짓되, 절대로 공사를 멈추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만약 공사를 멈추면 죽게 될 것이라는 경고였다.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수지 스미스의 저서 ''유명한 미국 유령''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윈체스터가 실제로 영매를 만났다는 증거는 없다. 학자 에밀리 메이스와 다른 사람들은 당시 영매 잡지와 보스턴 시 디렉토리를 조사했지만, 아담 쿤스라는 이름의 영매는 찾을 수 없었다.
1895년경부터 신문들은 윈체스터와 그녀의 저택 건설에 대한 추측성 기사를 쏟아냈다. 그녀가 이웃과 교류하지 않고, 총기 산업으로 재산을 모았다는 사실은 미신적인 이야기를 부추겼다. 신문들은 윈체스터가 건설 중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끊임없이 공사를 진행한다고 보도했고, 이는 결국 그녀가 공사를 멈추면 죽을 것이라고 믿었다는 이야기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신적인 시각에 반대하는 기사도 있었다. 익명의 지인은 윈체스터가 매우 분별 있는 여성이라며 터무니없는 소문이라고 반박했다.
윈체스터가 유령을 혼란시키기 위해 집을 기이하게 지었다는 믿음은 18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그녀의 사후에 더욱 커졌다. 아무 데도 열리지 않는 문과 창문, 얕은 계단, 천장으로 끝나는 계단 등은 그녀의 영성과 정신 상태에 대한 의심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이한 구조들은 1906년 지진으로 인한 피해, 윈체스터의 건강 악화 등 현실적인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20세기 초에는 윈체스터가 윈체스터 소총으로 인한 죽음과 막대한 재산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는 믿음이 널리 퍼졌다. 하지만 1800년대에 윈체스터 소총은 생존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녀가 죄책감을 느꼈을 가능성은 낮다는 주장도 있다.
결론적으로, 사라 윈체스터가 끊임없이 저택을 건설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죄책감 때문이라는 등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4. 3. 유령과 초자연 현상
이 저택은 38년 동안 계속 건설되어 저주받았다는 소문이 있다. 일반적인 믿음에 따르면, 세라 윈체스터는 남편과 딸이 갑작스럽게 질병으로 사망한 후 총에 맞아 죽은 영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는 윈체스터 라이플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의 영혼의 저주로 인해 저택이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이 때문에 언제든지 피할 수 있도록 숨겨진 방과 비밀 통로를 계속 증축했다.[1]이러한 믿음은 1967년 수지 스미스의 저서 ''유명한 미국 유령''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스미스에 따르면, 윈체스터는 보스턴에서 아담 쿤스라는 영매를 만났고, 쿤스는 윈체스터와 그녀의 가족이 윈체스터 소총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의 유령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 유령들을 위한 집을 짓되 절대 완공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1] 그러나 에밀리 메이스 등 학자들은 영매 잡지 ''배너 오브 라이트''와 보스턴 시 디렉토리에서 아담 쿤스라는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1]
윈체스터가 유령을 혼란시키고 막기 위해 이상한 구조를 만들었다는 믿음과 그녀의 정신 상태에 대한 의심은 18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그녀가 사망한 이후 더욱 커졌다. 아무 데도 열리지 않는 문과 창문, 얕은 계단, 천장으로 끝나는 계단, 내부 빗장 창문, 바닥 함정문 등은 윈체스터의 영성과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증거로 사용된다. 그러나 초자연 현상 조사원 니켈(Nickell)과 이그노포(Ignoffo)는 이러한 기이한 점들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제시한다. 빗장 창문은 원래 외부 창문이었으나 집이 확장되면서 막혔고, 아무 데도 열리지 않는 문과 창문은 1906년 지진으로 집이 심하게 손상된 결과였다. 작은 계단은 윈체스터의 건강 악화로 인해 설치되었고, 함정문은 온실에서 과도한 물을 야외 정원으로 배출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지역 주민들이 집에서 "유령 음악"이 들린다고 주장한 것은 윈체스터가 잠을 이루지 못할 때 그랜드 볼룸에서 펌프 오르간을 연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윈체스터가 금 접시에 호화로운 음식을 담아 금고에 보관하고 영혼들을 위한 파티를 열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니켈은 그녀의 사후 금고에서 금 접시는 발견되지 않았고, 개인적인 기념품과 아기의 머리카락 뭉치만 발견되었다고 기록했다.
방문객과 투어 가이드들은 차가운 기운, 발소리, 요리 냄새, 이상한 소리, 속삭임, 문과 창문이 쾅 닫히는 소리, 누군가 지켜보는 듯한 느낌 등을 경험했다고 주장한다. 조사관 조 니켈은 이러한 현상이 이 집이 미국에서 가장 유령이 많이 나오는 집이라는 소문과 홍보로 인한 확증 편향과 암시성의 결과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1]
4. 3. 1. 숫자 13에 대한 집착
사라 윈체스터가 숫자 13에 집착했다는 전설은 오랫동안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를 둘러싼 주요 미스터리 중 하나였다. 저택 곳곳에는 13개의 촛대가 달린 샹들리에, 13개의 갈고리가 있는 옷걸이, 13가지 색상의 돌이 포함된 티파니 창문 등 숫자 13과 관련된 요소들이 많이 발견된다. 이러한 특징들은 윈체스터 부인이 13이라는 숫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악령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러한 디자인을 선택했다는 믿음을 낳았다.하지만, 목수 제임스 퍼킨스에 따르면, 이러한 13과 관련된 특징들과 "집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이함으로 만든 더 불규칙한 특징들"은 윈체스터 부인이 사망한 후에 지어졌다고 한다.[8] 이러한 주장은 1929년에 처음 등장한 기사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고, 이후 윈체스터와 저택에 관한 대부분의 글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면서 전설처럼 굳어졌다.
결론적으로,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에 숫자 13과 관련된 요소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사라 윈체스터의 개인적인 집착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후대에 추가된 것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4. 3. 2. 밤마다 열린 강령회
윈체스터의 직원들은 그녀가 매일 함께 지냈으며, 그녀는 강령회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저택에서 강령회가 열린 기록도 없다고 진술했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매일 밤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파란 방이나 벽장 안에서 혼자 귀신과 대화하며 다음 날 어떤 공사를 해야 할지 논의하는 강령회를 열었다는 거짓 도시 전설이 생겨났다.[2][3][4] 라나다 빌라에서 강령회에 대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은 것 외에도, 벽장에서 혼자 강령회를 열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강령회가 사교적인 행사였고 개인이 하는 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일 가능성이 낮으며, 기록에 따르면 파란 방은 정원사의 침실이었다.[2][3][4]5. 관광 명소로서의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
이 저택은 윈체스터 리피팅 암즈 2대 사장이었던 사업가 윌리엄 워트 윈체스터의 미망인 세라 윈체스터의 개인 주택이었지만, 현재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세라 윈체스터의 지시 아래 1922년 9월 5일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38년 동안 24시간 365일 공사가 계속되었다. 이 공사비는 약 5500000USD로 추정된다.[3] 저택은 기본적인 설계 계획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반적인 이야기에 따르면, 세라 윈체스터는 저택이 윈체스터 총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의 영혼에 의해 저주받았으며, 그들이 저택 내에서 일으킬 것으로 예상한 유령 현상으로부터 언제라도 도망치기 위해 숨겨진 방, 비밀 통로를 계속 증축하여 갖추어 놓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맹신했다고 한다.
5. 1. 초기 관광 명소화 과정
사라 윈체스터가 사망하고 9개월 후인 1922년,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3] 당시 이 집은 낡아서 금전적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한 무리의 투자자들이 이 저택을 매입하여 존과 메이미 브라운 부부에게 임대했고, 이들은 저택을 관광 명소로 운영하였다. 브라운 부부는 1931년에 이 집을 구매했다.[3] 윈체스터가 사망한 후, 집에 많은 방이 추가되거나 제거되었다.[3]메이미 브라운은 집의 첫 번째 투어 가이드였다.[3] 윈체스터의 과거 이웃, 친구, 그리고 그녀를 위해 일했던 사람들은 이 집에 대한 미신적인 주장에 대한 기사를 읽고 윈체스터에 대해 불쾌감을 느꼈다.[3] 그들은 브라운 부부가 거짓말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3] 그들은 윈체스터를 대부분의 남자들보다 명석하고 재정 및 사업에 더 능숙하다고 묘사했다.[3]
1924년 해리 후디니가 이 집을 잠시 방문하여 특이한 구조와 건축의 독창성에 감명을 받았다고 전해지지만, 더 시급한 일 때문에 자세한 조사를 할 수는 없었다.[3] 일부 설명에 따르면 후디니는 투어 운영자들에게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를 이 부동산의 홍보 이름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3]
5. 2. 현재의 운영과 투어 프로그램
이 집은 1922년 윈체스터가 사망한 지 9개월 후 관광 명소가 되었다.[3] 투자자들이 이 부동산을 매입하여 존과 메이미 브라운 부부에게 임대했고, 이들 부부는 1931년에 집을 구매했다. 윈체스터의 과거 이웃, 친구, 그리고 그녀를 위해 일했던 사람들은 이 집에 대한 미신적인 주장에 불쾌감을 느꼈고, 브라운 부부가 거짓말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들은 윈체스터를 대부분의 남자들보다 명석하고 재정 및 사업에 능숙하다고 묘사했다.[3]1924년 해리 후디니가 잠시 이 집을 방문하여 특이한 구조와 건축의 독창성에 감명을 받았다.[3] 일부에서는 후디니가 투어 운영자들에게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를 이 부동산의 홍보 이름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3]
1973년 디즈니랜드와 프론티어 빌리지에서 근무했던 키스 키틀이 총괄 관리자가 되었을 때, 집은 형편없는 상태였다. 그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집을 개조하고 윈체스터 소총 박물관을 추가했다. 그는 역사적인 랜드마크 지위를 얻으려 했고, 고속도로를 따라 대형 광고판을 설치하는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광고판에는 유령과의 만남이 가능함을 암시하는 실루엣 형태의 집이 등장했다. 이미 유포되고 있던 역사와 미신을 이용하여 방문객이 증가했다. 키틀은 1996년까지 총괄 관리자로 재직했다.

2022년 9월 현재, 이 집은 브라운 부부의 후손들을 대표하는 사기업인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 LLC가 소유하고 운영하고 있다. 투어 가이드는 날조와 부정확성을 강조하는 스크립트를 따라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는 이 저택을 방문하는 몇몇 관광 여행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할로윈이나 13일의 금요일 즈음에는 야간에 담력 시험 투어가 열리기도 한다.
6.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는 그 독특한 역사와 건축 양식으로 인해 수많은 대중문화 작품에 영감을 주거나 배경으로 등장했다. 1950년대 텔레비전 프로그램 '유 아스크 포 잇'을 통해 미국 전역에 널리 알려졌으며,[8] 1960년대 영화에 처음 등장한 이후, 소설, 텔레비전 프로그램, 팟캐스트, 만화 등 다양한 매체에서 소재로 다루어졌다.
하위 섹션에서 이미 영화, 드라마, 소설, 기타 문학작품, 게임 및 기타 미디어에 대한 정보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간략하게 요약만 제시한다.
- 영화 및 드라마: ''13 고스트''(1960), ''로즈 레드''(2002), ''윈체스터''(2018) 등
- 소설 및 기타 문학 작품: 팀 파워스의 ''지진 날씨''(1997), 셜리 잭슨의 "The Haunting of Hill House" 등
- 게임 및 기타 미디어: 디즈니 테마 파크의 유령의 저택, ''MythBusters'' 에피소드, 다양한 팟캐스트 등
6. 1. 영화 및 드라마
- 1960년, 영화 ''13 고스트''에서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가 사이러스 조바 하우스로 사용되었다.[8]
- 2002년, 미니시리즈 ''로즈 레드''(스티븐 킹 집필)는 사라 윈체스터와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를 둘러싼 전설에서 영감을 받았다.[8]
- 2017년, 헬렌 미렌이 사라 윈체스터 역을 맡은 영화 ''윈체스터''의 촬영이 이 부동산에서 진행되었다. 이 영화는 2018년 2월 23일에 개봉되었다.[8]
6. 2. 소설 및 기타 문학 작품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는 여러 소설과 문학 작품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팀 파워스의 1997년 판타지 소설 ''지진 날씨''에서는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가 하위 플롯의 배경으로 등장한다.[7] 셜리 잭슨의 소설 "The Haunting of Hill House" (번역 제목: 유령의 집)에서도 이 집이 언급된다. 미카엘라 로스너의 1993년 SF 소설 ''Vanishing Point''는 이 집을 주요 배경으로 삼아, 대부분의 인류가 사라진 후 불법 점거 공동체의 거주지가 되는 모습을 그린다.케이지 베이커의 단편 '나이트메어 마운트텐'에서는 캘리포니아 주 산호세를 배경으로 유사한 저택과 역사를 다룬다. 앨런 무어의 "버티고 코믹스" 작품 『스왐프 씽』 중 "고스트 댄스"에서는 윈체스터 하우스를 기반으로 한 유령 저택이 등장한다. 이 작품 속 저택은 6에이커에 160개의 객실, 13개의 화장실, 13개의 벽난로와 47개의 굴뚝을 갖춘 건물로 묘사된다. 더글러스 브루튼의 2019년 성인 소설 ''Mrs Winchester's Gun Club''은 윈체스터 총기 피해자들의 목소리로 사라 윈체스터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피터 토마시, 이안 버트람, 데이브 스튜어트가 제작한 다크 호스 코믹스 ''House of Penance''는 집을 유령이 들린 곳으로 묘사하고, 사라를 강박적인 인물로 그리는 "...아마도 최초의 전기적 공포 그래픽 소설"이다. 1970년대에는 『데니스 더 메네스』에서 데니스와 부모가 하우스를 방문하는 짧은 에피소드가 그려졌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작가 아라키 히로히코와 그의 어시스턴트 출신인 오니쿠보 히로히사의 공저 변인 편굴 열전 제5화에는 아라키 히로히코 원작·구성·작화로 윈체스터 하우스가 다루어졌다.[8]
6. 3. 게임 및 기타 미디어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는 다양한 게임,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문학 작품 등에 영감이나 배경으로 사용되었다. 다음은 그 목록이다.- 영화 및 텔레비전:
- 1960년 영화 ''13 고스트''에서 사이러스 조바 하우스로 사용되었다.[8]
- 1966년 개러지 록 밴드 Count Five의 싱글 "Psychotic Reaction" 표지에 등장했다.[8]
- 디즈니 테마 파크의 유령의 저택 놀이기구에 영감을 주었다 (1969년 디즈니랜드에서 처음 개장).[8]
- 2002년 미니시리즈 ''로즈 레드'' (스티븐 킹 집필)의 줄거리에 영감을 주었다.[8]
- 영국 초자연 TV 조사 쇼 ''Most Haunted Live!''에서 2007년 10월 19일 7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조사했다.[8]
- 2011년 ''고스트 어드벤처'' 시즌 5의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다루어졌다.[8]
- ''MythBusters'' 에피소드 "공포의 냄새"에서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를 방문하여 공포와 냄새의 관계를 실험했다.[8]
- ''사라 윈체스터, 팬텀 오페라'' (2016년, 베르트랑 베르넬로 제작, 24분 분량 영화)가 제54회 뉴욕 영화제에서 북미 초연되었다.[8]
- 버즈피드 언솔브드 초자연적 현상'' 시즌 1과 4의 에피소드에서 라이언 베르가라와 셰인 마데지가 하룻밤을 묵었다.[8]
- 2017년 ''고스트 브라더스''의 한 에피소드에 등장했다.[8]
- 2017년 헬렌 미렌 주연의 영화 ''윈체스터''가 촬영되었고, 2018년 2월 23일에 개봉되었다.[8]
- 1950년대 텔레비전 프로그램 '유 아스크 포 잇'에서 다루어지면서 미국 전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8]
- 비디오 작가 제레미 블레이크의 작품 『윈체스터 3부작』에서는 하우스가 작품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이는 2005년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에서 전시되었다.[7]
- 2024년 6월, 콘텐츠 제작 그룹 OfflineTV는 YouTube 채널의 동영상에서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를 다루었다.[8]
- 문학:
- 미카엘라 로스너의 1993년 SF 소설 ''Vanishing Point''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8]
- 1997년 팀 파워스의 판타지 소설 ''지진 날씨''의 하위 플롯 배경이다.[8]
- 셜리 잭슨의 작품 『더 호운팅 오브 힐 하우스(번역 제목: 유령의 집)』에서 언급되었다.[8]
- 케이지 베이커의 단편 『나이트메어 마운트텐』에서 캘리포니아주 산호세를 기반으로 한 유사한 저택과 역사를 다룬다.[8]
- 피터 토마시, 이안 버트람, 데이브 스튜어트의 다크 호스 코믹스 ''House of Penance''에서 유령 들린 집으로 묘사된다.[8]
- 더글러스 브루튼의 2019년 성인 소설 ''Mrs Winchester's Gun Club''에서 윈체스터 총기 피해자들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전달된다.[8]
- 음악:
- ''The Haunting of Winchester''는 크레이그 보흘러와 메리 브래큰 필립스의 유령 이야기 뮤지컬로, 샌호세 레퍼토리 극장에서 2005년 9월에서 10월 사이에 초연되었다.[8]
- I the Mighty의 노래 "111 Winchester"에서 언급된다.[8]
- 팟캐스트:
- 2017년 ''And That's Why We Drink''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다루어졌다.[8]
- 2018년 팟캐스트 ''로어''의 에피소드 "갇힌 채"에서 묘사되었다.[8]
- 2019년 팟캐스트 ''크리미널''에서 "미망인과 윈체스터"라는 제목의 에피소드를 제작했다.[8]
- 2021년 1월, 팟캐스트 ''This Paranormal Life''의 에피소드에서 다루어졌다.[8]
- 만화:
- 앨런 무어의 "버티고 코믹스" 작품 『스왐프 씽』 중 "고스트 댄스"에서 윈체스터 하우스를 기반으로 한 유령 저택이 등장한다.[8]
- 1970년대 『데니스 더 메네스』에서 데니스와 부모가 하우스를 방문하는 에피소드가 그려졌다.[8]
- 죠죠의 기묘한 모험 작가 아라키 히로히코와 오니쿠보 히로히사의 공저 변인 편굴 열전 제5화에서 다루어졌다.[8]
7. 한국의 관점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는 미국의 윈체스터 소총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을 가진 건물이다. 한국의 관점에서 이 건물을 바라볼 때,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은 총기 소지 및 사용이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이는 윈체스터 소총과 같은 서구식 총기에 대한 인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또한,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의 주인인 세라 윈체스터는 남편과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윈체스터 소총에 희생된 영혼들의 저주를 받았다고 믿었다. 그녀는 이러한 저주를 피하기 위해 집 안에 비밀 통로와 숨겨진 방을 계속해서 추가했는데, 이는 전통적인 여성상과는 거리가 먼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7. 1. 일제강점기 총기 사용 역사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은 총기 소지 및 사용이 엄격하게 제한되었다. 이는 윈체스터 소총과 같은 서구식 총기에 대한 인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7. 2. 전통 가치관과 여성상
세라 윈체스터는 남편과 딸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윈체스터 소총에 의해 희생된 영혼들의 저주를 받았다고 믿었다. 그녀는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피하고자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에 숨겨진 방과 비밀 통로를 계속해서 추가했다. 이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로, 전통적인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해석할 수 있다. 38년간 지속된 공사 비용은 5500000USD였다.참조
[1]
간행물
2007
[2]
ohp
Winchester House
2012-10-14
[3]
웹사이트
When Harry Houdini Visited the Winchester Mystery House
https://www.mentalfl[...]
Mental Floss
2022-01-31
[4]
웹사이트
I the Mighty – 111 Winchester explanation – VIP San Francisco 10/21/17
https://www.youtube.[...]
2017-10-22
[5]
웹사이트
Episode 79: Locked Away
https://www.lorepodc[...]
2018-02-05
[6]
간행물
2007
[7]
Citation
Things to Do in San Jose, CA
http://www.frommers.[...]
Frommer's
[8]
간행물
未亡人が増築しつづけた謎の館 ウィンチェスター・ミステリー・ハウス
ウルトラジャンプ
2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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