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게정 (에히메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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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게정(弓削町)은 에히메현 오치군에 속했던 정으로, 유게 섬, 사 섬, 도요 섬, 백관 섬 등 4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 2004년 이키나 촌, 이와키 촌, 우오시마 촌과 합병하여 가미시마 정이 되었다. 유게정은 1953년 정으로 승격되었으며, 한때 인구 3,800명으로 가미지마 제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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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키나촌은 게이요 제도 이키나 섬을 중심으로 9개 섬으로 이루어져 마쓰야마번의 유배지였던 에히메현 오치군의 촌으로, 쇼와 시대 인노시마시와의 합병이 무산된 후 헤이세이 시대에 다른 촌들과 함께 가미지마정으로 합병되었다. - 가미지마정 - 우오시마촌
에히메현에 위치했던 우오시마촌은 유게촌에서 분립하여 재성립되었고 어업이 주요 산업이었으나, 2004년 우와지마시와 주변 정촌과의 합병으로 우와지마시에 편입되어 소멸되었다. - 오치군 (에히메현) - 오미시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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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게정 (에히메현)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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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 | |
기본 정보 | |
이름 | 유게 |
원어 이름 | 弓削町 (Yuge-chō) |
구분 | 읍 (폐지) |
소속 국가 | 일본 |
소속 지방 | 시코쿠 |
소속 섬 | 시코쿠 |
소속 광역 자치 단체 | 에히메현 |
소속 군 | 오치군 |
폐지일 | 2004년 10월 1일 |
폐지 사유 | 신설 합병 |
합병 정보 | 유게정, 이와키촌, 이쿠나섬, 우오시마촌 → 가미지마정 |
현재 소속 자치 단체 | 가미지마정 |
상징 (나무) | 솔 |
상징 (꽃) | つつじ |
행정 정보 | |
폐지 당시 자치체 코드 | 38350-3 |
우편 번호 | 794-2592 |
폐지 당시 주소 | 에히메현 오치군 유게정 시모유게 210번지 |
지리 정보 | |
면적 | 11.77 km² |
인접 자치 단체 (폐지 당시, 해상) | 오치군 이와키촌, 이쿠나섬, 우오시마촌 히로시마현 인노시마시 |
좌표 | 34°16′46″N 133°07′07″E |
인구 정보 | |
인구 (2000년 10월 1일) | 3,858명 |
역사 | |
읍으로 승격 | 1953년 1월 1일 |
기타 | |
웹사이트 | 유게정 홈페이지 (2004/07/26 보관) |
![]() | |
![]() 1966년 1월 제정 |
2. 지리
게이요 제도의 유게 섬, 사도, 도요시마, 모모누키 섬의 4개 섬으로 이루어진 정이다. 정사무소는 유게 섬에 있었다(현재의 우에시마 정사무소).
세토 내해의 거의 중앙, 에히메현과 히로시마현의 현 경계에 가까운 게이요 제도의 유게 섬, 사 섬, 토요 섬, 백관 섬의 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 마을이다. 섬이며, 다른 시정촌과 육지로 접해 있지 않다.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둔 북쪽의 맞은편은 히로시마현의 인노 섬이며, 경제권으로는 인노 섬에 속해 있었다.
2. 1. 지리적 특징
게이요 제도의 유미게 섬, 사도, 도요시마, 모모누키 섬의 4개 섬으로 이루어진 정이다. 정사무소는 유게섬에 있었다(현재의 우에시마 정사무소).세토 내해의 거의 중앙, 에히메현과 히로시마현의 현 경계에 가까운 게이요 제도의 유게 섬, 사 섬, 토요 섬, 백관 섬의 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 마을이다. 섬이며, 다른 시정촌과 육지로 접해 있지 않다.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둔 북쪽의 맞은편은 히로시마현의 인노 섬이며, 경제권으로는 인노 섬에 속해 있었다.
3. 역사
- 1889년 (메이지 22년) 12월 15일 - 정촌제 시행에 따라 가미유게 촌(かみゆげむら), 시모유게 촌(しもゆげむら), 사시마 촌(さしまむら), 우오시마 촌(うおしまむら)이 합병하여 '''유게 촌'''이 성립.
- 1895년 (메이지 28년) 9월 12일 - 유게 촌에서 우오시마 촌이 분리.
- 1953년 (쇼와 28년) 1월 1일 - 유게 촌이 정으로 승격하여 '''유게 정'''이 됨.
- 2004년 (헤이세이 16년) 4월 1일 - 이키나 촌, 이와키 촌, 우오시마 촌과 합병하여 '''가미시마 정'''이 됨.
유게정은 가미지마 제도의 4개 정 중에서 3,800명으로 최대 인구를 가지고 있었으며 (다른 곳은 이와키 정 2,300명, 이키나 정 2,100명, 우오시마 300명), 합병이라는 지방 행정의 틀을 바꾸는 큰 사안에 대해서는 각 정촌의 의향을 수렴하면서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을 해왔다. 합병을 모색한 시기가 있었지만, 가미지마 제도의 각 촌에서 생각의 차이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다. 인노시[2]로의 합병을 원하는 의견이 많았던 이키나 촌의 기사를 참조.
헤이세이 대합병에 즈음하여 유게정(弓削町), 이키나 촌(生名村), 우오시마 촌(魚島村)과 함께 히로시마 현 인노시마 시와의 현 경계를 넘은 합병을 목표로 "인노시마・카미시마(上島) 제도의 연계 교류 협의회"가 2000년 5월에 설치되었다.[4]
전국적으로 시정촌(市町村) 합병을 위한 논의가 고조되는 가운데, 에히메 현에서는 "시정촌 합병 추진 요강 책정 검토 위원회"를 1999년 9월에 발족[5], 2000년 10월에 제시한 합병의 "시안"에서는, 유게 정을 포함한 오치 군(越智郡)의 16개 정촌 전체가 이마바리 시에 합병되는 안과 함께, 이키나 촌, 이와키 촌(岩城村), 우오시마 촌과 합병하는 부안이 제시되었다.[6]
이를 받아, 12월에 유게 정장의 요청으로 상도 4개 정촌의 부촌장, 총무 담당 과장으로 구성된 "카미시마 지구 합병 연구회"를 발족, "주로 상도 4개 정촌에서의 합병을 상정하여", 조사 연구를 진행했다.[7]
"시안"이 알려지자 시정촌 합병을 둘러싼 논의는 더욱 활발해졌다. 이 틀을 토대로 에히메 현에서는 지역 블록 단위로 개최된 톱 미팅에서 각 시정촌장의 의견을 청취하고, 이를 바탕으로, 2001년 1월에 현이 밝힌 합병 추진 강령에서는, "기본 패턴"과 "참고 패턴"이 제시되었으며, 둘 다 이마바리・오치 군 지역으로서는 시안과 같은 패턴이었다.[8]
4월에 에히메 현의 이마바리 지방국[9] 관내에서도 "이마바리 지방국 시정촌 합병 검토 협의회"를 발족하여, 분위기 조성을 도모했다.
한편, 9월에 4개 정촌으로 구성된 "카미시마 지구 합병 연구회"는 "시정촌 합병 조사 연구 보고서"를 각 정촌장에게 제출했다.[10] 이를 받아 4개 정촌장은 협의를 진행하여
- 보고서의 전 가구 배포
- 검토 협의회의 설치
- 주민 의향 조사의 실시
에 대해 확인했다.
이듬해 10월, 각 수장, 의회 의장, 의회 대표 각 1명으로 구성된 "카미시마 합병 검토 협의회"를 발족하고, 또한 각 정촌에서 주민 설명회와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이 결과, 합병이 필요하며, 조합으로는 상도 4개 정촌의 틀을 지지하는 자가 많은 수를 차지했다.
2002년(헤이세이 14년) 1월의 제1회 "이마바리・오치 군 합병 문제 검토 수장회"에서는 이마바리 시장[11]이 기본 패턴에서의 합병을 촉구했다.[7]
이듬해 2월에 4개 정촌은 제2회 "카미시마 합병 검토 협의회"에서 4개 정촌에서의 방향과 함께 3월 중의 임의 합병 협의회의 발족 준비에 들어갈 것을 확인했다.
2월 25일 개최된 제2회 "이마바리・오치 군 합병 문제 검토 수장회"에서는 이마바리 시장의 요청에 대해, 4개 정촌을 대표하여 유게 정장이 "카미시마에서 합병을 추진한다. 가능한 빠른 시기에 합병 협의회를 발족하고 싶다"라고 말했다.[12] 이로써 4개 정촌에서의 합병 틀은 굳어졌다.
2002년 4월 18일 임의의 합병 협의회를 발족했다. 임의 단계이기는 하지만 법정 협의회의 수법을 답습하여, 연 5회의 협의에서 논의를 심화시켰다. 같은 해 7월에는 "하루라도 빨리 법정 협의회를 설치"를 확인하고 임의 협의회에서의 협의는 종료했다.
같은 해 8월 8일 법정 협의회를 설치하였다.
신정(町)의 명칭
: 2003년 11월 4일에는, 합병 후의 신정명이 "카미시마", "아이호쿠(愛北)", "게이요카미시마(芸予上島)", "이요카미시마(伊予上島)"의 4개 후보에서 선정되어, "가미시마 정"으로 결정되었다.[13]
청사의 위치
: 가장 난항을 겪은 것이 이 문제이다. 협의회의 하부 조직으로 "신정의 명칭・사무소의 위치 검토 소위원회"를 설치, 10차례에 걸친 협의를 거듭했지만, 의견 수렴을 얻을 수 없어, 협의회에 위임하는 결과가 되었다. 협의회에서도 난항을 겪어, 순위 기재의 투표에서, 순위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한 점수 계산을 하는 고육지책으로, -유게 정으로 결정했다. 점수는 유게 94점, 이와키 92점, 우오지마 68점, 이키나 65점이었다.[7]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이 확인되었다.
:* 종합 지소 방식으로 한다.
:* 관리・사무 부문을 두는 종합 지소는 유게 정으로 한다.
:* 본청 방식으로 이행할 경우에는, 신정에서 검토한다.
:* 향후의 공공 시설 정비에 대해서는, 균형 있는 발전에 배려한다.
: "본청"이라는 표기는 금기시되었고, 이후의 각종 협의에서도 말을 고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7]
정촌 의회의 정수・임기
: 임의 협의회의 단계에서 모두 특례는 적용하지 않고, 제1회 설치 선거에 한해 소선거구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논의는 각 선거구의 정수 배분으로 옮겨졌다. 협의 결과, 정수는 유게 7, 이키나 4, 이와기 5, 우오지마 2가 되었다. "설치 선거 이후의 선거에서 우오지마에서 의원을 1명 확보할 수 있는 분을 별도로 고려한다"라는 제안이 이루어져, 확인되었다.[14][7]
협의가 마무리되어, 2004년 2월 26일에 조인되었으며[15], 각 정촌 의회에서의 의결 등 소정의 절차를 거쳐, 합병에 이르렀다.
에히메 현청이 1정(町) 3촌의 합병을 추진했다. 합병 협정 조인식에 참석한 에히메 현 지사 카도 모리유키는, 4개 정촌의 합병은 필요하지만 우오시마 촌만 명확한 이점이 없다고 생각하여, 식전에 참석한 정촌장들에게 "우오지마에 대한 배려"를 요구했다.
3. 1. 쇼와 대합병
1889년 12월 15일 정촌제 시행에 의해 유게촌이 성립하였다. 1895년 9월 12일에는 유게촌에서 우오시마촌이 분리되었다. 1953년 1월 1일 정으로 승격해 유게정이 되었다.유게정은 가미지마 제도의 4개 정 중에서 3,800명으로 최대 인구를 가지고 있었으며 (다른 곳은 이와키정 2,300명, 이키나정 2,100명, 우오시마 300명), 합병이라는 지방 행정의 틀을 바꾸는 큰 사안에 대해서는 각 정촌의 의향을 수렴하면서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을 해왔다. 합병을 모색한 시기가 있었지만, 가미지마 제도의 각 촌에서 생각의 차이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다. 인노시[2]로의 합병을 원하는 의견이 많았던 이키나 촌의 기사를 참조.
2004년 4월 1일 이키나촌, 이와기촌, 우오시마촌과 합병해 유게정이 되었다.
3. 2. 헤이세이 대합병
2004년 4월 1일 - 이키나촌, 이와기촌, 우오시마촌과 합병해 유게정이 되었다. 유게정(유게정)은 가미지마 제도의 4개 정 중에서 3,800명으로 최대 인구를 가지고 있었으며 (다른 곳은 이와키정 2,300명, 이키나정 2,100명, 우오시마 300명), 합병이라는 지방 행정의 틀을 바꾸는 큰 사안에 대해서는 각 정촌의 의향을 수렴하면서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을 해왔다.[3]헤이세이 대합병에 즈음하여 유게정(弓削町), 이키나촌(生名村), 우오시마촌(魚島村)과 함께 히로시마현 인노시마시와의 현 경계를 넘은 합병을 목표로 "인노시마・카미시마(上島) 제도의 연계 교류 협의회"가 2000년 5월에 설치되었다.[4]
전국적으로 시정촌(市町村) 합병을 위한 논의가 고조되는 가운데, 에히메현에서는 "시정촌 합병 추진 요강 책정 검토 위원회"를 1999년 9월에 발족[5], 2000년 10월에 제시한 합병의 "시안"에서는, 유게정을 포함한 오치군(越智郡)의 16개 정촌 전체가 이마바리시에 합병되는 안과 함께, 이키나촌, 이와기촌(岩城村), 우오시마촌과 합병하는 부안이 제시되었다.[6]
이를 받아, 12월에 유게정장의 요청으로 상도 4개 정촌의 부촌장, 총무 담당 과장으로 구성된 "카미시마 지구 합병 연구회"를 발족, "주로 상도 4개 정촌에서의 합병을 상정하여", 조사 연구를 진행했다.[7]
"시안"이 알려지자 시정촌 합병을 둘러싼 논의는 더욱 활발해졌다. 이 틀을 토대로 에히메현에서는 지역 블록 단위로 개최된 톱 미팅에서 각 시정촌장의 의견을 청취하고, 이를 바탕으로, 2001년 1월에 현이 밝힌 합병 추진 강령에서는, "기본 패턴"과 "참고 패턴"이 제시되었으며, 둘 다 이마바리・오치군 지역으로서는 시안과 같은 패턴이었다.[8]
4월에 에히메현의 이마바리 지방국[9] 관내에서도 "이마바리 지방국 시정촌 합병 검토 협의회"를 발족하여, 분위기 조성을 도모했다.
한편, 9월에 4개 정촌으로 구성된 "카미시마 지구 합병 연구회"는 "시정촌 합병 조사 연구 보고서"를 각 정촌장에게 제출했다.[10] 이를 받아 4개 정촌장은 협의를 진행하여
- 보고서의 전 가구 배포
- 검토 협의회의 설치
- 주민 의향 조사의 실시
에 대해 확인했다.
이듬해 10월, 각 수장, 의회 의장, 의회 대표 각 1명으로 구성된 "카미시마 합병 검토 협의회"를 발족하고, 또한 각 정촌에서 주민 설명회와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이 결과, 합병이 필요하며, 조합으로는 상도 4개 정촌의 틀을 지지하는 자가 많은 수를 차지했다.
2002년(헤이세이 14년) 1월의 제1회 "이마바리・오치군 합병 문제 검토 수장회"에서는 이마바리 시장[11]이 기본 패턴에서의 합병을 촉구했다.[7]
이듬해 2월에 4개 정촌은 제2회 "카미시마 합병 검토 협의회"에서 4개 정촌에서의 방향과 함께 3월 중의 임의 합병 협의회의 발족 준비에 들어갈 것을 확인했다.
2월 25일 개최된 제2회 "이마바리・오치군 합병 문제 검토 수장회"에서는 이마바리 시장의 요청에 대해, 4개 정촌을 대표하여 유게정장이 "카미시마에서 합병을 추진한다. 가능한 빠른 시기에 합병 협의회를 발족하고 싶다"라고 말했다.[12] 이로써 4개 정촌에서의 합병 틀은 굳어졌다.
2002년 4월 18일 임의의 합병 협의회를 발족했다. 임의 단계이기는 하지만 법정 협의회의 수법을 답습하여, 연 5회의 협의에서 논의를 심화시켰다. 같은 해 7월에는 "하루라도 빨리 법정 협의회를 설치"를 확인하고 임의 협의회에서의 협의는 종료했다.
같은 해 8월 8일 법정 협의회를 설치하였다.
신정(町)의 명칭
: 2003년 11월 4일에는, 합병 후의 신정명이 "카미시마", "아이호쿠(愛北)", "게이요카미시마(芸予上島)", "이요카미시마(伊予上島)"의 4개 후보에서 선정되어, "가미시마정"으로 결정되었다.[13]
청사의 위치
: 가장 난항을 겪은 것이 이 문제이다. 협의회의 하부 조직으로 "신정의 명칭・사무소의 위치 검토 소위원회"를 설치, 10차례에 걸친 협의를 거듭했지만, 의견 수렴을 얻을 수 없어, 협의회에 위임하는 결과가 되었다. 협의회에서도 난항을 겪어, 순위 기재의 투표에서, 순위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한 점수 계산을 하는 고육지책으로, -유게정으로 결정했다. 점수는 유게 94점, 이와기 92점, 우오지마 68점, 이키나 65점이었다.[7]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이 확인되었다.
:* 종합 지소 방식으로 한다.
:* 관리・사무 부문을 두는 종합 지소는 유게정으로 한다.
:* 본청 방식으로 이행할 경우에는, 신정에서 검토한다.
:* 향후의 공공 시설 정비에 대해서는, 균형 있는 발전에 배려한다.
: "본청"이라는 표기는 금기시되었고, 이후의 각종 협의에서도 말을 고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7]
정촌 의회의 정수・임기
: 임의 협의회의 단계에서 모두 특례는 적용하지 않고, 제1회 설치 선거에 한해 소선거구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논의는 각 선거구의 정수 배분으로 옮겨졌다. 협의 결과, 정수는 유게 7, 이키나 4, 이와기 5, 우오지마 2가 되었다. "설치 선거 이후의 선거에서 우오지마에서 의원을 1명 확보할 수 있는 분을 별도로 고려한다"라는 제안이 이루어져, 확인되었다.[14][7]
협의가 마무리되어, 2004년 2월 26일에 조인되었으며[15], 각 정촌 의회에서의 의결 등 소정의 절차를 거쳐, 합병에 이르렀다.
에히메현청이 1정(町) 3촌의 합병을 추진했다. 합병 협정 조인식에 참석한 에히메현 지사 카도 모리유키는, 4개 정촌의 합병은 필요하지만 우오시마촌만 명확한 이점이 없다고 생각하여, 식전에 참석한 정촌장들에게 "우오지마에 대한 배려"를 요구했다.
3. 2. 1. 합병 협의 과정
헤이세이 대합병에 즈음하여 유게정(弓削町), 이키나촌(生名村), 우오시마촌(魚島村)과 함께[3] 히로시마현 인노시마시와의 현 경계를 넘은 합병을 목표로 "인노시마・카미시마(上島) 제도의 연계 교류 협의회"가 2000년 5월에 설치되었다[4]。전국적으로 시정촌(市町村) 합병을 위한 논의가 고조되는 가운데, 에히메현에서는 "시정촌 합병 추진 요강 책정 검토 위원회"를 1999년 9월에 발족[5], 2000년 10월에 제시한 합병의 "시안"에서는, 유게정을 포함한 오치군(越智郡)의 16개 정촌 전체가 이마바리시에 합병되는 안과 함께, 이키나촌, 이와기촌(岩城村), 우오시마촌과 합병하는 부안이 제시되었다[6]。
이를 받아, 12월에 유게정장의 요청으로 상도 4개 정촌의 부촌장, 총무 담당 과장으로 구성된 "카미시마 지구 합병 연구회"를 발족, "주로 상도 4개 정촌에서의 합병을 상정하여", 조사 연구를 진행했다[7]。
"시안"이 알려지자 시정촌 합병을 둘러싼 논의는 더욱 활발해졌다. 이 틀을 토대로 에히메현에서는 지역 블록 단위로 개최된 톱 미팅에서 각 시정촌장의 의견을 청취하고, 이를 바탕으로, 2001년 1월에 현이 밝힌 합병 추진 강령에서는, "기본 패턴"과 "참고 패턴"이 제시되었으며, 둘 다 이마바리・오치군 지역으로서는 시안과 같은 패턴이었다[8]。
4월에 에히메현의 이마바리 지방국[9] 관내에서도 "이마바리 지방국 시정촌 합병 검토 협의회"를 발족하여, 분위기 조성을 도모했다。
한편, 9월에 4개 정촌으로 구성된 "카미시마 지구 합병 연구회"는 "시정촌 합병 조사 연구 보고서"를 각 정촌장에게 제출했다[10]。이를 받아 4개 정촌장은 협의를 진행하여
- 보고서의 전 가구 배포
- 검토 협의회의 설치
- 주민 의향 조사의 실시
에 대해 확인했다.
이듬해 10월, 각 수장, 의회 의장, 의회 대표 각 1명으로 구성된 "카미시마 합병 검토 협의회"를 발족하고, 또한 각 정촌에서 주민 설명회와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이 결과, 합병이 필요하며, 조합으로는 상도 4개 정촌의 틀을 지지하는 자가 많은 수를 차지했다.
2002년(헤이세이 14년) 1월의 제1회 "이마바리・오치군 합병 문제 검토 수장회"에서는 이마바리 시장[11]이 기본 패턴에서의 합병을 촉구했다[7]。
이듬해 2월에 4개 정촌은 제2회 "카미시마 합병 검토 협의회"에서 4개 정촌에서의 방향과 함께 3월 중의 임의 합병 협의회의 발족 준비에 들어갈 것을 확인했다.
2월 25일 개최된 제2회 "이마바리・오치군 합병 문제 검토 수장회"에서는 이마바리 시장의 요청에 대해, 4개 정촌을 대표하여 유게정장이 "카미시마에서 합병을 추진한다. 가능한 빠른 시기에 합병 협의회를 발족하고 싶다"라고 말했다[12]。이로써 4개 정촌에서의 합병 틀은 굳어졌다.
2002년 4월 18일 임의의 합병 협의회를 발족했다. 임의 단계이기는 하지만 법정 협의회의 수법을 답습하여, 연 5회의 협의에서 논의를 심화시켰다. 같은 해 7월에는 "하루라도 빨리 법정 협의회를 설치"를 확인하고 임의 협의회에서의 협의는 종료했다.
같은 해 8월 8일 법정 협의회를 설치。
신정(町)의 명칭
: 2003년 11월 4일에는, 합병 후의 신정명이 "카미시마", "아이호쿠(愛北)", "게이요카미시마(芸予上島)", "이요카미시마(伊予上島)"의 4개 후보에서 선정되어, "카미시마"로 결정되었다[13]。
청사의 위치
: 가장 난항을 겪은 것이 이 문제이다. 협의회의 하부 조직으로 "신정의 명칭・사무소의 위치 검토 소위원회"를 설치, 10차례에 걸친 협의를 거듭했지만, 의견 수렴을 얻을 수 없어, 협의회에 위임하는 결과가 되었다. 협의회에서도 난항을 겪어, 순위 기재의 투표에서, 순위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한 점수 계산을 하는 고육지책으로, -유게정으로 결정했다. 점수는 유게 94점, 이와기 92점, 우오지마 68점, 이키나 65점이었다[7]。
: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이 확인되었다.
:* 종합 지소 방식으로 한다.
:* 관리・사무 부문을 두는 종합 지소는 유게정으로 한다.
:* 본청 방식으로 이행할 경우에는, 신정에서 검토한다.
:* 향후의 공공 시설 정비에 대해서는, 균형 있는 발전에 배려한다.
: "본청"이라는 표기는 금기시되었고, 이후의 각종 협의에서도 말을 고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7]。
정촌 의회의 정수・임기
: 임의 협의회의 단계에서 모두 특례는 적용하지 않고, 제1회 설치 선거에 한해 소선거구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논의는 각 선거구의 정수 배분으로 옮겨졌다. 협의 결과, 정수는 유게 7, 이키나 4, 이와기 5, 우오지마 2가 되었다. "설치 선거 이후의 선거에서 우오지마에서 의원을 1명 확보할 수 있는 분을 별도로 고려한다"라는 제안이 이루어져, 확인되었다[14]。[7]
협의가 마무리되어, 2004년 2월 26일에 조인되었으며[15], 각 정촌 의회에서의 의결 등 소정의 절차를 거쳐, 합병에 이르렀다.
에히메현청이 1정(町) 3촌의 합병을 추진했다. 합병 협정 조인식에 참석한 에히메현 지사 가도 모리유키는, 4개 정촌의 합병은 필요하지만 우오지마촌만 명확한 이점이 없다고 생각하여, 식전에 참석한 정촌장들에게 "우오지마에 대한 배려"를 요구했다。
3. 2. 2. 합병 협의 난항
헤이세이 대합병에 즈음하여 유게정(弓削町), 이키나촌(生名村), 우오지마촌(魚島村)과 함께[3] 히로시마현 인노시마시와의 현 경계를 넘은 합병을 목표로 "인노시마・카미시마(上島) 제도의 연계 교류 협의회"가 2000년 5월에 설치되었다[4]。전국적으로 시정촌(市町村) 합병을 위한 논의가 고조되는 가운데, 에히메현에서는 "시정촌 합병 추진 요강 책정 검토 위원회"를 1999년 9월에 발족[5], 2000년 10월에 제시한 합병의 "시안"에서는, 유게정을 포함한 오치군(越智郡)의 16개 정촌 전체가 이마바리시에 합병되는 안과 함께, 이키나촌, 이와기촌(岩城村), 우오지마촌과 합병하는 부안이 제시되었다[6]。
이를 받아, 12월에 유게정장의 요청으로 상도 4개 정촌의 부촌장, 총무 담당 과장으로 구성된 "카미시마 지구 합병 연구회"를 발족, "주로 상도 4개 정촌에서의 합병을 상정하여", 조사 연구를 진행했다[7]。
"시안"이 알려지자 시정촌 합병을 둘러싼 논의는 더욱 활발해졌다. 이 틀을 토대로 에히메현에서는 지역 블록 단위로 개최된 톱 미팅에서 각 시정촌장의 의견을 청취하고, 이를 바탕으로, 2001년 1월에 현이 밝힌 합병 추진 강령에서는, "기본 패턴"과 "참고 패턴"이 제시되었으며, 둘 다 이마바리・오치군 지역으로서는 시안과 같은 패턴이었다[8]。
4월에 에히메현의 이마바리 지방국[9] 관내에서도 "이마바리 지방국 시정촌 합병 검토 협의회"를 발족하여, 분위기 조성을 도모했다。
한편, 9월에 4개 정촌으로 구성된 "카미시마 지구 합병 연구회"는 "시정촌 합병 조사 연구 보고서"를 각 정촌장에게 제출했다[10]。이를 받아 4개 정촌장은 협의를 진행하여
- 보고서의 전 가구 배포
- 검토 협의회의 설치
- 주민 의향 조사의 실시
에 대해 확인했다.
이듬해 10월, 각 수장, 의회 의장, 의회 대표 각 1명으로 구성된 "카미시마 합병 검토 협의회"를 발족하고, 또한 각 정촌에서 주민 설명회와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이 결과, 합병이 필요하며, 조합으로는 상도 4개 정촌의 틀을 지지하는 자가 많은 수를 차지했다.
2002년(헤이세이 14년) 1월의 제1회 "이마바리・오치군 합병 문제 검토 수장회"에서는 이마바리 시장[11]이 기본 패턴에서의 합병을 촉구했다[7]。
이듬해 2월에 4개 정촌은 제2회 "카미시마 합병 검토 협의회"에서 4개 정촌에서의 방향과 함께 3월 중의 임의 합병 협의회의 발족 준비에 들어갈 것을 확인했다.
2월 25일 개최된 제2회 "이마바리・오치군 합병 문제 검토 수장회"에서는 이마바리 시장의 요청에 대해, 4개 정촌을 대표하여 유게정장이 "카미시마에서 합병을 추진한다. 가능한 빠른 시기에 합병 협의회를 발족하고 싶다"라고 말했다[12]。이로써 4개 정촌에서의 합병 틀은 굳어졌다.
2002년 4월 18일 임의의 합병 협의회를 발족했다. 임의 단계이기는 하지만 법정 협의회의 수법을 답습하여, 연 5회의 협의에서 논의를 심화시켰다. 같은 해 7월에는 "하루라도 빨리 법정 협의회를 설치"를 확인하고 임의 협의회에서의 협의는 종료했다.
같은 해 8월 8일 법정 협의회를 설치。
신정(町)의 명칭
: 2003년 11월 4일에는, 합병 후의 신정명이 "카미시마", "아이호쿠(愛北)", "게이요카미시마(芸予上島)", "이요카미시마(伊予上島)"의 4개 후보에서 선정되어, "카미시마"로 결정되었다[13]。
청사의 위치
: 가장 난항을 겪은 것이 이 문제이다. 협의회의 하부 조직으로 "신정의 명칭・사무소의 위치 검토 소위원회"를 설치, 10차례에 걸친 협의를 거듭했지만, 의견 수렴을 얻을 수 없어, 협의회에 위임하는 결과가 되었다. 협의회에서도 난항을 겪어, 순위 기재의 투표에서, 순위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한 점수 계산을 하는 고육지책으로, -유게정으로 결정했다. 점수는 유게 94점, 이와기 92점, 우오지마 68점, 이키나 65점이었다[7]。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이 확인되었다.
:* 종합 지소 방식으로 한다.
:* 관리・사무 부문을 두는 종합 지소는 유게정으로 한다.
:* 본청 방식으로 이행할 경우에는, 신정에서 검토한다.
:* 향후의 공공 시설 정비에 대해서는, 균형 있는 발전에 배려한다.
: "본청"이라는 표기는 금기시되었고, 이후의 각종 협의에서도 말을 고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7]。
정촌 의회의 정수・임기
: 임의 협의회의 단계에서 모두 특례는 적용하지 않고, 제1회 설치 선거에 한해 소선거구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논의는 각 선거구의 정수 배분으로 옮겨졌다. 협의 결과, 정수는 유게 7, 이키나 4, 이와기 5, 우오지마 2가 되었다. "설치 선거 이후의 선거에서 우오지마에서 의원을 1명 확보할 수 있는 분을 별도로 고려한다"라는 제안이 이루어져, 확인되었다[14]。[7]
협의가 마무리되어, 2004년 2월 26일에 조인되었으며[15], 각 정촌 의회에서의 의결 등 소정의 절차를 거쳐, 합병에 이르렀다.
에히메현청이 1정(町) 3촌의 합병을 추진했다. 합병 협정 조인식에 참석한 에히메현 지사 카도 모리유키는, 4개 정촌의 합병은 필요하지만 우오지마촌만 명확한 이점이 없다고 생각하여, 식전에 참석한 정촌장들에게 "우오지마에 대한 배려"를 요구했다。
3. 2. 3. 합병 이후
2004년 4월 1일 - 이키나촌, 이와기촌, 우오시마촌과 합병해 유게정이 되었다. 유게정(유게정)은 가미지마 제도의 4개 정 중에서 3,800명으로 최대 인구를 가지고 있었으며 (다른 곳은 이와키정 2,300명, 이키나정 2,100명, 우오시마 300명), 합병이라는 지방 행정의 틀을 바꾸는 큰 사안에 대해서는 각 정촌의 의향을 수렴하면서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을 해왔다.[3]; 상도 4개 정촌(町・村)의 조합이 결정되기까지
헤이세이 대합병에 즈음하여 유게정(弓削町), 이키나촌(生名村), 우오지마촌(魚島村)과 함께 히로시마현 인노시마시와의 현 경계를 넘은 합병을 목표로 "인노시마・카미시마(上島) 제도의 연계 교류 협의회"가 2000년 5월에 설치되었다.[4]
전국적으로 시정촌(市町村) 합병을 위한 논의가 고조되는 가운데, 에히메현에서는 "시정촌 합병 추진 요강 책정 검토 위원회"를 1999년 9월에 발족[5], 2000년 10월에 제시한 합병의 "시안"에서는, 유게정을 포함한 오치군(越智郡)의 16개 정촌 전체가 이마바리시에 합병되는 안과 함께, 이키나촌, 이와기촌(岩城村), 우오시마촌과 합병하는 부안이 제시되었다.[6]
이를 받아, 12월에 유게정장의 요청으로 상도 4개 정촌의 부촌장, 총무 담당 과장으로 구성된 "카미시마 지구 합병 연구회"를 발족, "주로 상도 4개 정촌에서의 합병을 상정하여", 조사 연구를 진행했다.[7]
"시안"이 알려지자 시정촌 합병을 둘러싼 논의는 더욱 활발해졌다. 이 틀을 토대로 에히메현에서는 지역 블록 단위로 개최된 톱 미팅에서 각 시정촌장의 의견을 청취하고, 이를 바탕으로, 2001년 1월에 현이 밝힌 합병 추진 강령에서는, "기본 패턴"과 "참고 패턴"이 제시되었으며, 둘 다 이마바리・오치군 지역으로서는 시안과 같은 패턴이었다.[8]
4월에 에히메현의 이마바리 지방국[9] 관내에서도 "이마바리 지방국 시정촌 합병 검토 협의회"를 발족하여, 분위기 조성을 도모했다.
한편, 9월에 4개 정촌으로 구성된 "카미시마 지구 합병 연구회"는 "시정촌 합병 조사 연구 보고서"를 각 정촌장에게 제출했다.[10] 이를 받아 4개 정촌장은 협의를 진행하여
- 보고서의 전 가구 배포
- 검토 협의회의 설치
- 주민 의향 조사의 실시
에 대해 확인했다.
이듬해 10월, 각 수장, 의회 의장, 의회 대표 각 1명으로 구성된 "카미시마 합병 검토 협의회"를 발족하고, 또한 각 정촌에서 주민 설명회와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이 결과, 합병이 필요하며, 조합으로는 상도 4개 정촌의 틀을 지지하는 자가 많은 수를 차지했다.
2002년(헤이세이 14년) 1월의 제1회 "이마바리・오치군 합병 문제 검토 수장회"에서는 이마바리 시장[11]이 기본 패턴에서의 합병을 촉구했다.[7]
이듬해 2월에 4개 정촌은 제2회 "카미시마 합병 검토 협의회"에서 4개 정촌에서의 방향과 함께 3월 중의 임의 합병 협의회의 발족 준비에 들어갈 것을 확인했다.
2월 25일 개최된 제2회 "이마바리・오치군 합병 문제 검토 수장회"에서는 이마바리 시장의 요청에 대해, 4개 정촌을 대표하여 유게정장이 "카미시마에서 합병을 추진한다. 가능한 빠른 시기에 합병 협의회를 발족하고 싶다"라고 말했다.[12] 이로써 4개 정촌에서의 합병 틀은 굳어졌다.
; 합병 협의에서의 검토 사항
2002년 4월 18일 임의의 합병 협의회를 발족했다. 임의 단계이기는 하지만 법정 협의회의 수법을 답습하여, 연 5회의 협의에서 논의를 심화시켰다. 같은 해 7월에는 "하루라도 빨리 법정 협의회를 설치"를 확인하고 임의 협의회에서의 협의는 종료했다.
같은 해 8월 8일 법정 협의회를 설치하였다.
: 신정(町)의 명칭
:: 2003년 11월 4일에는, 합병 후의 신정명이 "카미시마", "아이호쿠(愛北)", "게이요카미시마(芸予上島)", "이요카미시마(伊予上島)"의 4개 후보에서 선정되어, "가미시마정"으로 결정되었다.[13]
: 청사의 위치
:: 가장 난항을 겪은 것이 이 문제이다. 협의회의 하부 조직으로 "신정의 명칭・사무소의 위치 검토 소위원회"를 설치, 10차례에 걸친 협의를 거듭했지만, 의견 수렴을 얻을 수 없어, 협의회에 위임하는 결과가 되었다. 협의회에서도 난항을 겪어, 순위 기재의 투표에서, 순위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한 점수 계산을 하는 고육지책으로, -유게정으로 결정했다. 점수는 유게 94점, 이와기 92점, 우오지마 68점, 이키나 65점이었다.[7]
::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이 확인되었다.
::* 종합 지소 방식으로 한다.
::* 관리・사무 부문을 두는 종합 지소는 유게정으로 한다.
::* 본청 방식으로 이행할 경우에는, 신정에서 검토한다.
::* 향후의 공공 시설 정비에 대해서는, 균형 있는 발전에 배려한다.
:: "본청"이라는 표기는 금기시되었고, 이후의 각종 협의에서도 말을 고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7]
: 정촌 의회의 정수・임기
:: 임의 협의회의 단계에서 모두 특례는 적용하지 않고, 제1회 설치 선거에 한해 소선거구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논의는 각 선거구의 정수 배분으로 옮겨졌다. 협의 결과, 정수는 유게 7, 이키나 4, 이와기 5, 우오지마 2가 되었다. "설치 선거 이후의 선거에서 우오지마에서 의원을 1명 확보할 수 있는 분을 별도로 고려한다"라는 제안이 이루어져, 확인되었다.[14][7]
; 협의 종료, 조인
협의가 마무리되어, 2004년 2월 26일에 조인되었으며[15], 각 정촌 의회에서의 의결 등 소정의 절차를 거쳐, 합병에 이르렀다.
에히메현청이 1정(町) 3촌의 합병을 추진했다. 합병 협정 조인식에 참석한 에히메현 지사 카도 모리유키는, 4개 정촌의 합병은 필요하지만 우오시마촌만 명확한 이점이 없다고 생각하여, 식전에 참석한 정촌장들에게 "우오지마에 대한 배려"를 요구했다.
4. 행정
마을 사무소는 유게섬에 있었으며, 현재의 가미지마정 사무소로 사용되고 있다. 1974년도에 건축되었으며, 가미지마정을 구성하는 4개 마을 중에서는 우오시마촌 (1970년도 건축) 다음으로 오래되었다.
- 키노시타 료이치
CATV를 설치, 운영하고 있었다. 제3섹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도 마을도 활기차게 빛나는 개성 넘치는 건강한 마을이다.[1] 유게정의 심볼 마크는 제정되지 않았다.
도서 진흥법에 따라 1957년 도요시마가 제6차 지정, 1961년에는 유게지마, 사지마가 제9차 지정되었다.[1] 과소 지역 및 변두리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4. 1. 청사
마을 사무소는 유게섬에 있었으며, 현재의 가미지마정 사무소로 사용되고 있다. 1974년도에 건축되었으며, 가미지마정을 구성하는 4개 마을 중에서는 우오시마촌 (1970년도 건축) 다음으로 오래되었다.4. 2. 역대 촌장 및 정장
- 키노시타 료이치
4. 3. 정영 사업
CATV를 설치, 운영하고 있었다. 제3섹터는 존재하지 않는다.4. 4. 캐치프레이즈
사람도 마을도 활기차게 빛나는 개성 넘치는 건강한 마을이다.[1] 유게정의 심볼 마크는 제정되지 않았다.4. 5. 지역 지정
도서 진흥법에 따라 1957년 도요시마가 제6차 지정, 1961년에는 유게지마, 사지마가 제9차 지정되었다.[1] 과소 지역 및 변두리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5. 사회
5. 1. 인구
연도 | 인구 | 세대수 |
---|---|---|
1975년 | 6528 | 1813 |
1980년 | 6011 | 1837 |
1985년 | 5757 | 1848 |
1990년 | 4749 | 1762 |
1995년 | 4246 | 1745 |
2000년 | 3958 | 1670 |
6. 교육
6. 1. 고등전문학교
유게 상선고등전문학교가 있다.6. 2. 고등학교
에히메현립 유게고등학교6. 3. 중학교
유게 정립 유게 중학교6. 4. 초등학교
유게 정립 유게 초등학교가 있다.참조
[1]
서적
愛媛県市町村要覧
愛媛県市町村課
2002
[2]
문서
[3]
문서
[4]
뉴스
知事、「県境越え」容認 因島市、愛媛側と模索 市町村合併/広島
2000-11-21
[5]
문서
[6]
뉴스
70市町村を13自治体に 県が合併試案、早期実現へ努力 /愛媛
2000-10-05
[7]
서적
愛媛県町村合併誌
愛媛県
2006-03
[8]
뉴스
基本パターンは11自治体 市町村合併、県が公表 /愛媛
2001-02-01
[9]
문서
[10]
서적
愛媛県町村合併誌
愛媛県
2006-03
[11]
문서
[12]
뉴스
合併「上島4町村で」 弓削町など意思表明 /愛媛
2002-02-26
[13]
뉴스
上島諸島4町村、新町名「上島」に 法定合併協で決定 /愛媛
2003-11-05
[14]
문서
[15]
뉴스
「上島町」へ合併調印式 弓削町・岩城村・生名村・魚島村 /愛媛
200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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