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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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윤덕규는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로, 내야수 및 외야수로 활동했다. 1985년 MBC 청룡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며, 1990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LG 트윈스 시절 이광환 감독 부임 후 태평양 돌핀스로 이적하여 YKK포를 이루며 1994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끌었고, 현대 유니콘스에서도 준우승을 경험했다. 1997년 은퇴했으며,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 입단을 시도했으나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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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규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선수 정보 | |
선수명 | 윤덕규 |
원어명 | Yun Deog-Kyu |
등번호 | 17번, 3번 |
국적 | 대한민국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수원시 |
생년월일 | 1963년 2월 25일 |
신장 | 178 |
체중 | 80 |
수비 위치 | 외야수 |
투구 | 좌 |
타석 | 좌 |
프로 입단 연도 | 1985년 |
드래프트 순위 | 1985년 1차 5순위(MBC 청룡) |
첫 출장 | KBO / 1985년 3월 30일 동대문 대 OB전 대타 (원정경기) |
마지막 경기 | KBO / 1997년 |
획득 타이틀 | 1994년 골든글러브 (외야수) |
선수 경력 | |
코치 경력 |
2. 선수 경력
대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실업팀 한국산업은행에서 뛰다가 1985년 MBC 청룡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초구부터 스윙해 우중간을 가르는 안타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세 차례 3할 타율을 기록하고, 1990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하였다.
1992년 이광환 감독이 LG 트윈스에 부임하면서 노장 선수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주전 자리를 잃었다. 같은 해 6월 30일 박준태와 맞트레이드되어 태평양 돌핀스 유니폼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이광환 감독은 팬들로부터 원성을 샀는데,[1] 이적 다음 날인 1992년 7월 1일 인천 LG전에서 연장 10회말 끝내기 안타를 친 뒤[2] LG 덕아웃을 향해 헬멧을 내동댕이쳐 이광환 감독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태평양 돌핀스 이적 후 김경기, 김동기와 YKK포를 이루어 1994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기여했고, 개인 첫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 1996년 현대 유니콘스로 바뀐 뒤 다시 한번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기여하고 1997년 시즌 후 은퇴하였다.
1999년 시즌 직전 재정난으로 선수가 부족했던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선수 계약을 시도했고, 본인(윤덕규)도 현역 복귀를 노렸으나[3] 선수 등록 기한을 넘겨 좌절됐다.
2. 1. MBC 청룡 / LG 트윈스 시절
대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실업팀 한국산업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1985년 MBC 청룡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타격하는 스타일과 우중간을 가르는 안타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세 차례 3할 타율을 기록하고, 1990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1992년 이광환 감독이 LG 트윈스에 부임하면서 팀 개편 과정에서 주전 자리를 잃었다.[1]
2. 2. 태평양 돌핀스 / 현대 유니콘스 시절
1992년 6월 30일 박준태와 맞트레이드되어 태평양 돌핀스로 이적했다. 이 과정에서 이광환 감독은 팬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1] 이적 다음 날인 1992년 7월 1일 인천 LG 트윈스전에서 연장 10회 말 끝내기 안타를 쳤고,[2] LG 덕아웃을 향해 헬멧을 내동댕이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이광환 감독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태평양 돌핀스에서 김경기, 김동기와 함께 YKK포를 이루어 1994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기여했으며, 1994년 개인 첫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1996년 현대 유니콘스로 팀명이 변경된 후 다시 한번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기여했다. 1997년 시즌 후 은퇴했다.
2. 3. 은퇴 이후
1999년 재정난으로 선수 부족을 겪던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선수 계약을 시도했으나, 선수 등록 기한을 넘겨 현역 복귀가 무산되었다.[3]3. 주요 기록
wikitext
3. 1. 개인 기록
4. 출신 학교
참조
[1]
뉴스
"「지는 해」尹德奎(윤덕규)「뜨는 해」朴俊泰(박준태) LG-태평양 맞교환 得失(득실)"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2023-09-19
[2]
뉴스
"「지는 해」尹德奎(윤덕규)「뜨는 해」朴俊泰(박준태) LG-태평양 맞교환 得失(득실)"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2023-09-19
[3]
뉴스
"[프로야구] 은퇴선수들 현역복귀 바람"
http://news.kmib.co.[...]
국민일보
202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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